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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244화 (245/301)

244. 삼파전

슈우우우욱!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혼이 거의 동시에 적비연의 본체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결국 둘 중 하나만 남을 터.

과연 적비연인가, 극마인가?

누가 적비연의 본신을 차지할 것인가!

찰나지간이었지만 이 모든 광경을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은하란에게는 꽤나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잠깐 휘청거렸던 흑천련주가 중심을 잡으며 귀식검을 앞세웠다.

“치잇!”

혀를 차는 흑천련주.

‘아……!’

은하란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리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흑천련주의 몸에 남은 혼은 극마다!

그 말은 곧 적비연이 본신을 되찾았다는 뜻.

‘일단은……!’

첫 출발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걸로 끝은 아니다.

둘은 이제부터 혼의 사슬을 걸고 비무를 치러야만 한다.

누가 주인이 될 것이고, 누가 영원히 수하가 될 것인가?

귀식검을 이용한 싸움에서 승자가 되면, 패자의 혼을 영원히 소유하게 된다.

퍼퍼어엉!

순간 관에서 폭음이 들리더니 관 덮개가 산산이 부서지면서 날아올랐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관을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은하란이 부적을 떼자마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나?

덮개가 부서져 나간 관 속에서 적비연이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불쑥 뻗었다.

그러자 관 옆에 거꾸로 꽂혀 있던 귀식검이 저절로 휙 날아오더니 적비연의 손에 사로잡혔다.

능공섭물의 수법으로 귀식검을 끌어당긴 것이다.

“정말로 적 가주가 일어났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지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수황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정말 적 가주가 깨어났군.’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조금 전까지 흑천련주 태청강에게서 느껴지던 기운이 묘하게 변질됐다.

자신과 말을 섞을 때까지만 해도 비교적 차분한 기류였는데, 지금은 무척이나 패도적이고 거칠다.

마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지 않은가?

“크크크. 깨어났군. 아쉽게 됐어.”

극마가 쉰 소리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적비연은 나름 안도의 숨을 쉬며 귀식검을 들고는 서서히 기수식을 취했다.

확실히 두 번째로 차지하게 된 본신은 처음보다 더 안정감이 있다.

태청강의 몸으로 지낼 때보다도 훨씬 강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

‘해볼 만하다!’

적비연이 귀식검을 불끈 쥐고는 바닥을 찼다.

아니, 차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느닷없이 들려온 음성에 멈칫거리고 말았다.

“잠깐.”

비교적 조용하게 울린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에는 특유의 항거불능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일대종사에게서나 느껴질 만한 위압감.

적비연은 물론 극마도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흘러나온 방향을 보았다.

높은 단상 위 태사의에서 수황 무자강이 거구를 일으켰다.

휘이이잉!

강바람에 그의 은빛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렸다.

“적 가주. 그대는 나와 먼저 비무를 치러야 한다.”

“……!”

적비연이 어리둥절한 가운데, 극마가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냐? 본좌는 저 애송이와 귀식검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 너는 빠져라!”

극마의 거친 목소리에 무자강이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정말 이 인간이 조금 전까지 자신과 대화를 나눈 그 인간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자 적비연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수황의 뜻은 잘 알겠소. 하나 본인과 흑천련주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약조되어 있던 비무였소. 그러니 정 비무를 원한다면 이후에 비무를…….”

“적 가주. 그대는 본좌를 무시하는 건가?”

후우우웅!

수황이 공력을 끌어 올리자 강바람과 함께 뜨끈한 기운이 훅 불어닥쳤다.

그 공력이 어찌나 센지 은황선이 휘청거리면서 흔들릴 정도였다.

적비연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수황이라 부를 만하군. 지난번에는 미처 그 능력을 완전히 가늠하기가 어려웠는데, 지금 보니 왜 그런 별호가 붙었는지 알 만해.’

확실히 수황은 다르다.

적어도 배 위에서만큼은.

마치 강물과 배와 사람이 하나가 된 느낌이랄까?

그 자체가 강처럼 느껴진다.

수황이 무심한 눈길로 적비연을 응시했다.

“나는 자네를 따르는 자들의 말을 들어주었다. 저자가 기른 제자가 부탁할 때마저 들어주었지.”

수황은 일부러 흑천련주의 제자인 투황까지 들먹였다.

적비연에게는 빚을 갚으라는 압력을 넣은 셈이고, 흑천련주에게는 치욕을 안겨 상대적 우위를 점하려는 셈이었다.

하나 수황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그 모든 현상이 적비연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물론 극마도 그러한 사실에 치욕을 느낄 필요도 없고.

오히려 극마는 이 기회를 기회로 삼고자 했다.

적비연이 수황에게 모든 신경을 쏟고 있을 때, 곧바로 기습을 펼친다면 승산이 있으리라.

탓!

셈이 끝난 극마가 곧장 바닥을 차고 날아갔다.

‘클클! 나와 비무 중에 한눈을 팔다니! 정신이 나갔구나!’

마침내 검첨이 적비연의 심장에 닿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퍼어엉!

요란한 폭음과 함께 극마의 귀식검이 휘청거리며 튕겨 나가는 게 아닌가?

“크읍!”

하마터면 손바닥이 찢어지면서 귀식검이 튕겨 나가 강물에 빠질 뻔했다.

“이익!”

갑자기 나타난 방해물에 잔뜩 화가 난 극마가 이를 갈며 홱 돌아보았다.

극마의 일검을 방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수황.

그가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극마를 노려보았다.

“적 가주는 나와 얘기 중이지 않소? 련주.”

“으익! 본좌가 먼저 저놈과 비무를 하고 있지 않았느냐!”

“글쎄, 순서를 다시 따져보자니까.”

“순서는 무슨 빌어먹을 순서냐! 내가 저놈과 먼저 단판을 짓고 그다음에 비무를 하란 말이다! 그땐 너도 깨부숴줄 테니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극마를 보면서 수황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이 사람이 정말 흑천련을 이끄는 태청강이 틀림없는가?

가볍다 못해 나풀나풀 날아갈 것만 같은 말투.

확실히 무공은 강하다.

방금 자신이 튕겨낸 그 일격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만약 그 일검이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왔더라면?

과연 막아낼 수 있었을까?

확률은 반반.

그만큼 강한 것만은 인정해 줘야겠다.

하지만 흑천련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 만한 인물로 보이진 않는다.

자고로 조직의 수장이란 그 지위에 걸맞은 무게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한데 저리 가벼운 언행이라니.

찰나, 극마가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귀식검을 뻗어왔다.

“개 같은 놈들, 누구라도 방해하면 다 죽여주마!”

순간 수황이 눈을 반짝이고는 발을 탕, 굴렀다.

그러자 거대한 은황선이 춤을 추듯 기우뚱거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몸이 붕 떠오른 극마가 균형을 되찾아가는 사이, 수황이 여의수룡창을 뻗어 귀식검을 낚아채듯 휘돌렸다.

이화접목의 수법이었는데, 출렁이는 은황선과 더불어 사용하니 정말이지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튕겨나간 극마를 향해 수황이 매섭게 창을 뻗어갔다.

수룡이 춤을 추었고, 귀식검은 바쁘게 움직이며 번번이 길목을 막았다.

차차차차차앙!

“이런 젠장! 왜 자꾸 끼어드는 거냐!”

“말했다시피 적 가주는 나와 먼저 비무를 치러야 하오.”

“그러니까 내가 먼저……!”

“갈! 그대가 빠지시오!”

정말이지 범인의 눈으로는 좇기도 힘들 만큼 빠른 창검이 오갔다.

그러는 사이 적비연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바닥을 차면서 곧장 극마를 공격했다.

쩌엉!

“크읏!”

수황의 연환식 공격에 이어 적비연의 무거운 공격까지 날아들자, 극마가 신음을 삼키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수황이 갑자기 끼어든 적비연을 돌아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짓이오?”

“난데없이 끼어든 건 수황이 먼저 아니었소?”

“해서?”

“나와 손을 잡고 먼저 련주를 칩시다. 그다음 수황과 내가 비무를 치르는 게 어떻소?”

수황의 표정이 아리송하게 변했다.

“당신들은 정당한 비무를 하려던 게 아니었소?”

“뭐, 딱히 그런 성격의 비무는 아니오. 게다가 이미 수황이 이 비무에 개입하지 않았소이까? 그러니 나와 함께 련주부터 공격합시다. 우린 그다음에 승부를 내도록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수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소이다. 단, 내 배는 부수지 않도록 유의하시오. 뱃사람에게 배는 몸과 같은 것이니.”

“주의하겠소.”

적비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그 모습을 본 극마가 눈을 뒤집었다.

“이 개 같은 것들이 아예 손을 잡고 쌍으로 덤빌 생각이구나. 오냐, 얼마든지 덤벼라! 애초에 내가 네놈에게 정당한 비무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흥, 수황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치고 들어온 사람이 누구더라?”

“시끄럽다! 결판이나 내자!”

파앙!

극마가 다시 갑판을 차고 화살처럼 날아갔다.

따다다다당!

이제는 극마가 적비연과 수황을 동시에 상대하게 생겼다.

연신 불꽃이 터지고 천지를 격동시키는 울림이 일어났다.

세 사람의 기파가 뒤엉켜서 사방으로 퍼져 나갈 때마다 물결은 거센 파도를 만난 것처럼 출렁거렸고, 은황선은 그 위에서 춤을 추듯 흔들렸다.

일대종사의 무공 수위를 자랑하는 세 사람.

그들의 비무는 정말이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입을 딱 벌리게 만들었다.

지켜보던 엽강호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야 원, 어지간해야 보고 배울 점이라도 찾지. 이래서는 그저 구경만 할 뿐이잖아.”

“후후후. 정말 괴물들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까마득하군요.”

한사가 자신의 양손에 들린 검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큼 세 사람의 대결은 초절정에 이른 고수가 보기에도 아득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역시 적비연과 수황의 합격술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극마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사마공이 서로 난잡하게 뒤섞여 발출되다가, 이젠 아예 마공 위주로만 대응하고 있었다.

“련주께서는 마공이 잘 어울리는구려! 혹, 그쪽과 깊은 연이 있는 것이오?”

“남의 일에 왈가왈부할 것 있느냐! 내가 마공을 익혔든 사공을 익혔든! 밥을 먹든 똥을 싸든! 네놈이 무슨 상관이냐? 그보다 둘이 합공을 하다니! 비겁한 새끼들!”

“입이 너무 가볍군!”

“흥! 네놈의 창이 내 입보다도 더 가볍다!”

쩌어엉!

극마가 여의수룡창을 올려친 순간, 적비연이 빠르게 귀식검을 횡으로 베어 들어갔다.

‘먹혔어!’

하지만 육체를 가진 극마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더 민첩했다.

파앗!

그가 몸을 날려 갑판을 굴렀다.

고수들 사이에서는 치욕이나 다름없는 뇌려타곤의 수법이었지만, 극마는 그만큼 절실했다.

반면 극마의 옷깃만 겨우 스친 적비연의 검은 그대로 날아가면서 은황선 난간을 박살 냈다.

콰지직!

찰나, 수황의 표정이 확 굳어 버리면서 적비연을 노려보았다.

“본좌가 배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 미안하오.”

“한 번만 더 실수하면 아무리 그대라도 가만있지 않을 거요.”

“끙, 알겠소.”

한편 극마가 벌떡 일어나서는 두 사람이 얘기하는 틈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어디서 본좌 앞에서 수다나 떨고 있느냐!”

순간 그가 구천혈마공을 끌어올리며 구천일관시 초식을 펼쳤다.

파밧!

쉬이이이익!

빛살처럼 뻗어나간 귀식검이 정확히 적비연의 명치를 노렸다.

하지만 이미 구천일관시에 대해 빠삭한 적비연이었다.

적비연이 귀식검을 거꾸로 세우고 구천일관시를 막아내자, 극마가 신형을 뒤틀면서 그대로 팔꿈치로 적비연의 이마를 가격하는 것이 아닌가?

“흥! 네놈도 빤히 아는 수법으로 내가 공격했을까?”

빠아악!

순간 적비연이 이마를 얻어맞고 한참이나 튕겨 나갔다.

수황조차도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한데 이상한 점은 련주가 적 가주를 공격하는 그 순간, 련주의 신형이 일순 휘청거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배에서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은하란이 유일했다.

그녀가 흔들리는 눈으로 적비연과 극마를 번갈아보았다.

“다시…… 바뀌었어! 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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