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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160화 (161/301)

160. 멸문지화(滅門之禍)?

슈슈슉! 슉슉슉!

하늘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저마다 진득한 살기를 드러내며 적비연을 에워쌌다.

투혈권왕이 일격에 튕겨 나갔다.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

아니, 전력을 다해도 이기기 어려운 상대다.

적비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사파 무인들을 훑었다.

자박자박……!

사예린이 무인들 틈으로 걸어 나오더니 눈을 가늘게 여몄다.

“너…… 세졌네?”

적비연은 기도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때문에 정순한 기운뿐만 아니라, 사기와 마기도 뒤섞였다.

다만 주변을 에워싼 무인들의 사기가 워낙 강해서 그의 기질이 조금은 가려지고 있었다.

적비연이 묵검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

“그래도 내 사람은 지켜야지.”

“누가 호위이고,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네.”

사예린의 말에 적비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원래 그게 진짜다. 군신이란 서로를 지켜주는 것이지.”

“감동적이긴 한데…… 가능할까?”

입매를 비튼 사예린이 수신호를 내렸다.

찰나,

샤샤샥!

다섯 무인이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언제나 선공을 맞는 자들은 조직 내에서도 가장 빠른 자들이다.

그들에겐 속도가 곧 생명이다.

범인이 보기에는 뭔가 번쩍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으리라.

하나 적비연의 눈에는 그 모든 과정이 느릿하게 보인다.

시활안이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다섯 무인.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적비연이 속으로 읊조렸다.

‘극마.’

-클클. 기다렸다!

말을 마친 극마가 일순 적비연의 몸으로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슈우우욱!

적비연이 눈을 감았다가 뜨자 동공이 붉게 물든다.

곧이어,

팟!

적비연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쉬아아아악!

적비연이 붉은 기운을 꼬리처럼 이끌며 날아간다.

제일 먼저 오른쪽에서 습격해 오는 자를 벤다.

검신을 타고 전해지는 섬뜩한 감각이 심장을 고동치게 만든다.

튀어오르는 피가 뒤를 따른다.

그다음 두 번째 무인의 허리가 갈라져 간다.

첫 번째 무인의 갈라진 배에서 내장이 쏟아져 나올 때쯤 적비연의 검은 세 번째 무인의 배를 완전히 갈랐다.

비명이 솟구쳐 올랐고, 네 번째 무인의 배가 갈라져 간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생생하다.

묘한 쾌감까지 더해진다.

터져 오른 피분수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적비연은 마지막 다섯 번째 무인의 배를 갈랐다.

일검오살(一劍五殺)!

적비연이 느낀 시간은 더뎠지만, 제삼자가 볼 때는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빡일 시간.

촤촤촤촤촤악!

파육음의 뒤를 이어 비명과 함께 피분수가 쏟아져 내렸다.

츄아아아!

쿠쿵! 쿵! 쿵!

다섯 무인들이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며 절명했다.

구천단혼전이 만들어낸 피의 형연이다.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지는 신위.

사예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투혈권왕을 일격에 날려 버릴 때도 강했다.

그런데 다시 또 강해졌다.

‘이자…… 뭐야?’

머리끝이 쭈뼛 선다.

얼마 전 백발 광인을 만났을 때만큼이나 심장이 뛴다.

팟!

적비연은 그대로 바닥을 차고는 사예린에게 화살처럼 날아갔다.

오래 끌 싸움이 아니다.

기도를 완전히 개방하고 극마의 힘까지 이용하는 이상 최대한 빨리 결착지어야 한다.

한편 묵검은 주변의 다른 사파 무인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사예린이 어금니를 까득 깨물고는 흑월아를 날렸다.

‘이게 무슨……!’

쉬리리리링!

다섯 자루의 흑월아가 일렬로 줄을 지어 날아간다.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곧장 쏘아져 나가는 듯하다.

창세비월도의 제일초식 월광적(月光跡)이다.

적비연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구천일관시를 펼쳤다.

따다아앙!

앞서 날아든 두 자루의 흑월아가 튕겨 날아가면서 뒤에서 날아들던 세 자루와 부딪쳤다.

쩌까앙! 따까가앙!

그 순간 서로 부딪친 흑월아는 자연스럽게 제육초식 대폭작으로 이어졌다.

흩어져 날아가는 흑월아가 적비연을 향해 사방에서 쇄도한다.

쉬쉬쉬쉬쉭!

툭!

적비연이 발끝으로 땅을 찍더니 돌개바람처럼 회전하며 솟구쳐 올랐다.

구천일관시에 이은 구천혼선결!

따다다다당!

적비연 주변으로 불꽃이 폭죽처럼 터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이어서 쌍봉삽운의 변초를 펼치자, 허공으로 도약했던 적비연이 가파른 능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린다.

슈우우우욱!

“헉!”

위기를 느낀 사예린이 얼른 바닥을 차며 물러났다.

촤아악!

쿠우우웅!

간발의 차이로 검이 사예린을 스쳐 지나간다.

찢어진 옷자락이 펄럭이고, 검신은 그대로 바닥을 때린다.

쿠파파파파!

사방으로 튕겨 날아가는 파편!

“크아악!”

“으악!”

주위를 에워싼 무인들 다수가 비수처럼 날아드는 파편에 맞고 픽픽 쓰러져갔다.

사예린은 재빨리 장력을 격발하면서 날아드는 파편을 막아냈다.

파파파팡!

사예린이 찢어져 나간 왼팔 옷깃을 거침없이 뜯어냈다.

부우욱!

그러는 사이 적비연은 다시 바닥을 차고는 그녀를 향해 쇄도했다.

쉬이이잇!

사예린의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뭐가 이리 빠른……!’

정말이지 숨 돌릴 틈조차 없다.

그녀가 뜯어낸 옷자락을 채찍처럼 휘둘러 검봉을 막아냈다.

파라라락!

내공을 입혔기에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다.

어지간한 가죽보다도 질긴 옷자락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적비연의 검신은 휘감아오는 옷자락을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낸다.

아니, 베어내는 게 아니라 터뜨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파파파팡!

옷자락이 산산조각나면서 흩어져 날아간다.

사예린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처음으로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갑자기 왜 괴물이 된……!’

그러고 보니 지금 이 기운은 마기인가?

피부가 따갑도록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녀는 눈앞으로 날아드는 검봉을 보며 체념하고 말았다.

‘끝이네.’

이렇게 생을 마감하게 될 줄이야.

그런데 다음 순간 시커먼 그림자가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슈카가가가각!

소름 끼치는 마찰음에 이어,

푸욱!

뜨끈한 피가 사예린의 얼굴을 덮쳤다.

‘혈조야귀……?’

어느새 나타난 것인지 혈조야귀가 양 손톱을 교차해서 적비연의 검을 막아내고 있는 게 아닌가?

손톱 여섯 개가 잘려 나가고 네 개만 남은 상황.

당연하지만 혈조야귀의 손톱은 그냥 손톱이 아니다.

그 하나하나가 칼이나 마찬가지다.

한데 여섯 자루의 칼날이 단숨에 잘려 나간 것이다.

그것도 검기가 입혀진 것이나 다름없는 손톱이!

그러고도 완전히 막지 못해서 적비연의 검은 혈조야귀의 왼쪽 어깨를 뚫고 튀어나왔다.

“물러나십시오!”

혈조야귀가 외친 소리에 사예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팟!

반사적으로 튕겨 날아오른 그녀가 적비연을 지나쳐 달려가더니 흑월아를 주워 들었다.

파바바밧!

퀴리리리링!

그녀가 곧바로 손을 뿌리자 흑월아가 춤을 추듯 적비연을 향해 날아든다.

촤아악!

단숨에 검을 뽑아낸 적비연이 구천혼선결을 펼쳤다.

쉬따다다당!

흑월아가 튕겨 나가는 사이,

“히야압!”

혈조야귀가 네 개의 손톱으로 조공을 펼쳤다.

촤악! 촤악! 촤아악!

하지만 그의 손톱은 번번이 허공만 할퀴었다.

사예린은 믿을 수 없었다.

갑자기 적비연이 괴물이 된 것 같다.

초절정 중단에 이른 자신과 역시나 초절정 중단인 혈조야귀가 협공을 펼치는데도 오히려 밀리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때,

투콰아앙!

“크아아아압!”

무너진 전각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적비연을 덮쳐갔다.

“사제!”

포탄처럼 날아든 투혈권왕이 그대로 시커먼 주먹을 내질렀다.

슈우우우, 콰앙!

일권이 가슴에 적중하자 적비연이 주춤 대여섯 걸음 물러났다.

이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투혈권왕의 일권을 정면으로 받고도 몇 걸음 물러나는 정도라니?

하지만 투혈권왕은 멈추지 않았다.

“사저! 내가 붙들 테니 이놈을 끝내시오!”

그가 그대로 몸을 날려 적비연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밀어붙였다.

쿠웅!

두 사람이 벽에 부딪치자 불붙은 잔해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예린과 혈조야귀가 날아올랐다.

그런데 다음 순간,

푸우욱!

“크아악!”

적비연의 검신이 투혈권왕의 등을 뚫고 튀어나왔다.

“사제!”

사예린이 공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흑월아를 뿌렸다.

뀌아아아앙!

귀곡성을 울리며 날아가는 흑월아!

투혈권왕의 몸에서 검을 뽑아내려던 적비연은 일순 기운이 쑥 빠지는 것을 느꼈다.

-제길! 시간 다 됐다.

홀연히 나타난 극마가 혀를 찼다.

다음 순간,

푹! 푸푸푹! 푹!

적비연의 전신에 흑월아가 박혀들었다.

“크읍!”

적비연이 신음을 삼키는 순간,

“죽어라!”

쒸이이잇!

푹! 푸욱! 콰드득!

바람처럼 날아든 혈조야귀가 네 개의 손톱으로 적비연의 가슴을 찔렀다.

마지막으로 날아든 사예린이 손에 쥔 흑월아로 적비연의 심장을 내질렀다.

푸우욱!

“커어억!”

적비연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이내 적비연이 눈을 내려 깔고는 자신에게 달려든 세 사람을 보았다.

피식.

‘웃어……?’

사예린이 질린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도대체 네놈은……!”

“역시…… 셋이나 상대하는 건 무리였나?”

말을 마친 적비연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그렇게 아홉 번째 생을 마감한 적비연이었다.

* * *

“적 가주가 죽었습니다!”

그림자의 보고에 가후가 흠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적 가주가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누구에게?”

“월희마녀와 투혈권왕, 혈조야귀의 협공에 당한 듯합니다.”

“셋이나…… 상대했다는 건가?”

“예. 더 지켜보시겠습니까?”

가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적 가주가 죽었다면 더 지켜볼 수 없지. 시작하게.”

“복명!”

대답을 한 그림자가 귀신처럼 사라졌다.

* * *

사예린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화마가 집어삼킨 가장.

꽤 많은 전각들이 불타고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무인들이 흑천련 무인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묵검은 그야말로 인의 장벽에 가로막혀서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댔고, 단휘와 예홍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괴독자 때문에 고전하고 있었다.

하천웅은 혈조야귀에게 당한 것인지 전신이 난자당한 채로 가주전 앞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 정도면 된 건가?

깔끔하진 않다.

적어도 ‘멸문’이라는 말을 입에 담으려면 벽력적가 소속 무인들의 씨를 말려야 하지 않을까?

“후우우.”

깊은 숨을 뱉은 사예린이 흑월아를 챙겨들고 걸음을 내디디려고 할 때였다.

“무림맹 무인들이 적 가장을 포위했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사예린이 흠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무림맹이?”

“옛!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사방에 쫙 깔렸습니다! 어서 몸을 빼내셔야 합니다!”

사방에 깔렸다고?

마치 이 상황을 미리 알았다는 듯이?

우연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노려진 건가?

혈조야귀가 얼른 다가왔다.

“가시죠. 더 늦으면 위험할 것 같습니다.”

사예린이 미간을 구기고는 한쪽에 서 있는 수하 두 명을 가리켰다.

“거기, 너희 둘.”

“예!”

대답을 한 자들은 인피면구를 쓴 현청과 임송화였다.

“사제의 호신위지?”

“그렇습니다!”

“뭐 해? 챙겨.”

“예? 아, 예!”

말뜻을 알아들은 현청과 임송화가 의식을 잃은 투혈권왕을 부축하며 지혈했다.

사예린이 쉽게 발을 떼지 못하자 혈조야귀가 다시 다가왔다.

“그만 가셔야 합니다. 이만하면 임무는 성공했습니다. 완전한 멸문은 아니어도 벽력적가주를 죽였으니까요.”

그래. 벽력적가주를 죽였으니 된 건가?

발길을 돌리던 사예린이 순간 멈칫했다.

가만. 벽력적가주……?

그녀가 눈살을 구기고는 벽에 파묻히듯 처박혀 있는 적비연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이 공녀님?”

눈살을 찌푸리고 부르던 혈조야귀가 멈칫했다.

사예린은 섬섬옥수를 뻗더니 적비연의 목 부위의 살결을 잡아 거칠게 뜯어냈다.

찌이이익!

“저건……!”

모두가 경악한 가운데 인피면구가 벗겨진 반철룡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예린이 입매를 말아 올렸다.

“역시…… 내 육감은 틀리지 않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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