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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280화 (281/301)

280. 천벌의 탑

꽈아아아아앙!

짜르릉! 짜르르릉!

지축이 뒤흔들린다.

인간 탑을 쌓고 있던 백발 광인들이 피를 토하며 사방으로 튕겨 날아간다.

근처에 있던 자들은 바짝 엎드리면서 공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공력이 약한 몇몇 무인들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구천귀뢰격은 단 한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닌, 전장에서 수백 명을 상대하기에 적격한 무공이다.

또 많은 공력을 소모하는 만큼 피해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

적비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생각보다 피해가 미미하다.

수십 명의 백발 광인이 구천귀뢰격을 맞고 튕겨 나갔지만, 팔다리를 잃은 정도의 부상만 입었다.

보통이었으면 떨어져 나간 살점도 찾지 못할 정도로 분해되었어야 하리라.

‘저건……?’

적비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놀랍게도 거대한 탑을 쌓은 백발 광인들은 저마다 호신강기를 은은하게 내뿜어서 거대한 기막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의 호신강기가 아닌 집단의 기막.

이런 게 가능한가?

하기야.

자신은 몸까지 바꿔가며 성장했으니, 이런 걸 따질 처지는 아니지만.

변화는 또 있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치솟아 있던 인간 탑이 빠르게 허물어져 가고 있다.

‘뭐지?’

백발 광인을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기막 때문에 섣불리 공격하기도 애매하게 됐다.

소모한 공력에 비해 얻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기에.

백발 광인들은 이제 마치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거대한 생명 덩어리가 된 것 같다.

한편 어딘지 괴기스러운 이 광경을 보고 흡족하게 웃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묘청운을 비롯한 보패인들.

그들은 저마다 허물어져 가는 인간 탑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림주께서 손수…….”

“벌할 시간이다.”

이에 투왕이 발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 개소리냐? 지금까지 림주가 적 가주에게 처맞는 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후후. 그건 림주께서 본격적으로 벌을 내리시지 않았기에.”

묘청운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진도천도 주먹을 손바닥에 팡팡 부딪치고는 말을 이었다.

“림주께서 너희들을 벌하시기로 마음먹은 이상 희망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자 투왕이 발을 쿵 구르고는 소리쳤다.

“하여튼 요즘 새파란 것들은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물에 빠져도 주둥이만 뜰 녀석들! 수왕, 저 싹수 노란 놈들을 누가 먼저 처리하는지 내기하는 거다!”

“자네가 질 텐데.”

“네놈도 물에 빠지면 주둥이만 뜨겠구나!”

파앙!

찰나지간 투왕이 바닥을 차고 성난 황소처럼 튀어나갔다.

보기만 해도 앞에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부숴 버릴 것만 같은 기세.

진도천이 코웃음을 치더니 공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흥! 너희 같은 보통 인간이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파스스스스!

일순간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물든 진도천이 어깨를 크게 부풀리고는 쌍도를 휘둘렀다.

쩌어어엉!

쌍도가 투왕의 파암진산권과 부딪치면서 요란한 금속성을 울렸다.

동시에 투왕이 민첩한 손놀림으로 금나술을 펼치더니 쌍도의 손잡이를 휘어잡는 게 아닌가?

동시에 손을 통해서 한 줄기 진력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 이건……?’

몸속으로 흘러들어온 진기가 혈맥을 제멋대로 활보하더니 하체와 상체 하단부를 뻣뻣하게 굳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양손이 붙들린 진도천이 이번만큼은 놀란 것인지 두 눈을 부릅뜨고는 투왕을 노려보았다.

투왕의 입매가 히죽 치켜 올라갔다.

“그래, 보통 인간이 네놈들을 꺾진 못하겠지. 그런데 네 눈에는 아직도 내가 보통 인간으로 보이냐?”

“큽……! 건방을 떠는……!”

“닥쳐라! 건방을 떠는 건 너처럼 새파란 애송이지!”

빠아아악!

순간 투왕이 그대로 이마를 들어 올리더니 진도천의 이마를 내려찍었다.

“크읍!”

피가 터지면서 진도천의 허리가 그대로 활처럼 꺾였다.

그럼에도 진도천은 튕겨 날아가지 않았다.

투왕이 양손으로 그의 손을 꽉 붙들고 있었기에.

느닷없는 박치기에 정신이 번쩍 든 진도천이 얼른 각법을 펼치려고 했지만, 다리가 온통 바위처럼 굳어 버려 꿈쩍도 하지 않는다.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영광인 줄 알아라. 지금 네놈의 하반신은 본좌가 독자개발한 무공인 방탄암신공을 펼치는 중이니까. 본좌에게 딸린 식구가 많다. 그러다 보니 아랫것들에게 공력을 주입해 방탄암신공을 함께 펼칠 수 있도록 개발했지.”

“뭐, 뭔 개소리를……!”

“그냥 간단히 말해서 네놈의 하반신은 나와 함께 바위처럼 굳어 버렸단 말씀이다.”

말을 마친 투왕이 연이어 박치기를 했다.

빠아아악! 빠악! 빠아악!

진도천은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코는 진작 뭉그러졌고, 눈알은 튀어나올 것 같았으며, 머리 위에서는 별이 반짝이는 것만 같다.

“끄으윽! 제에엔자아앙! 그마아안!”

진도천이 분에 겨워 사자후를 터뜨렸지만,

빠아악!

어김없이 투왕의 이마가 그의 안면을 거칠게 가격했다.

이제 완전히 뭉개진 진도천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방탄안심공의 유일한 단점이 피부가 바위처럼 딱딱해져서 움직이기가 어렵다는 거지. 흐흐흐. 근데 이렇게 써먹으니 또 좋구나. 이래서 사람은 어린 것들이랑 자주 어울리면서 배워야 한다니까.”

“이 미친……! 이따위 격 떨어지는 개싸움이 무슨 무공이라고……!”

진도천이 양손이 붙잡힌 채로 아득바득 분풀이를 했지만, 투왕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신 헤실헤실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몰랐느냐? 이게 바로 녹림의 방식이다. 고상한 수단과 정의로운 방법? 그딴 건 개나 주라지. 우리는 살기 위해 싸운다. 살아남기 위해 버틴다. 알겠느냐? 최악의 상황에서 이 악물고 잡초처럼 질기게 살아남는 게 바로 녹림의 방식이다. 개싸움이면 어떤가? 결국 네놈들의 살점을 발라 산짐승 먹이로 던져주면 만사가 형통한데! 크하하하!”

투왕의 앙천광소를 들으면서 진도천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네, 네놈은 무인이라고 할 수도 없군!”

“무인? 무공을 익힌 자를 무인이라고 하면 무인이지. 하나, 무인의 정신이 따로 있는 거라면 무인이 아니지. 본좌는 그저 강할 뿐이다. 그리고 녹림에서 강한 자는 살아남은 자다! 알겠느냐!”

빠아아아악!

“크악!”

이마가 깨진 진도천이 피를 뿌리며 넘어가더니 축 늘어졌다.

털썩!

투왕이 아무렇게나 진도천을 던져 버리고는 의기양양한 태도가 되어서는 수황을 보았다.

수황은 묘청운을 상대로 아직 격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투왕이 짐짓 지루하다는 듯 하품하는 시늉을 했다.

“후아아아암! 아직도 멀었냐? 결국 이번 내기는 내가 이긴 셈이군.”

수황이 묘청운과 창검을 주고받으면서 곁눈질로 흘깃 보더니 차갑게 일렀다.

“품위라고는 없는, 동네 개싸움 구경은 잘했다.”

“흥! 동네 개싸움이 됐든, 진흙탕 싸움이든 살아남으면 된 거지! 잡초 정신이야말로 녹림의 상징인 게야!”

“그래도 내기에 이긴 건 아니지!”

말을 마친 수황이 여의수룡창을 휘두르며 묘청운의 복부로 파고들었다.

츄아아아아!

허공의 수증기가 응고되면서 얼음 알갱이가 혜성을 따르는 꼬리처럼 여의수룡창의 뒤를 이었다.

쿠파파파앙!

“흡!”

촤촤촤촤아악!

갑자기 이어진 묵직한 공격에 묘청운이 얼른 뒤로 물러나면서 가까스로 멈춰 섰다.

두 사람의 거리가 벌어지자 수황이 투왕을 흘깃거리고는 말했다.

“아직 그놈을 죽이지 못했잖아.”

“흥! 죽이지 못한 게 아니라, 죽이지 않은 게야! 이놈을 죽였다가 다른 놈들처럼 터지면 어쩌려고?”

“그래도 저렇게 멀쩡하게 놔두면 뒷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데?”

“하! 멀쩡? 네놈 눈깔에는 저놈 상태가 멀쩡해 보이…… 네?”

말을 잇던 투왕이 두 눈을 퉁방울처럼 부릅떴다.

돌아보니 어느새 진도천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비척거리며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거칠게 호흡하는 진도천은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 같은 모습이었다.

그가 어깨를 들먹이더니 양손을 활짝 펼치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쌍도가 자석에 이끌리듯 날아와 손에 착 감겼다.

다음 순간,

“크아아아아! 천! 벌!”

괴성과 함께 사자후를 터뜨린 진도천이 허공을 부웅 가르면서 무겁게 떨어져 내렸다.

꽈아아아앙!

강기를 머금은 도신 두 자루가 그대로 투왕을 내려찍었다.

투왕의 발이 무릎까지 땅에 박혀들었다.

“크으윽!”

바위처럼 딱딱해진 투왕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뭐, 이런 괴물 같은 새끼가……!”

도강을 머금은 쌍도가 계속해서 짓누른다.

양팔을 열십자로 교차한 채 도신을 막아낸 투왕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압!”

진도천이 다시 한번 기합성을 터뜨리자 그의 어깨와 팔뚝이 두 배 가까이 부풀면서 단단해졌다.

정말이지 어디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괴력이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쳇! 이놈의 공력은 마르지 않는 샘이라도 되는 건가?’

투왕의 몸이 아까보다도 더욱 떨린다.

금방이라도 온몸이 부서져서 무너질 것만 같다.

그때였다.

“엎드려!”

수황의 외침에 투왕이 반사적으로 방탄암신공을 풀어 버리고는 넙죽 엎드렸다.

마치 진도천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것처럼 굴욕적인 자세.

차라리 뇌려타곤의 수법이 고상해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살아남으려면 무슨 짓인들 못할까?

그간 더한 짓도 감수하면서 버텼는데!

투왕이 눈앞에서 사라지듯 엎드리자, 중심을 잃은 진도천이 앞으로 휘청거렸다.

창졸지간 빛살처럼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푸욱!

“커억!”

진도천이 두 눈을 치뜨고는 입을 쩍 벌렸다.

그의 가슴을 꿰뚫은 푸른 창!

여의수룡창에서 한기가 풀풀 휘날린다.

주르르륵, 뚝!

여의수룡창을 타고 흐르던 붉은 피가 엎드린 투왕의 뒤통수에 떨어진다.

다음 순간,

츄아아아아아!

수황이 창을 뽑아내자 핏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오면서 진도천의 신형이 고목처럼 쓰러진다.

“크아아압! 처어어언! 버어어얼!”

순간 그의 몸에서 폭기가 감지되자, 엎드려 있던 투왕이 얼른 수황을 밀쳐내고는 양팔을 활짝 펼쳤다.

꽈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력!

보패인의 자폭은 백발 광인들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반경 삼십여 장이 초토화될 정도!

커다란 분화구 모양의 분지가 생겨났다.

촤아아아아……!

움푹 꺼진 땅으로 연못을 채운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치이이이익!

시커멓게 그을린 투왕의 몸에서 자욱한 연기와 함께 타들어 가는 소리가 난다.

“자네, 괜찮은가?”

방탄암신공을 펼친 투왕의 뒤에서 가까스로 화를 모면한 수황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투왕이 뻣뻣하게 굳은 몸을 슬쩍 돌렸다.

얼굴은 물론, 온몸이 시커멓게 그을린 투왕.

그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어떠냐? 이번에도 본좌가 널 살렸다. 그러니…… 나는 투황…… 너는 수왕…….”

말을 마저 잇지 못한 투왕이 털썩 쓰러졌다.

그런 그를 사방에서 스며들어오는 물줄기가 삼키려고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멈춘다.

수황의 기막 때문이다.

적어도 기로써 물을 다스리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였으니까.

수황이 투왕의 목덜미를 대충 낚아채고는 몸을 일으켰다.

“잘난 척을 하고 싶으면…… 네놈 말대로 끝까지 의식이 살아남았어야지. 이래서야 결국 내게 빚지는 셈이 아닌가?”

돌아선 그가 주변을 훑었다.

자신과 싸우던 묘청운은 방금 일어난 폭발에 휩쓸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만치 인간 탑이 점점 낮아지는 것이 보였다.

대신 그곳에서는 전에 없던 강맹한 기운이 활화산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수황이 침잠해진 눈으로 그곳을 보며 중얼거렸다.

“천림주. 네놈이 말하는 그 잘난 천벌이 무엇이더냐? 그 무엇을 준비했든, 나는 내 친구를 이렇게까지 키워낸 적 가주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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