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173화 (174/301)

173. 살소공자(殺笑公子)

지독히도 배가 고팠다.

당장 뭐라도 먹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나무껍질이라도 벗겨서 씹어 먹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굶주림에 시달릴 때마다 느끼는 것은 한결같았다.

인간이란 완벽한 야생에 내던져졌을 때, 결국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

어린 사예린은 이번에도 그 짓을 하기로 했다.

저잣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갓 찐 만두를 훔쳐서 달렸다.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참을 수가 없게 되면 늘 하던 짓이었다.

그녀는 손놀림이 좋았고, 가게 주인은 매번 만두가 없어진 줄도 몰랐다.

그날도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렇게 뒷골목으로 들어서는데, 마침 그곳에서 나오던 사내아이와 부딪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애써 훔친 만두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

사예린은 얼른 떨어진 만두를 줍고는 고개를 들었다.

덩치가 큰 사내아이였다.

앳된 얼굴만 보면 자기 또래거나 조금 더 어릴 것 같았다.

비록 덩치는 크지만 꼬질꼬질한 행색과 마른 몸을 보니 그 아이도 며칠은 굶은 듯했다.

만두를 빼앗길까 봐 본능적으로 손을 뒤로 돌렸다.

뜻밖에도 소년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사과를 했다.

“미, 미안…….”

“흥!”

사예린은 코웃음을 치고는 일어나서 뒷골목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렇게 후미진 곳을 찾은 사예린은 허겁지겁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흙이 입에서 서걱거렸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흙을 조금 더 묻혀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두랑 섞인 흙은 만두 맛이 났으니까.

그래도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두 절반 정도를 먹었을 때였다.

“뭐야? 진짜 있네?”

“사형, 내 말이 맞지? 저 거지 년이 매번 여기서 훔친 만두를 먹더라니까.”

모퉁이를 돌아서 무복을 갖춰 입은 소년들이 나타났다.

허리춤에 목검을 패용한 것을 보니 인근 무관에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사예린보다 서너 살은 많은 아이들이었다.

긴장한 사예린이 주춤거리며 일어나서는 아이들을 경계했다.

아이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다가와 목검을 불쑥 내밀었다.

“야, 거지! 아니, 도둑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네가 한 짓을 우리가 알고 있다! 당장 주인장에게 돌아가서 사과하고 훔친 만두를 물어내도록!”

아이는 짐짓 위엄 서린 목소리로 다그쳤다.

하지만 사예린은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훔친 만두값을 물어내라고?

무슨 수로?

그녀가 반응하지 않자 우두머리 아이가 미간을 찡그리고는 소리쳤다.

“네 이년! 내 말을 거역할 생각이냐? 그렇다면 명문정파의 무인으로서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사예린은 사내아이를 노려보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사내아이가 입매를 치켜 올렸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니. 어쩔 수 없군. 얘들아! 저년을 쳐라!”

“네, 사형!”

이구동성으로 대답한 아이들이 일제히 목검을 꺼내 들더니 사예린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사예린은 제일 먼저 날아드는 목검을 낚아챘다.

“어? 어? 안 놔?”

당황한 아이가 소리치는 동안 다른 목검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사예린의 손길이 현묘하게 움직이더니 잡고 있던 목검을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날아드는 목검을 또 낚아챘다.

그야말로 신묘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무공은 아니었다.

그저 타고난 유연성과 오랜 시간 살기 위한 본능으로 수련된 손놀림일 뿐이었다.

우두머리 소년도 당황했는지 성큼 다가와서 소리쳤다.

“이년! 그 손 놓지 못할까!”

“날 내버려 둬. 그냥 살려고 그런 거니까.”

이제 겨우 열 살 정도 되었을 것 같은 소녀에게서 나올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그 목소리에는 특유의 한이 서려 있었고, 몸속에 흐르는 피마저 얼려 버릴 것처럼 차가웠다.

저도 모르게 흠칫거린 우두머리 소년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불의를 용서할까 보냐!”

“그래, 정의의 칼을 받아라!”

아이들이 마구 달려들면서 목검을 휘둘러대니 사예린도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퍽! 퍽! 빡!

“꺄악!”

사예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년 봐! 얻어터지면서도 만두는 절대 안 놓네?”

“그러게. 이 도둑년!”

아이들의 말대로 사예린은 심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만두를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머리를 감싸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만두를 입으로 가져갔다.

‘살아야 해! 난 살 거야! 반드시!’

그런 와중에도 우두머리 소년이 휘두른 목검은 사예린의 이마를 정확히 때렸다.

따악!

“아악!”

비명과 함께 깨진 이마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눈앞에서 번개가 치고 세상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때였다.

“엇? 넌 뭐야?”

“어어? 저리 갓!”

갑자기 아이들 사이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곧이어,

퍽! 퍽! 쾅!

둔탁한 타격음이 연신 이어졌다.

반면 사예린을 때리던 목검은 더 이상 날아들지 않았다.

그날 사예린은 보았다.

야생에 내던져진 어미 잃은 맹수를.

맹수는 거침이 없었다.

소년들이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었지만, 맹수는 범이었다.

퍽! 퍽! 퍼억!

맹수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승냥이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맹수의 주먹이 곧 피투성이가 됐다.

날아드는 목검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목검 한 자루는 맹수의 주먹질에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저 아이…….’

기억이 났다.

조금 전 뒷골목으로 들어서기 전에 부딪쳤던 그 아이였다.

아이는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한마디씩 뱉어냈다.

“너희들이!”

퍽!

“배고픔을!”

빡!

“알아?”

퍽!

특히 우두머리 소년은 어찌나 심하게 맞았는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축 늘어져 있었다.

다른 소년들이 질린 표정으로 물러나더니 부리나케 달아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 소년이 꺼져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

“살…… 려…… 줘…….”

“흥! 비열한 새끼들.”

거칠게 욕설을 뱉은 아이가 우두머리 소년을 아무렇게나 부리듯 놓았다.

찰나,

타닷!

사예린이 번개처럼 달려가면서 우두머리 소년의 배에 소도를 박아 넣었다.

푸욱!

“끄아아악!”

소년이 비명을 내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주먹을 휘두르던 아이도 사예린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보았다.

사예린은 말없이 아이의 손을 낚아채고는 달렸다.

“어어?”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예린을 따라 달렸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몇 리를 지치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만두를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적 드문 야산에 도착해서야 사예린은 아이를 돌아보았다.

“나는 사예린. 너는?”

“진천.”

“우리…… 같이 다닐래?”

“좋아.”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런데 그 아이 죽었을까?”

“누구? 그 정의의 사도?”

“정의의 사도는 무슨. 파락호 놈이지.”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하긴. 아무렴.”

사예린이 씨익 웃었다.

고아가 된 후 처음으로 짓는 미소였다.

“네 몸에서 피비린내 나.”

“아, 개울에서 씻어야겠다.”

두 아이는 개울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 * *

사예린은 눈을 감은 채 희미하게 웃었다.

바람결에 그날처럼 피비린내가 난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기분 좋은 비명 소리.

잠깐 잠이 들었던 걸까?

사예린은 천천히 눈을 떴다.

다음 순간 선상에 펼쳐진 아수라장이 그녀의 시야 가득 들어왔다.

“죽여랏!”

“크아아악!”

“이여업!”

“아악!”

기합성과 비명성이 난무하고 시체가 쌓이고 있다.

‘권왕……?’

사예린의 시선이 검영대와 맞서 싸우는 투혈권왕에게 향했다.

투혈권왕은 그 어린 시절 처음 만났던 날과 같이 거침없이 싸우고 있었다.

시커멓게 물든 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굉음과 함께 적의 머리통이 박살 났다.

가슴이나 배에 얻어맞아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을 얻어맞은 자는 단숨에 늑골이 부서져 즉사했고, 배를 얻어맞은 자는 등허리의 장삼이 터져 나가면서 즉사했다.

그야말로 일권일살(一拳一殺 )!

퍽! 빡! 퍼억!

승냥이 떼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맹수 한 마리!

검영대는 속수무책이었다.

더구나 수장을 잃었으니 투혈권왕 앞에서는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었다.

사예린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걸렸다.

“멍청하긴. 굳이 뭐 하러…….”

냉소를 지었지만 싫지만은 않은 눈빛.

예전부터 투혈권왕은 저랬다.

속을 알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무모할 정도로 뜻밖의 행동을 저지르는.

어느 순간 그녀의 시선이 적비연과 딱 마주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잠시 얽혔다.

그때였다.

“엇! 주군!”

엽강호의 목소리에 적비연이 고개를 돌렸다.

쏴아아아아아!

아득한 곳에서 어둠이 솟아오른다.

그렇잖아도 시커먼 강 하늘이 더욱 짙은 어둠으로 새까맣게 물들어간다.

‘화살!’

근처 무림맹 소속 배에서 화살을 쏜 것이다.

날아드는 속도와 묵직한 기운으로 봐서는 철시(鐵矢)다.

“알아서들 막아라!”

“허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엽강호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얼른 대부를 휘둘러 검영대원 둘을 동시에 베어내고는 그 시체를 방패로 삼았다.

한사도 마찬가지.

실제로 둘의 무공이 적진에 둘러싸여 이만큼이나 버틸 정도는 아니었지만, 천상원에서 받아온 단약을 복용한 덕에 비교적 수월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한편 적비연은 곧장 경공술을 펼쳐 사예린 위쪽의 돛대를 향해 일격을 가했다.

쩌어엉!

그 모습을 본 검영대원들이 입을 척 벌렸다.

권기도 아닌 권강이라니!

강기를 입은 일권에 돛대가 앓는 소리를 내더니 쓰러지기 시작했다.

꾸우우우웅……!

“으라차!”

적비연이 기합을 터뜨리면서 쓰러지는 돛대를 쥐고 휘돌렸다.

파파파팡!

연신 파공성이 울리면서 새카맣게 쏟아지던 화살들이 돛대에 마구 튕겨 날아가거나 찢어진 돛에 휘감겼다.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지는 신위였다.

한차례 화살비가 쏟아지고 나자 선상에는 철시에 몸이 꿰뚫려 죽은 무인이 수두룩했다.

엽강호가 방패로 삼았던 시체 두 구를 내던지고는 혀를 찼다.

“소위 정파라는 것들이 아군 목숨을 버러지 취급하지 않고서야. 쯧쯧.”

철시는 적아를 가리지 않고 쏟아졌기에 사상자 다수는 검영대원들이었다.

그나마 선실에 피해 있던 몇몇 검영대원들이 이를 부득 갈고는 소리쳤다.

“닥쳐라! 네놈들을 멸하는 데 도움만 된다면 우리는 기꺼이 거름이 될 수 있다!”

엽강호가 혀를 내두르며 적비연을 보았다.

“대체 무슨 세뇌를 받으면 저리 된답니까?”

“나라고 알겠냐?”

적비연이 대답하는 사이 다시 강맹한 기운이 멀찍이서 전해져 왔다.

세 사람은 곧 그 기운의 정체가 한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는 흠칫거렸다.

파파파파팟!

수상비를 펼치며 쏜살같이 달려오는 그림자.

범선 인근에 다다른 그림자가 순간 경공을 펼치면서 단숨에 갑판 위로 날아올랐다.

찰나 빛줄기가 적비연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쒸이이잉!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그 뒤를 잇는다.

쩌엉!

적비연이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두르자 튕겨 나간 비도가 갑판을 찍었다.

콰자앙!

갑판 파편이 비수처럼 사방으로 날아갔다.

“헛!”

“엇!”

엽강호와 한사는 물론 검영대원들도 놀라서 얼른 무기를 휘둘러 파편들을 쳐냈다.

파파파팡!

그러는 사이 그림자가 적비연 코앞까지 날아들었다.

‘빠른……!’

적비연이 눈을 부릅뜨는 사이, 가까이 날아든 그림자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살소공자!’

별호를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쒸이이잇!

쩌어어엉!

살소공자가 든 흑월아와 적비연의 일권이 부딪치며 벽력이 울렸다.

쿠파파파파!

두 사람의 기운이 충돌한 것만으로 갑판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휘날렸다.

살소공자가 뒤로 훌쩍 물러나더니 예의 그 살가운 미소를 지었다.

“호오. 듣던 것과는 조금 다르신 듯. 강호에서 자웅을 겨룰 상대가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

적비연이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근데 네 말투는 참 좆같으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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