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결전의 날
츄아아아아아아!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마치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물기둥은 한 마리 수룡처럼 허공에서 꿈틀댄다.
공력을 통째로 머금은 수룡이 그대로 섬 복판으로 쏟아져 내린다.
어지간한 폭포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수압이 묘청운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쿠파파파파파파!
묘청운은 검을 들어 올린 채 어금니를 꽉 물었다.
“크읏!”
어깨가 무너져 내리는 듯하다.
확실히 수황의 무위는 지난번에 보았을 때보다 한층 더 상승해 있었다.
쿠파파파파파!
쏟아지던 물줄기가 어느 순간 굉음을 터뜨리더니 우박이 되어 떨어진다.
쿠카카카카캉!
우박 하나 하나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리 꽂힌다.
“크아압!”
비명 같은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묘청운이 바닥을 차고 솟구쳐 올랐다.
퀴카카가가각!
얼음 조각을 마구 부수면서 날아오른 묘청운이 그대로 수황을 향해 몸을 날렸다.
쩌어엉!
금속성이 울리면서 사방으로 기파가 훅 불어나간다.
동시에 조각조각 깨진 얼음 알갱이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주변으로 튕겨 나간다.
푸푸푹! 푹!
차차차차차앙!
“크억!”
“아악!”
“컥!”
관전자들 중 일부가 비명을 터뜨리며 고꾸라진다.
튕겨 나간 비수가 적아를 가리지 않았기에 정사 양쪽 진형에서 사상자가 나타났다.
정말이지 어이없는 죽음.
그야말로 개죽음이라고 할 만하다.
공력이 세거나 민첩한 자들은 호신기공으로 얼음 파편을 막아내거나, 몸을 피했다.
특히 다른 섬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절대고수들은 저마다 호신강기로 모조리 튕겨냈다.
촤아아아악!
묘청운이 공력을 끌어 올리며 사납게 몰아붙이자 수황이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묘청운의 입매가 치켜 올라갔다.
“흥! 잔재주를 부리더니 겨우 이 정도인가? 수황도 별것 아니군!”
파파파파파파!
마침내 뭍에서 벗어난 발이 수면을 밟으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수황은 마치 단단한 유리를 밟는 것 같았다.
반면 묘청운은 거친 걸음으로 수황을 밀어붙였다.
신발이 물에 젖으면서 대략 이 촌 이상의 깊이로 빠져들었다.
공력을 끌어 올려 수상비를 펼치긴 했지만 수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수황은 정말이지 물 위를 걷는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신발도 바닥만 조금 젖을 뿐이었다.
한데 묘청운은 발등까지 물에 잠겼다.
그만큼 저항력이 생길 수밖에.
두 사람 모두 천해경에 이른 경지.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하나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법이다.
하물며 물에 젖은 신발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스르르르릇!
수황이 수상비로 보법을 밟으며 몸을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그림자를 만들면서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신기루처럼 생겨난 잔상이 분신술을 쓴 것처럼 여러 곳에 나타난다.
“우오오!”
“수황이 괜히 수황이 아니군!”
관전자들이 저마다 탄성을 터뜨리면서 떠들어댔다.
사파 무인들뿐만 아니라, 정도 무인들조차 수황의 신위에 입을 딱 벌렸다.
자연스럽게 보법을 밟는 것만으로 물 위에 잔상을 남겨 혼동을 주다니.
물론 공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는 자가 본다면 실체를 가리지 못할 정도의 잔상은 아니다.
하지만 천해경에 이른 무인의 싸움에서는 이 미미한 차이도 큰 빈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츄아아앙!
순간 수황이 포탄처럼 날아갔다.
그 바람에 그의 발끝에서 터져 나간 물줄기가 뒤쪽에서 관전하던 무인들에게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그야말로 해일처럼 일어난 물줄기였기에 몇몇 무인들은 그 자리에서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쩌저어엉!
수황이 내지른 여의수룡창이 묘청운의 검과 부딪치면서 공명했다.
동시에 사방으로 튕겨 나가던 물방울들이 바자작 얼어붙더니 그대로 궤도를 바꾸면서 묘청운에게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쿠카카카캉!
“치잇!”
묘청운이 혀를 차고는 검을 마구 휘둘렀다.
그가 휘두르는 검을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얼음 알갱이가 산산이 부서지자 주변으로 자욱하게 안개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열 명의 절대고수들이 서로 싸우는 곳이다.
그들이 내뿜는 기도만으로도 물안개 따위는 진작 날아가 버린다.
수황과 묘청운뿐만이 아니다.
투왕은 연신 기합성을 터뜨려 대면서 진도천을 상대로 성난 비호처럼 날아들었고, 극마와 연리하는 숨이 막힐 듯한 기도를 거침없이 내뿜으며 서로에게 살검을 휘둘러 댔다.
그들에 비해 다소 약한 듯 보이지만 교패와 염능파의 비무도 용호상박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 아닌가?
세상에 그 누가 감히 무림오절인 염능파와 흑천사왕인 교패를 다소 약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천해지경에 이른 나머지 여덟 사람과 비교하면 확실히 그 두 사람은 그래도 인간의 수준으로 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초절정의 극에 다다른 두 사람이 인간처럼 보일 줄이야!
그들이 고절한 무공을 지닌 인간으로 보인다면, 수황과 묘청운은 수귀와 지귀가 싸우는 것만 같았고, 투왕과 진도천은 범과 사자가 혈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
극마와 연리하는 악귀들의 처절한 사투였다.
다만 맹주의 경우에는 적비연 덕분에 그가 지닌 무공 이상의 실력을 겸비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비무장에서 열 사람이 치열한 사투를 벌이다 보니 관전자들은 잠시도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혹자는 이런 말을 했다.
이번 비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엄청난 기연을 얻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 비무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 한층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과연?
이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이 비무를 지켜보면서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봐도 모른다.
격차가 너무 크다.
일반인이 무인의 싸움을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기본적인 무리를 완전히 깨부수며 싸우는 자들이 아닌가?
그나마 교패와 염능파의 싸움은 지켜볼만 하다.
정말 몰입해서 본다면 한두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다.
근방에서 몇 배는 화려하고, 강렬한 혈투가 치러지는데 그곳에 눈길이나 가겠나?
대부분의 무인들은 이제 뭔가를 배우길 포기했다.
이 단체 비무는 그저 눈요기가 될 뿐이다.
안목을 한층 키워주는 계기는 되겠지만, 뭔가를 배우기에는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것이 느껴진다.
시종 화려하고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수황에게도 눈길이 가지만, 연신 폭음과 같은 괴성을 지르며 맹공을 펼치는 투왕에게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최근 초절정의 벽을 넘어서 천해경에 접어든 투왕은 그야말로 성난 곰과 같았다.
아니, 단지 곰으로 비유하기에는 너무 약해 보인다.
기수괴금이 따로 없다.
“으라차차!”
파아아앙!
파공성을 터뜨리며 날아간 커다란 주먹이 그대로 진도천의 안면을 때린다.
하지만 진도천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그 역시 보패인이 되면서 천해경에 이른 자다.
커다란 쌍도를 열십자 모양으로 교차한 진도천이 히죽 웃더니 괴성에 가까운 기합성을 터뜨리며 날아든다.
팟!
“죽어라앗!”
적비연과 비무할 때 습관처럼 외치던 ‘죽어라!’는 고함소리도 여전하다.
한데 이젠 정말 스치기만 해도 죽을 것만 같은 일격이다.
퍽! 빡! 퍽! 퍼퍼퍽!
순식간에 투왕과 진도천 사이에서 격렬한 속도로 주먹과 칼이 오간다.
투왕의 주먹은 공기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때리는 격이었고, 진도천의 쌍도는 이를 모조리 갈라 버리는 도강을 뿌렸다.
그러다 보니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기풍은 그 누구보다도 세다.
때문에 근방에 있는 관전자들은 공력을 한껏 끌어 올리고 그 기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정말 괴물들이군.”
“내가 이런 싸움을 보게 될 줄이야.”
“그나저나 저쪽은 더 살벌한데? 조만간 결판이 날 기세야.”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끝에 있는 섬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서는 흑천련주의 몸을 차지한 극마와 한때 흑천련의 오공자였던 연리하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콰아앙!
한 차례 폭음과 함께 인공으로 만든 섬이 쩌적 갈라지더니 가운데로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극마가 내려친 검에서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강기가 그대로 섬을 두 동강 내버린 탓이다.
츄아아아아!
물이 솟구치자 연리하가 그대로 물살을 가르며 극마에게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쩌어어엉!
고막을 찢어발길 것만 같은 금속성이 일어나면서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 물방울이 허공에서 정지한다.
동시에 극마가 눈을 빛내며 싸늘한 음성을 쏟아낸다.
“클클. 애송아, 너는 아직 본좌의 상대가 안 되느니라.”
“어쩐지 더 강해지신 것 같군요, 사부님.”
“사부? 너 같은 쓰레기를 제자로 둔 적이 없다.”
“하하. 벌써 제자가 사부님의 치부가 된 겁니까? 숨기고 싶을 정도로?”
“시건방진 소리. 나는 너에게 그 어떤 감정도 없다, 애송아. 넌 나에게 그저 길가에 널브러진 자갈 같은 존재지.”
따아아앙!
극마가 검을 휘두르자 연리하가 뒤로 훌쩍 튕겨나갔다.
한 차례 휘청거린 연리하가 눈에 이채를 띠며 극마를 노려보았다.
‘뭐지?’
확실히 다르다.
자신이 알던 사부와는 숨결, 기도, 말투, 행동 모든 것이 다르다.
정말 낯선 사람을 대하는 기분.
게다가 자신에게 어떠한 감정도 없다는 저 삭막한 말.
정말인 것 같다.
유난히 자신에게 온정을 베풀던 련주가 아니던가?
한데 저렇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건가?
불과 얼마 전 흑천련주와 사투를 벌일 때만 해도 감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한데 지금은…….
‘정말 나란 놈은 상관없다는 투잖아?’
게다가 팔 하나를 잃었기 때문일까?
확실히 자신이 밀린다.
련주가 이렇게 강했던가?
거기에 이 묘한 마기까지.
‘알다가도 모르겠군!’
하나 그에게 생각할 시간은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잡 생각할 틈이 있는 줄 아느냐!”
일갈을 터뜨린 극마가 무서운 속도로 짓쳐들었다.
쉬이이이잇!
붉은 강기가 강줄기처럼 굽이치며 파고든다.
연리하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헙!”
위험하다.
그가 얼른 몸을 눕히며 고개를 젖혔다.
피츗!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강기가 그대로 피를 뿌리며 지나간다.
간발의 차로 목숨을 유지한 연리하가 얼른 몸을 돌리는데, 이번에는 그대로 흑천검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쒸아아아앙!
‘이런 미친!’
무지막지한 강기를 발현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기어검이란 말인가?
저 인간은 공력이 샘물처럼 솟아나기라도 한단 말인가?
연리가 이를 악물고는 온 힘을 다해서 몸을 회전했다.
파라라라라랑!
쉬카아앙!
섬뜩한 감각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꿈치 아래에서 올라온다.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니 손목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
눈을 부릅뜨는데,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극마가 연리하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었다.
“말했지? 난 너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하나 너에게 지독한 감정을 품은 아이가 있더란 말이지. 어떻게 말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잘 시도해보라고.”
연리하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데, 극마가 멱살 잡은 손을 그대로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부우우웅!
“우아아앗! 이쪽으로 날아온다!”
“피, 피햇!”
언덕에서 관전하던 자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우르르 물러났다.
허공을 가르며 떨어진 연리하가 그대로 언덕 한쪽에 고꾸라지면서 비명을 터뜨렸다.
콰당!
“커윽!”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가 비척거리며 일어서는데,
“이렇게 또 만나네, 사제.”
옥구슬이 구르는 듯 아름다운 목소리.
하나 목소리에 담긴 감정만큼은 가슴 한편이 서늘할 정도로 차갑기 짝이 없다.
뻣뻣하게 고개를 드는 연리하.
그리고 그를 보며 생글 웃는 사예린.
그녀의 미소는 어딘지 슬프다.
“사저……?”
“닥쳐.”
칼날처럼 날카로운 목소리에 이어 뻗어져 나온 흑월아.
한 줄기 검은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세상이 기울고 바닥이 솟구친다.
‘니미럴…… 이건 말로 해결할 기회도 없잖아?’
툭, 데굴데굴…….
’츄아아아아아!
연리하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고, 목을 잃은 몸통이 피분수를 터뜨리며 쿵 넘어갔다.
동시에 사파 무인들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정도 무인들은 분기탱천하여 소리쳤다.
“저, 저, 저! 마녀가 신성한 비무에 무단으로 끼어들었다! 저놈들이 비열한 수를 썼다!”
“이놈들! 우리를 속였구나! 용서할 수 없다!”
“당장 이 비무를 중지시켜야 한다!”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가운데 하늘로 솟구치는 빛줄기.
삐이이익, 파앙!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꺾어들고 노을에 퍼져 나가는 불꽃을 보았다.
그들 모두가 곧 닥칠 재앙을 까맣게 모른 채 중얼거렸다.
“저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