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146화 (147/301)

146. 산 너머 태산

백발광인이 내뿜는 사이한 기운!

전신이 찌릿찌릿하다.

정말이지 머리털 끝이 쭈뼛 선다.

한동안 잊고 있던 공포가 떠올랐다.

그건 반철룡의 기억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맞섰지만 제대로 된 일수도 뻗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했던 그 절망감이 뇌리에서 되살아난다.

저자가 어떻게 이곳에 있나?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항주 인근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그럼 혹시 이동하는 자신들을 보고 뒤따라온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광인이 어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 움직이던가?

그저 본능에 따라 떠도는 것일 테지.

그나저나 이제 어쩐다?

미계수와 동소유를 구하려고 했더니, 얼토당토 않는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미친개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지.

극마가 모처럼 현답을 내놓았다.

그렇다.

굳이 여기서 백발광인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그가 어떤 이유에서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지만, 흑천련에 사로잡혀 있었던 만큼 좋은 감정으로 나타났을 리는 없다.

적비연이 백발광인을 빤히 바라보며 서서히 뒷걸음질을 쳤다.

우선 후퇴한다.

미계수와 동소유는 백발광인이 사라진 후에 다시 구하러 온다.

그런데 그때,

-주인, 뒤다!

극마의 외침에 이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살기!

적비연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

쒸에에엣, 툭!

예기를 머금은 뭔가가 배를 스치며 지나간다.

풀럭!

앞섶이 풀어헤쳐지면서 탄탄한 가슴과 복근이 드러난다.

휘리릭, 탓!

몸을 팽이처럼 회전한 적비연이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는 돌아섰다.

‘누구……?’

급습한 자를 노려보던 적비연은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뒤편 건물 지붕 위에서 급습을 한 자는 다름 아닌 사예린이었다.

휘리리릭, 탁!

밤공기를 가르며 선회한 흑월아가 그녀의 손으로 돌아와 착 감겼다.

차라라랑.

흑월아를 부채처럼 펼쳐 든 사예린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안녕?”

“…….”

“말할 줄 모르니?”

사예린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물어왔다.

마치 자상한 누이의 표정과 말투다.

잠깐만 넋을 놓게 되면 저도 모르게 대답이라도 할 것만 같다.

적비연은 사술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내공을 슬며시 끌어올렸다.

동시에 뒤를 의식했다.

만약 백발광인이 배후를 공격해 오면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기에.

그런데 그 행동이 사예린을 기분 나쁘게 만든 모양이었다.

“너, 사람이 얘기를 하는데 어딜 신경 쓰니?”

정말 귀신같은 여자다.

뒤를 돌아본 것도 아니고, 그저 배후를 조금 의식했을 뿐인데 그걸 알아차린다.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른다.

그녀와 백발광인이 한바탕 크게 붙으면 산채가 대번 소란스러워질 터.

그럼 그 난장 속에서 미계수와 동소유를 빼내기가 더 수월해지리라.

적비연이 목소리를 변조해서 말했다.

“동료를 구하러 왔다. 방해한다면 죽여 버리겠다.”

순간 사예린이 깔깔 웃었다.

“재미있는 목소리네? 그런데 어쩌지? 난 네가 복면을 써도 누군지 알 것 같은 느낌인데.”

“헛소리.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래? 그럼 또 누가 있을까? 궁금해지는걸?”

팟!

순간 사예린의 신형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같은 건물 지붕 위에 나타났다.

정말이지 놀라운 경신법이었다.

적비연이 반대편 건물을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내 동료가……?”

적비연이 말을 꺼내다 말고 흠칫거렸다.

뭐야? 없잖아!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백발광인이 저 건물 지붕 위에 서 있었는데, 지금은 유령처럼 사라지고 없다.

기감을 펼쳐 봐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예린이 차갑게 웃었다.

“동료? 어디? 녹림에서 왔니? 하지만 내가 알기로 녹림 애들은 뭉쳐 다닌다던데. 넌 왜 혼자야?”

“그건…….”

뭐라 말을 해야 하지?

갑자기 백발광인이 사라지는 바람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그러자 사예린이 깔깔거리며 말을 이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차피 너보다 내가 그 답을 더 잘 아는 것 같으니까. 그렇지 않아? 반 호법장?”

“무슨 소리를 하는…….”

“아아, 이제 재미없어. 질렸다고나 할까?”

팟!

다시 눈앞에서 사예린의 신형이 사라졌다.

-정신 차려! 옆이다!

극마의 고함 소리에 적비연이 얼른 허리를 젖히면서 검을 휘둘렀다.

스까아앙!

불꽃이 터지면서 양쪽에서 날아들던 흑월아 두 자루가 허공으로 튕겨 날아갔다.

파파팟!

곧이어 사라졌던 사예린이 섬뜩한 미소를 머금은 채 적비연의 정면으로 파고들어 왔다.

쉬이이잇! 쒜에엑!

흑월아 한 자루가 정면에서 날아들었고, 그 뒤를 쫓아오듯 사예린이 흑월아를 양손에 쥐고 밖에서 안으로 휘둘러왔다.

“칫!”

적비연이 혀를 차고는 벽력활보를 펼쳤다.

파파파팟!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성큼성큼 뒤로 물러났다.

샤샤샤샥!

사예린의 흑월아는 연신 공간을 갈랐다.

어두운 밤공기가 그보다 더 짙은 어둠의 예기로 마구 잘려 나간다.

어찌나 살벌한 공격을 퍼부어대는지, 조각조각 잘려 나간 공기가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런 와중에도 무너지는 허공을 뚫으며 곧게 뻗어오는 흑월아 한 자루는 계속해서 적비연의 심장을 노린다.

-주인, 일관시!

급박한 상황이라 극마가 핵심만 던졌다.

적비연은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구천혈마검법의 제일초식 구천일관시를 말하는 것이리라.

어차피 지금은 서호검법을 펼칠 수 없다.

그랬다간 내가 바로 반철룡이오, 하고 자수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콰앙!

벽력활보로 물러나던 적비연이 일순 오른발을 뒤로 뻗으며 진각을 밟았다.

쿠구구궁!

그 충격이 어찌나 큰지 목조 건물 지붕 일부가 무너져 내리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팟!

순간 적비연이 반동을 이용해 앞으로 튕겨 나갔다.

사예린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그녀가 위기를 느낀 것인지 발끝으로 지붕을 툭 찍어 차며 물러났다.

적비연은 그대로 검을 내지르면서 정면에서 날아드는 흑월아를 노렸다.

구천을 관통할 만큼 강렬한 일검!

구천 중에서도 그중심인 균천(均天)을 노린다.

따아아앙!

정면에서 날아들던 흑월아가 비명처럼 금속성을 터뜨리면서 튕겨 날아갔다.

곧이어 극마가 외쳤다.

-단혼전!

적비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대로 벽력활보를 펼치면서 몸을 회전했다.

쉬이이이잇!

공기마저 엘 것 같은 예기가 매섭게 호선을 그린다.

먼저 동북서의 하늘이 갈라진다.

동쪽 창천(蒼天)에서 시작된 단혼전이 현천(玄天)을 지나 서쪽 호천(昊天)까지 단숨에 벤다.

검로가 스친 공간은 비스듬히 갈라지면서 균형이 무너진다.

물론 살벌한 예기가 만들어낸 착시다.

하지만 제삼자가 보기에는 그야말로 세상의 일부를 오려낸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사예린은 간발의 차이로 피해냈다.

그러나 적비연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쒸이이이잇!

관성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구천단혼전이 펼쳐진다.

이번에는 남동쪽 양천(陽天)에서 염천(炎天)을 지나 호천까지 이어진다.

씨아아아앙!

붉은 검기가 이번에도 허공을 한 차례 오려냈다.

끼아아앙!

이번만큼은 완전히 피하지 못한 사예린이 흑월아를 들어 막아냈다.

마치 흑월아가 붉은 검기를 이겨내지 못해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크읏!”

사예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상대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극마의 훈수는 계속됐다.

-다시 일관시!

‘알고 있어!’

적비연이 이를 악물고는 다시 한번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콰앙!

쿠구구구구궁!

이번에는 아예 목조 건물 전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떨어져 내리는 통나무를 밟으면서 적비연이 날듯이 검을 내질렀다.

쒸이에에엑!

세상의 모든 것을 뚫어버릴 듯 날아가는 검!

중앙의 하늘 균천을 뚫는다!

하지만 검봉이 균천에 닿기 직전,

차차차착! 촤라라라랑!

각각 흩어졌던 흑월아가 사예린의 손에 모이면서 일순 부채꼴로 펼쳐졌다.

후우우웅!

곧이어 흑월아를 둘러싸듯 검은 사기가 보호막처럼 생겨났다.

쩌어어어엉!

“크윽!”

“크웃!”

적비연과 사예린이 동시에 신음을 터뜨리고는 튕겨 나갔다.

슈우우웃, 콰당!

목조 건물 벽을 부수며 나동그라진 적비연이 얼른 몸을 일으키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웬 놈이냐!”

“전주님! 괜찮으십니까?”

이 난리를 쳐놨으니 주변으로 사람이 모이지 않는 게 이상하리라.

제일 먼저 무너진 건물 안에 머물던 무인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와 복면 쓴 적비연에게 칼을 겨눴다.

어두컴컴했던 산채에 하나둘 불이 밝혀지면서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렇게 되면 곧 투혈권왕도 나타날 것이다.

그땐 적비연이 자리에 없는 것이 발각될 수도 있는 상황.

‘제길, 산 넘어 산이군!’

-클클, 이제야 좀 재미있어지는데?

‘넌 주인이 외통수에 몰렸는데 걱정은커녕 즐기고 있는 거냐?’

-본좌의 주인이라면 이런 난관쯤은 헤쳐 나가…….

‘헛소리 집어치워. 소멸시켜 버리기 전에.’

-쳇! 주인은 항상 말이 너무 과격하다!

적비연은 투덜거리는 극마를 무시한 채 생글거리며 걸어오는 사예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넌 보통이 아니라니까?”

적비연은 반응하는 대신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사예린을 노려보았다.

마침 무너진 소방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왔는데, 바로 미계수와 동소유였다.

두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사예린이 두 사람을 향해 싱긋 웃었다.

“너희 둘을 구하러 온 손님이야. 뭐, 혈을 점해놔서 웬만해서는 탈출이 어렵겠지만.”

“우리를……?”

미계수와 동소유가 동시에 복면 쓴 적비연을 보았다.

사예린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동료라며? 그럼 녹림채라고 신분을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복면을 여전히 쓰고 있는 건 왜일까? 부끄럼쟁이야? 아니면…… 내가 잘 알고 있는 누군가이거나?”

“뭔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적비연이 변조한 목소리로 받아치자 사예린이 광기 걸린 사람처럼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목소리 들을 때마다 너무 재미있어! 어떻게 하는 거야?”

-음, 주인의 그 변조 목소리가 좀 웃긴 건 사실이다.

젠장,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그때였다.

“사저! 무슨 일입니까?”

아니나 다를까, 소란을 들은 투혈권왕이 나타났다.

투혈권왕 뒤로 좌호법 엽강호와 우호법 한사도 모습을 보였다.

물론 단휘와 예홍, 현청과 임송화, 그리고 여추백까지 모두 있었다.

하지만…….

“호법장은?”

사예린이 피식 웃으며 묻는 말에 투혈권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예?”

“네 호법장은 어디에 있냐고.”

“제 호법장을 또 왜……?”

투혈권왕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반사적으로 수신호위들을 돌아보았다.

그제야 그는 호법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으레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호법장이 보이지 않다니.

투혈권왕이 당황하자, 사예린이 입매를 말아 올리며 적비연을 빤히 응시했다.

“내가 알려줄까? 호법장이 어디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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