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251화 (252/301)

251. 배신자의 최후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에 우벽산과 그 무리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임영식이 농을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벽산은 지금껏 돈으로 매수되지 않는 자를 본 적이 없다.

자신만 해도 이런 거금을 챙길 수 있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 것이다.

한데 거절한다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보인가?

아니, 아무리 몰라도 이게 엄청난 거금이라는 건 알 텐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우벽산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임영식이 보는 눈들을 의식해서 연기를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벽산은 빙그레 웃으며 임영식에게 다가갔다.

“허허, 임 대주님도 참. 괜찮다니까요. 글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와 한뜻입니다. 제가 장담하지…….”

“그러니까 한뜻으로 날 엿 먹이겠다는 말이렷다?”

“예?”

말이 왜 그렇게 되지?

그제야 우벽산은 뭔가 심각하게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느새 장내에 들어선 검영대원들은 저마다 검첨을 앞세우고는 여차하면 칼부림을 할 듯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서는 연기가 아니다.

‘침착하자, 침착해.’

우벽산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뇌까리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임영식을 한 번 찾아가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먼저 찾아온 것은 임영식이었다.

그것도 검영대원들을 모조리 이끌고.

그렇다면 용무가 있다는 뜻일 터.

지금껏 잠잠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뇌물을 받겠다고 이리 나오진 않았을 테니.

하면 그 용무가 무엇인가?

그제야 우벽산은 좀 더 평범하게 생각을 전환했다.

돈만 갖다 바치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버린 것이다.

물론 본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지만, 세상엔 이해 안 되는 일도 종종 일어나니까.

‘뭐, 일단 들어보고. 도저히 안 되면 돈을 더 얹도록 하면 될 일.’

십만 냥의 거금으로 해결되지 못할 일이라면, 백만 냥으로 해결하면 된다.

백만 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천만 냥.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일억 냥을 준비하면 그만이다.

이제 벽력적가는 그만한 자금을 유통할 수 있게 됐다.

천상원을 운영하는 벽력적가에게 중원의 전장은 서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아우성이었으니까.

가주가 부재한 지금이라면 자신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손을 댈 수 있다.

가문이 파산하든 말든 알 게 뭔가?

당장 위기를 피하면 그만이다.

“커흠. 임 대주님, 어찌 이리 화가 나신 건지 모르겠으나, 제가 경솔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흥! 그걸 이제야 안다니.”

“오늘 이렇게 본 가를 방문하신 연유가 무엇인지 감히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지극히 저자세.

하지만 그걸 나무라는 벽력적가의 무인은 없었다.

임영식이 콧잔등을 씰룩였다.

“참으로 뻔뻔하군. 이미 모든 걸 다 알고서 나를 뇌물로 매수하려던 자가 이젠 시치미를 떼고 묻는다?”

“이런,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희는 정말로 임 대주님께 약소하나마 선물을…….”

“닥쳐라! 당신들은 본 맹을 배신하고 흑천련과 내통하여 정도 무림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했다. 뿐만 아니라 무림오절이자 본 맹의 장로회주이신 편무량 대협마저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멸문지화를 당해도 할 말이 없을 터! 하나 맹주님과 총군사께서 크나큰 아량을 베푼 결과 일가족은 제외하고, 당주와 각주 등 요직의 인물들만을 참수함으로서 그 죄를 묻도록 하겠다! 만약 저항을 한다면 본 맹을 향한 명백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을 터이니 이를 명심하라!”

임영식이 일장연설을 마치고 나자 우벽산과 맹사천, 구자헌이 맥이 빠진 표정으로 입을 딱 벌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흑천련과 손을 잡다니?

우벽산은 도무지 상황을 종잡을 수 없었다.

물론, 그도 무림맹이 그런 이유로 벽력적가를 감시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주변 세력의 시기와 질투로 인한 결과라고만 생각했다.

벽력적가주가 정말로 흑천련과 손을 잡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한데 그게 사실로 드러났다고?

“저어,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단단히 있는 것 같은데…….”

“흥! 오해는 무슨 오해! 무림오절이신 편무량 대협이 벽력적가주에게 당하셨는데!”

“그, 그게 정말입니까? 가주님이 그 정도로 강하다는……?”

“웃긴 소리! 보나마나 야비한 속임수를 썼을 테지. 사파 나부랭이들과 어울리는 자가 정당한 승부를 보았을 리 있겠나?”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

우벽산은 심호흡을 하고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까딱 분위기에 휩쓸리다간 순식간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일.

“검영대주님. 하나 이곳에 남은 저희들만은 가주님과 뜻이 다릅니다. 실은 저희가 가주님의 뜻에 반발하여 이렇게 대주님께 작은 성의를 표시한 겁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상황이 이런 만큼 액수가 터무니없이 적군요. 지금 보시는 것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벽산이 손을 맞잡고 비볐다.

자신만만하던 그의 표정은 이제 간절함으로 변했다.

이를 지켜보던 박효양은 이제야 자신이 나설 차례라는 것을 직감했다.

“검영대주! 아무래도 저들이 작정을 하고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 같소. 만약 저들에게 돈을 받았다간 필시 후일 큰 화가 될 것이오. 모쪼록 잘 판단하여 본질을 흐리려는 저들을 일벌백계하시오!”

“박효양 대협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정말이지 이들의 뻔뻔한 방식에 치가 떨릴 지경이군요! 뭐? 세 배?”

그러자 우벽산이 사색이 된 얼굴로 얼른 말을 뱉었다.

“아,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다섯 배! 다섯 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믿어주십시오!”

임영식이 코웃음을 쳤다.

“지금 상황을 보고도 그딴 소리라니. 과연 사파와 손을 잡은 가문답군. 뭣들 하는가! 당장 이들을 포박하라! 여기 우 총관과 당주와 각주들은 즉결 심판하도록 하겠다!”

“존명!”

검영대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하며 나서자 맹사천과 구자헌이 저마다 도검을 뽑아 들고는 외쳤다.

“갈! 장내에 머물면서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러느냐! 만약 내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댔다간 살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를 모함하다니! 호락호락하게 당할 줄 아는가!”

그러자 임영식이 한쪽 입매를 치켜 올렸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시는군. 네놈들이 그럼 그렇지!”

“죄 없는 사람의 목을 치겠다는데 가만있을 자가 누군가!”

“죄가 없어? 정말이지 뻔뻔하기 짝이 없군! 백번 양보해서 사파 나부랭이들과 손잡은 건 오해라고 치자. 하면 이건 무엇이냐? 떳떳한 자들이 어째서 가문이 휘청거릴 정도의 뇌물을 꺼내 드냐는 말이다!”

우벽산을 비롯한 무인들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오히려 제 발등을 찍은 꼴이 아닌가?

박효양이 얼른 나섰다.

“이들이 이토록 뻔뻔할 줄은 몰랐소! 임 대주! 반드시 이자들을 벌하셔야 하오! 비록 천상원으로 도피한 자들마저 처리할 순 없겠지만, 이들만이라도 참수한다면 만천하의 본보기로는 충분할 거요!”

“물론입니다. 이들을 용서할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러자 박효양이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본 가는 검영대를 도와 저들의 저항을 막는다!”

“존명!”

장원 밖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만검세가 무인들마저 가세하여 장내를 포위했다.

그러자 우벽산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찌…… 어찌 이런……!”

모처럼 천문학적인 거금을 자기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만금이 무소용이라니!

그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편 일이 완전히 틀어진 걸 깨달은 맹사천은 어금니를 빠득 갈더니 돌연 경공을 펼쳤다.

그가 장삼을 휘날리며 장원 담벼락으로 몸을 날렸지만, 검영대원들이 곧장 반응했다.

“잡아랏!”

파라라라!

순식간에 검영대원 십여 명이 새처럼 날아올라서는 맹사천을 포위하며 공격했다.

채채채채챙!

어지러운 칼부림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미 궁지에 몰린 쥐 신세인 맹사천이 힘을 발하기란 어려운 일.

수세에 몰린 맹사천은 손발이 어지러워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뒤늦게 가담한 검영대 부대주에게 목을 내주고 말았다.

츄팟!

츄아아아아!

털썩!

목을 잃은 맹사천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자 장내는 충격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구자헌은 아예 저항하기를 포기하고는 덜덜 떠는 음성으로 물었다.

“정, 정말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 거요?”

“물론이다.”

검영대주가 무뚝뚝하게 내뱉는 말에 구자헌은 그제야 검을 내려놓고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욕심에 대해 후회했다.

잠깐의 사리사욕을 참지 못해 우벽산과 함께 가주를 배신한 게 이렇게 큰 화가 될 줄이야.

잠깐의 소란이 정리되자 검영대주 임영식이 고개를 슬쩍 끄덕이고는 명했다.

“집행하도록.”

“존명!”

말을 마친 검영대원들이 일제히 우벽산과 구자헌을 비롯한 무인들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 * *

전각 삼 층 난간에서 전서를 읽던 적비연이 서신을 접고는 서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먼 하늘 아래 어딘가에 본 가장이 있을 터였다.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이 마치 본 가에서 피어오른 핏빛처럼 보여서 마음 한편이 싸늘하게 식는다.

때마침 난간 복도를 따라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적비연은 돌아보지 않아도 그가 만통지라는 것을 단박에 알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그였기에 발걸음 소리부터 달랐다.

“장사에서 소식이 왔는가?”

적비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일이 정리되었습니다.”

“한데 별로 개운치 않은 표정이구먼. 앓던 이가 빠진 셈인데 말일세.”

적비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 계책을 생각해 낸 만통지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본 가에서 죽어나갔을 옛 동료들을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동정이나 슬픔은 아니다.

그저 가문을 배신한 자들에 대한 씁쓸한 감정일 뿐이다.

어쨌거나 그들을 참수하면서 벽력적가는 전력을 꽤나 상실한 셈이 되었으니까.

적비연의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만통지가 말했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지 않으면 점점 더 곯아 버리지. 오히려 힘들이지 않고 무림맹을 이용해 차도살인했으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게나. 뭐, 썩었더라도 한때는 제 살이었으니 씁쓸한 마음은 이해하네만.”

“알겠습니다.”

적비연이 희미하게 웃으며 답하고는 서쪽에 펼쳐진 호수로 시선을 던졌다.

파양호에는 수많은 배가 진열을 갖춰 수중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은황선이었다.

만통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적비연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물었다.

“장엄하지?”

“그렇군요.”

“장엄한 것이 적을 위축되게 만들 수는 있지만, 반드시 승리로 이어지진 않을 걸세. 저 장엄함이 독이 될 수도 있단 말이지.”

적비연은 만통지를 돌아보았다.

그가 이렇듯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건 당연한 이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만통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을 이었다.

“파양호에서 전투를 치른다는 것은 수중전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일세. 우리에겐 수로채가 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지. 하나, 그만큼 적은 철저하게 준비할 것이고, 수황을 비롯한 아군은 다소간의 방심을 하게 될 터. 때론 직접 겪지 않고선 절대 깨닫지 못하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혹, 수로채가 패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지?”

“수황은 내게 어떠한 조언과 참견도 구하지 않았네. 오히려 수중전만큼은 수로채에 전적으로 맡기라고 했지.”

“흐음.”

적비연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 만하다.

수황의 자존심은 하늘도 뚫을 정도니.

게다가 평소에도 아웅다웅하는 투왕이 바로 옆에 있으니 콧대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큰 전투가 일어날 터. 그 첫 번째 싸움에서 수황은 대패할 가능성이 크네.”

일순 적비연의 표정이 흔들렸다.

“수황이 대패한다고요? 수중전에서 말입니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장강의 주인이 수중전에서 대패를 한다니?

만통지의 기우일 것이라고 넘겨짚는데, 그에게서 뜻 모를 말이 이어졌다.

“내 예측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수황은 육지전을 펼치게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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