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121화 (122/301)

121. 낄 때 끼어야지

적비연이 꿈틀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대주님, 참으세요!]

여추백이 얼른 전음을 보내더니 먼저 일어났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혈성단주님 아니십니까? 그렇잖아도 요즘 단주님 소식 궁금하던 차였는데 여기서 다 뵙는군요.”

“오랜만이다, 추백.”

마영후가 싸늘하게 웃으면서 여추백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추백이 일부러 적비연 앞을 가로막듯이 서서는 말을 이어갔다.

“너무 오랜만이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단주님 찾아뵙고 인사 좀 드렸어야 했는데.”

“흥! 말은 잘하는구나.”

“에이, 진짭니다. 그런데 단주님도 아시다시피 최근에 본대에 여러 가지 일로 복잡해서 그만…….”

“사정이 복잡한데 여기서 이러고 놀고 있었냐?”

“아, 이건 또 다른 사정이…… 하하! 사실 제가 주선한 자립니다. 단주님도 아시겠지만, 우리 대주님이 워낙 앞뒤 꽉 막힌 분이시라서 저도 숨통이 콱콱 막혀서 말이죠. 이런 계기로 저도 숨 쉬고, 대주님도 즐기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핫!”

“그렇다고 병가를 내고 이런 곳에서 처 놀고 자빠져 있으면 쓰나?”

“에이, 단주님도 너무 그러지 마시고 옛정을 생각하셔서 한번 너그럽게…….”

짜악!

순간 마영후의 손찌검에 여추백의 몸이 휘청거리며 흔들렸다.

겨우 중심을 잡은 여추백이 당혹감을 숨기고는 얼른 배시시 웃었다.

“우와. 단주님 손맛 오랜만에 봅니다. 정신이 확 드……!”

짜아악!

다시 한번 마영후가 이번엔 손등으로 여추백의 뺨을 후려쳤다.

털썩!

결국 여추백이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적비연이 뺨을 씰룩이고 일어서려는데, 이번에도 여추백이 얼른 일어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즉시 자리를 파하고 련으로 복귀하겠습니다!”

마영후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듣는군. 하지만 늦었어.”

“예?”

“직무 태만의 죄를 물어서 상부에 보고할 것이다.”

“단주님.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그냥 넘어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여추백이 마영후의 팔꿈치를 슬쩍 잡았다.

마영후가 눈을 내리깔고는 자신의 팔을 잡은 여추백의 손을 보았다.

“이 새끼가 감히…… 손모가지 꺾어 버리기 전에 놔라.”

“단주님, 제가 정말 언제 한번 날 잡아서 거하게…….”

콰득!

“아아악!”

마영후가 순간 금나술을 펼쳐 여추백의 손목을 꺾어 잡았다.

여추백이 비명을 터뜨렸다.

퍼억!

슈우욱, 콰당!

마영후의 발길질에 얻어맞은 여추백이 그대로 튕겨 나가면서 정자 입구에 쓰러졌다.

‘크윽……! 개새끼……!’

정말이지 너무 아프다.

손목이 완전히 부러진 것인지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손이 덜렁거린다.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지만 여추백은 차마 입안에서 맴도는 욕설을 뱉을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마영후가 갑이었다.

사실 마영후와 반철룡은 입련 동기였다.

하지만 반철룡의 무공 수위에 비해서 마영후의 무공은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반철룡은 앞뒤 꽉막힌 인간처럼 오로지 검술 수련에만 관심이 있었고, 마영후는 음주가무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당연히 반철룡의 진급이 빨랐다.

반철룡이 대주직에 올랐을 때, 마영후는 부대주의 자리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조장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간악한 마영후는 반철룡보다 처세술이 좋았다.

그는 인맥을 활용해서 곧잘 영약이나 영단을 구해 복용했고, 내공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가 됐다.

내공이 뒷받침되다 보니 어느 정도 무공 성과의 차이는 극복할 수 있었고, 고수들의 지도가 더해져 반철룡과 엇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거기에 특유의 처세술 덕분에 혈성단주의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상하관계가 역전된 것.

정식 진급 심사를 통한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인맥을 활용한 인사 이동이었다.

어쨌거나 그가 조장이었던 시절, 마영후는 반철룡에게 친분을 과시하며 노골적으로 부대주의 자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반철룡이 누구인가?

오로지 원칙만 고수하는 꽉 막힌 인간이 아니던가?

그러다 보니 단주가 된 마영후는 아직까지도 반철룡을 보면 그 당시의 서운함을 풀지 못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곤란한 건 혈성단이 월희계라는 거지.’

적비연의 생각에 극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월희계라면…… 그 이 공녀의 줄을 잡았다는 거군.

‘그래. 혈성단이 그리 큰 조직은 아니지만, 그래도 월희계라는 건 무시할 수 없지.’

-그렇잖아도 그 영악한 년이 널 두고 보겠다고 했는데 상황이 좋지 않군.

한편 마영후가 쓰러진 여추백을 싸늘하게 읊조렸다.

“난 빈말 안 한다.”

그가 이번엔 적비연을 보았다.

“뭘 그렇게 딱딱한 표정으로 보고 있어? 누가 보면 죄 지은 놈이 난 줄 알겠네?”

그가 성큼 걸음을 내디딜 때였다.

이번엔 다시 화령이 그 앞을 가로막으며 섰다.

이미 그녀의 백옥 같이 하얗던 뺨은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단주님,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이 자리는 제가 고집을 부려서 만들어졌습니다. 오해를…….”

말을 꺼내던 화령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목을 움츠렸다.

마영후가 손찌검을 하려는 듯 손바닥을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녀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는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물러났다.

“뭐야? 몸 파는 년 주제에 그 반응은? 누가 보면 혼전순결주의자인 줄 알겠어?”

“…….”

“내가 말했지?”

스르르릉.

마영후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끼어들지 말라고.”

순간 그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사됐다.

화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가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무공 한 줌 익히지 않은 여인이 칼을 뽑아 들고 살기를 쏘아대는 것을 감당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이 떨렸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제 주변은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영후가 한 걸음 물러나더니 화령을 아래위로 훑었다.

“이제 보니 꽤 쓸 만한 몸이네. 네가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그, 그렇습니다. 제가 주도한 일입니다.”

“건방지게…… 한낱 기녀 주제에 본 련의 대주를 오라 가라 했다?”

마영후의 눈이 뱀처럼 가늘어졌다.

화령은 정말이지 이대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먹을 꼭 말아 쥐고는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소녀가 자리를 청했다는 사실을 대주님께서는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네가 책임을 지겠다는 건가?”

“그럴 수 있다면요.”

“허! 눈물 나서 못 봐주겠군. 어이, 반 대주. 언제 이런 효부를 둔 거지?”

그러게 말이다.

적비연도 화령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극마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저 아이가 너한테 홀딱 반한 모양이구나.

‘내가 아니라 반철룡이겠지.’

-어쨌든 지금은 네가 그놈이잖냐? 이렇게 되면 일이 쉽게 됐다. 하악.

‘무슨 일?’

-무슨 일이긴. 오늘 밤에 할 일이지. 하악. 오랜만에 격정의 시간을 한 번 보내봐라. 적극 응원해 주마. 뭣 하면 내가 개발한 체위 정도는 전수해 줄 수 있다. 하악. 하악.

‘미친…… 지금 상황에 그런 말이 나오냐? 이 욕구 불만 덩어리야.’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러게 왜 많고 많은 인간 중에 날 부른 놈이 너란 놈이냐! 제 몸뚱이도 없는 놈이!

‘안 되겠다. 너 그냥 소멸…….’

-미안하다. 주인. 말이 헛나갔다.

적비연이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는 사이 마영후는 점점 선을 넘고 있었다.

“책임을 지겠다라…… 그럼 어디 한 번 책임질 각오를 보여봐.”

“각오…… 말씀인가요?”

“그래. 이 중차대한 일에 책임을 지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럼 각오를 보여야지. 어디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화령은 시종 차분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영후의 대답에 그녀의 침착함도 흔들리고 말았다.

“벗어.”

“……!”

“안 들려? 지금 벗어.”

“그런…….”

“왜? 못하겠어? 너 같은 년들이 늘 하는 일이잖아?”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화령의 뺨이 녹아버릴 것처럼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왜? 책임을 지겠다더니. 벗으면 용서해 주겠다니까?”

“그건…….”

“왜? 내가 좀 도와줘?”

마영후가 칼을 들이밀었다.

칼끝이 닿자 화령의 옷자락이 사라락 잘려 나갔다.

이내 그녀의 날씬한 허리와 하얀 아랫배가 갈라진 옷자락 사이로 훤히 드러났다.

예기를 품은 칼끝이 점점 올라가자 그녀의 배꼽과 명치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령이 떨리는 목소리를 뱉었다.

“단주님…….”

“쉿. 다들 지켜보고 있잖아. 네 각오를 보여주라고.”

마침내 칼끝이 가슴께를 지나려고 할 때였다.

“그만하시오.”

적비연이 나섰다.

어지간하면 괜히 나서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결국 참지 못했다.

딱히 정의 구현 따위의 거창한 이유도 아니었다.

그저 약자 앞에서 한없이 거들먹거리는 마영후의 꼬락서니가 보기 싫었을 뿐이다.

마영후가 눈썹을 씰룩였다.

“너, 방금 뭐라고 했냐?”

“그만하라고 했소.”

“하! 이런 미친놈이…… 지금 상관에게 명령하는 거냐?”

“부탁이라고 합시다.”

“부탁이라…… 훗. 그 부탁, 거절하겠다면?”

마영후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적비연을 쏘아보았다.

적비연이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주변도 좀 둘러보며 살지. 뭐 그리 대단한 검술을 익히겠다고 앞뒤 꽉 막혀 살았더냐?’

-내 말이 그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혼자 고귀해 봐야 꼭 이렇게 탈이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 저 아이와 네가…….

적비연이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마영후에게 말했다.

“그만해라. 마영후.”

마영후의 눈동자가 커졌다.

“뭐라? 너 이 새끼 지금…….”

마영후가 칼을 쥔 손에 힘을 싣는 순간,

“거기서 더 움직이면 손모가지 자른다.”

흠칫.

마영후가 순간 반철룡의 기세에 눌려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그 사실에 짜증이 솟구치면서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질렀다.

촤아악!

“꺄앗!”

마영후의 칼날이 하늘로 솟구쳤고, 앞섶이 완전히 찢어져 나간 화령이 옷깃을 여미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마영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새끼야. 어디 그 잘난 주둥이…….”

타앗!

순간 적비연이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어지간하면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놈은 어지간하게 끝낼 놈이 아니라는 걸 방금 확실히 알았다.

이런 놈들은 상대의 나약한 모습을 더 비열하게 파고든다.

차라리 이쯤에서 사고를 치는 게 더 깔끔할 수 있었다.

‘뭐,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명분도 챙겼고.’

쉬이이잇!

적비연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매섭게 떨어졌다.

“어딜!”

마영후가 일갈을 터뜨리며 도를 마주 베어왔다.

적비연은 마주 오는 도를 보면서 잠깐 내력의 기운을 변형했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거의 본능적으로 대응한 것이었다.

한데 이것이 놀라운 효과를 가져왔다.

“헛?”

마영후는 일순 적비연의 검이 사라졌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직후,

부딪쳤어야 할 도검이 어떠한 마찰도 일으키지 않았다.

대신 섬뜩한 소리가 귀를 스쳤다.

서컥!

툭, 챙그랑!

후우웅!

허공을 향해 한차례 팔을 휘두른 마영후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두 눈을 부릅떴다.

깔끔하게 잘려 나간 손목.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자신의 손과 칼!

뇌리를 들쑤시는 고통은 그다음이었다.

“크읍! 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차오르는 가운데, 적비연이 싸늘하게 읊조렸다.

“나도 빈말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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