소설리스트

환생무적-118화 (119/301)

118. 겉과 속이 다릅니다

“놀란 모양이구나.”

교패의 말에 적비연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르신께서 어찌……?”

“여기에 있냐고 묻는 것이더냐?”

“그, 그렇습니다. 분명 무림맹으로…….”

교패의 입매가 슬쩍 올라갔다.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눈앞에 있는 이자는 교패가 틀림없다.

그냥 느껴진다.

반철룡의 몸이 그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만큼 익숙한 기운,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눈빛이다.

혹시 인피면구를 쓴 제삼자가 아닌가 싶어서 유심히 얼굴을 뜯어 살폈다.

그럼에도…….

-진짜인 것 같은데?

‘진짜다.’

-허 참! 그럼 무림맹으로 끌려간 건? 그놈은 뭐야? 혹시 교패가 두 놈이냐? 아니면 쌍둥이?

‘아니.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쌍둥이일 리가 없다. 그래도 한 번 물어보는 건 나쁘지 않겠지.’

적어도 교패는 반철룡을 허울 없이 대했으니까.

뭐, 좀 엉뚱한 질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 반철룡의 혼이 이 자리에 있었어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어르신께서는…… 혹 형제분이 있으신지요?”

“으음? 후후후.”

교패가 반철룡을 슬쩍 돌아보다가 이내 툴툴 웃었다.

“없다.”

“…….”

미치겠군.

듣고만 있던 극마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구시렁거렸다.

-아니, 그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가짜다.’

-가짜? 저놈이?

‘아니. 무림맹으로 간 놈.’

-그놈이 인피면구를 쓴 모양이구나!

‘아니. 그 정도로 허술해선 속지 않아. 분명 인피면구는 아니었어.’

혹여 아주 정교한 인피면구를 썼다고 해도 선박에서 공진철에 구속됐을 때 무림맹 무인들이 확인해 봤을 터다.

손으로 만지고 불을 가져가도 떨어지거나 녹지 않는다면 진짜 피부인 것이다.

-그럼 대체 뭐야? 교패가 둘이란 소리냐?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다만 이곳에 있는 교패가 진짜인 만큼 무림맹으로 간 자는 가짜임이 틀림없다.

당시에는 교패가 가짜라는 걸 몰랐다.

교패와 친분을 나눈 기억이 없었으니까.

강동칠괴의 기억을 비춰 봐도 대충 안면을 튼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반철룡은 다르다.

반철룡의 기억에는 교패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꽤나 깊다.

쓰레기통이나 뒤지던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이었으니까.

세상사람 모두가 반철룡을 멸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때, 교패만큼은 가능성을 봐주었다.

그랬던 만큼 누구보다도 믿고 따랐던 자가 교패다.

‘적어도 반철룡에게 있어서 교패는 은인이지.’

적비연은 일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냉정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지금 거기에만 함몰되면 반철룡으로서의 반응이 부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물론 누가 봐도 자신은 반철룡이었기에 괜한 기우일 것이다.

하지만 왠지 저 교패 앞에서는 그마저도 조심스럽다.

사예린과는 결이 또 다른 예리함이 느껴진달까?

해서 적비연은 타아에 좀 더 집중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 기억을 계속해서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타아에 몰입이 되니까.

이내 적비연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쿵 소리 내며 꿇었다.

“불초 반 아무개가 어르신을 뵙습니다!”

교패가 부드럽게 웃었다.

“일어나라. 나는 네가 그대로 돌이 되어버린 줄 알았지.”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그만…….”

“너는 아직 나를 잘 모르는구나. 나는 너에 대해 잘 아는데.”

교패가 깊어진 눈으로 적비연을 바라보았다.

왠지 심연을 꿰뚫어 버릴 것만 같은 눈빛이었기에 적비연은 절로 긴장이 됐다.

‘확실히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구나.’

교패가 곧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 긴장할 건 없다. 네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다.”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여전히 딱딱한 녀석이구나. 그리 굳어 있지 마라. 모든 것은 유연해야 한다. 물결처럼, 바람처럼, 불길처럼. 이 중 어느 것 하나 딱딱한 것이 있더냐?”

“더 정진하겠습니다.”

적비연의 대답에 교패가 툴툴 웃었다.

옆에 있는 극마가 답답하다는 듯 다그쳤다.

-주인, 왜 안 물어보냐? 빨리 좀 물어 봐라!

‘뭘?’

-당연히 여기에 어떻게 있는 건지 말이다!

‘안 돼.’

-왜!

‘반철룡이라면 묻지 않을 테니까.’

-허 참! 그 반철룡이라는 녀석은 생각이 없는 병신이더냐?

당연히 아니다.

다만…….

‘반철룡에게 교패는 신앙적인 존재다.’

삶의 구원자.

교패는 공식적으로 제자를 두지 않지만, 반철룡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조금 전처럼 지나가듯 툭툭 던지는 말에도 깨달음을 얻곤 했다.

그러다 보니 반철룡에게 교패는 그야말로 신앙적 존재.

종교나 다름없었다.

종교의 근본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믿음은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교패가 이곳에 있다.

그럼 있는 것이다.

어째서? 왜? 어떻게?

이런 질문은 따질 필요가 없다.

-골 때리는 놈일세. 한마디로 교패 앞에선 바보 멍청이가 된단 말이군.

뭐, 어쩔 수 없다.

누구나 완벽하진 않다.

반철룡에게는 결핍이 있었고, 그 결핍을 유일하게 채워준 은인이 교패였으니까.

어쩌면 지금 적비연이 이토록 긴장하는 이유도, 타아가 느끼는 감정에 영향을 받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반철룡은 그런 인간이다.

그러니 기다려야 한다.

말해줄 때까지.

교패와 반철룡의 관계라면 분명 교패가 먼저 알려줄 것이기에.

아니나 다를까, 교패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역시 묻지 않는구나.”

“어르신께서 제 앞에 계신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캬! 언제나 느끼지만 너의 그 몰입 연기는 최고다.

‘방해나 하지 마라.’

-커흠!

교패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비록 네 상처는 치료하지 못했으나 의술은 나름 익혔다고 말할 정도는 된다.”

나름 익혔다고 말할 정도가 아니지.

신의 아상에게 버금갈 정도니까.

아니, 어떤 면에서는 아상보다 뛰어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가령, 의술을 이용해 사람을 걸어 다니는 벽력탄으로 만들어 버린다거나, 일생의 공력을 일각 만에 끌어다 쓰게 한다거나.

한마디로 사술에 가까운 의술은 아상을 넘어섰을 것이다.

교패가 적비연을 보며 물었다.

“날 보면 어딘지 허전하지 않으냐?”

“무슨 말씀이신지…….”

말을 꺼내던 적비연은 순간 흠칫하고는 기감을 펼쳐보았다.

‘아, 없다!’

교패가 웃었다.

“이제 눈치챈 모양이구나.”

“제가 아둔하여 미처 몰랐습니다.”

-대체 뭔 소리냐?

‘혈조야귀. 교패의 심복이 보이지 않아.’

-엇! 그럼 그 무림맹으로 간 인간이 혈조야귀라는 놈인 거냐?

‘흐음…….’

적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혈조야귀가 보이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지만, 그는 교패와 전혀 다른 외모다.

키와 체격은 비슷하더라도 얼굴 생김새가 달랐다.

그런 적비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교패가 충격적인 말을 전해왔다.

“혈조야귀가 나를 대신해 무림맹으로 갔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어리석은 질문이라면 죄송합니다.”

“딱딱하긴. 그의 얼굴을 내 얼굴로 만들었다.”

“부족한 것이 많아서 여전히 이해가 안 됩니다.”

“성형술(成形術).”

“그게 무엇입니까?”

“뼈를 깎고, 피부를 다듬고, 머리카락을 뽑거나 심고, 이목구비를 교정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얼굴 모양을 만드는 시술이다.”

“아……!”

“사술의 일종인 이형대법(移形大法)을 사용해서 혈조야귀의 외모를 바꿀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 들킬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예 수술을 진행했지. 성대구조마저 바꿔서 내 목소리를 내도록 만들었다. 수개월이 걸렸다.”

“……!”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래, 교패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교패의 별호가 무엇이던가?

혈지침이 아닌가?

침을 다루는 것만은 누구보다 뛰어난 자다.

사람 살리는 의술 전체에 대한 지식은 아상이 뛰어나지만, 침을 정교하게 이용하는 수술 능력만 보면 교패가 뛰어날지도 모른다.

그는 무공 또한 강하니까.

게다가 사파답게 사람을 두고 온갖 실험을 한 그가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극마의 반응도 이해가 됐다.

교패를 처음 봤을 때, 극마는 생각보다 약하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뒷모습만 보고도 강한 자라고 경고해 주지 않았던가?

-이제 알겠느냐? 내 말을 가벼이 넘기지 말란 말이다.

‘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의 외모를 그리 감쪽같이 바꿔 버리다니.

그럼 그동안 혈조야귀의 종적이 묘연했던 것은 성형술을 받느라 그랬던가?

그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교패가 말을 이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다.”

“그 말씀은……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것을 예견하셨던 겁니까?”

교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무림오절이 한자리에 모인 행사다. 그 정도로 성공하진 못하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대충 해서도 의심을 받을 테지. 그래서 신풍문을 만든 것이다.”

그런 이유였구나!

“하면…… 어르신께서 진정으로 노리신 것은…….”

“혈조야귀를 무림맹에 보내는 것. 내 얼굴을 하고 갔으니, 비록 공진철에 구속될지언정 삼류잡범 대하듯 하진 못할 거다. 그런 만큼 그는 앞으로 그곳에서 내밀하게 날 도울 것이다.”

-허어! 이 잔머리 대마왕 좀 보소!

극마가 탄성을 터뜨렸다.

‘글쎄. 이 정도의 정교함과 기간을 들였다면 잔머리로 폄하할 수도 없겠는데?’

-그래, 인정한다. 이놈은 정말 독한 놈이다. 아주 독종이다. 정말이지 뱀 같은 놈이다.

‘부정할 수가 없군.’

정말이지 까맣게 몰랐다.

이렇게 되면 가후가 교패에게 한 방 먹인 게 아닌가?

지략 싸움에서 가후가 결국 진 셈이다.

적비연이 포권하며 소리쳤다.

“어르신의 혜안에 깊이 감복했습니다!”

“너는 내가 가후를 이겼다고 보느냐?”

“어찌 이만한 대계(大計)를 그가 눈치채겠습니까?”

하지만 교패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일전에 그를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지. 그때 나는 그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그런…….”

이건 좀 놀랍다.

가후가 그토록 뛰어난 인재였나?

하긴, 둔재는 천재를 몰라보는 법이니.

-주인 스스로 둔재라는 걸 인정하는 거냐?

‘적어도 머리 굴리는 건 그자에 비해 둔하겠지.’

교패가 말을 이었다.

“천문과 역학, 거기에 점괘까지 보면 그에게는 운도 많이 따른다. 그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지.”

“하나 무림맹 총군사도 이번 대계는 절대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길 바라고. 앞으로는 또 어찌 될지 모르지만.”

말을 마친 교패가 시선을 적비연에게 돌렸다.

“이제 네 얘기를 해보자.”

“말씀하십시오.”

“그 부상에서 어찌 회복한 것이냐?”

“저도 이해하기 힘든 현상인지라…….”

“하긴. 세상을 살다 보면 기적이라는 게 종종 일어나지. 의술로 이해할 수 없는.”

“어르신께서도 짐작되는 바가 없으신지요?”

“나라고 모든 걸 알겠느냐?”

교패가 툴툴 웃더니 곧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몸가짐을 조심해라. 사람들은 좀처럼 기적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지.”

의심하는 자가 있을 거란 말이다.

아마 사예린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럼 가보아라. 네가 깨어났다고 하여 얼굴 한 번 보고자 했을 뿐이니.”

어라?

진맥이라도 하려던 게 아니었나?

적비연이 멈칫거리자 교패가 이번에도 속내를 읽은 것처럼 말했다.

“진맥이라도 할 줄 알았느냐?”

“사실…… 그렇습니다.”

“아서라. 이미 다 나은 몸을 진맥해서 뭐 하겠느냐? 네 몸에 어떤 기적이 일어났든 내가 그것을 헤아릴 재주도 없다.”

하긴. 지금 진맥을 한다고 해서 뭘 알아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예린처럼 자신과 손을 섞어본 것도 아니니.

-정말로 널 믿는 모양이구나. 저런 이야기를 다 해주고. 은근슬쩍 사예린을 조심하라고 언질도 주고.

하지만 적비연은 극마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반철룡이었다면 아마 극마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백 년의 기억을 가진 적비연은 어쩐지 교패의 속내가 보이는 듯했다.

‘오히려 시험일지도 모른다.’

-무슨 소리냐?

‘날 믿는 것처럼 모든 사실을 말해주고,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려는.’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 법. 내 짐작이 맞다면 이제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볼 거다. 그건 사예린이 맡은 일이겠지.’

-흐음. 그럼 이놈도 사예린하고 한통속이라는 거냐?

‘어쩌면.’

백사장에서 싸울 때 나뭇가지 위에 서 있던 방갓의 사내.

지금 생각해 보면 교패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교패는 두 가지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반철룡의 결백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사예린의 억측이 틀리지 않다면 망설임 없이 제거하겠다는 의도까지.

반철룡은 그를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교패에게 반철룡은 딱 그 정도였다.

언제든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어찌 보면 참 대단한 자들이다.

단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과 뭔가 석연치 않다는 직감 때문에 어떻게든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가?

-그게 아니면 주인을 의심할 만한 또 다른 뭔가가 있는 것 아니냐? 원래 의심에는 일 푼의 힘만 실려도 확신이 되는 법이니.

‘그런 게 있을 리…….’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혹시…… 천문, 역학이나 점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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