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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218화 (219/301)

218. 조화입문(造化入門)

사파 무인이 어쩌다가 정공을 익힐 수는 있다.

아니, 오히려 정말 좋은 무공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훔쳐서 익히기도 한다.

하지만 마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도인들이야 사마외도라고 부르며 사도와 마도를 한통속처럼 취급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마도는 사도와 또 다르다.

실제로 한 시대를 떨게 만드는 대마두가 출현할 때면, 정작 정사가 연합하여 협공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만큼 마인은 정사를 막론하고 배척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지금 적비연에게서 짙은 마기가 느껴진다.

어디 그뿐인가?

붉게 물든 안광,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검붉은 기운, 만인지상에 군림하는 자가 지을 것만 같은 표정.

얼핏 보면 마치 마신이 강림한 것만 같지 않은가?

휘몰아치는 마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지켜보는 자들이 저마다 공력을 끌어올려야 할 정도였다.

“도대체 네놈은 무슨 짓을……?”

이자권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투혈권왕이 최근 들어 급격히 성장했다는 느낌은 받았다.

한데 정공을 익힌 것도 모자라서 이젠 마공이라니?

아니, 애초에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한가?

정공을 사용한 거야 어디선가 기연을 얻었다고 치자.

마공은?

마인들이 멸망한 이 시대에서 어떻게 마공을 익힌 건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문제가 아니다.

투혈권왕이라는 인간이 지금 사공과 정공 마공을 모두 사용한다는 게 문제다.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인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어찌 저런……!”

이자권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뿐만 아니라 장원을 에워싼 무인들과 흑천궁에서 뛰쳐나온 수뇌인사 모두 경악에 물든 표정이다.

“이노오옴! 네놈이 본 련을 배신하고 마공까지 손을 댔구나!”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상세히 고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놈은 본 련과 네 사부를 욕보인……!”

“시끄러워.”

적비연의 목소리에 장원이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무, 뭣……?”

“어이, 영감들.”

“영감……?”

“그래. 당신들도 똑같아. 사부님이 돌아가신 순간 뭘 하다가 이제 와서 위하는 척이야?”

“뭣이? 그렇다고 한들 네놈이 마공을 익힌 것과 무슨 관계……!”

“다 늙어 빠져가지고 사실을 따져보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대공자에게 잘 보일 생각만 하고. 정치가 몸에 밴 돼지들이지. 하여튼 세상이 변하면 처세가 바뀌는 것만큼은 젊은 사람보다 늙은 것들이 더 약삭빠르다니까.”

“이, 이노오오옴!”

순간 장로 한 명이 허공을 붕 가르면서 적비연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는 장로회 부회주인 흑마도(黑魔刀) 진회균(眞回均)이었다.

대공자가 흑천검을 물려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대공자에게 손을 내민 자가 바로 진회균이기도 했다.

쑤아아아앙!

순간 도강이 일어나면서 적비연의 머리를 쪼갤 듯 떨어졌다.

적비연의 입매가 비틀리는가 싶더니 검붉은 강기가 일어나며 그가 솟구쳐 올랐다.

따아앙!

고막을 찢을 것만 같은 큰 소음과 함께 부회주 진회균이 튕겨 나갔다.

“크윽!”

진회균은 두 눈을 부릅뜨고는 적비연을 노려보았다.

‘어찌 이런 정도까지?’

마공을 익혔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놀라긴 했지만 사실 내심 가소롭다는 생각을 한 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고로 무공이란 상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정사마는 내공의 성질상 상성이 맞지 않는 법.

정공과 사공이 서로 융합되기 쉽지 않고, 마공은 더욱 그렇다.

극음의 기운과 극양의 기운을 동시에 운공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진회균은 적비연의 무공이 겉만 번지르르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가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몸부터 날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의 반격은 그런 생각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강기가 서로 부딪치면서 마기가 전신을 훑고 지나가니 머릿속까지 짜릿하게 울리는 것만 같다.

촤아아악!

바닥을 미끄러지며 물러난 진회균을 혈랑대가 얼른 받쳐주었다.

“이노오오옴!”

그가 다시 한번 일갈을 터뜨리며 적비연을 향해 쇄도했다.

이미 칼을 뽑아 든 그였다.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단 일도를 섞어보고 물러나는 것도 면이 살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엔 혈랑대가 그를 튕기듯 밀어주면서 공력을 더해주었다.

가속을 이용한 진회균이 그대로 일도를 베어 들어갔다.

얼핏 보면 평호추월 초식과 비슷했다.

묵직한 무게를 실은 그의 일도는 검은 바람을 이끌며 세상을 하늘과 땅으로 갈라 버릴 듯 뻗어나갔다.

뀌아아아아아앙!

귀신의 울음처럼 들리는 공명!

때문에 그의 이번 초식을 사람들은 흑마귀곡(黑魔鬼哭)이라 불렀다.

귀신이 우는 순간 전신이 마혈이라도 짚인 것처럼 굳어 버리고 그 상태에서 상하반신이 양단된다.

분명 그럴진대…….

쒸아아아아앙!

적비연은 몸이 굳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속도를 올려 벽력활보를 밟으며 날아들었다.

구천일관시였다.

검봉과 도신이 정확하게 부딪치는 순간,

쩌어어어어엉!

후우우우우웅!

기와가 떨리고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큰 소리와 함께 강렬한 기파가 사방으로 훅 불어나갔다.

도신을 타고 전해진 진동은 그대로 진회균의 전신을 훑으면서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뻗어 나갔다.

마치 몽둥이로 전신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크읍!’

순간 복부에서부터 치미는 구토.

내상을 입은 것이다.

속 시원하게 피를 한 바가지 토해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호기롭게 나선 자신이 각혈이라도 하면 지켜보는 후배들이 두려움에 떨고 말리라.

진회균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떨렸다.

‘어찌 이런……!’

일평생을 흑도에 몸을 담으며 수련을 해왔다.

도법 이외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 결과 흑마도라는 별호로 명성을 떨쳤고, 천하에 그를 대적할 수 있는 자는 백 명이 넘지 못한다고 자부했다.

한데……!

투혈권왕에게 단 이 합 만에 내상을 입다니!

그것도 사공만 익힌 것도 아니고, 정공에 마공까지 익힌 잡종 놈에게!

한 우물만 파는 것이 극한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자신의 생각이 이제 와서 무너지고 있었다.

“탁혈을 삼키면 몸에 해로울 텐데.”

“……!”

적비연의 비아냥거림에 진회균이 흠칫거리고는 노려보았다.

적비연이 다시 달려들려고 하자, 이번엔 교패가 그 앞을 스윽 막아섰다.

“사 공자. 우리의 처세가 마음에 안 들 수는 있겠지만, 공자께서도 작금의 상황을 설명하셔야 할 거요.”

과연 교패는 이 상황 속에서도 차분했다.

적비연이 교패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면 그 전에 당신들의 처세에 대한 변명부터 늘어놓아야 할 것 아닌가?”

“좋소. 내 경우 련주님이 돌아가신 이상 빨리 조직을 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소. 이 와중에 끝까지 반기를 드는 이 공녀와 그 무리들은 어쩔 수 없이 투옥했소. 하나 이 자리에서 사 공자가 이 공녀를 설득하고 본 련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조하면 틀림없이 모두에게 이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요.”

조곤조곤 이어진 교패의 말에 주변 사람들 모두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적비연은 코웃음을 쳤다.

“그걸 어떻게 믿지? 권력에 미쳐서 눈이 뒤집힌 대공자는 동의하지 않을 것 같은데.”

“사 공자…….”

“그래, 백번 양보해서 조금 전까지는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어졌잖아? 왜냐? 내가 마공을 사용했기 때문이지.”

“……!”

교패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사실 그 부분은 적비연의 추측이 맞다.

투혈권왕이 마공을 사용한 이상 그대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마공을 사용하게 된 것인지, 그 연유부터 알아야 했다.

물론, 그걸 안다고 해도 구제 방법은 없을 것 같지만.

이쯤 되자 지켜만 보던 이자권이 성큼 나섰다.

“네놈이 잘 아는구나. 마공을 사용한 이상 네놈은 용서받기 힘들다. 네가 어떻게 그런 위험한 공부에 손을 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사부님이 가르쳐 주셨다.”

“뭐, 뭣?”

이자권은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 놀라서 외마디 비명을 내지를 정도였다.

적비연이 장원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오래전 사부님은 마인을 잡아 죽이고 마공서를 얻으셨다. 그리고 그 마공서를 내게 익히게 하셨지. 자, 이제 뭐가 문제지? 사부님은 늘 말씀하셨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강해지라고. 난 하나부터 열까지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행했을 뿐…….”

“헛소리! 그렇다면 네놈이 익힌 정공은 무엇이냐? 또한 마공서를 왜 너에게만 익히게 한 것이란 말이냐!”

“그야 나도 알 수 없지. 사부님이 정말 아끼는 애제자에게만 익히게 한 건지도 모르고.”

이자권이 이를 부득부득 갈더니 소리쳤다.

“끝까지 오만방자한 소리만 하는구나! 뭣들 하느냐! 놈이 더 이상 저 더러운 주둥이를 털지 못하도록 죽여 버려라!”

정식으로 명이 떨어지자, 사방의 담벼락과 지붕 위에서 벼르던 흑궁단이 일제히 활을 쏘았다.

패패패패패패애앵!

쒸쒸쒸쒜에에에엑!

시커먼 철시가 사방에서 적비연을 향해 내려 꽂혔다.

“진작 이렇게 나올 것이지!”

적비연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더니 몸을 회전하면서 구천혼선결 초식을 펼쳤다.

쒸아아아앙!

쒸아아아앙!

그가 뿌린 강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날아갔다.

투따다다아앙!

따다다아아앙!

강기에 튕겨 날아간 철시가 사방으로 무섭게 떨어져 내렸다.

“우악!”

“피햇!”

투타타타타탁!

대리석을 뚫어 버릴 정도로 강하게 내려 꽂히는 철시들!

적비연은 연신 주변으로 마구잡이 강기를 뿌려댔다.

쒸아아아앙!

꽈다아아앙!

무겁고도 날카롭게 날아간 강기가 담벼락과 전각 지붕을 때리면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구천혼선결의 강기에 맞은 흑궁단원은 온몸이 터지듯 찢어지며 즉사했다.

무너지는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는 자들도 상당수였다.

적비연은 그야말로 무아지경이었다.

붉게 물든 두 눈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맹수와 같았다.

“크아아압!”

경천동지할 기합성이 연신 튀어나왔고, 그가 양손에 쥔 검과 도를 한 번씩 후릴 때마다 전각과 담벼락, 대리석 바닥이 마구 뒤집히거나 부서지며 튀어 올랐다.

그야말로 아수라의 현신이랄까?

‘미쳤군……!’

교패는 미간을 팍 구기고는 물러났다.

모두가 마공에 충격을 받고 있었지만,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적비연의 왼손에 들린 칼.

분명 저 칼을 휘두르는 왼손만큼은 놀랍게도 정공을 운용하고 있지 않은가?

정공과 마공을 한 몸으로 운영하다니!

도대체 저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하나의 육체에 두 가지 영혼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물론 사실 두 가지 영혼이 맞지만, 교패가 알 리가 없었다.

“교 선생! 협공합시다!”

적비연의 강기를 막아낸 이자권이 교패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교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었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전후 사정이라도 들어보고 싶었지만, 저렇게 미쳐 날뛰니 대화가 무소용이다.

콰파파파파파!

“크아악!”

“으아악!”

적비연은 염왕이 강림한 것처럼 심원을 종횡무진하며 휩쓸고 다녔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비명이 솟구치고 피가 솟았다.

정말이지 일당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

이 정도면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일격일살이었던 투혈권왕의 무공이 그리울 지경이었다.

지금은 일검십살, 일도십살이 우습다.

백발광인들이 일방적인 학살을 자행할 때와 비슷한 느낌마저 든다.

그가 도검을 휘두를 때마다 달려들던 무인들은 갈대처럼 우수수 쓰러져나간다.

그리고 쓰러지는 갈대를 헤치며 날아간 두 사람.

이자권이 십 성 공력을 끌어올리며 적비연의 우측을 치고 들어갔고, 교패 역시 여덟 개의 바늘을 손가락 사이마다 낀 채 날아들었다.

그리고 배후에서는 진회균이 이를 악물고는 일도를 휘둘러 갔다.

적비연이 광기 서린 일갈을 터뜨렸다.

“가소롭다아아!”

쩌저저어엉!

강기를 머금은 여덟 개의 침과 이자권의 일검, 그리고 진회균의 일도가 적비연의 몸에 작렬했다.

하지만 극한으로 끌어올린 세 사람이 동시에 펼친 회심의 일격도 적비연의 호신강기를 뚫지는 못했다.

다음 순간 적비연이 히죽 웃었다.

“재주는 다 부렸을 테지? 반역자들아.”

적비연이 슥 둘러보자 눈을 마주친 이자권과 교패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권왕?’

두 사람은 투혈권왕의 눈빛 속에서 마치 또 다른 존재를 보는 것만 같았다.

콰앙!

호신강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가자 세 사람이 동시에 튕겨나갔다.

“헉!”

“크읏!”

파앙!

동시에 적비연의 신형이 그대로 이자권을 쫓았다.

“죽어라!”

광기 서린 적비연이 일검을 내려찍는 순간이었다.

이자권도 이번만큼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그 순간,

슈우우욱.

적비연의 전신에서 극마의 혼이 스르르 빠져나가고 말았다.

-제길, 주인! 시간이 다 됐다!

아니나 다를까. 적비연이 휘두른 검신의 속도가 확연히 줄어들자, 이자권이 그대로 일검을 베어 들어갔다.

촤아아악!

“크으윽!”

적비연이 비명을 토하며 비틀거리는 순간,

스스슷!

한 줄기 어둠이 이자권의 앞을 막아서며 나타났다.

순간 적비연이 눈을 부릅떴다.

“……막내?”

거짓말처럼 나타난 연리하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사형, 이게 뭐예요? 선을 넘었잖아요.”

푸욱!

“끄아아아악!”

연리하의 손이 적비연의 가슴을 파고들더니 그대로 심장을 움켜쥐었다.

연리하가 섬뜩 미소를 지었다.

“너무 세차게 뛴다. 좀 쉬게 해드릴게요.”

퍽!

다음 순간, 적비연의 움직임이 뚝 멈추더니 그대로 축 늘어지고 말았다.

촤아아악!

연리하가 심장을 뽑아 버리자, 적비연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털썩!

이내 적비연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쓰러지자 장원의 무인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연리하를 보았다.

연리하가 뺨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는 이자권을 돌아보았다.

“괜찮으세요? 련주님.”

“그, 그래. 나는 괜찮다.”

이자권이 어정쩡하게 대답하면서 자세를 바로 했다.

* * *

“크헙!”

침상에 누워 있던 적비연이 두 눈을 부릅뜨더니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헉, 헉, 헉……!”

거칠게 몰아쉬는 호흡.

그가 두 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정신이 드셨어요?”

상냥하게 물어오는 여인은 바로 은하란이었다.

흑천련주 태청강의 몸을 얻은 적비연이 입매를 비틀었다.

“이것들, 이제 다 뒈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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