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158화 (159/301)

158. 멸문지화(滅門之禍)?

장원 곳곳에 화마가 덮쳤다.

전각 사이마다 칼부림이 난무했고, 비명과 욕설이 연신 터져 나왔다.

우지끈!

쿠르르릉!

마침 전각 하나가 완전히 타 버리면서 지붕이 무너졌다.

“불, 불이야! 사람이 갇혔어! 빨리 꺼내…… 커억!”

다급하게 소리치던 사람은 자신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온 칼날을 보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촤아악!

검이 뽑히자 피를 분수처럼 토해낸 사내가 그 자리에 고꾸라진 채 경련을 일으켰다.

쓰러진 사내를 차가운 눈길로 내려다보는 남자는 흑천련 사절단으로 방문한 무인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미련 없이 몸을 돌리는 순간,

“노오오옴!”

그림자 하나가 노호성을 터뜨리면서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따아앙!

엉겁결에 검을 들어 공격을 막은 흑천련 무인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하지만 상대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감히 사파 나부랭이들이 본 가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 죽음으로 죄를 씻어라!”

후우웅! 휘잉!

땅! 까아앙!

“크읏!”

흑천련 무인이 신음을 흘리며 연신 물러났다.

그 순간 또 다른 흑천련 무인이 그림자의 배후를 베어 들어왔다.

“영감탱이! 설치지 마라!”

쉬이이잇!

“어딜! 가소로운 놈들!”

영감탱이라고 불린 그림자, 벽운당주 염백이 코웃음을 치더니 대도를 펼쳐 들고는 돌개바람처럼 날아올랐다.

쒸아아아앙!

서컥!

한 줄기 빛이 회전하며 솟구치자 호기롭게 달려들던 무인의 목이 싹둑 잘려 나가면서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츄아아아!

허공에서 터져 나온 피가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헉!”

염백의 무공에 놀란 흑천련 무인이 얼른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흥! 그 가녀린 다리로 나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단숨에 바닥을 박찬 염백이 허공을 붕 가르더니 대도와 함께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촤아아악!

일도에 상대의 상반신을 양단한 염백이 싸늘한 표정으로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흥!”

코웃음을 친 염백이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장원 곳곳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욕설이 난무했다.

여기저기에서 이글거리는 화마는 연신 전각을 핥아대며 덩치를 부풀리고 있었다.

‘이 개 같은 놈들이……!’

칼을 콱 쥐고는 몸을 돌리는 순간,

후우우웅!

콰아앙!

파스스스슷!

얼결에 칼을 들어 막아낸 염백이 뒤로 한참이나 미끄러지다가 가까스로 멈춰 섰다.

염백은 손아귀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고개를 들었다가 눈을 크게 떴다.

‘권사……?’

놀랍게도 느닷없이 나타나 일권을 내지른 사람은 아무런 병장기도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바로 인피면구를 쓴 투혈권왕이었다.

투혈권왕이 고개를 우둑 꺾고는 말했다.

“영감이 죽을 자리를 골라놨군.”

“노옴! 제법 주먹 좀 쓰는 모양이지만 내게는 어림도 없다!”

일갈을 터뜨린 염백이 바닥을 차고는 묵직하게 쏘아져 나갔다.

후우우웅!

도기가 허공을 베면서 투혈권왕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흥!”

투혈권왕이 코웃음을 치더니 왼 주먹을 들어 칼날을 쳐냈다.

꽈앙!

휘청!

“크읏!”

염백이 신음을 터뜨리며 중심을 잃은 사이, 투혈권왕이 재빨리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쾅!

“커억!”

슈우우웃, 콰다앙!

포탄처럼 튕겨 날아간 염백이 그대로 전각 벽에 부딪치면서 쓰러졌다.

“쿨럭! 쿠웨엑!”

내상을 입은 탓에 검붉은 피가 한 움큼 토해졌다.

저벅저벅……!

투혈권왕이 엎드려 있는 염백에게 다가갔다.

염백이 입가에 피를 머금고는 표독스럽게 올려다보았다.

“노옴……! 네놈은 대체 누구냐?”

“글쎄. 곧 죽을 영감이 내 정체를 알아서는 뭐 하려고?”

투혈권왕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오대 전주들 사이에서는 어딘지 순박한 인상으로 통하는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염백이 비척거리며 일어나서는 칼 손잡이를 꾸욱 움켜쥐었다.

“양손이 검게 물든 것을 보니, 흑천투권공……! 네놈은 분명 흑천련주의 네 번째 제자라는 투혈권왕이구나!”

염백이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방심했다.

왜 상대가 고수라는 사실을 짐작하지 못했을까?

사절단으로 눈여겨볼 사람은 교패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다.

투혈권왕이 왔을 정도면, 설마…….

“그 여자는 그럼 월희마녀인가?”

염백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투혈권왕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늙은이가 눈썰미는 제법이군. 하지만 이젠 너무 늦었어. 죽어가는 마당에 그런 것까지 알아서 뭐 하겠는가?”

“크익! 처음부터 네놈들은 이럴 작정이었구나!”

염백은 확신했다.

월희마녀와 투혈권왕이 사절단으로 오다니.

웃기는 소리다.

애초에 사절단은 눈가림용.

이들은 본 가를 급습할 계획이었던 거다.

투혈권왕이 피식 웃었다.

“글쎄. 지금 이 사달이 일어난 건 그쪽 책임이 클 텐데. 적 가주가 동행하겠다고 해놓고 뒤로 암습을 가하지 않았나?”

“무슨 소리냐? 네놈들이 갑자기 본 가를 친 것이 아니냐?”

“흥! 정파 놈들은 원래 겉과 속이 다르다더니. 겉으로는 책임을 지겠다고 해놓고, 속으로는 암습할 계획이나 세우다니. 네놈들답다.”

“뭐, 뭣이? 본 가를 기습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누명까지 씌우는구나! 네놈들의 그 약아빠진 책략이 먹힐 것 같으냐!”

뺨을 꿈틀거린 염백이 일순 내공을 끌어올리고는 칼을 휘둘러 갔다.

하지만 이미 내상을 입은 몸이었다.

그의 칼부림이 투혈권왕의 주먹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탓!

순간 투혈권왕이 눈앞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툭.

어느새 눈앞에 나타나 주먹을 뻗어 가슴을 치는 것이 아닌가?

투혈권왕의 일권은 깔끔하다 못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저 툭 건드리는 수준.

한데 칼을 휘두르던 염백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한 채 눈을 크게 부릅떴다.

잠시 후.

투콰아앙!

둔탁한 소리에 이어 염백의 등이 터져 나갔다.

등 쪽의 옷자락이 완전히 터져 나간 염백은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스르르르, 쿠웅!

거목이 쓰러지듯 그대로 뒤로 넘어간 염백은 늑골이 완전히 주저앉은 모습이었다.

“벽력적가도 별것 아니군.”

손을 탁탁 털어낸 투혈권왕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돌아섰다.

그는 이제 다음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렸다.

* * *

카가가가강!

열 개의 칼날이 허공을 그으며 날아든다.

묵검은 연신 검을 휘둘러 열 개의 칼날을 쳐냈다.

고막을 찢을 것 같은 마찰음과 함께 불꽃이 일어난다.

촤촤아악!

묵검이 물러나자 열 개의 칼날을 휘두르던 혈조야귀도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두 사람이 대치한 곳은 가주전 지붕 위.

가주전 안으로 난입하려는 혈조야귀를 묵검이 막아선 것이다.

묵검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혈조야귀의 양손을 보았다.

열 개의 칼날은 바로 그의 손톱이다.

혈조마공(血爪魔功)을 익힌 그가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면 양 손가락이 피처럼 붉어진다.

그리고 핏빛 손톱이 대략 한 자 가까이나 자라나는 것이 특징이다.

“혈조야귀.”

묵검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혈조야귀가 핏빛 손톱을 혀로 핥으며 입매를 비틀었다.

“이제 와서 내 정체를 알았다고 한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애초에 본 가를 칠 생각으로 온 사절단인가? 아니, 사절단 자체가 눈속임이었나?”

“후후. 멍청한 정파 나부랭이다운 질문이군. 이유 따위야 아무렴 어떤가? 지금 이 사달이 났으니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부정하진 않는군.”

“그러는 네놈들이야말로 본 사절단을 상대로 야밤에 암습을 가하지 않았는가!”

파앙!

혈조야귀가 지붕을 차고는 수리처럼 날아들었다.

묵검이 그대로 검을 내지르며 맞섰다.

“말도 안 되는 억지!”

“하여튼 정파 나부랭이들은 오리발 내미는 고수라니까!”

투카가가가강!

다시 열 개의 칼날과 묵검의 검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불꽃이 일어났다.

휘리리릭!

투카카카앙!

몸을 회전하며 물러난 묵검이 기왓장을 연거푸 걷어차자, 혈조야귀가 날아드는 기왓장을 단숨에 가루로 만들었다.

푸스스스……!

핏빛 먼지구름이 뿌옇게 흩어지는 사이,

파앗!

혈조야귀가 불쑥 튀어나오면서 양손을 교차했다.

촤촤아악!

간발의 차이로 몸을 빼낸 묵검의 앞섶이 찢어져 나갔다.

풀어헤쳐진 상의 사이로 열 가닥의 선혈이 교차하면서 나타났다.

혈조야귀가 손톱에 맺힌 핏방울을 혀로 핥았다.

“신선하군.”

그가 히죽 웃는 사이, 묵검이 기왓장을 다시 걷어찼다.

팡!

쒸에에엑!

카차앙!

마찬가지로 기왓장이 가루가 되는 순간,

팟!

이번에는 먼지구름을 뚫고 묵검이 튀어나왔다.

까가가아앙!

순간 손끝에 열 개의 칼날이 묵검의 검과 뒤엉키며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내질렀다.

곧이어 묵검의 몸이 뒤로 휙 넘어가더니 발끝을 강하게 올려 찼다.

퍼억!

“컥!”

공력이 실린 발차기였기에 멀찍이 튕겨 날아간 혈조야귀는 턱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거리를 벌린 묵검이 힐끔 시선을 내려 전각 아래를 보았다.

그곳에서는 예홍과 하천웅이 월희마녀를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사예린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사라라랑.

흑월아를 부채꼴처럼 펼쳐 든 사예린이 예의 그 화사하고도 섬뜩한 미소를 흘렸다.

“제법이네. 그런데 너는 좀 다른 느낌이네.”

사예린의 시선을 받은 하천웅은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무,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흐응. 기억을 잃었다더니 정말인가 봐?”

“그, 그렇소만.”

한편 그런 하천웅의 반응을 보면서 예홍은 세상 끝난 표정으로 연신 중얼거렸다.

“틀렸어. 저런 멍청한 놈과 싸워봤자 이길 수가 없지. 이건 끝난 싸움이야. 이미 난 죽어 있는 거야.”

사예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뭐랄까? 깊이가 얕아졌다고나 할까? 일전에 싸웠을 때는 지닌 무공 수위에 비해서 상당히 노련했거든. 가진 재능 이상을 토해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지금은 가진 재능이 낭비되는 느낌이야.”

“충, 충고라면 감사히 새겨듣겠소.”

하천웅의 엉뚱한 반응에 사예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라니까. 연구해 보고 싶어. 하지만 그 전에 적 가주에게 책임을 물어야겠지.”

그녀의 눈빛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싸늘하게 식었다.

하천웅이 얼른 말했다.

“아, 아까 묵검 형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소? 이곳엔 적 가주님이 안 계신다고!”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너희들처럼 겉과 속이 다른 것들이 하는 말을?”

사예린의 말에 예홍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난감한 상황.

적비연은 정말 가주전에 없지만, 적비연의 본체가 비동에 남아 있었다.

물론, 비동에는 쉽게 들어갈 수 없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는 상황.

이들이 가주전 안으로 들어가 설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너희들이 안 비키겠다면 힘으로라도 열 수밖에!”

파앙!

바닥을 찬 사예린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예홍이 이를 꽉 깨물고는 검을 내세우려는데,

“……!”

순간 달빛을 가리며 그림자가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빛살처럼 날아가던 사예린이 급히 몸을 뒤틀며 흑월아 다섯 자루를 동시에 올려쳤다.

따다다다당!

부채처럼 펼쳐졌던 흑월아가 접히면서 검신을 다섯 번이나 때렸다.

반면 허공에서 벼락처럼 떨어져 내린 사람, 적비연이 흑월아를 튕겨내고는 우두커니 서서 사예린을 노려보았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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