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180화 (181/301)

180. 대이변

금의환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환대라고 부를 만했다.

그럴 수밖에.

추혼단을 섬멸한 데 이어 장강에서는 무림맹 주요 병력을 수장시키지 않았나?

이에 흑천련 무인 다수가 정문에서부터 내원에 이르기까지 두 제자를 보려고 모여들었다.

특히 월희계의 무인과 권왕계 소속 무인들은 일제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장강대파! 흑천만세! 월희만세! 권왕만세!”

“정도대파! 추혼전멸! 흑천만세! 월희만세! 권왕만세!”

그야말로 천지가 격동할 듯 큰 소리.

한편 이 모든 광경을 내원의 전각에서 묵묵히 내려다보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파천신군 이자권이었다.

그는 창가에서 외원으로 들어선 적비연과 사예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의 뒤에서 그림자가 나직이 목소리를 꺼냈다.

“용케도 살아 돌아왔군요.”

파천신군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중얼거렸다.

“살소공자까지 손을 쓰지 못했다지.”

“예, 총군사 가후가 직접 나섰음에도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수로채가 나서서 도와주었다는 정보입니다.”

“이미 그 전에 대등하게 싸웠다는 정보가 있던데.”

“그렇습니다.”

“말이 되는가? 저 아이가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단 말인가?”

파천신군의 시선이 당당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적비연에게 향했다.

뒤에서 부복한 심복은 말이 없었다.

“수로채는 왜 나서서 도와준 건가?”

다시 파천신군의 중저음 목소리가 울렸다.

쿵!

심복이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는 아직……!”

“하긴. 요즘같이 평화로울 때는 마음이 해이해질 만도 하지.”

위험……!

심복이 다시 한번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쿠웅!

“죄송합니다! 속히 알아보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흐음. 우선 오늘 밤에는 연회를 열어야겠군.”

“주군……?”

파천신군이 여전히 창밖을 응시한 채로 말했다.

“사제들이 큰 공을 세웠으니 연회를 크게 베풀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저들을 인정하는 게 될 겁니다. 사람들은 더욱 저 둘을 칭송하게 될 겁니다. 향후 후계…….”

“대공자로서 본 련을 위해 세운 공이 지대하니, 당연히 사제들에게 연회를 베풀어야 할 일.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심복이 다시 한번 고개를 깊이 숙인 다음 귀신처럼 사라졌다.

파천신군은 이제 내원으로 들어서는 적비연과 사예린을 지켜보다가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 전각의 창문에서는 또 다른 사람이 묵묵히 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교패였다.

“흐음.”

교패가 침음을 흘리고는 손가락으로 바늘을 매만졌다.

마침 그의 곁으로 그림자 하나가 다가서며 말했다.

“대단하군요. 무림맹의 천라지망을 뚫고 들어오다니.”

말을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교패의 심복, 혈조야귀였다.

교패가 혈조야귀를 힐끔 보고는 말을 이었다.

“가장 먼저 귀환한 자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저야 운이 좋았지요. 모든 시선과 병력이 저 두 분에게 향해 있었으니까요.”

“뭐, 그것도 그렇겠군.”

“한데 이걸로 대공자님의 자리가 좀 위태로워질 수도 있겠습니다.”

“글쎄. 그건 어떨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교패가 시선을 돌려 저만치 떨어져 있는 전각을 바라보았다.

파천신군이 머물고 있는 곳.

아니나 다를까 창가에 선 파천신군이 금의환향하는 무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 교패와 시선이 마주쳤다.

교패가 예를 차려 살짝 목례로 인사를 건네자, 파천신군 역시 슬며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교패는 다시 시선을 돌려 적비연을 보았다.

“확실히 놀랍긴 하군. 자네 말대로라면 투혈권왕이 초주검 상태로 귀환할 줄 알았더니.”

“그건 저도 놀랐습니다. 투혈권왕의 호법 두 명이 천상원의 영단을 탈취했는데, 그 효과가 컸나 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교패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의술이라면 자신도 어디 가서 빠지진 않는다.

아니,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신의 아상이 죽은 지금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데 자신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회복력이다.

지금 투혈권왕을 보면 부상을 입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도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은가?

살면서 지금까지 저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아니. 그건 아니군.’

확실히 한 번 있었다.

의술로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회복력을 본 기억.

‘반철룡 대주.’

이건…….

‘우연인가?’

교패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적비연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반철룡이 벽력적가주의 인피면구를 쓰고 있다가 죽었다는 소식은 벌써 들었다.

혈조야귀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그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혈조야귀가 도착하면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예린의 직감이 맞았던 것이다.

‘어째서 반 대주가…….’

반철룡을 하루 이틀 알고 지낸 게 아니다.

무공 실력은 고만고만했지만, 심지가 굳건한 자였다.

그런데 만나본 적도 없는 벽력적가주 행세를 하다가 죽었다니.

이렇게 이해 안 되는 일도 드물지 않은가?

처음에는 가후가 꾸민 게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하면 제삼의 세력이 있다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이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무림맹도 파악하지 못하고, 흑천련도 알아내지 못한 제삼의 세력!

그런 세력이 있다면 지금 무림맹과 각을 세울 때가 아니다.

대체 누군가?

누가 됐든 벽력적가가 그 중심에 있을 테고.

벽력적가에서 그 난리를 치는 동안에도 적 가주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인데.

‘이걸 어찌 해석해야…….’

생각 끝에 다시 침음이 흘러나왔다.

바늘을 매만지던 교패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인파 사이로 걷는 적비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침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교패가 먼저 목례를 하며 예를 차렸다.

그런 교패를 확인한 적비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본 사예린이 나직이 일렀다.

“조심해. 교 선생은 누구보다 눈치가 빠른 자니까.”

“사저보다도?”

“당연. 그자의 직감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논리까지 갖춘 느낌이니까.”

그래서 둘이 그렇게 죽이 잘 맞았던 건가?

적비연이 속내를 삼키고는 물었다.

“교 선생하고 친했지?”

“별로. 서로 이용했던 관계였을 뿐.”

“그럼 교 선생은 정확히 지지하는 세력이 어디야?”

적비연의 물음에 사예린이 고개를 들고서 교패를 보았다.

“글쎄. 나도 몰라. 내 직감으로도 속을 알 수 없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야.”

“교 선생 말고 그런 사람이 또 있단 말이야?”

“있지.”

“그게 누군데?”

“이젠 너하고 막내.”

* * *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연회가 펼쳐졌다.

연회의 주인공은 단연 적비연과 사예린이었다.

연회장에 모인 무인들은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들을 마치 제 눈으로 본 것인 양 떠들어댔다.

“아, 글쎄! 우리 권왕께서 일권을 내지르니 그 재수 없게 처웃기만 하는 살소공자가 살려달라고 징징 짜더라는 것 아니야?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봤어야 하는 건데!”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정파 나부랭이 녀석들을 직접 봤어야 하는 건데!”

“그 모든 게 우리 이 공녀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미끼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가능이나 했겠어?”

“맞는 말이지. 추혼단을 뚫고 귀환하기 위해서 이 공녀님 스스로 미끼 역할을 하신 건 정말 훌륭한 작전이었다니까!”

“암요! 암요!”

자세한 내막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턱대고 월희마녀를 추켜세웠다.

그들 중 누구도 사예린이 정말로 위험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투혈권왕이 살소공자와 싸웠다고 하니, 그 모든 게 사예린의 작전상 이루어진 것이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물론 몇몇 이들은 투혈권왕이 추혼단을 전멸시키고 빙백독광사의 내단까지 취했다는 사실을 어디서 듣기도 했지만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다.

그만큼 투혈권왕의 입지는 약했으니까.

적비연과 사예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연회를 즐겼다.

우선 그간 여정이 고단했던 터이기에 푸짐하게 마련된 음식을 먹으면서 배를 채웠다.

그러는 동안 상석에 앉은 파천신군과 교패는 가만히 술잔을 기울이면서 적비연과 사예린을 살피기만 했다.

대공자인 파천신군이 사적으로 베푼 연회였기에 이 자리에는 련주나 총군사가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는 참석자들이 격식을 차리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떠드는 중이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한 사내가 탁자를 탁 치고 일어나더니 우렁차게 소리쳤다.

“이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이신 이 공녀님께 한 말씀 듣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겠소?”

“그럴 수는 없지! 암!”

“자, 월희전주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사예린에게 향했다.

분위기를 몰아간 사람은 역시나 월희계의 무인이었다.

파천신군과 교패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사예린을 바라보았다.

사예린이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지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했을 뿐인데도 몇몇 이들이 탄성을 흘렸다.

단언컨대 달빛이 스며드는 밤,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그녀의 별호에 ‘월희’라는 단어는 하늘에서 정해준 것만 같았다.

좌중을 잠시 둘러본 그녀가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선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대사형께 감사를 전합니다.”

“별말씀을.”

파천신군이 예의상 미소로 답례했다.

사예린이 한쪽 입매를 치켜 올리고는 다른 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와 사제를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에게도 감사해요.”

“저희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이왕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니 이번 임무를 맡으면서 내심 각오했던 바를 말할까 합니다.”

“각오한 바라고 하시면……?”

뭔가 중대발표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에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파천신군과 교패 역시 미간을 모으고는 사예린을 가만히 응시했다.

사예린이 그 반응을 마냥 즐기는 듯 즐거운 미소를 짓다가 그야말로 충격적인 말을 뱉어냈다.

“나는 오늘부로 차기 련주 자리를 깔끔하게 포기하겠습니다.”

“……!”

무인들은 물론 교패와 파천신군 역시 놀란 표정으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슨 속셈이지?’

파천신군이 이내 눈살을 구겼다.

마침 사예린에게 발언을 부탁한 무인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져서 물었다.

“이, 이 공녀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두가 들은 그대로입니다. 나는 오늘부로 흑천련 후계 다툼에서 빠질 겁니다.”

“갑자기 왜…….”

“이유는 중요하지 않죠. 하나 굳이 말하자면, 나보다 더 강한 자가 마땅히 그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봅니다.”

“공녀님보다 더 강한 자라면……?”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파천신군에게 향했다.

사예린의 시선도 그에게 향했다.

뜻밖의 시선 집중에 파천신군이 당황해하면서도 기분 좋은 미소를 그렸다.

‘이번 임무를 통해서 자신의 한계를 느꼈던 건가? 그렇다면 살아 돌아온 게 잘한 일이라고…….’

하지만 곧이어진 사예린의 말에 그는 생각을 멈추고 말았다.

모두의 귀에 사예린의 낭랑한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새겨졌다.

“나는 오늘부로 차기 흑천련주로 사 공자 투혈권왕을 지지합니다.”

“그런……!”

무인들이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술잔을 쥐고 있던 파천신군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이건 또 뭔 시답잖은 장난질이지?’

그때, 월희계의 무인 세 명이 탁자를 거칠게 내려치며 일어났다.

“아니 될 말씀이오! 우린 절대 인정할 수 없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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