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이번에는 또 누구냐?
술은 계속 날라져 왔다. 여전히 주점안의 다른 사람들은 바닥에 엎드린 채였고파천과 장웅,
곽주와 심여랑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장웅은 술에 걸신들린사람처럼 마셔대기에 바빴으 나 곽주와 심여랑의 낯색은 당황과 어색함으로가득했다. 아무리 파천이 그들에게 격의 없이 대해주고 잔에 술을 따라 주기까지했지만 그의 신분을 몰랐을때의 조금전과 같은 자연스러 움을 기대하기란 무리였다.
"곽주!"
"네, 대공"
곽주가 깊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하루만이라도 장로들처럼 살고 싶다고 했나?"
"네?...... 저, 소인이 말씀드린 것은......"
"그렇게 살게 해 주면 넌, 내게 무엇을 해주겠나?"
"네?"
곽주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흥분이 떠 올랐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몇 번의기회쯤은 온다고 했던가? 그러나 여태껏 곽주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기껏해야함께 술을 마시던 계집을 유 혹할 기회정도가 그에게는 최고의 행운정도로 여겨졌고그 이상을 바램은 왠지 죄를 짓는듯 한 느낌마저 들었다.
"설마하니 아무런 댓가마저 지불하지 않고 그런 행운을 누릴 생각은 아니겠지?"
"대, 대공......"
"하하하하 지금 이 시간부로 곽주와 심여랑은 소속을 옮긴다. 모든 것을 조치해놓을 테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너희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본련의 간부들을비롯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비리들을 캐봐라. 지금껏 가졌던 가슴속의 응어리를한번쯤 마은껏 풀어보는 것도 괜찮겠지.
어떤것이라도 좋다. 공금유용에서부터 직권남용, 억울하게 해임되거나 좌천된자들을조사해 보는것도 좋겠지. 아니면 능력에 비해 그릇된 대우나 처사를 받는 자들에대한 천거도 괜찮 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말고 소신껏 해 봐라. 모든 지원은 내아끼지 않을테니......"
"존명"
파천의 그 말은 주점에 꿇어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렸다. 이 밤이 지나가면아마도 마도련 전체에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뒤가구린자들은 곽주와 심여랑 을 피해다닐것이고 잔머리를 쓰는 자들은 그들을 구워삶으려고 할지도 몰랐다. 어쨌든 파격 도 이정도면 날벼락의 수준이다. 일개 외당의하급무사를 당주급으로 기용하다니? 더군다나 그 역할의 막중함은 오히려 장로를능가하지 않겠는가?
"둘은 그만 가보고, 내일 오전중으로 짐을 꾸려 존마전으로 오도록......"
"존명"
둘은 파천 앞에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더니 연신 허리를 굽혀 절을 해댔다.아직도 얼떨 떨해 하는 모습들이었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이게 꿈이아닌가 해서 여기서 나가 자 마자 살을 꼬집어 보느라 허벅지 살이 남아나지않을런지도 몰랐다. 두 사람이 나가는 모 습을 지켜보던 파천은 시선을 장웅에게로고정했다.
"너는 원하는 것이 없나?"
"히히 나는 술만 있으면 된다."
"그래? 뭐 그거야 어려울게 있겠나? 그것 말고는 없단 말이지?"
"그래"
여전히 반말이었다. 술에 절은 주정뱅이가 이 정도로 얌전하다면 아주 양호한편이리라.
[정말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는가?]
느닷없는 파천의 전음에 장웅은 몸을 경직시키며 부르르 떨었다. 그의 진동은 금새멎었으나 파천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가자, 내 숙소로 옮겨서 밤이 새도록 마셔보자."
파천이 몸을 일으키자 장웅도 따라 일어섰고 그의 표정에는 평소와 다름없는흐리멍덩한 눈 빛만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저 술을 준다는 말에 행복해 하는 모습이전부였다. 파천과 장웅 이 주점을 벗어나자 장내의 인물들의 입에서 그제야 막혔던숨통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사실을 도저히 믿을수 없다 는 표정들이었다. 특히 장웅을 핍박하고 파천에게 말을 함부로 해대던사사방 인물들의 표정 은 거무죽죽하니 뒷간에 한번씩 빠졌다 나온 사람들 같았다.
파천과 장웅이 사라져간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자가 있었다. 그의 눈은 심하게떨려나왔고 의미모를 불안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몹시 긴장이 되는 듯 물을벌컥거리며 마셔댔다. 그는 의외로 주점일을 보는 장노인이었으니 그의 이런 모습은좀체로 보기 힘든 경우였다.
파천이 존마전에 딸린 내실로 들어서자 광마존등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맞았다. 파천 이 그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갑자기 종적이 묘연해 졌기 때문이었다.물론 별일이야 있겠는 가만은 수하된 자로 지존의 안위가 염려 되는 것은 당연했던것이다.
파천이 웬 거한을 데리고 들어오자 광마존등의 얼굴에는 의아심이 떠올랐다. 그러나누구하 나 그에 대해 물어보는 이는 없었다. 단지 파천의 명에 의해 술이 들어왔고파천의 주위로 그들이 빙둘러 앉았을 뿐이었다.
"자. 이제 하고싶은 얘기를 해 봐라."
파천이 장웅에게 하는 말이었다.
"헤헤 술이다. 술만 있으면 나는 행복해"
장웅은 침을 질질 흘리며 술병을 잡아갔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광마존등의얼굴에는 뭐 이 런 놈이 있나? 하는 기색들이었다. 술병에 닿은 장웅의 손은전형적인 중독자의 떨림을 보이 고 있었다. 그 떨림은 금새 멈췄다. 파천이 그의손을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후후 이제 그만해도 된다. 이미 모든 음파는 차단되었고 주위에는 생명체의움직임이 없다.
참으로 신중한 녀석이군. 아직까지 연기를 해대니 말이다. 참을 수없는 모욕을 받으면서도 모진 목숨을 이어온 이유가 무엇이냐?"
광마존등은 사정을 모르니 눈만 멀뚱거리며 파천과 장웅이라는 사내를 쳐다보았을뿐이었다.
점차로 장웅의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풀어졌던 눈동자에 생기가돌았고 어딘가 멍청해보 이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리고 술병을 쥐었던 손이풀어졌다. 파천이 그의 손을 놓 아준 것이 바로 그때였다.
"대공이시라 들었습니다. 솔직히 전...... 대공을 믿을 수 없으나, 이제 저도지쳤습니다."
파천은 그의 말을 끊지 않고 다음말을 기다렸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장로들을 모두 죽였다고요?"
"그런데?"
"실수 하신 겁니다."
"응?"
"장로들이 본련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는 자들은 아니나 적어도 그들을 견제하는유일한 세력 이었는데......"
"그들?"
"네, 그들입니다."
"자세히 얘기 해 봐라. 내가 듣기로는 장로들이 외부세력과 연계하고 있다 했는데?"
"장로들이요? 하하하하"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한참을 웃어 제치던 장웅이 정색을 하며 파천을 쳐다보았다.
"누가 그 말을 대공께 전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 못할거야 없지. 제갈초홍이다."
"군사가요?......으음......"
그의 눈은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대체 마도련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마도련에서도 극소수의 인물들만이 느끼고 있는사실이고 저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는 자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술병을 움켜쥐고는 잔에 따르지도 않고 그대로 입속에 쳐박고는 들이켜가는 장웅을쳐다보며 파천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할 수도 있음에 긴장했다.
"꺽...... 제가 이런 폐인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그들에 대한두려움입니다. 아직 아무 것도 잡아 낸 것이 없기에 확신을 하지는 못하나 이미마도련은......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어 간지 오래입니다."
"뭐라고?"
"뭐야?"
파천은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별로 놀라지 않았으나 광마존등의 놀라움은 컸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뭐지?"
파천이 놀라지도 않고 차분하게 되물어오자 장웅은 내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대단한 사람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거인일지도......'
"확실한 단서는 솔직히 없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그 말에 장내에는 어이없는 반응들이 속출한다. 욕이 튀어나오지않은것만 해 도 다행이었다.
"그러나, 단서가 없음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지요. 거의 확실한심증입니다.
때로는 심증이 물증보다 더욱 확고한 진실을 알려 줄때도 있는법입니다. 첫 번째는 대종사 의 행동입니다."
또 다시 술병을 잡아가려 하자 파천이 그것을 한쪽으로 치워 버렸다. 빨리 설명을하라는 부 추김이었다.
"장로 손녀에 대한 겁탈건으로 제가 누명을 쓰고 잡혀 들어가자 대종사는 저를은밀히 찾아 오셨습니다. 그 분의 말씀이 조금만 기다려 봐라. 일단은 저들의기세가 완강하니 일단 누그 러진 다음에 너를 다시 복권시켜주마. 그런데도 지금껏그 분이 저를 찾거나 부르신적이 없 었지요."
"단지 그 이유만이라면 설득력이 부족하다."
"처음으로 의심을 하게된 동기였습니다. 두 번째는 저와 대종사만이 알고 있는둘만의 신호 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단어와 두 개의 수신호이지요. 저는 기회를보아서 대종사의 근처까 지 다다를 수 있었고 그것을 은밀히 보내었습니다.그런데도...... 그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 와 같이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요."
"네 말은 대종사가 가짜라는 말이냐?"
"그럴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장로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무슨이유인지는 모르 나 수석장로가 정면으로 대종사를 적대시 하기 시작하였지요. 그분은 그럴분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공적인 주종간의 관계를 넘어서 부자간과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대종사를 밀 어내고 대제자 한당을 대종사의 위에앉히려는데는 누가 보아도 무리가 있어 보였고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사실입니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마도련의 최고의 충신들이라 할만한 자들이지요. 그런데특별한 이유도 없이 대종사를 탄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느끼는것을 그들도 느 끼기 시작했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음...... 그것이 다인가?"
"그리고 결정적인 것이 있습니다."
"결정적인 것?"
"사실 무림이나 본련의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원래 이 일은 이미고인이 되신 전 마안대장님과 대종사만이 알고 있던 사실이온데...... 대종사의어머니가 생존해 계십니다."
"그래? 그런데 그것하고 자네의 추측하고 무슨 상관이지?"
"일년에 한번...... 정월 스무날이 되면 대종사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새로이마안대장이 된 저만을 데리고 그곳을 찾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자는 정월스무날이 무슨 날인지도 모 르는 사람이었고 총단을 비우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네 처지로 알 수 없을 수도 있지 않나? 비밀리에 움직였다면 자네가 모를수도 있 는거고......"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몇 번은 그럴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한번은 직접 그날대종사를 만 나기도 했으니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장웅은 몇 번이나 대종사를 만나기 위해 접견을 신청했고 결국은 대종사를 만날 수있었다 한다. 분명히 생모를 만나기 위해 총단을 비웠어야 할 그가 자신을 만나고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장웅은 확신하기 시작했다.
"좋아. 그렇다면 그자들이 누구일거라 생각하나?"
"모릅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세력이 너무나 은밀하게 침투해 있기때문에 알아 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들끼리도 서로 모를 수도있겠지요."
"그럼...... 군사마저 그들의 하수인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확실치가 않습니다. 단지 장로들이 외부세력과 연계하지 않은 것은확실합니다."
"후후 잘 차려 놓은 밥상인줄 알았더니 이미 한번 손이 간 음식이라......"
파천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빙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참으로 재미있군. 여기저기 쑤시지 않은 곳이 없군. 이번에는 또 누굴까?"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파천을 보며 광마존이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지......대공! 아무래도 무영과 단장만 이곳에 남겨두기에는 위험부담이있겠습니다."
파천은 생각에 골몰하여 있었다.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드물었기에 그들도잠자코 파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미 자신들의 수중에 들어 왔다면 성급히 모습을드러내는 짓은 하지 않을거다. 더군다나 우리들이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 여기지않기에......"
"혹시 이 친구가 대공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이 다른 생각이라도?"
"그럴지도 모르지. 장웅!"
"네"
"혹시 자네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발설한 적이 있나?"
"없었습니다."
"좋다. 이후에 내가 특별한 명을 하기 전까지 넌, 지금까지 해 왔던 그대로행동해라. 무공도 그때 기회를 봐서 회복시켜주마."
"감사합니다. 대공"
그는 정말로 감격하고 있었다. 속에서만 삭혀왔던 의구심을 털어 놓을 수 있는대상을 만난 것만 해도 그에게는 오늘이 잊을 수 없는 날이건만 영영 되찾을 수없다고 여긴 무공을 회복 시켜준다지 않는가? 그로서는 오늘이야 말로 새롭게태어나는 날로 기억될것이 분명했다.
장웅이 돌아가고 나서도 그들은 한참을 숙의하였다. 무슨 얘기들이 오갔는지는오로지 그들 만 알리라.
파천만이 홀로 남아 있었다. 그는 복잡해진 머리도 식힐 겸해서 창문을 열어젖혔다. 지하에 자리하고 있기에 별다른 전경이 없었으나 인공적으로 꾸며놓은 작은정원이 눈앞에 펼쳐졌 다. 생동하는 생명의 기운은 느낄 수 없었고 동일한삭막함에서 잠시 시선을 씻어내는 정도 에 불과 했다.
'후후 이놈들도 혈마천이라는 놈들일까? 아니면 다른 놈들? 남도맹에 이어 마도련,그 다음 에는 무림맹까지? 설마 무림맹이야 별탈 없겠지. 놈들의 뒤만 좇는 것 같아기분이 씁쓸하 군. 하긴 누가 먼저 건드렸는가는 중요하지 않지. 결국엔 모두 내손아귀에 움켜쥐어 질테 니...... 그때까지 만이라도 수중에 지녔다는 착각을 잠시느끼는 것도 괜찮겠지. 그래야 상실 의 허망함도 더 클 테니 말이다.'
★ 아침이 되었다. 밤늦게나 잠이 들었지만 일찌감치 일어난 파천은, 이른 아침식사를끝내고 군사의 방문을 받았다. 그녀는 4개지역에 파견된 마도련정벌대의 움직임과무림맹지부의 동 향을 보고했고 그들의 공격일시를 다시 한번 파천에게 점검받았다.그 이외에 마도련내의 잡 다한 사무를 보고하고 결재를 맡기도 했고 무림맹의 동정에대해 말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것 은 없었다.
그녀가 돌아가고 나서 반시진이 되었을까 싶은 때였다. 광마존이 평소와 달리 문을벌컥 열 어제치며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들어오자 마자 그는 파천에게 인사도 하지않고는 뭐가 그리 급한지 입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토해내기 바빴다.
"지. 지존!"
"왜 그러느냐? 그리고 앞으로는 여기서는 대공이라고......"
"죽......죽었습니다."
"죽어? 누가? 차근차근히...... 혹시 장웅이 죽었나?"
"네"
이런! 파천의 얼굴은 심각하게 일그러지더니 눈에 분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입에서 토해지는 말!
"시체를 가져와라."
장웅의 시체는 처참하게 조각나 있었다. 매끈하게 잘려진 것도 아닌, 톱으로 켠듯이 너덜너 덜했고 비교적 온전한 부위라고는 얼굴밖에 없었다. 군사 제갈초홍도보고를 받고 존마전으 로 뛰어 와 있었다. 파천은 혹시나 하고 군사의 표정을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기색은 엿보이 지 않았다. 그녀는 들어오자 마자 참혹한 시신에눈길을 주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광마존이 시신앞에서 왔다갔다하며 상처를 살피고 있었고 무영존과 단장화는 팔짱을끼고서 는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았고 소군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광마존과시체를 번갈아 바라 보았다.
"세가지 수법이 시체에 나타나 있습니다."
"무엇이지?"
"하나는 도법입니다. 가슴에서 옆구리에 이르는 부분이 검게 타있고 잘려진 피부의손상정도 로 봐서는 양강의 도법입니다. 내공 4갑자 이상인자에 의한 상처지만의도적으로 느리게 베 었습니다. 최대한 고통을 주기 위해서겠지요. 두 번째는 등부위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상처 인데...... 이것은 륜입니다."
"륜?"
"네, 톱니가 최소한 10개 이상은 되는 것이고 크기가 한자정도가 되는 것입니다.상대는 이 것으로 여러번에 걸쳐 난자했고 절단할 수 있음에도 뼈까지 잘라내지않았습니다. 세 번째는 결정적으로 죽음을 결정한 수법으로 폭뢰와 흡사합니다."
"폭뢰라면?"
"그렇습니다. 검으로 치자면 검폭의 수법과 비슷하나 장법으로 펼친 것입니다.명문혈을 중심 으로 장폭을 펼쳤고 그 순간 몸이 터져 나간 것입니다. 내공수위는적어도 6갑자 이상입니 다."
"6갑자?"
"네"
광마존의 말에 장내의 인물들에게서는 의문이 동시에 떠 올랐다.
"군사!"
"네. 대공"
"마도련내에 6갑자 이상의 고수가 있소?"
"대종사외에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폐관수련에 들어간 대종사가 그랬을리도 없고, 결국은 외부인의 짓이란건가?"
파천이 다시 군사인 제갈초홍을 쳐다보자 그녀는 파천의 말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외부인이 본련에 들어 올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는가?"
"그것은...... 만약 외부인이 들어 왔다면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았을 거고총단이 외부에 유출되었을텐데 그런 징후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사의 말대로라면 외부인은 아니다? 그럼 내부인중에 그 정도의 고수가 있고그자가 단지 술주정뱅이에 불과한 장웅을 두명의 고강한 수하를 데리고 이런 참극을펼쳤다? 어딘가 말이 되지 않는군. 군사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대체 흉수가 무엇을노리고 이런 살인을 했다고 생 각하시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갈초홍은 파천의 집요한 물음에 적이 당황하는 눈치였고 면사마저 가늘게 떨려오는 것이 심중의 격동이 심함을 말해 주었다.
"기이한 일이란 말이야. 군사는 내가 장웅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소?게다가 시체 를 보고 고개까지 돌림은 마도련의 군사로서 조금 어색한 듯하오만......"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오. 그냥 해본 소리오. 그나저나 흉수를 밝혀야 하는 거야? 아니면 내버려두어야 하나?
마치 술래잡기를 하자는 것 같잖아? 차라리 무시하고 내버려 둬버릴까? 어떤가, 군사 생각 은?"
"당연히 흉수를 밝혀야 합니다."
"그럼 이 일은 군사가 맡아서 조사해 보시오."
"네?"
"왜, 그러시오?"
"아. 아닙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체가 치워지는 모습을 보던 파천은 무엇이 생각났는지 잠시 멈추게 했다. 파천은시체에게 로 다가가더니 그의 동공을 열어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파천의 눈이 번쩍빛나고 있었다. 마 치 불타오르는 혈안이 되는가 했더니 점차로 금빛이 되어 갔다.
"됐다."
파천의 그 말이 떨어지자 천인대의 무사들이 장웅의 시체를 들고 밖으로 사라졌다.
"저, 무엇을 하셨는지?"
"후후 내가 아는 무공중에 시체의 동공에 마지막으로 잡힌 영상을 읽어내는 무공이있소이 다. 그것을 한번 시전해 봤소."
"네?...... 그런 무공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 온데?"
"그럴거요. 하도 고대의 무공이라서 말이오. 자, 별다른 일 없으면 그만 가보시오."
"네, 대공"
제갈초홍이 파천에게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사라졌다.
[저, 지존! 저도 그런 무공이 있다는 것은 처음듣는 일이 온데?]
[설마 광마존 너도 그런 무공이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네? 그러면 왜?]
[후후 심심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광마존은 파천이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는 표정이었고 파천은의미심장한 눈빛을 떠 올리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곽주와 심여랑이 존마전으로 찾아 왔다. 그들은 이미 장웅의 죽음에대해 들었 는지 그다지 밝은 얼굴이 아니었다. 파천은 그들에게 앞으로 할 일에대해서 간략하게 언급 을 하고는 필요하다면 천인대의 지원을 요청하라고 했다.돌아가는 그들의 얼굴에는 사명감 과 뜨거운 충정, 그리고 대상이 모호한 적개심마저떠올라 있었다.
★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모든 계획은 전면 수정한다. 나와 소군만 개봉부로 가고 광마존은 여기 남아있는다. 그리고 당분간 금응을 타고 무림맹과 마도련을 오가도록 하겠다."
"......"
"광마존 너는 지금부터 군사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도록, 수상한 점이 보이더라도깊이 캐 내려 하지 말고 그냥 관찰만 해라."
"존명"
"무영존과 단장화는 곽주의 신변을 은밀하게 보호하며 그들에게 접근하는 자들의신상을 파 악해 두도록...... 어쩌면 그들에 의해 단서가 잡힐지도 모른다."
"존명!"
"모두 조심하거라.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특히 흉수중 하나는 무영존 너와비슷하거 나 더 뛰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대종사가 연루가 되어 있다면 위험에 처할수도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존명!"
"아무래도 일을 앞당겨야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