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245화 (246/301)

245. 삼파전

이마를 얻어맞은 적비연은 일순간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그의 몸이 튕겨 날아가면서 허공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조금 전에 느낀 기분은 뭔가 질이 달랐다.

뭐랄까?

잠에 빠져들기 직전에 온몸이 나른하면서 허공으로 살짝 들뜨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붕 뜨는 느낌을 가진 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적비연이 이마를 매만지며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젠장, 아는 초식이라고 방심했어!’

적비연이 귀식검을 콱 움켜쥐고는 극마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헛!”

적비연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뭐, 뭐야? 이건!’

자신의 몸이 저만치 난간까지 굴러가서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된 거지?

얼른 고개를 떨어뜨려서 몸을 더듬거리며 살펴보니 흑천련주 태청강의 몸이다.

“뭐, 뭐야? 어느새 내가 여기에……?”

적비연이 당황하는 사이 진짜 적비연의 몸이 벌떡 일어나더니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드디어! 이 몸이 내 차지가 되었다! 으하하하!”

적비연, 아니, 극마가 귀식검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그런가!

몸이 바뀐 건가?

분명 조금 전 충격으로 몸이 뒤바뀐 것이리라.

아마도 상단전이 위치한 인당혈을 가격당한 게 그 원인일 터다.

물론 이대로 몸이 바뀐 채로 놔둘 수는 없는 일!

극마는 자신과 달리 본체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초반엔 자신이 그랬듯이 힘 조절을 못해 허둥댈 가능성이 크다.

그 틈을 파고든다면 아직 승산은 충분할 터!

파앗!

적비연이 갑판을 차고 화살처럼 날아가자 극마가 귀식검을 앞세우며 광기 들린 목소리로 외쳤다.

“와라! 애송아!”

쩌어어엉!

두 자루의 귀식검이 부딪치면서 사이한 기운이 사방으로 훅 불어나갔다.

쿠구우우웅!

은황선이 기우뚱거리며 연신 춤을 추듯 휘청거렸다.

검을 맞댄 적비연이 씹어뱉듯이 말을 꺼냈다.

“그만 나오시지?”

“클클클. 너 같으면 이 좋은 몸을 순순히 내놓겠느냐?”

“애초에 내 것이었을 텐데.”

“모든 물건은 주운 사람이 임자지.”

“그건 물건이 아니라, 내 몸이라고!”

“내겐 물건이나 다름없다.”

“개소리도 작작해라!”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는 가운데, 수황이 번개처럼 몸을 날려서는 적비연의 옆구리를 찔러오는 것이 아닌가?

“큿!”

적비연이 얼른 몸을 회전시키면서 선풍뇌검 초식을 펼쳤다.

그 순간 적비연을 중심으로 갑판 위로 강렬한 뇌전이 일어나면서 벽력이 울렸다.

짜르르르릉! 꽈과아앙!

공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기에, 극마와 수황이 일순 물러나며 거리를 두었다.

“훅, 훅, 훅……!”

적비연이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며 거칠게 호흡했다.

이를 지켜본 극마가 다시 앙천대소를 터뜨리며 소리쳤다.

“크하하하! 아주 좋은 공격이었다! 수황! 아주 마음에 들었어!”

“그 말투…… 조심해야 할 것 같소만.”

수황이 눈살을 슬쩍 찌푸리며 주의를 주었다.

극마가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고는 따졌다.

“뭘 그리 깐깐하게 구는가? 장강의 주인이라는 칭호를 들으려면 마음씨도 장강만큼 넓어야 할 게 아닌가? 이 정도 가지고 쪼잔하게 굴긴.”

“쪼, 쪼잔이라…….”

수황의 뺨이 연신 씰룩였다.

대체 이게 뭔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흑천련주가 이런 말투를 사용했다.

무공은 강하지만 대조직을 이끌 만한 위인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실망이 컸다.

반면 벽력적가주는 나름의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오히려 그가 더 수장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달까?

한데 지금은 또 다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방금 전, 흑천련주가 사용한 뇌전이 흐르는 검법은 벽력가문의 검법 같지 않은가?

흑천련주의 무공은 대체로 거뭇한 기운을 풍기는 특징이 있다.

한데 저렇듯 뇌전이 흐르는 무공은 분명 벽력가문의 특징일 텐데.

수황이 잔뜩 그을음이 묻은 갑판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이번엔 당신이 내 갑판을 더럽혔군. 그만큼 내 배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건만.”

“끄음. 그게…… 워낙 급한 상황이 닥치다 보니 미안하게 됐소.”

수황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창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입이 묵직하게 열렸다.

“변명은 필요 없다. 대가만 치를 뿐.”

파앗!

‘이런 미친……!’

촤아아아!

수황이 갑판을 미끄러지다시피 달려 나가더니 여의수룡창을 횡으로 그었다.

촤라라라라!

여의수룡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음의 기운이 주변의 습기를 얼려 버리면서 무수한 얼음알갱이로 비산했다.

파파파파팡!

얼음알갱이가 터져 나가면서 폭약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연신 울린다.

동시에 주변이 새하얀 물안개에 휩싸인 듯 한 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시활안이 발동한 적비연이 얼른 상체를 젖혀서 배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여의수룡창을 보았다.

파바바바밧!

하지만 주변으로 얼어서 터져 나가는 얼음 파편 때문에 아랫배에 가느다란 선혈이 생겨났다.

마치 단도 같은 것으로 난도질을 한 것처럼 할퀸 상처들이 가득했다.

“칫!”

휘리리릭!

얼른 몸을 뒤틀면서 중심을 잡은 적비연이 왼손으로 허리춤에 매여 있는 흑천검을 뽑아 들고는 후려쳤다.

쩌까아앙!

여의수룡창과 흑천검이 부딪치면서 희고 검은 기운이 마구 소용돌이쳤다.

츄아아아아아!

그 기운을 이기지 못한 강물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다가 갑판 위로 쏟아져 내렸다.

한데 여의수룡창은 본래 ‘수(水)’의 기운을 품은 신병이기.

강물 줄기가 쏟아져 내리자 마치 여의수룡장 자체가 수룡이라도 된 듯 휘청거리면서 적비연의 급소를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그에 따라 물줄기가 여의수룡창에 휘감기면서 그야말로 한 마리 수룡이 비상하는 듯한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쿠파파파파파!

흑천검이 연신 어지럽게 흔들리고, 거대한 수룡은 빈틈을 찾아 맹렬하게 물어뜯어가면서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무인들이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꿈쩍도 하지 못했다.

태어나서 이런 대결은 처음이리라.

이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지만, 애석하게도 견식이 부족한 그들은 어떠한 깨달음도 얻을 수가 없었다.

경지가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단지 눈만 높아질 뿐이랄까?

어쨌거나 이 휘황찬란한 무공 대결을 보면서 싱글벙글 웃으며 손뼉까지 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적비연의 몸을 차지한 극마였다.

“크하하하하! 아주 잘하고 있구나! 수황! 그렇지! 그렇지! 으하하하! 이제 보니 자네가 왜 수황인지 알겠어! 이 정도면 내게 특급칭찬을 받을 만하다!”

그러자 은하란이 냉랭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그렇게 칭찬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요?”

“뭐, 그렇긴 하지. 그럼 이제 슬슬 본좌가 나서서 정리를 해볼까?”

마침 적비연은 선실을 등지고 있어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어 보였다.

“좋아, 이제 끝이다! 애송이!”

파앙!

순간 극마가 갑판을 차자, 은황선이 다시 한번 기우뚱거리며 출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은황선에 타고 있던 무인들이 저마다 중심을 잡느라 공력을 한껏 끌어 올려야 했다.

이 거대한 배가 한 사람의 발길질에 출렁대니 가히 입이 딱 벌어질 만한 광경이었다.

어쨌거나 그의 갑작스러운 개입으로 적비연의 몸이 휘청 떠올랐고, 그에 맞춰 수황의 여의수룡창도 궤적이 달라졌다.

따다다다다당!

그럼에도 두 사람이 대단한 것은 출렁이는 배 위에서 정확히 창과 검을 부딪쳐 간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검첨과 창끝이 정확히 마주치며 튕겨 나가기도 했다.

특히 수황의 경우에는 적비연이 창끝을 피할 경우 선실이 부서지지 않도록 종이 한 장 차이로 공력을 거둬들여 공격을 멈추곤 했다.

그야말로 자로 잰 듯한 공방.

신들린 무공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하는 것이리라.

그러던 와중 적비연의 시활안에 극마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눈앞에서는 수황이 시활안으로도 쫓기 힘들 만큼 강맹한 여의수룡창을 뻗어오고 있었고, 허공에서는 강바람을 탄 극마가 귀식검을 가지고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낭패군!’

귀식검을 피하자니, 여의수룡창에 급소를 얻어맞을 것 같고, 여의수룡창을 피하자니 귀식검이 팔 하나를 아예 잘라 버릴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고 뒤로 더 물러서서 선실을 부수고 들어가자니…… 잠깐!

순간 적비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모험이 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해볼 만하다.

통한다면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가 되리라.

대응책이 떠오른 사이, 극마가 허공에서 고함을 내지르며 떨어져 내렸다.

“노옴. 끝이다아아!”

적비연은 여의수룡창에만 집중했다.

대신 뒤로 바짝 물러나서 선실을 등진 채로 흑천투권공을 최대한으로 일으켰다.

쿠오오오오!

적비연의 몸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물들었다.

훌쩍 물러나서 선실을 등지고 있으니, 극마의 귀식검이 그대로 선실을 세로로 찢으며 떨어져 내렸다.

마침내 귀식검이 정수리를 가르려는 순간, 적비연이 머리를 살짝 틀었다.

그 바람에 귀식검은 적비연의 왼쪽 어깨를 베었다.

콰직!

흑천투권공을 일으키긴 했다지만 극마 역시 천해경 경지에 오른 자였다.

그의 검을 온전히 피부의 단단함만으로 막아내기란 어려운 일.

“크읏!”

적비연이 콧잔등을 팍 일그러뜨렸다.

마침내 왼쪽 어깨가 절반이나 베였을 때, 뼈마디가 욱신거려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을 때,

카앙!

금속성이 울리면서 귀식검이 멈췄다.

순간 적비연의 눈이 빛을 발했다.

‘역시!’

극마의 검을 가로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수황이었다.

수황이 여의수룡창을 내밀어 극마의 귀식검이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도록 떠받치는 것이 아닌가?

극마가 황당한 표정으로 수황을 돌아보았다.

“뭐, 뭐 하는 짓이냐? 나와 같이 저놈을 공격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그 말투. 기분 나쁘다고 했을 텐데.”

“설마 고작 말투 때문에 이런……!”

“내 배. 건드리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소?”

“아……!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중요한 순간에 내 검을 막으면……!”

“막지 않으면 내 배가 더 상처를 입겠지. 들리지 않으시오? 녀석이 앓는 소리가?”

극마가 입을 딱 벌리고는 수황을 쳐다보았다.

지금 자신에게 배가 앓는 소리를 들으라는 것인가?

뭐, 이런 미친놈이…….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상황을 적비연은 예상하고 있었다.

앞서 난간을 부수고 갑판에 그을음을 만들면서 그가 얼마나 그 부분에 민감한지 파악했기에.

한데 지금은 선실 벽을 찢어발겨놨으니 수황의 눈이 뒤집힐 만도 하지 않겠나?

고수와 고수의 대결에서는 단 한 순간의 방심이 커다란 틈을 만드는 법!

지금 극마는 수황의 어이없는 말대꾸에 놀라서 그 커다란 틈을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적비연은 애초에 노린 대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극마아아!”

기합성과 같은 외침에 이어 적비연이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꽈아앙!

흑천투권공을 일으킨 그의 주먹이 정확히 극마의 인당혈에 명중했다.

순간 극마의 혼이 본신에서 쑤욱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적비연은 다시 한번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쿠당탕탕!

그대로 튕겨 나간 적비연의 본체가 바닥을 마구 나뒹굴었다.

“크으읍!”

한참을 구른 적비연이 벌떡 일어났다.

‘됐다! 바뀌었다!’

예상대로 몸이 바뀌었다.

자신의 본체가 갑판을 마구 구르는 사이, 혼이 제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반면 극마는 태청강의 몸에 빙의되면서 지독한 어깨 통증에 신음을 뱉었다.

“크읍! 이 지독한 새끼! 이 고통을 참았단 말이야?”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려는데, 명치가 뜨끈했다.

“어……?”

극마가 고개를 들어 보니 명치에 여의수룡창이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이건 또 뭔……?”

“대화를 나누는 중에 공격하다니. 비겁하군.”

“야이, 병신아! 그건 내가 아니라……!”

극마가 고래고래 소리치다가 이내 헛바람을 삼키며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적비연의 신형이 바로 왼쪽 눈앞까지 날아와서 귀식검을 들어 올리고 있지 않은가?

엉겁결에 왼손을 들어 올리려던 그는 어깨 깊이 베인 상처 때문에 반응이 늦어지면서 이맛살을 푹 찡그렸다.

그러는 사이, 적비연의 귀식검이 그대로 그의 인당혈에 내려 꽂혔다.

파스스스스스!

시커먼 검신이 인당혈에 부딪치는 것과 동시에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재처럼 사라져 갔다.

이를 지켜보던 수황은 물론, 다른 무인들도 입을 딱 벌리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팍!

마침내 귀식검이 완전히 사라지자 적비연의 손이 태청강의 이마에 닿았다.

털썩!

눈을 퀭하게 뜬 극마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훅, 훅, 훅……!”

적비연이 어깨까지 들먹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적비연이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그러게 얌전히 주인으로 모실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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