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223화 (224/301)

223. 궤멸

삐비비비잉!

여덟 개의 바늘이 새하얀 빛줄기를 이끌며 날아갔다.

따다다다다앙!

바늘이 부딪쳐 내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마찰음이 터졌다.

곧이어,

“흐아아압!”

어둠이 갈라진다.

암공 높이 솟구쳐 올랐던 곡불한이 파도치는 모양의 기형도를 벼락처럼 내리친 것이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의 일도가 흑천강신기를 갈라 버리는 듯했다.

쩌어어어엉!

천지가 격동하는 듯하다.

쿠구구구웅!

기형도를 막아낸 연리하는 발목까지 대리석 바닥에 파묻혀 버렸다.

“칫!”

그가 혀를 차는 사이,

쒜에에에엑!

이번엔 강기를 머금은 철시가 날아든다.

동시에 측면에서는 적비연의 흑천검이 세상의 중심을 찔러 버릴 듯 날아왔다.

구천일관시!

쩌어어어엉!

“크읍!”

마침내 연리하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네 명의 합격이 시작된 지 일각만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잠시의 쉴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쒜에에에엑!

지척까지 날아든 철시가 그의 왼쪽 어깨를 관통하고 있었다.

푸우우욱!

“크억!”

마침내 비명이 터지고 연리하의 신형이 팽이처럼 팽그르르 돌아갔다.

연리하의 왼쪽 어깨를 관통한 철시는 그대로 바닥에 꽂히면서 대리석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콰아앙!

촤아아아악!

허공에서 한참이나 회전한 연리하는 철시가 만든 구덩이에서 미끄러지듯 겨우 멈춰 섰다.

뚝…… 뚝……!

철시에 관통당한 상처에서 시뻘건 핏물이 미끄러지더니 손끝에서 떨어졌다.

그나마 어깨가 완전히 박살 나지 않은 것은 급히 끌어올린 호신강기 때문이었다.

“비겁하군요! 제자에게 협공이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상대를 짓밟으라는 내 가르침을 잊었더냐?”

적비연이 싸늘한 미소로 대꾸하며 그대로 서호검법의 마지막 십 초식을 펼쳤다.

화아아아아악!

일순간 적비연의 검에서 붉은 기운이 퍼져 나갔다.

흑천강신기가 퍼진 암흑 속에서도 붉은 기운만큼은 묘하게 또렷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란꽃이 만개했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기운은 얼핏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잠깐 넋을 놓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흐드러지게 핀 모란꽃 사이로 붉은 잉어가 떼 지어 날아간다.

화항관어(花港觀魚)!

쏴아아아아!

붉은 홍어 떼는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하더니 거대한 강기의 줄기로 변했다.

“크아아아압!”

연리하가 비명 같은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공력을 끌어올리자 그의 백발이 한 척이나 더 길어졌다.

츠츠츠츠츳!

쩌저저저저어엉!

강기와 강기가 부딪치면서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마치 공간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맞부딪친 적비연과 연리하의 상의가 강맹한 기운을 이기지 못해 걸레조각처럼 너덜너덜 찢어져 나갔다.

두 사람의 탄탄한 상체가 드러난 순간, 교패와 곡불한도 양쪽에서 연리하를 덮쳐갔다.

삐비비비이잉!

쏴아아아아악!

교패의 손을 떠난 바늘!

대지를 양단할 기세로 떨어지는 기형도!

연리하는 일순 망설였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하지만 결단을 내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타앗!

그가 적비연의 검강을 간신히 밀어내면서 발끝으로 바닥을 툭 찍어 차더니 번개 같은 속도로 좌측을 향해 날아갔다.

곡불한이 날아드는 방향이었다.

그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암기를 사용하는 교패보다 상대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적비연은 곡불한 쪽으로 날아오르는 연리하를 보고는 얼른 흑천검을 놓았다.

슈우우우욱!

마치 흑천검이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공간을 가르며 쏘아져 나갔다.

이기어검((以氣馭劍)이다.

시활안을 펼친 적비연은 이 모든 과정을 느릿하게 확인했다.

마침내 곡불한에게 바짝 다가선 연리하.

그 뒤를 악착같이 쫓아간 흑천검.

빛살처럼 빠른 연리하도 이기어검의 속도를 이기진 못했다.

하지만 연리하는 흑천검이 바로 뒤에 날아든다는 걸 알아채고도 돌아보지 않았다.

‘설마 동귀어진을?’

적비연이 눈을 부릅떴다.

연리하는 돌아서서 흑천검을 막아야 했다.

그래야 곡불한의 기형도를 피하면서 흑천검도 막아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연리하는 곡불한에게 쏟아내는 공력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른 속도로 곡불한에게 다가가 검을 횡으로 긋는 것이 아닌가?

샤아아아아아!

집중이 더해지니 적비연의 시야에 더욱 느린 광경이 펼쳐진다.

만세를 부르듯 기형도를 치켜들고 떨어져 내리는 곡불한.

허공에 솟아오른 채 검을 횡으로 베어가는 연리하.

일순 연리하가 몸을 비틀자 뒤쫓듯 날아간 흑천검이 그의 왼쪽 어깨를 잘라낸다.

서걱!

떨어져 나가는 연리하의 왼팔!

거의 동시에 연리하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곡불한의 오른팔을 잘라낸다.

투둑!

이어서 연리하의 검이 곡불한의 목을 가른다.

서걱!

그러고도 검은 멈추지 않는다.

계속해서 횡으로 날아간 검강이 곡불한의 하나 남은 팔도 마저 잘라낸다.

서걱!

적비연의 시야에는 느릿하게 펼쳐진 광경이었지만, 실제로는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

털썩!

후드득!

츄아아아아아!

머리와 양팔을 잃은 곡불한이 바닥에 쓰러졌고, 왼팔을 잃은 연리하가 미끄러지듯 바닥에 착지했다.

협공을 하던 세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는 곡불한의 사체만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흑천검이 방향을 틀어 연리하의 심장을 향해 짓쳐들었다.

쒜에에에엑!

동시에 격분한 조신우도 철시를 두 대나 시위에 걸고 당겼다.

“연리하아아!”

패패애애앵!

흑천검과 강기 품은 화살 두 자루가 연리하의 숨통을 끊어 버리겠다는 듯 무섭게 날아들었다.

연리하가 바닥을 찍어 차며 뒤로 물러났다.

그 바람에 다시 방향을 틀어 그를 쫓던 흑천검이 뒤늦게 날아들던 철시와 부딪치면서 큰 폭음이 일어났다.

꽈과아아앙!

그걸 본 조신우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곡불한의 죽음을 목격하고는 지나치게 흥분한 것이다.

그 바람에 련주의 이기어검을 오히려 방해한 꼴이 되고 말았다.

반면 잠시의 틈을 살린 연리하는 그대로 경공을 펼쳐 내달리기 시작했다.

“노옴!”

삐비비비이잉!

교패도 뒤늦게 바늘을 날렸지만, 달아나기로 작정한 연리하를 쫓기는 역부족이었다.

애초에 연리하의 무공 수위는 초절정의 극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연리하가 심원을 벗어날 듯하자 조신우가 사자후를 외쳤다.

“흑궁단! 쏴라앗!”

패패패패패패애앵!

심원 사방에서 흑뢰(黑雷)가 연리하를 향해 날아갔다.

꽈자자자자자자앙!

벽력이 내리꽂히듯 심원 담장이 터져 나갔고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모든 공력을 경공술에 쏟아부은 연리하도 그 파편을 고스란히 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리하는 멈추지 않았다.

“크하하하! 사부님! 머지않아 또 뵈길 바랍니다! 그동안 잘 배웠습니다!”

그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심원에 짜랑짜랑 울렸다.

조신우가 어금니를 빠득 갈며 활시위를 다시 당겼다.

“이익!”

패애애애앵!

하지만 이번에도 철시는 허공만 찢으며 소실점이 되어 사라졌다.

교패가 뒤를 쫓으려고 했으나 적비연이 손을 들어 올렸다.

“늦었네.”

그의 말대로 연리하는 이제 따라잡기 힘들만큼 멀리 달아나 있었다.

팔이 잘려나간 만큼 고통을 느끼고 주춤거릴 만도 한데 정말이지 한 마리 새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휘리릭, 탁!

그제야 흑천궁 지붕 위에 있던 조신우가 허공답보를 펼쳐 바닥으로 내려섰다.

“죄송합니다, 련주님!”

자신이 흥분하지만 않았어도 마지막 이기어검을 사용했을 때 연리하를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적비연이 손을 저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언젠간 매듭지을 날이 올 터. 그보다 정비가 시급하군.”

적비연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그에 따라 흑궁단원들도 참담한 표정으로 심원의 전경을 훑어보았다.

그야말로 처참한 광경.

하루아침에 흑천련이 이렇게까지 무너질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이 가후의 노림수였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서에서는 전쟁을 일으키고, 동에서는 극소수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본 셈이 아닌가?

그것도 흑천련에서 가장 깊숙한 심원에서 이 사달이 일어났다.

자중지란을 겪게 해서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고, 조직이 와해됐다.

게다가 장로회주와 부회주가 모두 죽어 버린 상황.

어디 그뿐인가?

다섯 제자 중에서 남은 건 이제 두 명뿐이다.

그마저도 삼 공자인 종권악에게는 특별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총군사도 죽었다.

정말이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처참하게 당했다.

흑궁단원들은 저마다 주먹을 꽉 말아 쥐고 울분을 삼키느라 몸을 떨었다.

교패가 적비연은 앞으로 다가오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불찰입니다!”

교패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원래 ‘죽여 달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나 참혹한 현실에 그마저도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벌을 받기보다는 어쨌든 위기를 타개해야만 하는 시점이었기에.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정말 죽어 버리면 흑천련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기에.

죽음으로 벌을 받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절망적인 현실이었다.

적비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가후는 무서운 자군.’

하지만 다행히 아직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

비록 많은 전력을 잃었지만 어떻게든 버텨냈다.

안타깝게도 총군사를 잃었지만 아직 교패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젠 흑천련에 만통지가 있지 않은가?

적비연의 시선이 흑천궁 입구에서 처연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만통지에게 향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늘을 한참이나 올려다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쩐지 서글퍼 보이는 눈빛이었다.

“사부님!”

마침 심원 정문 사이로 사예린이 뛰어 올라왔다.

그녀의 뒤를 이어 투혈권왕의 호신위들과 예홍도 올라왔다.

상황이 이리 되자 흑귀대가 포박을 풀어준 모양이었다.

사예린을 다시 본 적비연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그것은 투혈권왕의 기억과 현재 태청강의 기억이 뒤섞이면서 일어난 타아의 감정이었다.

안타까움, 아쉬움, 슬픔, 분노, 동정…….

대체로 좋지 않은 감정들.

그의 시선이 사예린의 시선과 얽혔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고생 많았다.”

적비연의 말에 사예린이 울컥 복받치는 설움을 참으려는 것인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시선을 돌려 심원 담벼락에 효시된 투혈권왕의 수급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천……!’

어린 시절 그와 함께 지내며 모든 역경을 이겨냈다.

둘이 함께라면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흔들릴 때마다 투혈권왕은 무거운 중심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이젠 그가 하늘 아래 어디에도 없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그녀의 상실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적비연이 천천히 다가갔다.

“괜찮으냐?”

사예린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적비연을 보았다.

별말은 아니지만, 지금껏 사부가 이처럼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던 적이 없었기에.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부의 눈빛에서 투혈권왕과 닮은 시선을 보았기에.

그녀가 울음을 삼키고는 답했다.

“오늘까지만. 오늘까지만 슬퍼하겠습니다.”

적비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인영이 날듯이 다가와 부복했다.

“무슨 일이냐?”

적비연의 물음에 수하가 보고했다.

“무림맹이 의춘지부를 궤멸시키고 남창지부를 향했습니다! 이대로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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