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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215화 (216/301)

215. 반역

“련주님!”

심천원 련주실로 헐레벌떡 들어선 요당은 흠칫거리고는 주변을 살폈다.

인적이 없다.

예상은 했지만 허탈감이 밀려왔다.

아마도 련주는 장원 어디선가 광인들과 맞서 싸우고 있을 것이다.

어금니를 뿌득 간 요당이 몸을 홱 돌렸다.

그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면서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어째서 그걸 이제야 알았을까?

‘멍청한……!’

이러고도 천하사대지자라고?

웃기는 소리.

교패처럼 무공을 고절하게 익힌 것도 아니다.

하루 종일 정보 수집을 하며 분석하고 조각 맞춤을 하며 연관성을 찾는 게 자신의 일이지 않았던가?

증거 조각은 충분했다.

거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기만 했어도!

아니, 상상력까지 갈 것도 없다.

이건 그저 조각 끼우기를 잘못한 거다.

자신이 거느린 조직을 향해 항상 했던 말이 뭐였나?

‘정보는 파편이다’라는 말이었다.

그 파편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본 련 최고의 신병이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데 정작 자신이 그 파편을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이치인 것을!

‘어서 빨리 련주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련주실 문을 벌컥 열고 마당으로 내려서던 요당이 흠칫거리고는 멈춰 섰다.

심천원 안뜰에 백발을 늘어뜨린 광인 하나가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녀석이 내뿜는 기도는 초절정 후단에 이른다.

자신이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히긴 했으나 광인을 상대할 수준은 아니었다.

다행히 광인은 아직 요당을 눈치채지 못했다.

요당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돌아보지 마라. 돌아보지 마.’

마침내 련주실 안으로 들어간 요당이 문을 닫으려는 순간,

“크르르!”

기척을 느낀 광인이 몸을 휙 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요당의 시선이 정확히 상대와 마주쳤다.

“제길!”

콰다앙!

얼른 련주실 문을 닫은 요당이 잠금 장치를 걸어버렸다.

곧이어 육중한 충격이 문을 때렸다.

콰아아앙!

“헛!”

화들짝 놀란 그가 뒤로 엉거주춤 물러났다.

다행히 문이 부서지진 않았다.

한철로 만들어진 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다.

문 자체는 한철로 만들어져 있지만, 문을 연결하는 고리와 벽은 그저 좋은 재질 수준이다.

련주실 전체를 한철로 만들 수는 없기에.

이곳에 기거하는 자가 누구던가?

흑천련주다.

어떤 침입자든 들어서는 순간 목숨은 끊어진다.

그럼에도 한철로 문을 만든 이유는 약간의 시간만 벌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 찰나의 틈에 태청강은 반격의 준비를 끝낼 것이기에.

한데 지금 련주실에 갇힌 사람은 태청강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쿠우웅! 쿵! 쿠우웅!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전각이 통째로 흔들렸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킨 요당이 몸을 휙 돌리고는 방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주변을 두리번거린 그는 탁자에 놓인 지필묵을 발견하고는 얼른 종이부터 펼쳐들었다.

광인이 곧 문을 부수고 들어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한다.

살다 살다 집안에서, 그것도 련주실에서 죽게 될 줄은 몰랐지만 요행만 바라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붓으로 벼루의 먹을 찍는 순간 다시 한번 육중한 충격음이 전해져 왔다.

콰아아앙!

우지끈……!

출입구를 떠받치는 기둥 하나가 휘거나 부러진 게 틀림없다.

요당은 그 진동을 고스란히 감내하며 일필휘지로 글을 적어나갔다.

하지만 그가 몇 글자 적기도 전에 다시 한번 큰 충격과 함께 문짝이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콰다아앙! 콰당타앙!

벽에서 뜯기다시피 떨어져 나간 철문이 련주실 안에서 거칠게 나뒹굴었다.

그 바람에 주변 잡기가 마구 부서지고 태풍이라도 만난 것처럼 선반과 탁자, 의자가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그럼에도 요당은 옆도 돌아보지 않았다.

지독한 살기가 등을 뚫어 버릴 듯 날아들지만 오로지 글을 쓰는 것만 집중했다.

‘어서 내가 알아낸 사실을……!’

쉬이이잇!

광기를 녹여낸 살기가 뒤통수로 날아드는 것을 알았을 때, 요당의 붓은 뚝 멈추고 말았다.

요당은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정확히 머리만 떠오른 것이었다.

살기가 먼저였나? 죽음이 먼저였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자신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라 빙글 회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한 발 늦게 도착한 교패가 뭐라고 소리치며 광인의 배후를 급습하는 모습이 보였다.

“요 군사아아!”

거칠게 일갈을 터뜨린 교패가 단숨에 양손을 교차했다.

촤촤아아악!

그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바늘이 어지럽게 날아가면서 광인의 전신을 난자했다.

“크르르……!”

광인이 교패를 향해 돌아섰지만 이내 눈을 허옇게 뒤집더니 쿵 쓰러지고 말았다.

툭, 데굴데굴……!

그와 동시에 몸에서 떨어져 나간 요당의 머리가 교패의 발치까지 굴러왔다.

“제길!”

교패가 그답지 않게 거친 욕설을 뱉어내며 요당이 서 있던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련주가 이곳에 있을까 해서 와봤더니 뜻밖에도 요당이 있었다.

그리고 요당은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들고 뭔가를 적었다.

무슨 내용일까?

눈을 가늘게 뜬 교패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들었다.

전각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적어 나간 글귀.

천하용봉(天下龍鳳)

“천하용봉……? 천하용봉대회를 말하는 것인가?”

단 네 글자.

뭔가를 더 적으려고 한 것 같았지만 그 순간 요당은 목을 잃고 명을 달리했다.

분명 요당은 련주에게 다급하게 알릴 것이 있어서 이곳으로 왔던 것이리라.

문득 들린 기척에 돌아보니 혈랑대주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건……!”

혈랑대주가 바닥에 쓰러진 요당의 시체를 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교패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네. 바깥 상황은 어찌 되었는가?”

“대공자께서 흑천검을 이어받으셨습니다.”

“뭣이? 하면 련주께선……!”

“냉혼신검에게 당하신 듯합니다. 시신은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런……!”

교패가 말을 뱉다 말고 비틀거렸다.

순간 체내의 공력이 격랑을 일으킨 탓이다.

“교 선생! 괜찮으십니까?”

혈랑대주가 얼른 달려오려고 하자, 교패가 손을 저었다.

“괜찮네. 다른 광인들은 어찌 되었는가?”

“다행히 대공자님의 지휘 아래 련내에 남은 자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합니다. 몇몇은 달아났습니다. 다만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뭔가?”

“이 공녀께서 대공자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월희계와 갈등이 일고 있습니다.”

“하필 이런 시국에…….”

교패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이니 사 공자를 지지하는 이 공녀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리라.

“내 설득해 보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정 안 되면 율칙에 따라야지.”

흑천검을 이어받은 자를 따르지 않는다면 반역으로 봐야 한다.

교패 역시 갑자기 대공자를 두둔해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율칙이 바로 서야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법.

“가세.”

교패는 요당이 남긴 종이를 꾹 말아 쥐고는 걸음을 옮겼다.

* * *

도대체 어쩌자고……?

제일 먼저 떠오른 의문이었다.

은하란은 커다란 봉목을 끔뻑이면서 앞에 죽은 듯 누워 있는 자를 보았다.

복부를 관통한 상처.

거기에 독까지 퍼져서 살아남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처음엔 이자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범상치 않은 복색과 툭 불거져 나온 태양혈을 보고는 굉장한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곧이어 한 사람을 떠올린 그녀는 흔들리는 눈으로 예홍을 보았다.

“설마……?”

그녀의 말끝에 예홍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사죄할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급한 마음에 본능적으로…….”

아니 왜? 도대체 어쩌자고?

계속해서 떠오른 의문.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걸 추궁한다고 예홍에게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나 있을까?

그럼에도 예홍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가주님께서 투혈권왕으로서 련주 자리를 이어받아야 할 상황인데, 이자가 죽으면 상황이 꼬일 것 같아서 나섰습니다.”

은하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잘했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흑천련주 태청강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

중요한 건 잘잘못을 따질 게 아니라 수습이다.

그녀는 망설일 것도 없이 먼저 침을 꺼내 태청강의 전신에 꽂아가기 시작했다.

“목격자는요?”

“없습니다. 모두 흑천련 본단으로 몰려가서 구경하거나 창문을 닫고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흑천련 본단 인근에 살다 보니 유사시에 대처해야 할 방법에 대해 이골이 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개중에 본단 인근까지 구경 간 자들은 무공 좀 익혔다는 무인들일 테고.

그나마 본 사람이 없다니 다행이다.

어련히 알아서 은신술을 펼치며 왔겠지만 그래도 보는 눈이 많다면 들킬 수도 있었을 터.

“흑천련 반응은 어때요?”

“냉혼신검이 이자의 시신을 갈취한 것으로 아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상황은?”

“현재 이 공녀 월희마녀가 파천신군과 맞서서 대립하는 중입니다. 파천신군은 흑천검을 이어받아 정당한 승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광인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냉혼신검은 어떤 상태 같았어요?”

“이지가 아예 없는 것 같진 않았고, 마치 본인의 임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수고했어요. 나도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이자를 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이자가 당한 독은 내공이 강한 자일수록 더 독해지는 특성이 있네요. 우선 객점 주인장에게 돈을 두둑히 건네고 이 방으로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업게 해요. 점소이도 앞으론 문 앞까지만 오게 하고.”

“알겠습니다.”

예홍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 * *

마침내 먼발치 흑천련 본단이 보였다.

적비연이 기지개를 켰다.

“드디어 도착. 이제 흑천련을 접수하는 일만 남았군.”

“감축드립니다, 주군.”

옆에 다가온 한사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적비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자축하기엔 이르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파천계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것도 신경 쓰이고.”

한사도 그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확실히 파천신군의 반응이 약했다.

지금쯤이면 그가 보낸 자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공세를 감행했을 것이다.

흑천련주 또한 그것을 눈감아줄 것이기에.

한데 조용하다.

흑천련 본단이 코앞인데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혈우대와 삼악사도, 귀살칠혼과 무정쌍겸이 마지막이었다.

물론 파천계가 입은 피해가 막대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흔들릴 파천계는 아니다.

가장 강성한 계열이 아니었던가?

그때였다.

파바박!

숲에서 한 인영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더니 적비연 앞에 뚝 떨어져 내렸다.

후우웅! 차차차앙!

호신위들이 적비연을 에워싸며 일제히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웬 놈이냐!”

엽강호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괴독당주가 사 공자를 뵙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괴독자.

그가 포권을 하면서 고개를 깍듯하게 숙였다.

그제야 적비연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호신위를 물렸다.

“괴독자? 당신이 여긴 왜……?”

“공자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본 련에 일이 생겼습니다. 현재 파천신군이 흑천검을 이어 받아 본 련을 완전 장악했고, 월희마녀께선 이에 대항하시다가 반역 혐의로 투옥되셨습니다!”

“뭣이? 하면 련주님은?”

“돌아가신 것으로 파악됩니다만, 그 시신을 탈취당해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때 다시 허공에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시신 찾아드리면 뭘 해주실 건지요?”

괴독자가 흠칫거리고 돌아보자, 예홍이 숲에서 사박사박 걸어 나왔다.

‘홍!’

괴독자가 지켜보는 만큼 적비연이 예홍을 모른 척하며 물었다.

“혹시 당신이 사부님의 시신을 찾을 수 있단 말이오?”

예홍이 입매를 틀며 대꾸했다.

“본 가와 거래를 하시죠. 사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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