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적-288화 (289/301)

288. 마지막 초식

“나는 절대 지지 않는다! 내 무공은 천상천하유아독존! 너희 같은 악당들은 식은 죽 먹기지!”

휙! 휙!

목검이 허공을 가르자 어린 아송을 둘러싼 아이들이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그중 덩치 큰 아이가 이맛살을 푹 찌푸리며 소리쳤다.

“야! 갑자기 목검을 휘두르는 게 어디 있어?”

“나는 무공 고수란 말이야. 당연히 검이 있어야지!”

아송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그러자 덩치 큰 아이 옆에서 눈치를 살피던 여자아이가 어딘가로 얼른 달려갔다가 커다란 가래를 들고 돌아왔다.

“대장! 여기! 우리도 무기를 들고 싸우자!”

“좋아, 잘했어! 아송! 너만 무인인 줄 알아? 우리도 사실 무인이었다!”

부웅! 붕!

덩치 아이가 가래를 세차게 휘두르자 바람 가르는 소리가 연신 들린다.

아송이 살짝 겁을 먹은 듯 뒤로 물러났다.

아송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여동생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라버니…… 도망가자.”

“괜찮아, 영(英)아. 이 오라비가 지켜줄 테니까!”

“웅…….”

아송이 다시 용기를 내고는 말했다.

“흥! 요상하게 생긴 무기로군! 네놈은 무인이 아니라 도적이구나!”

“무슨 소리! 나는 명문정파 출신 오정구 대협이다!”

“네놈 이름 따위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내 정의의 검을 받아라! 악당아!”

“흥! 까불지 마라!”

오정구가 도끼눈을 하고는 달려들자, 아송도 용기를 내어 부딪쳐갔다.

따악! 깡! 따당!

두 아이가 한참이나 가래와 목검을 주고받으며 어울렸다.

주변에서 구경하는 아이들은 연신 ‘이겨라’를 소리치며 흥에 겨웠다.

그렇게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

문득 중후한 목소리가 아송의 귓가에 닿았다.

“녀석들, 그러다가 다친다. 그만 두어라.”

“괜찮아요. 우린 매일 이러고 노니까요.”

“허허, 위험하다지 않느냐? 그러다가 다친다니까.”

하지만 아송은 오정구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싫어요. 진정한 무인이라면 악당을 앞에 두고 먼저 검을 거두지 않아요.”

“야, 왜 내가 맨날 악당이야? 재미없어! 나 너랑 안 놀아!”

오정구가 결국 약이 바짝 올라서는 가래를 옆으로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아송이 그제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훗, 이제야 항복을 선언하는군. 나는 오늘도 정의를 지켰다. 영아, 봤지? 이 오라버니가 악당을 물리치는…….”

휙 돌아섰던 아송은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 버렸다.

“영, 영아……!”

“오, 오라버니……!”

놀랍게도 아영은 낯선 사내의 손에 잡힌 채 꿈쩍도 하지 못했다.

죽립을 깊이 눌러쓴 사내는 손가락 끝에 자라난 손톱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는데, 금방이라도 아영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듯 예기를 뿜고 있었다.

스윽……!

“흑……!”

사내의 손톱이 아영의 목 언저리를 지나간다.

아영이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누, 누구냐! 내 동생을 건드리지 마!”

아송이 얼른 소리치며 목검을 뽑아들었다.

목검 끝이 바들바들 떨린다.

죽립의 사내가 입만 드러내고는 히죽 웃었다.

“거참, 말 안 듣는 아이구나. 그런 걸 들고 설치면 안 된다니까.”

“무, 무슨 소리를…….”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 걸 들고 설치면 다친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 나는…… 지킬 거야! 내 동생을……!”

“글쎄, 그딴 걸 들고서는 누구도 지킬 수 없단다. 결국 무공을 익힌 것들은 전부 쓰레기거든.”

“아, 안 돼! 멈춰!”

스팟!

촤아아아!

순간 아영의 목 아래로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피가 분수처럼 터지면서 목을 잃은 아영이 ‘쿵!’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아영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한참이나 굴러 발치에 머물렀다.

“우웁……!”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핑글핑글 돌아간다.

잘려 나간 아영의 머리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뭐, 뭐야? 왜 이렇게 되는 거야?’

이 남자는 뭔가?

무림인인가?

그렇다면 왜 이런 짓을 저지르지?

무인은 아송이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옆구리에 정의의 칼을 차고, 악당들을 물리치는 자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늦은 잠이 들 때까지 듣고 들었던 영웅담들.

그런데…… 이런 자가 무인이라고?

아송이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는데,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겁을 먹은 아이들을 향해 손을 뿌렸다.

촤촤아아악!

손짓 한 번에 아이들의 사지육신이 끔찍하게 잘려 나간다.

“으아아아아!”

“흐어억! 살, 살려주세요!”

오정구가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울며불며 사정한다.

하지만 남자의 목소리에는 자비가 없다.

“내가 왜 너희 같은 쓰레기를 살려둬야 하지?”

“으아아아!”

오정구가 돌연 일어나서 발 닿는 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순간 죽립 아래의 남자 입이 히죽 웃음을 그렸다.

찰나,

촤아아악!

그가 손짓을 하자 다섯 가닥의 강기가 날아가더니 오정구의 몸을 다섯 조각으로 갈라 버렸다.

오정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렇게 고깃덩이가 되고 말았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아송이 그대로 주저앉아서 덜덜 떨었다.

아랫도리가 뜨끈해졌다.

오줌을 지린 것이다.

“으어어……!”

알아 들을 수도 없는 흐느낌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죽립인이 아송에게 저벅저벅 다가왔다.

“어째서 떨고 있느냐?”

“살, 살려…….”

“크클. 쓰레기 주제에 잘도 말하는구나.”

“나, 나는 쓰레기가 아니…….”

“아니, 너는 쓰레기다. 내가 그렇게 정의를 내렸다.”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린다.

아송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왜, 왜! 내가 쓰레기야! 왜 나를 멋대로 판단하는 거야!”

그 목소리가 죽립인의 심중을 울린 것일까?

손을 치켜 든 죽립인이 움찔 떨었다.

아송이 눈을 슬쩍 뜨고는 죽립인을 보았다.

그 순간 아송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휘이이이잉!

느닷없이 불어온 바람에 죽립이 날아가고 남자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하얗게 휘날리는 백발.

그 얼굴은…….

“아송……!”

중년의 아송이 갈퀴 같은 손을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송은 움찔 거리고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뭐지? 언제 내가……?’

분명 조금 전까지 바닥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리지 않았던가?

한데 어느새 자신은 갈퀴 같은 손을 들고 바닥에 주저앉은 꼬마를 향해 손찌검을 하려고 한다.

아송이 주춤 물러나자, 오줌을 지린 꼬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세요? 쓰레기를 소각해야 한다면서요?”

“헛!”

고개를 든 아이는 아송이 아니었다.

묘청운……!

마침 바닥에 쓰러져 있던 아영도 부스스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데 목이 잘린 소녀가 들고 있는 머리는 아영이 아니라 매소약의 얼굴이었다.

“정화를 해야 한다면서요? 당신은 무인인가요?”

마침 뒤에서도 다섯 가닥의 검상을 입은 오정구, 아니, 진도천이 비틀거리며 걸어온다.

“당신은 무인입니까? 아닙니까? 우리를 이렇게 만든 당신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헛……!”

아송이 어느새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의 두 눈이 축축해졌다.

손등을 들어 훔치니 붉은 핏물이 묻어난다.

‘피눈물……?’

어느새 시체가 된 자들이 아송을 가득 에워싼다.

“너는 정체가 무엇이냐? 너는 무인인가? 아닌가? 너는 쓰레기인가? 아닌가? 결국 너는 소각되어야 할 존재가 아닌가!”

“아, 아니다! 나는 어쭙잖은 정의를 부르짖는 무인을 벌하기 위해…….”

아송이 뒷걸음질을 치며 황급히 말했다.

순간 죽은 자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왔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삶을 돌려내라!”

“너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이 망가졌어!”

“네놈이야말로 소각되어야 할 쓰레기야!”

순간 보패인이 되었던 이들 뿐만 아니라, 백발 광인이 되어 스러져 간 혼귀들까지 한꺼번에 달라붙는 듯했다.

푸우욱!

섬뜩한 파육음.

묘청운이 든 목검이 아송의 복부를 찢으며 들어왔다.

“끄아아아악!”

* * *

“쿠와아아아악!”

괴물로 변한 아송이 포효했다.

그의 복부를 꿰뚫은 흑천검.

거대한 몸을 흑천검이 품은 강기가 꿰뚫고 있다.

아송이 허우적거리며 물러났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헐벗은 그의 상체에서는 아우성치는 얼굴들이 피부 겉으로 드러나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묘청운의 포효, 매소약의 절규, 진도천의 울분, 그리고 허무하게 죽어간 백발 광인들의 원망…….

수많은 얼굴들이 흉측한 피부 안에 갇혀 아우성치는 듯했다.

파밧!

츄아아아!

적비연이 흑천검을 뽑아내고 물러나자, 검붉은 피가 터져 나오면서 아송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쿠쿠웅……!

그대로 무릎을 꿇은 아송이 절규하듯 외쳤다.

“나는…… 나는 너희들을 용서할 수 없다아앗!”

쿠구구궁……!

그의 포효에 천지가 격동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 갇힌 듯 보이는 영혼들도 연신 아우성쳤다.

그 모습을 본 무인들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것이야말로 흉신악살이로군.”

“끔찍한 몰골이 됐어.”

“쯧쯧…… 미친 자의 최후로구나.”

정사를 막론하고 무인들이 한마디씩 내뱉자, 은하란이 미간을 좁히며 차갑게 일렀다.

“저 괴물을 만든 사람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실제로 그 덕에 여러분들은 천벌을 받았고요.”

“뭐, 뭐욧? 지금 저 괴물 편을 드는 것이오?”

“말씀이 지나치시오!”

몇몇 무인들이 발끈했지만, 이번에는 하천웅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저는 천상원주님 뜻에 공감합니다.”

“하 가주!”

“그동안 우리는 무인이라는 신분을 너무 이용했습니다. 가진 힘을 이용만 할 뿐 책임을 지지 않았지요. 그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일 뿐입니다.”

하천웅의 말에 정사의 무인들이 왠지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은하란을 지그시 바라보는 맹주의 표정도 착잡했다.

그 역시 다르지 않았기에.

아니,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책임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리되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질 수밖에.’

긴 한숨을 내쉰 그가 고개를 들어 적비연을 보았다.

적비연은 무릎을 꿇고 흐느끼는 아송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는 아예 괴물이 되어 버린 아송을 어딘지 측은하게 보고 있었다.

슈우우우……!

적비연의 신형에서 극마의 혼이 스르르 빠져나왔다.

[이제 마무리 지어야지?]

‘그래야지.’

극마의 말에 적비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극마가 무릎을 꿇고 지쳐 있는 아송을 가만히 보았다.

잠시나마 아송이 사납게 몰아붙였지만, 결국 그는 자멸하고 말았다.

부정적인 방법으로 기운을 지나치게 대량 흡수하는 바람에 주화입마에 빠진 것이다.

괴물이 된 아송은 여전히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적비연이 그런 아송을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송, 애써 용서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너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고개를 푹 숙인 아송이 그 상태에서 웅얼거리듯 말했다.

“닥쳐…… 내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는데…… 어찌 내 삶을 살겠나?”

“…….”

“너희 무인들은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약자를 짓밟는……!”

“사과하마.”

“……!”

“무인들을 대신해서 진심으로. 사과하마.”

“……!”

아송이 부들부들 떨었다.

이제 그의 두 눈에서는 피눈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크와아아아아!”

길고 긴 포효가 이어졌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버지가 죽던 그날이, 어머니의 마지막 미소가, 여동생의 겁먹은 표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적비연은 착잡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마지막 일격을 가한 순간, 적비연은 아송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어쩌면 공천지권위라는 이능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적비연은 보았다.

아송의 분노와 절망, 가슴 깊이 쌓인 울분과 복수심을.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스윽.

적비연은 여전히 절규하는 아송을 보며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구천혈마검의 마지막 구초식.

구천단심격(九天斷心擊).

서걱.

화려한 강기도, 이기어검도 아니다.

그저 흑천검이 사선으로 떨어졌을 뿐.

그 순간 세상이 대각선으로 양단되었다가 제 모습을 찾았다.

아주 짧은 순간 일어난 일.

잠시 후,

스르르르르……!

괴물의 모습을 한 아송이 사선으로 갈라지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쿠우웅!

뿌연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지켜보던 무인들 모두가 입을 딱 벌렸다.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사신의 최후라기에는 너무나 허무한 죽음.

적비연이 검을 검집에 갈무리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세에는…… 무인 따위는 없는 곳에서 태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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