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추혼(追魂)
“헉, 헉……!”
손이 떨린다.
숨은 턱 끝에서 들락거린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다 포기하고 싶다.
주변은 어떤가?
살아남은 자들보다 죽은 자들이 훨씬 많다.
상반신이 온데간데없고 하반신만 찢어진 채 널브러진 시체가 한둘이 아니다.
그 반대로 상반신만 남아서 바닥을 기는 자들도 있다.
아예 핏자국만 남기고 흔적이 지워진 자들도 있다.
그뿐인가?
인육 파편이 얼음덩어리가 되어서 돌처럼 굴러다니는 자들까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잠영을 하면서 지옥을 떠올렸다면 그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는지 지금 절실히 깨달을 것이다.
추혼단 일 대에서 오 대.
초절정고수가 무려 일곱에 달한다.
일류나 이류는 없다.
이백삼십 명 전원이 절정을 넘어선 고수들이다.
그중에서도 절정 중단을 넘어선 자들이 절반 이상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건 일방적인 학살이다.
취르르르르……!
비늘이 맞비벼지는 소리를 내며 빙백독광사가 몸을 틀었다.
집채도 단숨에 집어삼킬 것만 같은 머리가 허공에 뜬 채로 무정검 사일룡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무정검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욕설을 내뱉었다는 것은 미쳐 버릴 정도로 분노했을 때다.
추혼단 쉰 명 정도가 남았지만 사지육신이 멀쩡한 자가 드물다.
초절정고수 중에는 네 명이 죽었고 셋이 남았다.
빙백독광사는 한마디로 재앙이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취르르르르!
빙백독광사가 한쪽 눈을 번뜩이며 혀를 날름거린다.
다른 한쪽 눈에는 대도가 박혀 있다.
추혼단에서 유일하게 눈에 띌 정도로 큰 무기를 사용하는 사 대주의 것이다.
사 대주는 빙백독광사의 왼쪽 눈에 대도를 박아 넣고 장렬히 전사했다.
아니,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쯤 빙백독광사의 위장에서 서서히 녹아드는 고통을 느끼고 있을지도.
뚝…… 뚝……!
치이이익!
빙백독광사의 눈에서 흘러나온 청색 피가 바닥에 닿으면서 타들어가는 소리를 낸다.
독혈이기에 연기를 들이켜면 중독될 수밖에 없다.
파파팟!
추혼단이 재빨리 물러서며 소매로 입과 코를 가렸다.
무정검은 뱀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암벽 중간쯤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적비연이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구경하고 있었다.
“찢어죽일……!”
피가 끓는다.
저 쥐새끼를 잡으려고 이 난리를 겪다니.
단언컨대 추혼단이 창단된 이래 이처럼 처참하게 깨진 역사는 없었다.
투혈권왕을 사로잡는다고 해도 맹으로 복귀하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터.
아니, 그 전에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냉정하게 따지면 죽을 확률이 크다.
미친.
빙백독광사가 있는 곳으로 들어올 줄이야.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른 빙백독광사가 안광을 번뜩이면서 추혼단주를 향해 날아들었다.
취리리릿!
“단주!”
일 대주가 벼락처럼 소리치더니 화살처럼 몸을 날려 왔다.
쒸이이이잇!
쩌어엉!
일 대주가 검을 뻗어 빙백독광사의 머리 옆을 때렸다.
-퀴아아아앙!
“크읏!”
빙백독광사의 울음에 일 대주가 비틀거리면서 얼른 내공을 끌어올렸다.
취리리릿!
-캬아!
빙백독광사가 입을 쩍 벌리고는 달려든다.
일 대주는 얼른 경신법을 펼치면서 몸을 옆으로 날렸다.
쿠콰과과앙!
빙백독광사가 일 대주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가면서 그대로 벽에 부딪쳤다.
쿠드드드득!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공동 암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쿠르르르르……!
빙백독광사가 머리를 뽑아내자 녀석의 입에서 바윗덩이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그중에는 야명주도 섞여 있다.
빙백독광사가 숨결을 토해낸다.
한기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공동의 기온이 훅 내려갔다.
일 대주는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간신히 공격을 피하긴 했지만 이번엔 어렵다.
앞선 공격을 간신히 피하긴 했지만 숨결에서 한기를 입어 버렸다.
혈맥이 추위로 굳어 버리는 게 느껴진다.
공력을 끌어올려서 훈기로 밀어내려고 해도 안 된다.
뼛속까지 파고든 한기가 전신의 모든 감각을 얼려 버린 듯하다.
찰나,
-퀴아아아앙!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울음소리!
뱀이 울음소리를 낸다니.
이상하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상대는 전설에서나 들어보던 빙백독광사.
갑자기 날개가 돋아나서 날아간다고 해도 놀라울 게 없는 상황이다.
그저 녀석의 존재 자체로 이미 모든 놀라움을 초월했으니.
취리리리리릿!
녀석이 빛살처럼 날아든다.
‘끝이다……!’
일 대주는 최대한의 공력을 끌어올렸다.
마침내 빙백독광사가 지척에 다다랐을 때, 상단전의 혼기(魂氣)와 중단전의 선천기(先天氣), 그리고 하단전의 내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일검!
“죽어라아앗!”
쉬아아아악!
검이 뻗어지는 것과 동시에 어둠이 그를 덮쳤다.
그래도 이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희생하는 동안 다른 동료들이 빙백독광사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테니.
콰드드득!
그 생각을 끝으로 일 대주는 전신의 뼈마디가 부러지는 것을 느끼며 절명하고 말았다.
“일, 일 대주가…….”
안타깝게도 일 대주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가 목숨을 던지는 동안 추혼단이 일제히 빙백독광사를 공격했지만 치명상은커녕 비늘도 뚫지 못했다.
하나 아주 헛된 죽음은 아니다.
‘일 대주……! 네 희생은 거름이 되었다!’
추혼단주 무정검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훌쩍 물러났다.
이 대주와 오 대주 역시 훌쩍 물러나서는 기수식을 취했다.
비록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조금 전 일 대주의 죽음으로 남은 자들은 빙백독광사의 약점을 알아냈다.
바로 턱 밑과 남은 한쪽 눈, 그리고 정수리!
유독 그 부위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가장 노리기 까다로운 곳들이지만 추혼단이 진형을 갖춰 동시에 공격한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
가장 위험한 곳은?
턱밑이다.
섣불리 턱밑으로 달려들다간 순식간에 잡아먹힌다.
그다음이 눈이다.
눈에 대한 방어 본능과 반사 신경은 다른 곳에 비할 수 없다.
“이 대주, 눈. 오 대주, 정수리. 내가 턱밑으로 간다. 나머지는 교란책.”
“존명!”
무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 대주가 무정검을 힐끔 보며 말했다.
“단주, 제가 턱밑으로 가겠습니다.”
“아뇨. 제가 가겠습니다!”
오 대주도 성큼 나선다.
가장 위험한 곳을 자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정검은 번복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서서히 공력을 끌어올릴 뿐.
한 번 내뱉은 명령에 번복은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가!”
무정검이 일갈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차고 쏘아져 나갔다.
파파파파팟!
빙백독광사를 둘러싸고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편복(蝙蝠)들처럼 날아올랐다.
쒸쒸쒸쒸아앙!
절정을 초월한 고수들이 하나같이 시퍼런 검기를 터뜨리면서 달려들었다.
-뀌아아앙!
빙백독광사가 예의 그 성난 울음을 터뜨리더니 입을 쩍 벌리고 한 바퀴 휘돌았다.
콰아아아아!
시퍼런 독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크웃!”
“크아악!”
호신기공이 약한 자들부터 몸을 뒤집으며 쓰러져갔다.
독기는 냉기까지 더해져 폐부를 얼려 버리고 피부에 검버섯이 피어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빙백독광사의 머리 부위를 향해 달려드는 무인들.
“크하아압!”
“이여어업!”
죽음을 불사한 움직임.
콰직! 콰드드득! 콱! 콱!
빙백독광사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며 달려드는 무인들을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뒈져엇!”
기회를 보던 이 대주가 일갈을 터뜨리면서 빙백독광사의 왼쪽 눈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다음 순간 자신의 각오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달았다.
콰작!
순식간에 벌어진 일.
“이 대주!”
무정검이 소리쳤지만 이미 빙백독광사의 눈을 빼앗겠다는 이 대주는 그대로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만 좀 끝내자!”
이번에는 오 대주가 일갈을 터뜨리면서 빙백독광사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됐어!’
그의 눈이 번뜩이는 순간,
휙, 퍼어억!
빙백독광사의 꼬리가 날아들면서 그의 몸을 후려쳤다.
단 일격에 오 대주는 전신이 터지면서 즉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추혼단주 무정검은 오 대주의 죽음을 보지 못했다.
그가 죽는 순간, 무정검은 빙백독광사의 아래턱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쉬이이이잇!
체내의 모든 공력을 다 쥐어짠 회심의 일격!
하지만 빙백독광사는 입을 쩍 벌린 채 먹이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오냐! 기다린다면 들어가 주마!’
무정검의 검신에서 검기가 줄기줄기 쏟아져 나왔다.
쒸에에에엑!
그가 바람이 되는 순간 사방이 어둠에 잠겨들었다.
덥석!
그렇게 추혼단주 무정검도 빙백독광사에게 잡아먹히는 순간이었다.
‘맙소사……! 추혼단주가……!’
임송화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
강호에 위명을 떨쳐 울리던 추혼단의 절반이 저렇게 어이없게 전멸할 줄 누가 알았을까?
한편 적비연과 함께 현장을 내려다보던 극마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곡양기가 실족해서 동굴에 떨어진 거라면…… 빠져나갈 길은 되돌아가는 것밖에 없는 거냐? 그때쯤엔 추혼단은 아니더라도 무림맹 조직 중 누구라도 폭포수에 진을 치고 있을 텐데.
‘아니, 곡양기가 떨어졌다던 그 구멍으로 나갈 생각이야. 줄을 타고 올라가면 되지.’
-줄? 그런 게 있었으면 곡양기가 폭포수 쪽으로 나갔을까?
‘그땐 없어도 이젠 있을 테니까.’
-아직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대체 무슨 자신감…….
극마는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빙백독광사의 상태가 이상했다.
-꾸우우우웅!
묘한 울음을 내지르던 빙백독광사가 갑자기 공동의 벽을 타면서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닌가?
콰콰콰콰콰콰!
“크웃!”
적비연과 수하들이 숨어 있던 통로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려왔다.
“왜 저러는 거죠?”
“확실히 추혼단주가 대단하긴 하네.”
적비연의 말에 임송화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추혼단주가 아직도……?”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촤아아악!
-뀌아아아아앙!
빙백독광사의 아래턱이 찢어지면서 시커먼 그림자가 뚝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빙백독광사의 집채만 한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웅!
임송화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맙소사……! 추혼단주가 빙백독광사의 아래턱을 찢고 나왔어!’
하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다.
전신이 푸른 액체에 젖어서 살이 부식되고 있다.
살점이 마치 푸른 비늘처럼 얼어붙으면서 조각조각 떨어지고 있다.
전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열이 높아서 나는 연기가 아니다.
너무 차가워서 나는 연기다.
터벅……!
비틀거리며 걸음을 내디딘 무정검이 적비연을 올려다보았다.
“투혈권왕……! 내가…… 여기서 죽어도…… 네놈은 절대 본 맹을……!”
무정검은 말을 마저 잇지 못한 채 그대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으리라.
육신이 없으면 혼도 쫓는다는 자들의 수장이 이런 곳에서 삶을 마감하게 될 줄.
한편 아래턱이 찢긴 빙백독광사는 연신 거친 숨결을 뿜어냈다.
적비연이 손을 내밀었다.
“아까 말한 것 줘.”
“여기 있습니다.”
엽강호가 품에서 폭약을 꺼내 주었다.
천상원주에게 받아 적가장에서 적비연을 구할 때도 쓴 것이었다.
폭렬단(爆裂團).
내공으로 훈기를 더한 탓에 폭약은 바싹 말라 있다.
어지간한 전각 두어 채는 흔적도 없이 날릴 수 있다는 물건.
적비연이 삼매진화의 수법으로 심지에 불을 붙인 다음 공력을 담아 소리쳤다.
“어이, 뱀!”
취르르르르!
빙백독광사가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적비연을 돌아본다.
찰나,
취리리리리릿!
녀석이 빛살처럼 빠르게 솟구쳐 올랐다.
곧이어 입을 쩍 벌리는 순간,
휙!
적비연의 손을 떠난 폭렬단이 쩍 벌어진 아가리 속으로 떨어졌다.
적비연이 입매를 틀었다.
“마지막 가는 길,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