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164화 (165/301)

164. 추혼(追魂)

“여긴…… 길이 없는데.”

임송화가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추혼단을 피해서 도망치는 상황.

추격자들이 어디까지 쫓아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추혼단이라는 이유 하나로도 뒤통수가 서늘하다.

한데 막다른 곳으로 와버렸다.

계속해서 길을 앞장선 사람은 다름 아닌 투혈권왕이다.

그의 뒤를 따를 때부터 반신반의했다.

그럴 수밖에.

항주의 흑천련 본단에서나 머물던 자가 무림맹 영역의 지리를 어찌 알겠는가?

그래도 앞장을 서겠다기에 무작정 따라나섰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현청이나 임송화가 나설 수는 없었기에.

표면상으로는 두 사람 역시 흑천련 권역에서만 살아온 무인이 아니던가?

그런데 하필 많고 많은 길 중에서 막다른 길을 택할 줄이야.

전방에는 깎아지른 절벽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렸고, 좌우측은 비탈진 산이 까마득하게 이어져 있다.

산짐승도 다니지 않을 경사.

뭐, 무리해서라도 길을 뚫고 간다면 못 갈 것도 없다.

하지만 끝 모르게 펼쳐진 비탈진 숲을 언제까지 올라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추혼단이 뒤통수까지 바짝 추격해 오리라.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다간 정면승부를 피할 수 없을 거야.’

한숨이 나온다.

이대로는 추혼단에게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추혼단은 단지 추격의 달인이 아니다.

그들의 무공은 무림맹 조직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이제 어떻게 하나?

추혼단과 전면전을 벌이는 척하다가 진짜 신분을 밝혀야 할까?

그럼 그들이 믿어주긴 할까?

어쨌든 목숨만 부지한다면 가후가 자신들을 알아볼 테니 살 가능성이 있다.

‘어쩌자고 투혈권왕의 말을 들은 건지…….’

임송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생각해도 이상하다.

투혈권왕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서 너무나 거침없이 이동했다.

마치 갈 길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한 번쯤 따져 물어볼 만도 했지만 이상하게 그에게 의지하면서 이동했다.

그가 가라면 가고, 그가 서라면 섰다.

‘그러고 보니 이런 느낌은…….’

반철룡이 호법장으로 있을 때도 느껴본 듯하다.

‘어쨌거나…… 결국…….’

이런 곳으로 오게 될 줄이야.

여기가 어딘가?

무림맹 영역에서만 활동했던 임송화조차도 위치 파악이 안 된다.

그만큼 인적 드문 산속이다.

이곳까지 오면서 화전민(火田民)조차도 구경하지 못했다.

다만…….

‘경치는 기가 막히게 아름답네.’

임송화뿐만 아니라 폭포수 앞에 멈춰 선 무인들은 저마다 잠시 넋을 놓았다.

추혼단이 바짝 따라붙어 뒤통수가 시린 상황 속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절경은 가히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촤아아아아!

고막을 가득 채우는 물줄기 소리.

그리고 눈앞을 잔뜩 메운 물안개.

청명한 하늘 아래로는 무지개가 거짓말처럼 피어났다.

“무인으로서 죽기에는 사치스러운 장소구려.”

현청이 임송화 곁으로 다가와 중얼거렸다.

그때 투혈권왕이 불쑥 말했다.

“죽긴 왜 죽나?”

현청과 임송화가 깜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그가 듣고 있을 줄은 몰랐다.

“출발할 때 챙기라고 한 가죽 수통은 다들 잘 가지고 있지?”

“예!”

무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현청과 임송화도 서로를 바라보다가 품에서 가죽 수통을 꺼내 들었다.

폭포수 앞에서 수통을 챙기라니.

경치 좋은 곳에서 물이나 마시며 죽음을 기다릴 생각인가?

투혈권왕 즉, 적비연이 무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잠영이 길어질 거다.”

잠영?

현청과 임송화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물놀이나 하자는 건 아닐 테고.

하지만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반발심은 들지 않는다.

왠지 믿고 따르게 된다.

적비연의 말이 곧 천명처럼 느껴진다.

하란 대로 하기만 하면 될 것 같은 기분.

이 악물고 반대하면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정도로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적비연이 말을 이었다.

“다들 수통에 공기 빡빡하게 채워. 잠영에 자신 있는 자는 공기가 부족한 자에게 수통을 나눠주고.”

아…… 수통이 그런 의미였나?

공기통.

적비연의 말을 들은 무인들이 저마다 수통에 공기를 채워 넣었다.

“내가 앞장선다. 뒤처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뛰어들기 전에 각자의 흔적은 알아서 지워라.”

“복명!”

무인들이 일제히 포권하며 답했다.

적비연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첨벙!

폭포수가 고인 수면 아래로 적비연의 몸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곧이어 엽강호와 한사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현청과 임송화도 서로 바라본 다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던졌다.

잠시 후 무지개를 만들며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에는 더 이상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임송화는 앞서가는 현청을 보며 부지런히 손발을 놀렸다.

폭포수 바로 아래까지 다가가자 등위에서 묵직하게 내려찍는 물줄기 때문에 몸이 절로 가라앉았다.

‘엇!’

그 순간 임송화의 눈에 벽 사이로 스며드는 현청이 보였다.

마치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등을 내려찍는 물줄기 때문에 현청의 뒤를 쫓는 것이 생각보단 어렵다.

얼른 공력을 운기해서 수압을 거슬러 오르자 물속 절벽에 틈이 보인다.

사람 하나가 겨우 몸을 비틀어야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 한다.

폭포수 아래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만약 누군가 앞서 들어가지 않았다면 찾지도 못했을 틈이다.

수압에 눌리듯 가라앉으면서 절벽의 틈 따위는 발견할 겨를도 없으니까.

틈은 좁다.

모르긴 해도 엽강호는 이 틈으로 몸을 비집어 넣다가 욕지거리 몇 차례 쏟아냈으리라.

간신히 절벽 틈으로 몸을 쑤셔 넣었더니 조금 너른 통로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통로도 곧 지독한 어둠에 파묻히고 말았다.

‘맙소사, 이런 길은 어떻게 안 거지?’

이것도 흑천련이 파악한 정보인가?

아니, 길이 맞긴 한 건가?

그냥 무작정 가는 거라면?

빠져나갈 길은 있나?

힐끔 뒤를 돌아보니 여추백이 바짝 쫓아서 들어온다.

그 뒤에는 또 다른 무인이 따르고 있다.

워낙 비좁은 통로였기에 되돌아나가려면 뒤에서 쫓아오는 자가 물러나야 한다.

그러려면 그 뒤에서 또 물러나야 하고 또 그 뒤에서 몸을 빼야 한다.

한마디로 되돌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어떻게든 길이 있으니 온 거겠지.’

일단은 믿자.

달리 방법도 없다.

마음이라도 편히 가져야 호흡 조절이 쉬워질 터.

그렇게 얼마나 잠영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을까?

사방은 칠흑처럼 어둡다.

이제는 바로 앞에서 가고 있는 현청이 보이지도 않는다.

손으로 더듬으며 어두운 통로를 유영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지독한 한기가 피부로 스며든다.

물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이토록 차가운데 얼지 않은 것도 신기하다.

어쩔 수 없이 내공을 운기해서 체온을 올렸다.

그저 잠영을 펼치고 있을 뿐인데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제일 힘든 건 답답함이다.

당장에라도 여길 벗어나고 싶다.

잠영을 하기 전까지는 천국인가 싶었는데, 이곳에 들어오고 나니 생지옥이 따로 없다.

이렇게 죽으면 시신도 찾지 못하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호흡이 절로 가빠진다.

자꾸 서두르다 보니 앞서가는 현청을 건드리게 된다.

‘빨리 좀 가요!’

소리라도 치고 싶지만 물속이니 말도 할 수 없다.

그때 누군가 발목을 잡고 부드럽게 진기를 불어넣는다.

‘아……!’

순간 임송화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여추백이었다.

앞서 잠영을 펼치는 임송화가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낀 것이리라.

이에 여추백이 진정시키느라 어쩔 수 없이 발목을 잡은 것이리라.

여추백이 다시 한번 발목을 꽉 잡고는 놓아준다.

‘정신 차려. 여기서 죽으면 우린 다 죽는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 뜻이 너무나 또렷하게 머릿속으로 박혀든다.

그래, 정신 차려야 해. 이런 곳에서 죽으면 그야말로 개죽음!

임송화는 수통을 입과 코에 갖다 댔다.

보글보글.

공기가 입가로 새어 나온다.

적당량의 공기를 들이마신 임송화가 다시 잠영을 펼쳤다.

이제 가죽 수통에 채운 공기는 다 써버렸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 것 같던 추위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내공을 소진하면서 손발을 움직였더니 오히려 땀이 난다.

피부가 간질거린다.

땀이 나는 것이다.

이런 한수에 갇혀서도 땀이 나다니.

그나마 다행인 건 수중 동혈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손을 조금만 뻗어도 벽과 바닥, 천장이 만져지던 곳에서 점점 넓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손발이 닿지도 않는다.

문제는 또 생겼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손발이 닿지 않으니 방향 감각이 사라진다.

‘큰일이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더럭 겁이 난다.

앞서 가던 현청을 놓쳤다.

수중이라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속도를 더 내보았지만 아무것도 닿지 않는다.

호흡이 가빠져 온다.

가죽 수통을 쥐어짜 보지만 공기를 다 써버린 지 오래다.

‘싫어! 이런 곳에서 죽기는!’

필사적으로 위로 솟구쳐 올랐다.

투웅!

벽에 막혔다.

뒤따르던 자들은 어떻게 됐나?

보이지도 않는다.

혼자만 낙오된 걸까?

생각은 복잡해지고 손발은 굳어간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 순간!

츄우우우!

전방에서 물보라가 일어나면서 뭔가가 다가온다.

휙!

누군가 손목을 잡아끈다.

따스한 진기가 손목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곧이어 임송화는 상대의 손에 빠르게 이끌려 나갔다.

“프하아!”

순간 숨통이 터지면서 세상의 모든 공기를 삼킬 듯 숨을 몰아쉬었다.

공기는 폐부를 얼려 버릴 것만큼 차갑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지는 건 사치다.

단 한 줌의 공기가 아쉬웠으니까.

물가로 나와서 그대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주군…….”

놀랍게도 자신을 끌어 올린 자는 투혈권왕이다.

그렇게 임송화를 물가로 끌어올린 적비연은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어 수하들을 하나씩 건져 올렸다.

엽강호와 한사도 적비연을 거들었다.

마지막 무인까지 끌어 올렸을 때쯤 임송화도 이성이 돌아왔다.

‘맙소사. 이런 곳이 있다니.’

군데군데 야명주가 깊이 박힌 공동.

바닥 한쪽에는 물이 고여 있었는데, 수면이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다.

무인들이 올라온 곳만 얼음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투혈권왕이 주먹으로 얼음을 깨고 올라온 것이리라.

임송화가 고개를 돌려 투혈권왕을 보았다.

‘어떻게…… 이런 곳을 알고 있는 거지?’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온다.

이곳은 분명 무림맹 영역인데, 무림맹 소속 무인보다 지리를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직접 와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를 텐데.

한편 적비연은 무인들 중 저체온으로 떨고 있거나, 공황 상태를 보이는 자들에게 다가가 가볍게 혈을 짚어 진기를 불어넣거나, 침을 놓아주기도 했다.

‘하다 하다 이젠 의술까지?’

투혈권왕을 섬긴 지 얼마 되지 않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 달라 보일 수가 있는 걸까?

게다가 투혈권왕은 불과 며칠 전에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았던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는 거지?

임송화는 넋을 놓고 적비연을 바라보았다.

* * *

“족적(足跡)이 사라졌습니다!”

추혼단 일 대주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보고했다.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를 가만히 응시하던 무정검이 실눈을 떴다.

그의 입에서 예의 그 차디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아듣게 말해.”

“죄송. 실언을! 족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일 대주가 당황했군. 사라진 것과 발견 못 한 것도 구분하지 못하다니.”

“용서를!”

“찾아. 일각 이내로. 뭐가 됐든. 하늘로 솟았으면 날 각오로 쫓고, 땅으로 꺼졌으면 파묻힐 각오로 쫓는다.”

“존명! 반각 이내로 찾겠습니다!”

무정검은 대답하지 않았고 일 대주는 모습을 감췄다.

무정검의 시선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사라진 게 맞다면…… 하늘로 솟았나? 아니면 땅으로 꺼졌나. 그도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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