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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214화 (215/301)

214. 지부작족(知斧斫足)

촤아아아……!

폭포수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적비연은 폭포수 아래에 정좌한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단전에서부터 일어난 뜨끈한 공력이 혈맥을 따라 빠르게 휘돌았다.

구우우우우……!

내공이 질주하자 그의 피부가 거무죽죽하게 물들면서 딱딱한 나무껍질처럼 굳어갔다.

치이이익……!

피부에 물줄기가 닿으면서 타는 소리가 났다.

우우우우우웅!

전신이 공명을 일으킨다.

엄밀히 말하자면 몸이 일으키는 공명이 아니다.

전신을 에워싸듯 피어오른 공력이 미세하게 떠는 소리다.

이윽고 적비연을 에워싼 기도가 단단한 막을 형성하더니 쏟아지는 물줄기는 몸에 닿기도 전에 기화한다.

얼핏 보면 호신강기가 물줄기를 막아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현상.

-무공이 상승했군.

쏟아지는 물줄기에 반쯤 파묻힌 극마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그는 적비연에게 일어난 변화를 단박에 눈치챘다.

적비연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에서 깨달음이 있었지.’

반응을 하면서도 깨달음이라는 표현이 맞는지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았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저 느낀 것이라는 게 더 옳으리라.

이번에는 지켜보는 자들이 많아서 극마와 일체화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전신진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싸웠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게 있었다.

그건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고, 의식은 그 뒤를 따랐다.

피하고 베고 막는 일련의 움직임이 마치 자연과 동화된 듯했다.

바람이 불면 잎사귀가 흩날리고, 더 세게 불면 결국 가지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로.

적비연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쇠붙이가 날아들기도 전에 피할 수도 있게 됐고, 살기를 느끼기도 전에 대비했다.

처음에는 시활안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살기는 육안으로 판별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심안(心眼) 혹은 육감이라고 표현되는 뭔가가 작용하고 있었다.

마치 전신이 싸우기 위한 도구로 변한 기분이었다.

내가 칼을 들어 싸운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칼이 되어 싸운다는 기분.

전신이 칼날처럼 다듬어지는 감각.

싸움이 진행되는 내내 몸이 단단해지면서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여며졌다.

실전은 최고의 수련이라던가?

흑천투권공이 극한을 내달리는 동안 적비연은 보이지 않는 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초절정의 한 단을 넘어선 것이리라.

동시에 전신을 휘어 감는 짜릿한 전율.

깨고 부수고 죽여 나가면서 일종의 광기에 가까운 전율이 전신을 훑었다.

사공의 특성이다.

거기에 극마로부터 영향을 받은 마공이 함께 공명하니 적비연이 구사하는 무공은 몹시 패도적으로 변했다.

그가 뻗어내는 권각에 뼈마디가 무참히 부서져 나가고, 두개골이 쪼개졌다.

확실히 검을 사용할 때보다 생생한 감각이 피부로 전해졌다.

처음에는 소름 끼치도록 생생한 감각에 우려감이 들었다.

혹여나 사공에 도취되어 주화입마에 빠져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자칫 광기에 사로잡혀서 자아를 놓아 버릴까 염려됐다.

만약 적비연이 평범한 무인이었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적비연은 이미 수많은 타아를 흡수하면서 자아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적비연은 이번에도 자신의 감정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듯 지켜보기만 했다.

그 냉철함이 무공의 상승을 불러왔다.

사공의 특성을 파악하고 우려를 걷어내는 대신 순수하게 즐겼다.

사공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극강의 무공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이뤄냈을 때는 전율을 느낄 정도의 쾌감이 찾아드는 것.

순간의 도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니까.

다만 그 전율감에 중독이 되면 위험해질 수 있다.

여기까지 파악이 된 적비연은 순간의 감각에 충실하기로 했다.

대신 지나간 감각에 대해서는 일절 미련을 두지 않는다.

당장을 즐길 뿐.

그러다 보니 적비연을 막아선 자들은 흡사 광기 서린 귀신을 대하는 기분이 들 수밖에.

그렇게 한 단의 벽을 넘어간 흑천투권공은 이제 초절정 팔단의 기운을 품었다.

이때부터 적비연에게는 또 하나의 과제가 생겼다.

바로 균형이다.

자아가 지닌 정순한 기운과 극마로부터 영향을 받은 마기 마지막으로 흑천투권공.

이 세 개의 기운이 엇비슷해지자 서로간의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세 가지기 기운을 융화시키기 위해서 적비연은 지금 폭포수 아래에서 운기조식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일행들에게는 상처를 치유할 시간을 주고.

-쏟아지는 폭포수를 막으면서 세 가지 기운을 융화시키겠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 아직은 힘들어 보이는군.

극마의 말에 적비연이 눈을 감은 채 물었다.

‘이유가 뭘까?’

-그야 당연히 본좌의 마공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지.

‘장난치지 말고.’

-흥! 장난이 아니다. 뭐 좀 더 정화한 대답을 원한다면 사기가 약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주인이 지닌 정공은 당연히 몸에 가장 잘 맞는 기운이다. 한마디로 선천진기와 궁합이 제일 좋지. 그러다 보니 몸이 강해질 때마다 공력의 질도 함께 상승한다. 그리고 마공은 내 영향을 받았으니 말할 것도 없고. 그에 비해 사공이 약한 거다. 그러니 정공과 마공이 사공을 잡아먹어서 융화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거지.

‘그렇군. 만약 세 가지 기운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클클클. 우화등선이라도 할 생각이더냐? 신선을 능가하려는군.

‘그 정도로?’

-세 가지 기운 중 하나만 끝을 보아도 신선이 된다. 하물며 세 기운을 융합한다니. 인간의 경지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지.

‘네가 볼 땐 어때?’

-뭐가 말이냐?

‘내가 인간으로 보이나?’

-흠…….

극마가 말을 아꼈다.

인간은 분명 인간이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세상에 그 어떤 인간이 육신을 옮겨 다니면서 공력을 죄다 흡수할 수 있을까?

팟!

찰나 적비연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계곡 옆에 나타났다.

후우우웅!

한 차례 공력을 일으키자 훈기가 불면서 장삼 자락이 부풀어 올랐다.

축축했던 옷이 이내 바삭 마르자 적비연이 피식 웃었다.

“대답은 들은 걸로 하지.”

-쳇, 묻질 말던가.

“이제 방해물도 없으니 서둘러야겠어. 만통지를 데려갔을 때 흑천련주와 파천신군의 표정이 궁금해지는군.”

* * *

잔뜩 일그러진 표정.

꽉 다문 잇새로 분노에 찬 음성이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이런…… 미친…….”

태청강은 복부를 뚫고 튀어나온 칼날을 보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쿠웨에엑!”

배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끈한 핏물을 한 바가지 토해냈다.

치이이익……!

바닥에 쏟아진 탁혈에서 퀴퀴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른다.

‘독……!’

칼날에 맹독이 묻은 것이다.

굳이 베지 않고 찔러서 몸을 관통시킨 것은 독을 더욱 깊이 침투시키려는 의도였으리라.

털썩!

독기가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을 따라 퍼져 나가면서 왼쪽다리부터 반응이 왔다.

한쪽 다리를 꿇은 태청강이 검을 거꾸로 세우고는 지팡이처럼 디뎠다.

콱!

촤아아악!

“커억!”

명치를 뚫고 튀어나왔던 칼자루가 뽑히면서 다시 한번 비명과 함께 피가 터졌다.

자박자박……!

태청강을 배후에서 내찌른 자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앞으로 돌아갔다.

태청강이 분기탱천한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어찌……! 쿨럭! 쿠웨엑!”

“쉬.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시면 독이 빨리 퍼집니다.”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대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자는 다름 아닌 연리하였다.

태청강은 기도 안 찼다.

막내 제자가 남다르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처럼 개망나니일 줄이야.

냉혼신검을 쫓기 시작할 때만 해도 연리하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도대체 왜?

이자권도 아니고, 탐욕에 눈이 먼 종권악도 아니다.

권력에는 관심도 없던 연리하가 아닌가?

연리하가 가까이 다가와 쪼그리고 앉았다.

“많이 놀라신 모양입니다. 사부님께서 그러셨죠. 강호에서 오래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

“네놈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사부님이 또 그러셨지요. 위를 향하기 위해서는 앞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이든 제거해야 한다고.”

“넌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야 당연히 권능이죠. 사부님, 제가 흑천련을 가질 수 없다면 왜 사부님의 제자가 되었겠어요? 설마 제가 정말 권력에는 관심도 없는 인간인 줄 아셨어요? 그럼 저야말로 수제자 아닙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 완벽하게 속인…….”

“노오오옴!”

순간 태청강이 흑천강신기를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흑천검을 휘둘렀다.

쑤아아아앙!

강기가 숲을 갈랐다.

쩌어엉!

연리하가 펼친 호신강기가 태청강의 강기와 부딪치면서 천둥 같은 울림이 터져 나왔다.

“칫!”

탁탁탁.

연리하가 혀를 차고는 점혈로 배를 지혈했다.

호신강기를 펼치긴 했지만 태청강의 강기를 완전히 막아내진 못한 탓에 배에 상처가 생겼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역시 사부님은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가 없네요.”

“이 멍청한 놈! 네놈이…… 정녕, 우욱! 쿠웨에엑!”

태청강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그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연리하가 처음부터 자신을 노렸다면, 흑천강신기와 상극이 되는 독을 사용했으리라.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단 뜻이다.

마침내 몸이 기우뚱 기우는가 싶더니 육중한 소리와 함께 완전히 넘어갔다.

쿠웅!

그제야 연리하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후우. 노인네가 마지막까지 긴장하게 만드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은 연리하가 저벅저벅 걸어가서는 바닥에 꽂힌 흑천검을 뽑아 들었다.

흑천검.

흑천련주를 상징하는 신물이나 다름없는 검.

위이이잉.

과연 신병이기답게 약간의 공력을 실은 것만으로도 맑은 검명을 울린다.

그때였다.

“련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숲 한쪽에서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기척이 느껴졌다.

연리하가 입매를 비틀고는 얼른 몸을 날렸다.

과연 한 무리의 장로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연리하가 그들 한가운데로 몸을 날렸다.

“장로님들!”

“엇! 연 공자가 아닌가? 자네, 혹시 련주님을…….”

말을 꺼내던 장로 한 명이 흠칫거렸다.

연리하의 표정이 지독한 슬픔으로 물들었기에.

장로들의 시선이 연리하가 든 흑천검으로 향했다.

“그 검은……!”

불길했다.

흑천검은 차기 련주를 임명할 때나 넘기는 신물이 아니던가?

한데 어째서 저 검을 연리하가 들고 있단 말인가?

연리하가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두 무릎을 꿇더니 오열했다.

“사부님께서 당하셨습니다!”

“뭣이!”

“도대체 어쩌다가!”

“련주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연리하가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 어렵사리 심호흡을 하고는 답했다.

“놈이 독을 사용해서 사부님이 그만…… 크흡! 사부님은 제게 이 신물을 넘기시고 대사형께 부탁한다고 이르셨습니다!”

울음에 젖은 외침에 장로들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급한 대로 대공자에게 흑천련을 넘기신 것이리라.

장로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우선 진정하고 련주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하게!”

“예, 따라오십시오!”

연리하가 눈물을 훔치고는 몸을 날렸다.

장로회가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순식간에 숲을 이동한 연리하는 어느 순간 돌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건…… 또 뭐야?

그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뒤따라 도착한 장로 한 명이 연리하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왜 그러나?”

연리하가 흔들리는 눈으로 바닥을 살피며 말했다.

“사라…… 졌습니다.”

“뭐라?”

“분명…… 이곳에 쓰러져 계셨는데 보이질 않습니다.”

“그 무슨!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연리하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체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단 말인가?

그 독에 당한 이상 태청강이 제 발로 이동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것만은 세상이 두 쪽 나도 확실하다.

혹시……?

연리하가 하나밖에 없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무래도 냉혼신검이 사부님의 시신을 갈취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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