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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176화 (177/301)

176. 낚을 시간

촤아아아!

물보라가 일어나면서 적비연이 주르륵 밀려났다.

내공 대결이긴 하지만 살소공자는 은잠사를 이용해서 비영추를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상황이었고, 적비연은 오로지 양손에 공력을 집중해서 버텨야 하는 입장.

그러다 보니 강물에 뜬 판자 하나를 디딘 상태에서 밀려드는 내공을 온전히 막아내기가 쉽진 않았다.

“핫!”

적비연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기합성을 터뜨리자 그의 발끝이 시커멓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파앙!

발끝에서도 응축된 기가 폭발하더니 사방이 쩍쩍 얼어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저적!

카가각……!

수면이 얼어붙자 얼음에 파묻힌 판자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를 본 살소공자의 입가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컥! 쿨럭!”

다시 한번 체내의 독기가 목구멍을 타고 울컥 올라온다.

그가 한 차례 기침을 하면서 피를 토해내는 사이,

화아아아아!

다시 한번 세상이 밝아진다.

밤하늘을 수놓는 불덩이들.

이내 맹렬한 기세로 적비연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슈슈슈슈슈슉!

동시에 적비연이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비영추 두 자루를 튕겨내더니 손을 뻗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침몰해가는 범선에서 칼 한 자루가 휙 날아들며 손에 잡히는 게 아닌가?

‘능공섭물(凌空攝物)!’

깜짝 놀란 살소공자가 다시 울컥 치민 독기 때문에 격렬하게 기침을 토해냈다.

“쿠웨에엑!”

한차례 피를 토하고 나자 그나마 속이 후련해진다.

반면 머릿속은 여전히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능공섭물을 사용할 정도면 초절정 육 단에서도 후반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이 정도면 추혼단주를 나무랄 수도 없겠군. 오히려 금목원에 실망이.’

살소공자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는 이어진 적비연의 행동에 그 실소마저 지워 버렸다.

파파파파파팟!

검을 휘두르며 솟구친 적비연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철시를 남김없이 쳐냈다.

타타타타탕!

그야말로 화려한 검술.

마치 불덩이가 허공에서 터져 나가면서 장강으로 비산하는 듯하다.

적비연을 집어삼킬 듯 날아들던 불화살도 결국은 차가운 강바닥에 닿더니 연기를 피워 올리며 스러져갔다.

모든 걸 태워 버릴 염화도 적비연이 만들어낸 한기를 이기진 못한 것이다.

파파팟, 쿠웅!

얼음으로 덮인 수면에 착지한 적비연이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스으으읍, 후우우.”

입에서 허연 김이 풀풀 뿜어졌다.

눈빛은 얼음장만큼이나 차갑게 식었다.

살소공자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 권사(拳士)가 아니신지?”

“권사는 칼 쓰면 안 되냐?”

“역시 재미있는 분. 예상외의 강적.”

“시끄럽고. 빨리 돌아가서 해독제부터 찾는 게 어떨까? 그러다 너 죽어.”

“무인이 죽음에 발 하나 담고 있는 것이야 당연한 일. 그보다 어찌 빙백독광사 내단을 흡수한 것인지?”

“내 덩치 봐라. 원래 뭐든 잘 먹지.”

적비연이 히죽 웃으며 대충 대꾸했다.

살소공자가 낭랑하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적비연을 지그시 보았다.

“유쾌하신 분. 하나 이제 어쩌실 건지? 제 걱정을 할 때가 아닌 듯.”

그의 시선이 슬쩍 주변을 훑었다.

장강에 넓게 퍼져 있던 범선들이 어느새 둥글게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무림맹 혈천단을 태운 범선들이었다.

전부 수십 척에 이르렀다.

그리고 장강 복판에는 적비연과 살소공자가 대치했고, 사예린을 태운 배도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애초에 불화살의 목적 중 하나가 사예린을 어느 배에 태우는지 확인하기 위함인 듯했다.

살소공자가 입매를 치켜 올렸다.

“어차피 제 임무는 귀공의 발을 묶어두는 것. 본 맹은 생포하길 원하기에. 더 이상 빠져나가긴 어려울 듯. 그만 포기하시는 게?”

“어디 해봐.”

“무슨……?”

“생포할 수 있으면 어디 해보라고. 난 순순히 잡혀줄 생각은 없으니까. 장강에서 물고기를 낚으려면 미끼만 던진다고 되나? 물었으니 건져 올려야 할 것 아냐?”

“끝까지 해보시겠다는?”

“혹시 알아? 낚싯줄 끊고 도망갈지.”

“그러다 바늘에 입 찢어질 텐데.”

“그건 내 사정이고.”

살소공자가 왼쪽 입매를 슬쩍 치켜 올리더니 손을 들어 자신의 혈을 점했다.

탁탁!

적비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더 해보려고?”

“이왕 바늘이 되었으니 입을 찢을 각오로.”

“바늘이라. 하면 낚시꾼은 따로 있단 말인가?”

“눈치는 빠르신 듯!”

말을 뱉은 살소공자가 비영추를 뿌리며 날아올랐다.

삐삐이이익!

비영추가 날카로운 울음을 내지른다.

적비연이 곧장 검을 휘두르며 비영추를 쳐냈다.

따당!

“네 말투는 들을수록 참 좆같으신 듯!”

파파팟!

두 사람의 손이 순식간에 교차한다.

치열한 공방전.

살소공자는 이제 여분의 힘을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전력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적비연도 여유는 두지 않았다.

파파파팡!

주먹과 손, 검과 비영추가 어지럽게 얽혀든다.

파파파팍!

주변으로 얼어 버린 강바닥이 움푹움푹 파인다.

툭, 쾅!

살소공자가 발끝을 찍어 차자 얼어붙은 강바닥이 깨지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동시에 허공으로 솟은 살소공자는 비영추를 곧장 수직으로 쏘아냈다.

따다앙!

쩌적!

촤아아아!

검신으로 비영추를 튕겨내자 그 힘을 이기지 못한 강바닥이 쩍 갈라지더니 얼음덩어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미끄러져갔다.

바로 그때!

쒸에에에엑!

살소공자의 옷깃을 스치며 날아드는 강궁(强弓)!

-조심해라!

극마가 버럭 소리쳤다.

적비연이 반사적으로 검을 끌어당기며 강기를 발출했다.

파아앙!

찰나지간,

따아아앙!

촤아아아아앗!

적비연이 딛고 선 얼음덩어리가 강물에 미끄러지면서 한참이나 밀려났다.

손이 저릿저릿하다.

아니, 손뿐만 아니라 전신이 저릿하게 울린다.

미미한 내상까지 입었다.

위기!

-방금 뭐냐? 이 정도 강궁이면 보통이 아니다. 위험하다.

적비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살소공자를 노려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살소공자 뒤쪽을 본 것이다.

강궁이 날아든 방향!

놀랍게도 화살은 살소공자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서 정확히 자신의 가슴에 명중했다.

가까스로 검을 들어 막았으니 다행이지, 조금만 늦었다면 즉사했으리라.

아니. 즉사가 아닐지도.

아슬아슬하게 요혈을 비껴서 치명상 정도만 입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정도의 정확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단 한 명.

‘신궁(神弓) 축일공!’

-축일공? 그놈은 또 뭐 하는 놈이냐? 저놈만큼이나 강한가? 신궁이라는 건방진 별호를 보니 활 좀 쏘는 모양이군.

누군가 극마의 말을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거나 입을 쩍 벌렸으리라.

축일공은 강호의 누구라도 그렇게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자였으니까.

무림맹 부맹주이자 금악궁주 축일공.

그가 궁을 들면 하늘의 별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떠돌 정도다.

괜히 신궁이라고 불리겠는가?

대궁 하나로 무림맹에서 무림오절로 등극한 인물이다.

무공수위로 따지면 현재의 적비연도 당해낼 수가 없는 강적이다.

-과연. 낚시꾼이 따로 있단 건가? 저놈은 결국 바늘이었군.

‘곤란해졌어.’

-무림맹 총군사가 허수아비는 아닌 게 확실하군.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준비할 줄이야.

적비연의 반응에 살소공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놀라신 듯.”

“뭐, 조금은.”

“그럼 이제 어떠신지? 순순히 따라가시는 게?”

적비연이 피식 웃었다.

“낚시꾼이 무서우면 더 달아나려는 게 물고기지.”

파아앙!

적비연이 두 주먹을 불끈 쥐자 사방으로 한기가 훅 퍼져나갔다.

동시에 조그맣던 얼음 섬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면서 범위를 넓혀갔다.

쩌저저적……!

얼음 섬 위에 선 적비연이 입매를 비틀었다.

“뭐, 다 잡은 물고기라도 결국 방생하게 될 거야.”

“그건 어디에서 나온 자신감이신지. 이제 기력도 다 됐을 텐데.”

“두고 보면 알 것!”

적비연이 바닥을 차며 날아갔다.

* * *

대궁을 내린 축일공이 침음을 흘렸다.

“흐음. 제법이군.”

“한기에 독기라. 빙백독광사 내단을 품은 게 분명하군요.”

옆에서 천리경으로 보던 가후가 중얼거렸다.

축일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다고 생각했더니…… 그렇지만은 않군.”

“생포령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살소공자가 이겼을까요?”

“글쎄…….”

축일공은 확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마도 살소공자가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건 뜻밖이다.

‘빙백독광사 내단이 그 정도인가? 아니면 저 투혈권왕이라는 인간에게 특별한 뭔가가 있단 건가?’

대답이라도 하듯 축일공의 말이 이어졌다.

“저 투혈권왕. 나이에 비해 노회함이 묻어 있어. 흑천련주가 잘 가르쳤거나, 타고난 무골이거나. 하지만 저런 노련한 반응은 타고난 것만으로는 부족할 텐데. 흥미로운 자야.”

“더욱 생포하고 싶군요.”

“하면 마무리 지어야겠지?”

“부탁드립니다.”

천리경을 내린 가후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보였다.

축일공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궁을 들었다.

곧이어 그가 두 자루의 철시를 시위에 걸고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시위를 놓는 순간 화살 한 대는 적비연의 검에 맞아 튕겨 나갈 것이고, 다른 한 대는 정확히 심장에 명중할 것이다.

‘하지만 심장에 구멍이 뚫릴 일은 없을 터!’

패애애앵!

쒸쒸에에에엑!

두 자루의 철시가 빛살처럼 강 하늘을 갈랐다!

* * *

비영추 두 자루가 보인다!

동체시력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빠른 비영추였다.

한데 그것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비영추가 나는 방향으로 같이 움직이면 된다.

물론 그 순간을 잘 잡아야한다.

이번에는 걸렸다.

적비연이 뒤로 물러나는 순간 비영추가 쫓아왔다.

그러자 비영추가 보인다.

비영추 사이로 파고들어서 쇄도할까? 아니면 두 자루를 튕겨낸 후에 다음을 노릴까?

그런데 그때,

쒸에에엣!

비영추보다도 빠른 속도로 거뭇한 철시 한 대가 날아든다!

비영추 사이를 정확히 비집고 들어온다.

이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

강기까지 머금은 철시다.

‘제길! 신궁 축일공!’

입질을 느낀 낚시꾼이 본격적으로 낚으려는 거다.

적비연이 어금니를 빠득 갈고는 빛살처럼 뻗어오는 철시를 검신으로 후려쳤다.

따아아앙!

고막을 찢을 듯 청명한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철시가 튕겨나가고 들고 있던 검도 적비연의 손바닥을 찢으며 튕겨 날아갔다.

따다앙!

튕겨나간 철시와 검이 비영추 두 자루와 다시 부딪쳤다.

-엇, 하나 더 있다!

‘젠장!’

극마가 소리쳤지만 반작용에 의해 두 팔이 활짝 펼쳐진 적비연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알아도 막을 수 없는 지경.

쒸에에에엑!

따아앙!

“크억!”

강맹하게 날아들던 철시가 적비연의 심장에 박혔다.

하지만 품에 넣어둔 흑월아가 이번에도 목숨만은 구했다.

허공으로 붕 떠오른 적비연이 얼음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주르륵 미끄러졌다.

“커억! 쿠웨엑!”

내상을 입은 것인지 핏덩이가 한 움큼 토해졌다.

-이런 니미럴! 활 하나는 개같이 잘 쏘는구나!

극마가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소리를 해댔다.

비영추를 거둔 살소공자가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적비연을 보았다.

“어떠신지? 이만하면 물고기도 힘이 빠졌을 듯한데요.”

적비연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럼…… 주워 담으면…… 될 것을. 뭘 묻고…… 자빠졌어…….”

정말이지 연이어 상승무공을 사용한 탓에 기력이 다해가고 있었다.

게다가 신궁 축일공이라니.

츠르르르……!

주변의 얼음이 녹으면서 다시 강물이 되었다.

* * *

“끝났군.”

축일공이 활을 내렸다.

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자, 이제 신병 확보하도록!”

“존명!”

혈천단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런데 배가 이동하려는 그 순간,

뿌우우우우우!

갑자기 천지가 격동할 듯 뿔 나팔소리가 동녘에서 울리는 것이 아닌가?

마침 선미에 있던 무인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와 보고했다.

“큰, 큰일입니다! 수로십팔채가 나타났습니다!”

“수로십팔채가? 아무리 그들이라도 굳이 여기까지 와서 흑천련을 도울 이유가 없을 텐데. 배가 몇 척이나 되지?”

새파랗게 질린 무인이 대답했다.

“그, 그것이…… 수황의 거선(巨船)이 나타났습니다. 따르는 배만 일백 척이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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