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279화 (280/301)

279. 천벌의 탑

푸욱!

츄아아아!

상대의 복부 깊숙이 박혀 있던 대부가 뽑히면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크으읍! 이 빌어먹을 새끼가! 천벌을 받아라아앗!”

비명과 같은 괴성을 지른 백발 광인이 허공을 부웅 가르며 떨어져 내린다.

콰앙!

엽강호는 양손으로 대부를 들어 상대의 대도를 막아냈다.

순간 그의 어깨부터 팔뚝과 손등까지 힘줄이 불거져 나왔다.

“이익……!”

엽강호가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정말이지 이 미친 괴물들은 힘이 장사다.

비쩍 마른 놈부터 덩치가 산만한 놈까지.

엄청난 괴력을 자랑하면서도 민첩성도 남다르다.

“니미럴! 도대체 뭘 처먹은 거야!”

버럭 고함을 내지른 엽강호가 대도를 밀쳐내고는 몸을 빠르게 회전했다.

부우우우웅!

대부가 거친 소리를 울리면서 백발 광인의 옆구리를 베어 들어갔다.

쩌어엉!

대도가 대부를 막아내면서 고막을 찢을 듯한 소음이 일어났다.

동시에 대부를 든 백발 광인이 피를 뿌리면서 서너 장이나 날아가서 멈춰 섰다.

백발 광인의 복부에서는 여전히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통은 전혀 느끼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더욱 혈기를 드러내며 엽강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천벌 받을 새끼가……! 네놈들은 천벌을 받아야 한다!”

파바밧!

찰나 백발 광인이 섬광처럼 짓쳐들며 순식간에 엽강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헛!”

엽강호가 헛바람을 삼키면서 대부를 앞세우고는 성큼 물러나자, 대도가 뱀처럼 휘면서 요혈을 노려왔다.

쒸에에에엣!

‘제길! 뭐 이런 귀신같은……!’

도신이 목을 칠 것만 같은 순간,

쩌까아앙!

파바바박!

얼굴 옆에서 금속성이 울리더니 대도가 튕겨나가면서 백발 광인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간발의 차로 엽강호를 구한 자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한사였다.

양손에 든 쌍검을 척 내리고는 적을 노려보는 한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안색이 좋지 않았다.

지난번 대전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내몰렸던 그였다.

그나마 천상원주인 은하란과 의술에 통달한 적비연 덕분에 빠른 회복이 가능했지만, 이번 전투에 나서도 될 만큼 몸 상태가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고집을 부려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만.

한사가 고개를 모로 돌리고는 엽강호에게 들으라는 듯 피식 웃었다.

“그렇게 굼떠서야.”

엽강호가 콧잔등을 일그러뜨렸다.

“뭐야? 약해빠져서 다 뒈져가던 놈이 주둥이만 살아났구나.”

“목숨을 구해준 은인한테 버르장머리가 없네.”

“이익……!”

엽강호가 발끈해서 따지려는데, 한사가 더 듣지도 않고 몸을 날렸다.

파밧!

순식간에 백발 광인에게 쇄도한 한사가 쌍검을 정신없이 휘둘렀다.

쉬쉬쉬쉬쉬쉬이잇!

“크아아아! 열받는구나! 이 천벌 받을 새끼들!”

백발 광인이 침까지 튀어가며 맞부딪쳐 왔다.

꽈앙!

쌍검과 대도가 부딪치자, 한사가 울컥 피를 토해냈다.

“큭!”

“한사! 괜찮냐!”

조금 전까지 분을 못 이겨 으르렁대던 태도와 달리 엽강호가 얼른 한사를 부르며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한사가 몸을 빠르게 회전하며 소리쳤다.

“기껏 구해준 목숨 간수나 잘해라. 괜히 끼어 들어서 다치지나 말고.”

“아오, 저 새끼는 예뻐할 수가 없다니까.”

엽강호가 제 가슴을 탕탕 치는 사이, 한사는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백발 광인을 가운데에 끼고 어지럽게 발을 놀렸다.

촤촤촤촤촤촤아악!

수십, 수백 가닥의 섬광이 백발 광인을 난자하면서 돌풍이 불었다.

하지만 걸린 시간은 촌각에 지나지 않았다.

촤아아악!

마지막으로 쌍검을 사선으로 그어낸 한사가 바닥에 미끄러지며 멈춰 서자, 백발 광인이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커다란 눈만 끔뻑였다.

잠시 후,

촤아아아아아아!

피를 분수처럼 뿜어낸 백발 광인이 고목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쿠우웅!

“헉, 헉, 헉……!”

순식간에 많은 공력을 쏟아낸 한사가 어깨까지 들먹이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엽강호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딱 벌렸다.

‘죽다 살아나더니 깨달음이라도 얻었나?’

백발 광인이 이지를 잃은 짐승 같은 자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무공 수위가 초절정 후단에 머무는 자들이다.

한데 저리 가볍게 상대를 한다고?

하지만 감탄도 잠시, 몸을 흠칫 떤 엽강호가 돌연 고함을 내지르며 달렸다.

“이 멍청한 자식아! 뭘 개똥 같은 존재감을 뿜고 있어! 처리했으면 터지기 전에 바짝 엎드려야지!”

허공을 가르며 떨어진 엽강호가 그대로 한사를 깔아뭉개다시피 덮쳤다.

곧이어,

꽈아아아아아앙!

“크읍!”

엽강호가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호신기공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한 차례 맹렬한 폭발이 일어나자 주변은 피비린내와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자욱했다.

거기에 뿌연 먼지가 안개처럼 번졌다.

엽강호에게 깔려 있던 한사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짰다.

“비켜라. 너한테 깔려서 먼저 뒈지겠다.”

“빌어먹을. 이게 다 네놈이 잘난 척하면서 고개 빳빳하게 들고 있었기 때문 아니냐!”

엽강호가 투덜거리면서 비키자, 주춤주춤 일어난 한사가 엽강호를 보며 흠칫 떨었다.

“너…… 괜찮냐?”

“네놈에게 진 빚은 이걸로 갚은 거다.”

“……미련한 새끼.”

한사의 말에 엽강호가 눈썹을 성큼 치켜 올렸지만 곧 피식 웃고 말았다.

안다.

한사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아마 지금쯤 자신의 등이 걸레조각이 되었으리라.

찢어져 나간 장삼 사이로 찬바람이 싸늘하게 달라붙는다.

이렇게 날씨가 추운데도 화상을 입은 등은 화끈거리고 뜨겁다.

만약 자신이 한사를 덮치지 않았더라면, 한사는 그 자리에서 전신이 타서 죽었으리라.

그렇다고 기세등등하게 자랑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희뿌연 안개가 점차 걷히면서 엽강호와 한사는 서로 등을 진 채로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어느새 주변으로 가득 몰려든 백발 광인.

전부 여덟 명이나 된다.

한사가 혀를 찼다.

“제길, 끝인가?”

“아니, 왜 우리한테 다 몰려들고 지랄들이야?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엽강호가 가슴을 탕탕 치고는 대부를 붕붕 휘돌렸다.

큰소리는 쳤지만 정말 암담하다.

한 명도 상대하기 힘든데, 백발 광인이 여덟이라니.

그들 모두 맹수처럼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찌나 강렬한 살기를 쏘아대는지 피부가 따끔거릴 지경이다.

엽강호가 툭 던지듯 한사에게 말을 건넸다.

“염병할, 뭐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나름 정들었었다.”

“네놈 정 따윈 필요 없으니 어디 참한 낭자 한 명 소개시켜 주고 죽어라.”

“킬킬, 그때까지 네놈이 살아 있다면.”

“난 당연히 살지. 문제는 네놈이 살아야지.”

“그건 걱정 마라. 난 무조건 네놈보다 오래 살아서 반드시 네놈 제사상에다가 술을 뿌려줄 생각이니까.”

덕담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들이 오가더니 둘이 동시에 소리쳤다.

“와라! 이 괴물들아!”

“덤벼라!”

마치 그 말을 알아듣는 듯 백발 광인들이 일제히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천벌이다!”

“천벌!”

창졸지간 두 사람의 하늘은 여덟 명의 백발 광인들로 뒤덮였다.

각각의 칼자루가 닿기도 전에 살기에 짓눌려 압사할 지경이었다.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누가 먼저 죽든, 누가 더 오래 살든 이곳에서 살아남을 자는 없다는 것을.

때문에 남은 모든 공력을 일시에 끌어올리면서 생에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는 그 찰나!

따아아악!

어딘지 섬뜩한 소리가 귓가를 스치며 분지에 가득 퍼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

언제부턴가 이따금씩 들리던 그 소리다.

하지만 이번에 들린 소리는 뭔가 다르다.

소리를 듣자마자 전신의 공력이 거짓말처럼 쑥 빠져나간다.

동시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등골이 오싹하다.

한데 자신들을 향해 달려들던 백발 광인들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보다 더 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헛!”

“엇!”

백발 광인들이 저마다 헛바람과 비명을 삼키면서 그대로 바닥에 쿵쿵 떨어져 내렸다.

그 바람에 엽강호와 한사가 서 있는 공간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려댔다.

“뭐, 뭐야?”

엽강호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물었지만, 한사라고 답을 알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이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눈초리로 여덟 광인들을 둘러보았다.

잠시 후,

번쩍!

여덟 광인들이 동시에 고개를 치켜들더니 어디론가 냅다 달리는 것이 아닌가?

엽강호와 한사가 얼른 광인들을 쫓아 시선을 옮겼다.

마침 그곳에는 높은 창공에서 추락하는 아송이 있었다.

“뭐지?”

“저자에게 가는 건가?”

두 사람이 유추하는 가운데, 여덟 명의 백발 광인들은 날다시피 달리고 있었다.

한데 가만 보니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분지 곳곳에서 싸우던 백발 광인들이 마치 불덩이를 보고 날아가는 부나방처럼 맹렬히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파파파파팟!

“으헛!”

“우앗!”

백발 광인들은 사납게 내달리면서 걸리적거리는 상대가 있으면 가차없이 살공을 펼쳤다.

그때마다 병장기 소리가 울리고 몇몇의 목이 나가떨어졌으며, 어떤 이는 부상을 입고 나뒹굴었다.

물론 개중에는 오히려 역공을 펼쳐 백발광인의 목을 베어내거나 심장을 꿰뚫어 버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폭발이 일어나면서 주변을 초토화시키곤 했다.

어쨌거나 백발 광인 수백 명이 분지 한가운데로 일제히 달려가는 바람에 사투를 벌이던 무인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것들 갑자기 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알 수 없는 현상은 모종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특히 지금처럼 이지를 잃은 미치광이들이 일제히 같은 행동을 할 때면 막연한 불안감이 음습할 수밖에 없다.

“천벌, 천벌, 천벌, 천벌, 천벌……!”

백발 광인들이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분지 한가운데로 몰려와 추락하는 아송을 받치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한데 뒤늦게 도착한 백발 광인들이 그 위로 계속해서 쌓이면서 마치 탑처럼 점점 높아졌다.

“저, 저 미친 것들……!”

순식간에 수백 명의 백발 광인들이 서로를 짓밟으며 올라가서 인간 탑을 쌓는 모습은 괴기스럽게 짝이 없었다.

마침 아송이 인간 탑 꼭대기로 푹 떨어졌다.

한편 창공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적비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자는 수작이지?’

하긴 뭘 시도하든 상관없다.

오히려 청소해야 할 쓰레기들을 한 곳에 다 모아놨으니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할 일이 아니겠나?

적비연이 양손을 활짝 펼치고 검을 창공에 둥실 띄웠다.

다음 순간, 그의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면서 허공에 뜬 검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구천혈마공의 제팔초식

구천귀뢰격(九天鬼雷擊)!

순식간에 수갑 자의 공력이 검신에 집중되자,

파스스스스! 카차창!

공력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검신이 가루처럼 부서져 버리는 게 아닌가?

이를 본 극마가 보패인 한 명을 후려치고는 뒤돌아서서 흑천검을 날렸다.

“적 가주! 받아라!”

쒸에에에에엑!

창공을 찢을 듯 날아간 흑천검이 정확히 적비연 코앞에서 거짓말처럼 멈췄다.

곧이어 적비연이 다시 양손을 활짝 펼치자, 검붉은 기운이 흑천검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콰지지지직! 치지지직!

주변의 공기가 변하면서 뇌전시 심상찮게 흘렀다.

다음 순간,

뀌에에에에엑!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흑천검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 하늘에서 온통 붉은 강기가 낙뢰처럼 쏟아져 내렸다.

짜르르르르르릉! 꽈과아앙!

마치 세상을 멸하기라도 할 듯, 구천혈마공의 수십 가닥의 강기를 머금은 흑천검이 무섭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적비연의 눈이 반짝 빛을 뿜었다.

“이젠 끝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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