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178화 (179/301)

178. 장강대첩

콰콰콰앙!

츄아아아아!

우지끈……! 쿠웅!

그야말로 아수라장.

장강 복판에 생지옥이 펼쳐졌다.

폭음과 비명, 욕지거리가 뒤섞이면서 절망이 차오른다.

무림맹 측 범선에서 연신 후퇴하라는 명령이 귀가 따갑도록 들려온다.

장강의 수면 위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한 사람.

한사는 그렇게 패색이 짙은 무림맹 측 범선들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정확히 일각 전, 신궁 부맹주와 수황이 한창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각.

한사는 사전에 적비연이 지시한 대로 대나무통 하나를 들고 조용히 배에서 내려와 잠영을 펼쳤다.

어두운 밤인 데다 은신술을 펼쳐 하선했기에 그의 존재를 눈치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 그 시각 무인들은 부맹주와 수황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느라 반대편에 있는 한사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때문에 한사는 조금 더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잠영을 펼친 그는 부맹주가 승선한 배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무림맹 범선 가까이로 다가갔다.

한참 동안 잠영을 펼치다가 숨이 차오르면 대나무통을 입에 물고 호흡을 보강하는 식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물속에서만 이동하니 기척은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다.

무림맹 범선 한 척 아래에 바짝 다가붙은 한사는 머리만 살짝 내밀고는 배 난간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부맹주는 수황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수로채의 배가 제법 가까워져 있었고, 적비연이 옮겨 탄 배는 무림맹의 포위를 벗어나 수로채 배 뒤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양측은 여전히 포구와 불화살을 겨눈 상태.

오랜 세월 서로에게 쌓인 불신이다.

말 몇 마디로 경각심을 풀어 버릴 정도로 가벼운 사이가 아니다.

오히려 두 세력 간의 긴장감은 언제든 끊어질 수 있을 만큼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

마침내 적비연이 탄 배가 완전히 눈에 보이지 않게 됐을 때, 한사는 품에서 비수 두 자루를 꺼내 날렸다.

쒸쒸에엑!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비수 두 자루가 궁수의 팔을 각각 맞혔다.

“컥!”

“윽!”

패패앵!

느닷없는 기습에 당한 궁수가 반사적으로 시위를 놓고 말았다.

그 바람에 불화살 두 자루가 허공을 가르며 쏘아졌다.

“엇!”

“무슨 일이야?”

선상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그러는 사이 한사의 품에서는 두 자루의 비수가 한 번 더 날아갔다.

쒸쒸쒸에엑!

“컥!”

“앗!”

비명 소리에 이어 다시 두 대의 불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애초에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장강이었다.

한데 벌써 네 대의 불화살이 허공을 가르니, 이내 밤하늘은 들불 번지듯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슈슈슈슈슉!

마침 수로채 무인들이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으엇! 놈들이 공격한다!”

“역시 믿을 수 없는 것들!”

“포를 쏴라!”

그렇게 어느 이름 모를 무인이 하늘로 쏘아올린 작은 불씨가 지금의 아수라장으로 만든 것이다.

비명과 고함소리가 난무하는 무림맹 범선들.

제아무리 불화살을 들고 있었다지만 배를 통째로 부술 수 있는 포를 감당할 수는 없는 법.

오히려 배에 싣고 있던 기름이 쏟아지면서 무림맹 범선이 불에 타오르기도 했다.

“뛰어내려!”

“어서, 배를 물려라!”

“저 개 같은 것들! 처음부터 작정을 한 거야!”

한사는 거칠게 고함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잠영을 펼쳐 돌아갔다.

* * *

가후가 주먹을 꾹 말아 쥐고는 파르르 떨었다.

“어찌 이런……!”

살이 떨린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은 부정이었다.

이럴 리가 없다는.

지금 일어나는 이 상황이 현실일 리가 없다는.

그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상황.

하지만 분명 눈앞에서 참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맞은편 선상에서는 포가 불을 뿜었고, 여기저기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배가 물속으로 가라앉아 가고 있었다.

지금껏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자신의 계산을 벗어난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다.

정말이지 이런 적은 처음이다.

투혈권왕을 잡으려는데 대뜸 수로채가 나타나다니!

거기에 수로채가 포를 쏴서 무림맹 범선 수십 척을 침몰시키다니!

물론,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무림맹 쪽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발사하라는 명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저쪽 무림맹 선상에서 두 대의 불화살이 날아갔다.

곧이어 다시 불화살이 날아가는가 싶더니, 그다음부터는 포가 터지면서 전쟁이 펼쳐졌다. 아니, 학살이 일어났다.

‘처음부터 수로십팔채가 노린 건가? 하지만 오늘 투혈권왕을 여기서 사로잡을 거라는 것을 어찌 알고?’

투혈권왕은 금목원의 눈도 피할 만큼 은밀하게 움직이지 않았나?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

그때 부맹주가 소리쳤다.

“군사! 후퇴하게!”

퍼뜩 정신을 차린 가후가 뒤를 돌아보자 축일공이 두 눈에 힘을 주며 바라보았다.

그가 턱짓을 하며 난간 아래를 가리켰다.

“어서! 이쪽으로!”

“죄송합니다. 부맹주님. 제 부족함으로…….”

“어허, 답답한 사람 같으니! 지금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닐세! 서두르게!”

축일공이 얼른 다가와 가후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두 사람이 난간 아래로 뛰어내려 소선에 착지하자마자,

콰콰아앙!

“크아악!”

“으아악!”

커다란 범선이 터져 나가면서 비명이 솟구쳤다.

다행히 축일공과 가후가 탄 배는 빠른 속도로 범선으로부터 멀어졌다.

쿠르르르르……!

불붙은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난간에 올라선 무인들이 저마다 강물에 몸을 던졌다.

범선이 침몰하면서 거센 물결이 일어나 가후가 탄 소선을 빠른 속도로 밀어냈다.

“허.”

가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실소를 흘렸다.

너무 기가 차니까 웃음만 나온다.

오늘 이 패배는 뼈에 새겨야 하리라.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이걸로 장강을 다시 수로십팔채에 돌려줘야 할지도 모른다.

수십 척의 배를 잃었으니 장강을 지킬 힘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허. 미끼를 걸고 물고기를 낚으려다가 오히려 이쪽에서…….’

생각을 하던 가후가 흠칫거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산산조각 나면서 침몰해 가는 범선들.

개중 몇 척은 겨우겨우 빠져나오고 있었지만 지근거리에서 포탄을 맞은 탓에 멀쩡한 배가 없었다.

수리 기간만 족히 몇 개월은 걸리리라.

‘어쩌면 미끼가……?’

가후의 미간에 세로 주름이 새겨졌다.

* * *

“제대로 미끼가 되어주었군.”

수황이 강바람을 맞으며 마주 선 투혈권왕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한편 수황 옆에 선 동소유는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투혈권왕을 보고 있었다.

적비연은 그녀의 표정이 무슨 뜻을 나타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상할 것이다.

분명 그녀가 ‘흑룡의 은덕’을 약속한 사람은 투혈권왕이 아닌 반철룡이었으니까.

일단 적비연은 그 사실을 모른 척하고는 포권을 취했다.

“도움을 줘서 고맙소!”

“집 나간 새끼를 무사히 돌려보내 준 것에 대한 답례 정도라고 하지.”

수황이 옆에 선 동소유를 힐끔 보았다.

동소유가 송구한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수황이 말을 이었다.

“이걸로 셈은 끝났을 터.”

하지만 적비연이 입매를 치켜 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계산은 바로 해야 하지 않겠소?”

“계산?”

수황 무자강의 미간에 희미한 주름이 새겨졌다.

적비연이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흑룡의 은덕으로 약조한 바를 행한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는 바이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로간의 빚. 그 빚을 청산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셨으니, 수로채는 강호의 신의를 지킨 것이 분명하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수황 무자강은 여전히 어딘지 나른한 표정으로 물었다.

적비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서신에 이렇게 적었소. 흑룡의 은덕을 잊지 않는다면, 나 자신이 미끼가 되어서 장강을 가질 기회를 만들어 주겠노라고. 그리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적비연이 저만치에서 침몰해 가는 범선들을 가리켰다.

수황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대는 우리가 장강 서쪽까지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 점은 높이 사지. 그래서 원하는 바가 있는가?”

“역시 듣던 대로 시원시원하시군. 내가 원하는 바는 똑같소. 그 언제가 되었든 수로십팔채가 한 번은 더 힘을 빌려주시길 바라겠소.”

그러자 동소유가 발끈하며 나섰다.

“흑룡의 은덕은 이걸로 매듭지어졌어요! 어째서 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죠?”

“아까 말했다시피 흑룡의 은덕은 청산이 끝났소. 하지만 오늘 내가 선물한 서쪽 지대의 장강에 대한 빚은 새로 남지 않았소?”

“그런 뻔뻔한……! 우리가 아니었다면 그 포위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으면서!”

“그 전에 흑룡의 은덕이 아니었다면 소저는 흑천련 뇌옥에서 그 누구도 모르게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을 거요.”

“당신이 그것까지……!”

동소유가 말을 쏟아내다가 흠칫거리고는 시선을 돌려 적비연이 타고 온 배를 보았다.

그 배에서도 많은 무인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반철룡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반 대주…… 아니, 반 호법장이었나요? 아무튼 그는 지금 어디에 있죠? 당신이 어떻게 흑룡의 은덕에 대해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상관인지? 암어만 이야기하면 무조건 흑룡의 은덕을 실행하기로 약조하지 않았소?”

“하지만……!”

동소유가 뭐라 말을 잇기도 전에 수황 무자강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나도 궁금하군. 내 새끼를 돌려보내주었다는 그 반철룡이라는 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죽었소.”

“뭐라?”

그제야 무자강의 표정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다.

적비연이 주변을 의식한 듯 말했다.

“그에 대해서는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소만.”

무자강이 적비연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한 차례 저었다.

“물러들 나라.”

그러자 은황선에 타고 있던 무인 수백 명이 일제히 다른 범선으로 옮겨 타더니 빠른 속도로 배를 물리기 시작했다.

적비연이 타고 왔던 배도 마찬가지였다.

은황선을 중심으로 수로채의 배들이 물러가니 적비연이 타고 왔던 범선도 어쩔 수 없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웅!

다음 순간 뭔가 답답한 공기가 적비연의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듯했다.

이내 억눌린 듯한 목소리가 적비연의 귓가에 닿았다.

“이만하면 됐나?”

기막(氣膜)……!

기를 펼쳐서 소리를 차단한 것이다.

한데 평범한 기막이 아니다.

안의 소리는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하면서, 바깥의 소리는 거의 변함이 없다.

내공이 고절하지 않으면 흉내도 낼 수 없는 경지.

‘과연 수황 무자강이로군.’

장강에서만큼은 그를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없으리라.

어쩌면 무림오절이 동시에 덤벼도 버거울 지도.

뭐,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느낌상 그렇다.

적비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사실 반철룡과 나는 같은 분을 섬기고 있소.”

“그거야 천하가 아는 사실이 아닌가?”

무자강이 별로 흥미로울 것도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분이 흑천련주가 아니라는 걸 말하는 거요.”

그제야 무자강이 관심을 가지는 눈치다.

“련주가 아니라면?”

적비연이 가슴 벅찬 표정을 지으며 힘 있게 말했다.

“위대하고 강하신 벽력적가주님이오. 오늘 장강을 수로채에 돌려주기로 계획하신 것도 바로 그분의 뜻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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