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186화 (187/301)

186. 금역(禁域)

극마의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괴인은 금방이라도 공진철을 끊어 버리고 광기를 터뜨려 버릴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괴인에게서 느껴지는 기도가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숨어서 지켜보는 적비연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내심 마른침을 삼키고는 긴장했다.

‘설마 공진철을 끊어 버린다고?’

대체 얼마나 강하면 그런 일이 가능한가?

하긴 초절정 팔 단을 넘어서면 보통의 공진철로는 내력을 온전히 제압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는 만년한철을 섞어서 만든 특수 공진철이 사용된다고.

어쨌거나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여겼는지 벽 쪽에 서서 지켜보던 흑의 무인들이 검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들이 서로를 응시하면서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이거 재수 없게 하필 주인이 들어왔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냐?

‘단순히 운이 아냐. 아마 내가 들어왔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걸 거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적비연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극마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란으로 그 답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약물 과다입니다! 어서 진정침을 놔야 합니다!”

“이미 놨어! 효과가 없어!”

“혼몽초(昏懜草)! 혼몽초 가지러 간 녀석들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백의인 중 상관으로 보이는 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아아, 주인이 아까 기절시킨 놈들이 혼몽초를 가지러 간 녀석들이었나 보군!

‘아마도.’

적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다려도 안 올 텐데. 큰일이군.

극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끄아아아아아압!”

괴인이 비명에 가까운 기합성을 터뜨리더니 오른 주먹에 잔뜩 힘을 주었다.

불끈불끈……!

“어어? 위험하다! 어서 진정침을 더 놔라!”

“이미 요혈에 모두 놔서 더 이상 찌를 곳도 없습니다!”

“혼몽초는 아직이야?”

“네,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멍청한! 그럼 누구라도 가서 가져와야 할 것 아냐!”

“제, 제가 가보겠습니다!”

책상에서 글을 적던 백의인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러는 사이에도 괴인의 어깨와 팔 근육은 점점 크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불룩…… 불룩……!

드드드드……! 투둑……!

백의인들의 동공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헉! 큰, 큰일이다! 공진철이 버텨내질 못하고 있어! 놈의 내력이 폭주한다!”

이쯤 되자 지켜만 보던 흑의 무인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성큼 나섰다.

그 역시 이런 경우를 처음 본 것인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들 물러나시오!”

“어, 어쩌시려고……?”

“일급 비상사태인 만큼 죽일 수밖에.”

“그, 그건 안 됩니다! 저자는 예후가 가장 좋은 경웁니다. 이대로 죽여 버리면…….”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지 않소! 이대로 두면 저자가 공진철을 끊어 버릴 수도 있소!”

“그, 그건……!”

백의인 수장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무인의 말대로 이대로는 위험하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충분히 넉넉한 혼몽초를 준비했다.

한데 그 많은 혼몽초를 사용하고도 놈이 의식을 잃기는커녕 더욱 미쳐서 날뛰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혼몽초를 가지러 간 녀석들은 뭘 하고 자빠진 건지!

나중에 돌아오면 혼이 쏙 빠지도록 나무라야겠다.

“즉사시킬 수 있는 사혈(死穴)이 어디요?”

괴인의 요혈은 현재 침으로 인해 기의 흐름이 변형된 상태.

백의인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신궐혈(神闕穴)과 천돌혈(天突穴)을 먼저 찌르고, 마지막으로 옥당혈(玉堂穴)을 찌르시면 됩니다.”

“대침!”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의인 중 하나가 얼른 달려가 대침을 건네주었다.

백의인이 얼른 입을 열었다.

“저기…… 가능하다면 죽이진 마시고…….”

타앗!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흑의 무인이 바닥을 차고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미친.

뭐? 가능하면 죽이진 말라고?

칼 밥 먹은 세월이 수십 년이다.

그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 이 괴인을 죽이지 않으면 여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몰살을 면치 못할 거라고.

당연히 반드시 죽인다!

쒸이이잇!

푹!

“크아아아악!”

대침이 배꼽쯤의 신궐혈에 박히면서 괴인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투둑……!

순간 공진철이 끊어질 것처럼 신음을 내지른다.

‘서둘러야 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신궐혈에서 뽑힌 대침이 쇄골 사이쯤에 위치한 천돌혈에 박힌다.

푸우욱!

“커어억!”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답답한 비명이 터져 나오면서 피가 울컥 토해진다.

그 바람에 핏물이 흑의 무인 뺨에 잔뜩 묻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그대로 대침을 뽑아내고는 가슴께의 옥당혈로 내질렀다.

이 부위가 가장 어렵다.

임맥에서 폭주하는 기운을 신궐혈과 천돌혈 사이에서 가두고 옥당혈에서 철저하게 파괴시켜야 한다.

마침내 빛살처럼 날아간 대침이 옥당혈에 정확히 맞닿는 순간!

투까아아앙!

쉬잇, 콰악!

“커억!”

놀랍게도 괴인의 오른손이 공진철을 끊어 버리더니 팔을 뻗어 그대로 흑의 무인의 목을 움켜쥐는 게 아닌가?

흑의 무인이 경악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에 공포가 서렸다.

제길! 마지막 한 치를 앞두고!

그 생각을 끝으로 그의 안면에서 핏대가 불거지더니 퍽! 소리와 함께 목이 뜯어져 나가고 말았다.

촤아아아아!

뜯겨 나간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올랐다.

“우아악!”

백의인들이 혼비백산하며 물러났다.

반대로 흑의 무인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놈이 공진철을 끊었다!”

“죽여랏!”

“흐아아압!”

순간 괴인이 전신에 힘을 팍 주자,

푸푸푸푸푸푹!

그의 몸에 고슴도치처럼 꽂혀 있던 침들이 사방으로 튕기듯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투타타타타탕!

“크아악!”

“으아악!”

괴인을 향해 달려들던 흑의 무인들이 저마다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공동 안이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했다.

그중에서 운 좋게 침을 피한 백의인 하나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은 채 주춤주춤 물러났다.

“으어어어……!”

괴인이 히죽 웃더니 공진철에 묶인 왼손에 힘을 주었다.

다음 순간,

투까아앙!

이번에도 공진철이 끊어져 나가면서 결박된 왼손이 풀려났다.

-엄청나군.

극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중얼거렸다.

적비연도 숨을 참으며 가만히 지켜보았다.

양손이 풀려난 괴인의 기도는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었다.

투카앙! 카앙!

마침내 두 발도 공진철을 끊어내 버리자 괴인이 허리를 꺾어 들고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공동이 흔들릴 정도로 쩌렁쩌렁 울렸다.

“크으읏!”

내공이라곤 한 줌 없어 보이는 백의인이 귀를 틀어막고는 비명을 질렀다.

귀와 코,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는 사이 괴인의 전신이 짐승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마치 금제가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공력이 전신에서 소용돌이치며 일어났고, 체격은 단단해지면서도 급속도로 팽창했다.

한참이나 울린 웃음소리가 끝나자 백의인이 기겁을 하며 몸을 돌렸다.

“흐이이익!”

하지만 그가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이 둥실 떠오르더니 쏜살같이 날아갔다.

쒸이이이잇!

푸욱!

“커어억!”

등에서 날아든 검은 그대로 백의인의 심장을 뚫고 튀어나왔다.

바닥에 고꾸라진 백의인이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지고 말았다.

저벅저벅……!

백의인 앞으로 다가온 괴인이 발을 들어 올리더니 무심히 머리를 밟았다.

퍽!

주변을 둘러본 그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통로를 따라 사라졌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적비연이 은신술을 풀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네 말대로 엄청나군.’

-조심해야 한다. 저런 놈과 마주치면 아무리 주인이라도 위험할 수 있다.

‘일단은 안 마주쳤으니까 다행이지. 그나저나 지금쯤 밖에서도 난리가 난 걸 알았을 테지?’

-혼몽초를 가지러 가겠다고 한 녀석이 있었으니 비상사태라는 걸 알렸겠지.

‘가만! 그럼 승강기 옆에 기절시켜 둔 두 사람을 발견했을 수도 있겠는데?’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서 깜빡 잊고 있었다.

-어쩔 거냐? 이제라도 돌아갈 거냐?

‘일단 돌아가서 상황을 살펴봐야겠어.’

생각을 마친 적비연이 곧장 승강기로 되돌아갔다.

한데 분명 승강기 옆에 쓰러져 있어야 할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없다.’

-그 녀석이 데리고 나간 것 같군.

극마의 말대로 벽면에 설치된 단추를 눌러보았지만 승강기 문은 열리지 않았다.

벽에 귀를 대고 들어보아도 기관이 작동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거 아무래도 여기 갇힌 것 같은데?’

-비상사태가 일어난 걸 알고서는 기관 장치를 아예 정지시켜 버렸나 보군.

확실히 그렇게 되면 이곳의 그 어떤 존재도 밖으로 빠져나가진 못하리라.

‘사파 놈들답군.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군을 구할 생각 따윈 없다는 건가?’

적비연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자, 극마가 히죽 웃었다.

-효율적인 거지.

‘어쨌든 일단 나갈 수는 없게 됐으니 다시 공동으로 돌아가 봐야겠어.

-조심해라. 그 미친놈과 마주치지 않도록.

고개를 끄덕인 적비연이 다시 공동이 내려다보이는 난간으로 돌아가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야말로 처참한 현장.

적비연은 공동 벽면 쪽에 빼곡한 철문들을 둘러보았다.

각 철문에는 얼굴 정도 높이에 미닫이로 열 수 있는 작은 철판이 있었다.

그곳을 통해서 철문 안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하기룡을 찾을 수 있을지도.’

적비연이 얼른 철문으로 다가가 작은 철판을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이동하면서 모든 철판을 다 열어보았지만 하기룡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네가 찾는 녀석은 여기 없는 모양인데.

‘그럼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다른 뇌옥에 잡혀간 건가?’

적비연이 다시 발걸음을 돌려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백의인들이 앉아서 지필묵으로 뭔가를 적던 곳이었다.

종이를 막 들어보려고 할 때.

-주인!

극마의 부름과 동시에 적비연은 전신을 옭아맬 듯한 살기로 머리끝이 쭈뼛 섰다.

파밧!

적비연이 얼른 뒤로 물러나자,

콰자앙!

번개처럼 날아든 검 한 자루가 그대로 책상을 쪼개며 바닥에 꽂히는 게 아닌가?

적비연이 얼른 고개를 들고는 정면의 어두컴컴한 통로를 보았다.

-크흠. 상황이 엿같이 돌아가는군.

극마가 미간을 팍 구겼다.

저벅…… 저벅……!

어둠 속 통로에서 울리는 발걸음 소리.

마침내 그늘진 통로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조금 전까지 이곳에서 온갖 실험을 당하던 그 괴인이었다.

우두둑!

괴인이 목을 한쪽으로 꺾고는 적비연을 보며 히죽 웃었다.

“너…… 어디에 있다가 나왔냐?”

잠시 당황한 적비연이 침착하게 포권하며 말했다.

“제 복면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이들과 같은 편이 아닙니다. 선배님을 이렇게 만나…….”

파앗!

순간 괴인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주인! 내 힘을 써라!

극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적비연은 그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극마와 일체가 된 적비연이 망설임 없이 쌍권을 내질렀다.

쩌어어엉!

요란한 소리가 공동을 쩌렁쩌렁 울리면서 적비연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콰당!

벽에 등을 부딪친 적비연이 거친 숨을 내쉬며 괴인을 보았다.

괴인은 금이 간 검을 보고는 광기에 찬 웃음을 그렸다.

“너……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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