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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적-281화 (282/301)

281. 독사의 허물

촤악! 촤촤악!

청호진인이 현란하게 검을 휘두를 때마다 백발 광인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갔다.

화산파의 장문인 청호진인.

그의 검술은 확실히 정갈하면서도 화려함을 품고 있었다.

화산파의 검법이 그렇듯, 그가 뿌리는 검격마다 매화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듯했다.

확실히 화산파 무인들의 결속력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청호진인을 중심으로 일대 제자들이 매화검진을 구성했는데, 이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하나의 생명체를 보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이, 삼대 제자들도 마음 놓고 적들과 싸울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화산파가 중심을 제대로 잡아주니, 근방의 다른 무인들도 두려움을 떨쳐내고 병장기를 휘둘러갔다.

거기에는 사파의 무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화산파 무인들은 조금 전 적비연의 일격에 튕겨 나온 백발 광인들을 하나둘 처리하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오로지 인간 탑으로만 달려가려는 백발 광인들이었기에 그들을 처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화산이니라! 기개를 보여라!”

“존명!”

청호진인의 사자후에 삼대 제자들까지 기세를 끌어올리며 용맹하게 싸워갔다.

백발 광인이 폭발하면 검진을 이용해서 기막을 펼쳐 피해를 최소화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선두에서 폭기를 감당하는 자들의 내력이 극심히 고갈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백발 광인을 처리했을 때였다.

“조무래기들이 기고만장했구나.”

서슬 퍼런 목소리를 흘려내며 한 인영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그는 바로 묘청운이었다.

청호진인은 단숨에 상대의 기도가 범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보패인인가!’

서리가 내려앉은 듯 새하얀 머리카락이지만, 두 눈 가득 이지가 읽히는 것을 보니 광인은 아니다.

“조심해라. 범상치 않은 자다.”

청호진인의 나직한 주의에 화산파 무인들이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매화검진을 유지하고……!”

말을 이어가던 청호진인의 눈동자가 순간 커졌다.

파앙!

응축된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묘청운이 눈앞에 나타나서 검을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쒸아아앙!

쩌어어엉!

“크억!”

가까스로 검강을 막아냈지만, 전신의 내력이 요동을 친다.

급히 끌어올린 진기가 큰 충격을 받으면서 혈맥의 흐름이 뒤엉킨 탓이다.

“쿨럭! 쿠웨엑!”

짧은 기침에 이어 검붉은 핏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사부님! 괜찮으십……!”

“진법을 유지해라!”

일대제자 한 명이 화들짝 놀라 달려오다가 호통소리에 멈칫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오고 말았다.

“훗!”

싸늘한 웃음을 흘린 묘청운이 재빨리 보법을 밟으면서 그 일대 제자의 목을 그어 버린 것이다.

츄아아아앗!

피를 분수처럼 뿌려대며 일대 제자가 쓰러지자 매화검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빈자리를 메워라!”

다른 제자가 소리쳤지만, 그 외침은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되고 말았다.

츄팟! 서걱!

툭, 데굴데굴……!

쿵!

머리를 잃은 몸통이 육중한 소리를 울리며 그대로 넘어갔다.

“헉! 저, 저놈을 죽여라!”

“이런 개새끼!”

이젠 매화검진이고 나발이고 없다.

눈이 뒤집힌 화산파 제자들이 일제히 묘청운을 향해 달려들었고, 인근의 사파 무인들조차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칼부림을 해왔다.

하지만 묘청운에게 일류와 절정 수준의 무인들은 어린아이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소로운.”

실소를 머금은 묘청운이 그야말로 신묘한 보법을 밟으며 무인들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일검일살.

빛줄기가 뻗어 나가면 어김없이 목숨 하나가 떨어진다.

촤악! 촥! 샤샤샷!

“컥!”

“윽!”

단말마 비명을 터뜨린 무인들이 하나둘 털썩털썩 쓰러져 간다.

청호진인은 눈자위를 가늘게 떨었다.

제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사파 무인들조차도 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간다.

적비연의 공천지권위 영향으로 청호진인은 사파 무인들에게도 동료 의식을 끈끈하게 느끼고 있었다.

한데 제자와 함께 강호동도들이 낙엽처럼 쓰러져 가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담함이 밀려들었다.

“저건 인간이…… 아냐…….”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좌절감이 몰려온다.

동시에 울분도 차오른다.

그래, 자신은 화산의 장문인이 아니던가?

제자들이 저리 죽어나가는데 넋 놓고 구경만 할 수 있겠는가?

“노오오옴!”

사자후를 터뜨린 청호진인이 전신의 진기를 끌어올리며 단숨에 날아갔다.

파파파팡!

갈지자 형태로 검을 후려치며 나아간 그는 어느 순간 눈빛을 빛냈다.

“걸렸다!”

그의 외침과 함께 한 줄기 섬광이 묘청운의 목을 그었다.

서걱!

확실히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

가슴을 대각선으로 길게 가른 느낌이 정확하게 손에 느껴진다.

‘됐어!’

희열에 찬 표정으로 돌아본 청호진인은 순간 끝 모를 절망감에 빠지고 말았다.

“사, 사부님……! 컥……!”

피를 울컥거리며 토해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화산의 제자가 아닌가?

털썩!

무릎을 꿇은 제자가 마침내 눈을 까뒤집더니 그대로 넘어갔다.

‘어, 어찌……!’

분명 검으로 묘청운의 신형을 베었는데!

간발의 차이로 늦은 것인가?

그 바람에 그 자리에 선 제자를 베었던 것인가?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유추할 수밖에 없는 상황.

보패인의 무공 수위가 상상 이상이다.

그때 청호진인의 귓가에 서늘한 목소리가 닿았다.

“절망하고, 절망하라. 그것이 너희들에게 내려진 천벌이니.”

곧이어 파공성과 함께 한 줄기 섬광이 목을 향해 날아든다.

슈아아아악!

청호진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천벌?’

그 말 때문일까?

후회와 회한으로 얼룩진 인생만 떠오른다.

그때,

“사부님!”

고막을 찢는 외침에 이어 금속성이 짜랑짜랑 울렸다.

까아아앙!

묘청운의 검이 뭔가에 맞고 튕겨나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 돌아보니 이곳으로 달려오는 현청이 보인다.

“현청……?”

“사부님! 괜찮으십니까!”

“나, 나는 괜찮다. 너야말로…….”

“괜찮습니다! 무례를 무릅쓰고 검을 빌리겠습니다!”

앞서 장문인을 구하기 위해 검을 날려 보낸 현청이었다.

때문에 빈손이 된 그가 사부의 검을 빼앗다시피 들었다.

평상시라면 이런 무례에 눈살이 절로 구겨졌겠지만, 청호진인은 전혀 괘의치 않았다.

그깟 예의가 대수겠는가?

현청이 나타나서 자신이 살았고, 화산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 됐는데.

파밧!

현청이 곧장 검강을 일으키고는 묘청운에게 쏜살같이 날아갔다.

까아앙!

“흥! 고작 그 정도로 네놈 혼자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묘청운이 악에 받친 소리를 외치며 검을 휘두르려는데,

쉬이이잇!

“헛!”

쩌엉!

느닷없이 날아드는 연검에 그가 얼른 몸을 뒤틀어 방어하며 휘청 물러났다.

그곳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예홍.

그녀가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현청이 혼자 싸운다고 말했었나?”

“흥, 한 놈이나 둘이나 내겐 별 차이도 없는…….”

“누가 둘이래?”

불쑥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단휘가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후우, 겨우 찾았네. 쟤한테 빚진 게 있어서 갚아야 하거든. 자, 셋은 어때?”

“후후후. 장난하는가? 네놈들은 셋이 아니라 그 이상이어도…….”

“그럼 그 이상을 한 번 상대해 보시던가?”

이번에 말을 뱉으며 나타난 자는 묵검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하천웅과 임송화를 비롯한 낙양문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기에 극마까지.

“클클클, 애송아. 자, 주둥이 나불거려 보아라. 본좌도 네놈에게는 장난처럼 보이느냐?”

갑자기 적이 불어나자 묘청운의 표정에도 어쩔 수 없는 긴장감이 돌았다.

그가 이를 빠득 갈더니 휙 몸을 돌렸다.

“네놈들이 발버둥 친다고 천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고함을 내지른 묘청운이 그야말로 귀신같은 신법을 펼쳐 빠르게 멀어져갔다.

“저 얌체 같은……!”

단휘가 약이 올라서 바짝 추격하려는데, 극마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만. 쫓지 마라.”

“왜요? 저놈이 또 얼마나 많은 무인들을…….”

“저놈보다 저쪽을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그제야 단휘도 극마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그곳에는 허물어져가는 인간 탑에서 새하얀 빛이 기둥처럼 솟아나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분명 아송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 탑이 거의 허물어졌을 때, 아송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건……!”

“흡정대법인가?”

“아무리 그래도 저 많은 자들의 공력을 한꺼번에 흡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오?”

낙양문주와 청호진인을 비롯한 강호명숙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혀를 내둘렀다.

인간 탑의 중심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던 백발 광인들이 순식간에 비쩍 말라가고 있었다.

전신의 선천진기까지 모조리 빨려 버린 백발 광인들은 마치 미라처럼 뼈만 남은 채 그대로 허물어져갔다.

더욱 끔찍한 것은 진력진기가 모조리 빨린 백발 광인들이 종국에는 시체도 남지 않고 한 줌 재처럼 바람결에 부서져 흩어진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생명력이 탈탈 털린 채로 먼지가 되는 과정.

급속히 쌓아올려진 인간 탑이 빠르게 허물어져 가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진력진기를 모조리 흡수하는 자는 역시나 아송이었다.

마치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거목처럼 아송은 굳건하게 선 채로 꿈쩍을 하지 않았다.

하얗게 뒤집힌 눈, 피부 밖으로 툭툭 불거져 나온 힘줄, 치렁치렁 늘어져서 점점 자라는 백발.

정말이지 한 그루의 나무를 연상케 하는 모습.

그가 백발 광인들의 기운을 모조리 흡수할 때까지는 인간 탑을 둘러 싼 모종의 기막이 굳건하게 유지되는 듯했다.

“보통의 기막은 아니군.”

극마가 미간을 좁히고는 중얼거렸다.

청호진인이 다가와 물었다.

“하면 저게 무엇이오? 련주께서는 저 현상에 대한 식견이 있으시오?”

“무공으로 만들어낸 기막이 아니란 말이지. 본좌도 직접 겪은 적은 없지만, 상고 시대부터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능에 대해 들은 바는 있다.”

“대체 련주께서는 그리 오래된 이야기를 어찌 알고 계시오?”

“그야 본좌가 옛날 사람이니까.”

극마가 무심히 대꾸했지만, 질문을 던진 청호진인은 수염을 쓸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이는 내가 더 많을 것 같은데…….’

한편 극마는 허공에서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서는 적비연을 바라보았다.

‘저런 기막을 펼치는 이능은 영물이나 신수의 영향 없이는 불가능하다. 변태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기막. 마치 뱀의 허물처럼 만들어진다 하여, 사퇴호신기(蛇退護身氣)라고도 부르지. 한데 이곳에 영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저런 이능이 가능한…… 설마?’

극마가 흠칫거리고는 적비연을 보았다.

‘사퇴호신기를 펼칠 수 있는 영물의 도구라면 역시 하나밖에 없을 터.’

극마가 얼른 적비연에게 전음을 보냈다.

[주인, 빙백독광사의 기운으로 놈을 치면 사퇴호신기가 깨질 수 있다!]

[사퇴호신기?]

[저 녀석이 지금 펼치고 있는 요상한 기막을 말한 거다!]

[한데 어째서 빙백독광사의 기운으로…….]

[저놈이 빙백독광사의 역린을 가졌을 테니까. 주인이 빙백독광사를 처리했을 때, 그 내단만 흡수하고 비늘은 신경도 안 썼잖은가!]

[뭐야? 빙백독광사의 역린에 그런 기능이 있다면 진작 말했어야지.]

[쳇, 나도 이제 기억난 거다. 애초에 역린을 가진다고 해서 저런 이능을 무조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저놈은 어떻게 된 놈이지?]

[뭐, 만통지의 제자니까 똑똑한 놈이지. 그 역린을 저렇게 사용할 생각도 하는.]

[한마디로 죽 쒀서 개 줬군.]

[나도 먹었으니까 개만 준 건 아니지.]

적비연이 농처럼 받아치고는 서서히 한기를 끌어 올렸다.

주변의 공기가 독기와 함께 차갑게 얼어간다.

‘그럼 가볼까!’

파앙!

마침내 적비연의 신형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쩌어엉!

흑천검의 검첨이 사퇴호신기와 닿으면서 금속성이 울린다.

찌지지익……!

확실히 효과가 있다.

철벽같던 기막이 찢어지듯 앓는 소리를 낸다.

적비연은 빙백독광사의 기운을 모조리 쥐어짰다.

찰나,

카차차차차앙!

마침내 기막이 산산조각 나며 적비연이 그대로 아송을 향해 날아갔다.

적비연의 눈이 빛났다.

“아소오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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