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영웅호색(英雄好色)!
신검각에서 밤을 보낸 잠룡대제도 깨어나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자 마자 머리를감싸고 말았 다. 머리가 띵한 것이 어지러웠다.
"대사님 이것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머리를 이리도 혹사하다니......"
혜능은 밤새도록 불경을 외거나 각종 고서적을 탐독하였다. 잠도 자지 않고 해가떠오를때까 지 그 짓을 하고 있었으니 잠룡대제의 머리가 깨어지듯이 아픈 것은당연했다. 그런데도 졸 리지 않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긴 밤동안 자신은 잠을잔것이나 다름없었다. 단지 몸만이 그 피로를 온전히 느끼고 있으니 문제지만......
"할아버님, 기침하셨습니까?"
"그래. 들어와라."
"그래 밤새 잘잤느냐?"
"저, 그것이...... 네, 잘잤습니다."
"그러냐? 나는 지금 온몸이 피곤하고 띵한 것이 한숨 자야 할 것 같다."
"왜 그러시죠? 혜능대사께서 무슨 일이라도?"
"밤새도록 불경을 외우고 독서를 하셨으니 내 몸이 조금 피곤을 느끼는 듯 하구나.아직 몸 이 완전히 정상이 아닌 것 같군. 며칠 밤을 지새워도 아무런 타격이 없어야정상이건만......"
"아직은 완전치가 않다고 보아야 겠지요. 그런데 정말 이렇게 세상을 살아야하다니...... 참으 로 어이가 없군요. 별것 아니리라 생각했건만, 그저 남들보다 좀일찍잔다고 편하게 생각하 려 했는데......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닙니다."
"어허, 이 분들 아니었으면 우리가 다시 의식을 되찾지도 못했다고 하지 않더냐?따지고 보 면 생명의 은인이시거늘,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지."
"그야 그렇지만......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림역사에 쟁쟁한 위명을 날리신 분들이니 우리로서도 영광이 아니겠느냐?더군다 나 네 몸에 들어가신 분이 천마라니......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그런데, 할아버님!"
"왜, 그러느냐?"
"어제의 대화를 종합해보면...... 문윤대령사가 무림을 일통하려는......"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내가 판단하기엔 그 분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거인이시다. 설사 그분이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참견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 니 아무말 말거라."
"그렇지만 옳지 않은 일을 보고 어찌 동조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우리가 그 일을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정도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정도를 이용한다면 그때는어쩌시겠습니까?"
"그래도 나는 한다. 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복수하기를 희망했다. 그런데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내가 악마가 되는 한이 있어도 그 분을 따라야 겠지.또한 내가 보기에 그 분은 그렇게 악하지만은 않으신 분인 것 같고...... 어쩌면그분에 의해 무림이 일통된다면 그 것이 무림으로서 복일지도 모르지."
"할아버님, 어찌 그런 말씀을......"
"너도 다른 말, 말거라. 이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그분에게 생명의 구함을 받고새로운 운명 마저 지녔으니...... 무슨일이 있어도 그 분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독고무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할아버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 것같았다.
"그 악마같은 놈이 남도맹으로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그랬다고 했지. 결국 그 모든 것이 그분의 뜻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같더구나. 지금의 무림은 역사상 최고의 혼란기라 할만하다. 어쩌면 이런시기일수록 파천대협과 같은 분이 필 요한지도 모르지."
"하여튼 너무나 놀랍군요.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이면에서 세상을 마음대로 요리하는자들이 있다는 것이......"
"세상은 다 그런거다. 다수는 항상 소수의 뜻에 좌우될때가 많지. 소수가 지닌야망과 이념에 대다수의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이끌려들어가고 그희생물이 될 때가 많다. 거창하 게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장의 경우만 해도그렇지.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그들의 뜻 으로만 이뤄지지는 않아. 결국은 많은사람의 동의를 얻어내는 쪽이 시대를 얻게 되는 것이 고, 그것이 대세라는 이름으로규정된 역사의 흐름이다."
"그럼 파천 대협이 그 역사의 주관자라는 것인가요?"
"그것은 아직 모르지. 단지 개인의 야망으로 끝맺을 수도 있을것이고, 아니면천하를 얻을 수 도 있겠지."
"으음...... 정말로 잠자코 그를 따라야 합니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이미 포기했던 삶이기에 우리 것을 주장하기에는너무 뻔 뻔하지 않겠느냐?"
독고무는 할아버지의 뜻을 알 것 같았으나 그렇다고 옳지 않은길인 줄 알면서따라가야 함도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반박하고 싶지도 않았다.
★ 독고무는 수빈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동생 설란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수빈각은여전히 동생 의 자태처럼 아름다웠다. 수상누각으로 이르는 수상교에 이르렀을때였다. 호수에 작은 배가 띄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파천과 독고설란이었다. 독고무는 그 들을 발견하고는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동생설란의 얼굴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그래. 할아버지나 나를 위해서는 모르지만 네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것도나쁘지는 않겠 구나. 너만 행복할 수 있다면......'
저 멀리 그의 모습이 가물가물해지자 파천이 슬쩍 그 쪽을 쳐다보았다. 이미 그가다가왔다 가 발걸음을 돌려 가는 것을 알고 있는 파천이었다.
"설란, 기분은 어때?"
"꿈만 같아요. 다시 이곳에서 지낼 수 없으리라 여겼는데......"
"후후 이제는 아무것도 걱정하지마라. 네 곁에는 할아버지도 계시고 오빠도 있잖아?그리고 나도 있고......"
"너무 행복해요. 꿈이라면 깨지 말았으면 싶을 정도로...... 그런데, 할아버지와오빠가 낮에만 정상이라면서요?"
"밤에도 정상이긴 하지. 단지 사람이 바뀌어서 문제지만......"
"참 이상해요. 인간의 영혼이란 것이 있기는 있나 봐요. 나는 죽으면 끝이라여겼는데...... 우 리 할아버지한테 가볼래요?"
"후후 그럴까?"
둘이 탄 배가 호숫가로 저절로 움직여 갔다. 그들은 나란히 배에서 내렸고 어깨를같이하고 발걸음을 떼어갔다.
★ 신검각은 예전에는 천검단이 경비를 담당했었다. 철혈당의 육천명중 전 북검회의수호전과 천검전 소속의 2000명을 차출했고 이들에게 신검각의 경비를 맡겼다.여전히 그들은 천검단 이라 불렸다. 파천과 독고설란이 신검각으로 다가서자경비무사들이 저마다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그들을 아무런 제지도 없이 안으로들여보냈다.
설사 장로라 해도 신검각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또한무기를 풀어 놓고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무림맹에서 유일하게 파천만은 검문도없었고 무기를 풀어놓지 않아도 좋았다. 이것만 보아도 무림맹에서의 파천의 위치를알게 해 준다.
파천의 허리에는 여전히 천마검이 매달려 있었으나 그것을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없었다. 하 긴 1700년전의 천마가 쓰던 검을 천마교도가 아닌 사람들이 알아보기에는무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검자루에 천룡이 승천하는듯한 문양과 금수실, 검집의금사로 된 문양등, 보기에도 특별히 마검으로 보일만한 것은 없었다.
"오, 어서 오십시오. 대령사! 난이도 왔느냐?"
"네, 할아버지."
"맹주께서는 잘 주무셨습니까?"
"하하 그럼요. 대령사께서 걱정 해 주시니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자자. 이리앉으십시오.
안 그래도 대령사께 할 말이 있었습니다."
"저에 게요?"
"네"
두 사람은 잠룡대제 독고정의 앞에 마주 앉았다. 독고정은 두 사람을 흐뭇한 듯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면사를 벗고 다니는 그녀의용모는 천상의 선녀도 샘을 낼만큼 절세적인 것이었고 파천또한 그에 못지 않았으니그야말로 선남선녀란 두 사람 을 이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대체 무슨 일이라도?"
"아닙니다. 별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아무래도 남도맹의 일을 함께 의논했으면하고 말입니 다."
"음......"
파천은 그가 어젯저녁의 개왕등과의 대화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데에 생각이미쳤다. 그러 자 파천이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 힘이 실려가기 시작했다.
"대체 무엇을 의논하자는겁니까?"
"파천대협!"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오?"
파천의 눈빛이 굳어갔다. 독고설란은 할아버지와 정랑의 분위기가 냉랭하게식어가자 긴장하 기 시작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늙고 쓸모없는 늙은이의 목숨을 살리셨으니부족하나 대협께 이 생명을 의탁하고자 합니다. 제가 무림맹주로 있으나 북검회주로있으나 대협께는 한낱 수하된자로 있기를 원합니다."
그는 말과 함께 몸을 일으키더니 말릴새도 없이 파천에게 절을 하였다. 놀라기는파천이나 설란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때문이다. 파천은 여전히 얼굴을 굳히고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는지는 모르겠으나 감당치 못하겠소. 내가 그대를 수하로거둠은 누 가 보아도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저 자신이그렇게 하기로 결정했고 주군의 뜻이 어떠하신지를 알고 싶을뿐입니다. 저는정도인입니다. 또한 의 만을 삶의 유일한 가치로 알고 살아 온 사람입니다. 그럼에도대협을 주군으로 모시고자 함 은 제 운명에 스스로 순응하려 함일 뿐 다른 이유는없습니다. 제발 이 늙은 것이 쓸모없다 여기지만 않으신다면 절 받아 주십시오."
"으......음"
파천은 망설이고 있었다. 일상적인 상급자와 하급자도 아닌 자신의 수족으로 받아들임은 운 명까지 함께 함을 의미함이다. 정도사령대의 500사령도 그의 수하이다.그러나 그들이 광마 존이나 무영존과 같은 수하일 수는 없었다. 정도사령대의사령들은 필요하다면 이용하거나 죽음가운데 있어도 모른척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광마존등의 천마교 수하들이 그런 위험속에 있다면 파천은 모든 것을제쳐두고 그들을 구하려 할 것이었다. 이처럼 둘 사이에는 너무나 확연한 차이가있었고 잠룡대제가 원하는 것이 어느쪽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가치와 이념마저넘어선 주종간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적 신뢰가 없이는불가능했다.
'이것 참 난감하군. 하긴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어떤식으로든 정리가 되어야하겠지.
그렇지만 잠룡대제는......'
"좋소. 일어나시오. 대제를 수하로 인정하겠소."
그는 끝까지 하대를 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독고설란에 대한 배려때문이었다.
"오, 오빠"
독고설란은 입구쪽으로 시선을 돌리다 그 자리에 굳어 있는 독고무를 보았다.독고무는 자신 의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신의할아버지가 나이 스물하 나의 젊은이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있었다.
"말......말도 안 돼. 어떻게?"
휙
독고무는 몸을 돌려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오빠, 오빠"
독고설란이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밖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을 잠룡대제는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뿐이었다.
"주군께서는 너무 심려 마십시오. 저 아이도 곧 이해하게 될것입니다."
"그런가? 그러나 때로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가 무너질 때, 깊은절망과 혼란 을 느끼게 되고 그것은 때로 그 사람을 방황케 하고 무너뜨려 버리지."
......
★ "아무래도 형식적으로나마 조사대를 파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겠지. 이 일을 사령대에 맡겨보시오. 아무래도 나도 악양에 한번 다녀와야할 것 같 고, 게다가 남도맹의 일도 처리해야 하니 말이오."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정도사령대만 데려 가시겠습니까?"
"그것이 좋겠소. 그리고 독고무도 함께 데려가겠소."
"네, 그러십시오. 이후 무림맹의 행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먼저 오련회쪽 세력을 주축으로 사천지방에 병력을 파견하시오. 요즈음 그쪽의돌아가는 상 황이 심상치 않다 들었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개방과 신안전은 이후 세외의 세력에 단서가 될만한 것을 계속 조사하게하시오. 이 제 곧 그들이 중원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오. 머지않아 대규모의 침략이있기 전에 분명히 선 발대가 들어 올 것이오. 먼저 그들의 세력정도를 알지 않고서는효과적으로 방비하기가 쉽지 않소. 그럼 나는 그렇게 알고 떠날 준비를 하겠소."
"조심하십시오."
"대제만 믿소."
두 사람은 손을 굳게 잡았다.
★ "오빠, 오빠!"
독고무는 신검각 뒤의 후원의 숲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독고설란이 뒤따르고있었다. 그녀 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추어 세운 독고무였으나 뒤돌아서지는 않았다.
"오빠, 할아버지도......"
"됐다. 그만해라.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가누군가에게 무릎 을 꿇게 되리라고는 난......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자는어쨌든 정도인도 아니지 않느 냐? 그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난, 너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그렇고 마음을 너무 쉽게 주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될뿐이다."
"알아 오빠 마음. 그렇지만 그 사람 알고 보면 그리 나쁜 사람도 아니야. 단지너무나 큰 절 망으로 인해 성격이 조금 변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착하고선한 사람이야."
독고무가 몸을 홱 돌렸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그 사람의 지금 하는 일들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생각하는거니? 제발 정신들 차려. 장차 그 사람으로 인해 무림은 지옥이 될지도모르는데...... 너도 예전의 귀엽 고 사랑스럽던 동생이 아니구나. 좋아 다 좋다고,그렇지만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만은 이해 할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알겠니?할아버지는......"
"그만해라."
잠룡대제였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그는 독고설란의 뒤에 서 있었다.
"그 분은 너의 얄팍한 눈으로 함부로 판단할 분이 아니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믿고 싶다.
과연 누가 있어 장차 다가올 혈난을 막아 내겠느냐? 어쩌면그분이야말로 혈겁을 종식시키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구현할지도 모르는절대자이시다."
"그런가요? 저는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한 것을 할아버지는 용케도 보셨네요. 절설득하려 하 지 마세요. 절대자라고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효웅이나폭군이라면 모르지만......"
"그만두자. 난 너를 설득할 생각도 이해시키고 싶지도 않구나. 단지 너도 비뚤어진눈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다시한번 보아주기를 바라마. 그러고 나서결정하는 것은 나도 받아 들일 용의가 있다."
"알았어요."
독고무는 냉랭한 대답과 함께 숲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혼자 있고 싶으리라.독고무 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나뿐인 동생도 세상에서가장 존경하는 할아버지도 한 사람에게 모두 빼앗겼다는 생각이 그에게 세상이무너지는 듯한 절망을 주었 을 뿐이었다.
★ "얘는 아직도 그대로인가?"
"네, 지존"
"의노! 네 말로는 이미 어느정도 치료가 끝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습니다. 이미 치료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마음문을 스스로 닫고 있는 이상에는여전히 이 상태가 지속될 것 같습니다."
"후우, 하기는 마음의 상처가 컸겠지. 아직 꽃다운 나이에 그런 일을당했으니...... 난, 내일 이곳을 떠나야 한다. 그 동안 의노가 이 아이를 잘좀돌봐주어라. 그리고 소군도 당분간 여 기에 두어야 겠어, 아무래도 개방보다는무림맹이 생활하기에 편하겠지. 설란과 말동무라도 하면 될거고......"
파천과 의노가 나가고 혼자남은 환사의 두 눈에 눈물이 고여가고 있었다. 그녀의눈은 여전 히 공허했고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으나 그 눈은 슬픔을 말하고있었다.
★ 또 다시 밤이 왔다. 독고무는 숲에서 홀로 있다가 밤을 맞았다.
"어? 이자식, 웬 청승이람. 아이고 사내자식이 눈물까지 흘렸어? 참 어이가 없군."
천마는 손으로 눈 밑을 닦아보고 있었다. 눈물이 축축했다.
"이런 연약한 놈에다가 팔이 하나 없는 병신에...... 그래도 노인네 보다는 낫겠지?아암......
내 고상한 취미생활을 영위하려면 아무래도 젊고 팔팔한 놈이 낫겠지.자, 그럼 가 볼까?"
쉬이이익
그는 순식간에 공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예 공중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 속도는점차 빨 라지고 있었고 순식간에 신룡각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파천! 파천, 어디에 있냐?"
천마가 고함을 지르며 실내로 들어섰다. 실내에는 개왕과 쌍노, 그리고 여자아이하나가 있 었다.
"에잉?"
천마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넌, 소군 아니냐?"
그가 소군을 모를리는 없었다.
"아저씨는 누구에요?"
소군이 천마를 쳐다보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처음보는 사람이 대뜸 자기를알아보자 놀란 것이었다.
그때다. 파천이 천마를 쳐다보며 약간 화가 난 음성을 토해냈다.
"너, 임마! 함부로 내 이름을 부르면 어떻게 해?"
그러고 보니 천마가 경황중에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들어왔다. 신룡각 내부에야시비들밖에 없으니 상관없겠지만 정도사령대의 인물들이라도 내부에 있었다면굉장히 곤란해 질 뻔 하지 않았나?
"아,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다. 뭐, 그럴수도 있지. 야, 소군 내가 누구냐하면......"
파천은 그에게 좀더 주의를 주려 했으나 어느새 천마는 소군에게 붙어 있었다.
"내가 바로 천마야. 그러니깐 천마교 초대조사가 바로 나다."
소군이 머리를 갸웃했다.
"사부님. 이 사람 무슨 소리 하는거에요? 아무래도 이상한 사람같은데...... 그동안소군을 심 심하게 하시더니 이런 이상한 사람하고 어울려 다니신거에요?"
"뭐야?"
천마가 눈이 똥그래지며 부라려 보지만 소군은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킥킥"
"끅끅"
개왕과 쌍노가 입을 틀어막고 토해내는 웃음소리였다.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내는소리라 더 욱 기이하게 들렸고 천마의 비위를 건드렸다.
"아니 이자식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져 버리는 세사람이었다.
"천마 까불지 말고 이리와서 앉아 봐라."
천마가 파천을 한번 노려보지만 파천의 시선은 고요할 뿐이었다.
"으음...... 왜 그러냐?"
파천의 앞자리에 앉고나서 퉁명스레 물어 본다.
"너, 내일 나랑 함께 가야 되겠다."
"뭐? 어디를?"
그는 얼굴이 활짝 개며 파천에게 몸을 바싹 가까이 했다.
"일단은 악양으로 가야할 것 같다. 그 다음에는 무창으로 가야하고......"
"그럼뭐야? 마도련과 남도맹으로 가야한단 말이잖아. 왜? 광마존한테 무슨 일이라도생겼다 냐?"
"그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일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겠어."
"뭐, 나야 오늘 밤만 내것이고, 내일 아침이면 이 녀석한테 물어봐야지."
천마가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대며 하는 소리였다.
"참, 그런가? 하하 이것 참 나도 적음이 안 되는군."
"안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이런식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다니...... 참으로비참하군."
"왜? 너야 밤만 있으면 되잖아? 그 거룩하고 고상한 취미는 낮보다는 밤이좋을텐데......"
"그렇지! 이 밤이 다가기 전에...... 야! 너희들 셋"
"네?"
"가서 데리고 와"
"네? 누구를요?"
"그런데 이 아저씨 웃기다. 왜 할아버지 한테 반말하고 우리 사부님하고 맞먹지?당신 누구 에요?"
"소군. 네 앞에 있는 놈이 천마다."
"뭐라고요? 정말요?"
한동안 소군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몰랐다. 천마라면 자기에게는 조사가 된다.그렇다면 당연히 깍듯이 섬겨야 하고 그러자면 먼저 절을 올려야 한다.
"소군이 천마조사님을 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소군도 그에게 절을 올리고 만다.
"오, 그래. 어서 일어나거라."
천마는 소군을 부축해 일으켜주는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겨드랑이사이에 손을 끼는 것을 잊지 않는 천마였다.
"하하하하 이렇게 귀여운 제자? 수하? 하여튼 후손을 두어서 나도 기분이 좋구나.그리고 상 승무공을 익히기에 더 없이 좋은 몸의 체질이구나. 앞으로 파천말고 나도많이 가르쳐 주마.
언제든지 날 찾아와라. 난 한밤중에라도 무공가르쳐 주는 걸아주 좋아하니. 괜찮다."
"네"
의외로 그녀는 다소곳이 대답하고 있었다. 하긴 천마라는 이름이 보통의이름이었던가? 며칠 이 지나면 파천을 대하듯이 스스럼 없이 대할수도 있을지도모르지만 어쨌든 지금만은 그녀,
소군도 주눅이 들어 있었다.
★ 또다시 술판이 벌어졌다. 당연히 이번에도 천마가 우겨서임은 두말할 나위도없었다. 마침 부령사 두명도 찾아오는 바람에 그들까지 술자리에 끼어 버렸다.파천은 천마가 실수나 하지 않을까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천마 실수하면 안된다. 어디까지나 너는 잠룡대제의 손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알았다. 내가 그렇게 멍청한 놈인줄 아느냐?]
"하하, 자 한잔씩들 더 듭시다."
벌써 몇순배가 돌고 있었지만 여전히 천마는 술병을 놓지 않고 손에 움켜쥐고있었다.
"이거 공자께서 술을 이리도 좋아하시는지는 저희도 미처 몰랐군요."
그들은 어젯밤 독고무가 개봉부의 기녀들을 불러다가 잠자리를 함께 했음을 들어알고 있었 다. 이미 그 소문은 삽시간에 무림맹전체에 퍼져 있었다. 오로지 독고무만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술뿐입니까? 자고로 영웅은 호색이라 했으니, 뭐, 그렇다고 내가 영웅이라는 말은아니오 만...... 아, 근데 술자리에 여자가 끼지 않으니 참으로 분위기가 그렇군요.어떻게 두분 부령 사들께서는 여자를 공급할 역량이 되시는지요?"
독고무의 그 말에 두사람은 쭈욱 들이키던 술을 하마터면 뱉어낼뻔 했다. 그들의얼굴은 당 황의 기색이 역력했다.
"하하 뭐, 그럴 역량이 안된다면 할 수 없지만 그냥 해본소리요."
[천마, 너 제정신이냐?]
[뭐? 뭐가 어때서? 이 놈의 무림맹에는 그래, 계집도 없다냐? 빨리 중원으로나가야지 원......]
"하하 농담도 참 걸쭉하게 하시는군요."
"농담이라뇨? 저는 그런 것 할 줄 모릅니다. 남자들끼리니 하는 말이오만, 술이라는것이 나 긋나긋한 여자가 따라 줄때에야 참맛이 나는 것 아니겠소? 차라리 우리개봉부로 나가서 한 잔 할까요?"
독고무의 급작스런 제안에 모두 머뭇거리고,
"되었다. 내일 일찍들 떠나야 하는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군."
파천이 단호하게 제지하고 나섰다.
"대령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간만에 중원행인데 잠을 설쳐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오늘은 이정도에서......"
"허 참, 그러니 더욱 회포를 풀어야 하지 않겠소? 모름지기 장도에 나서는 사내의밤은 여자 가 있어야 제격인법이지요."
참으로 끈질긴 놈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천마의 실체를 알고 있으니 상관없었으나그것을 전 혀 모르는 부령사들은 어이없어 하고 있었다. 조금 도가 지나치다는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아예 무시하는 방법이었으니. 졸지에잠룡대제의 손자 독고무가 또라 이 취급을 받는 순간이었다.
"대령사께서는 이번의 중원행에 대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곽운성의 질문이었다.
"먼저 악양에 들러서 그곳 지부의 사정을 들어볼 참이다. 강남에 있는 지부들가운데는 항주 다음으로 큰 지부이니 무슨 소득이라도 있겠지. 그러고나서, 무창에있는 남도맹에 들른 뒤 에 항주로 떠날참이다."
"그렇습니까? 그럼 여러날이 걸리겠군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 마도련의 총단이 그곳근처 어 딘가에 있을 듯 싶군요. 이번에야 말로 그들의 본거지를 알아 낼 수있었으면 하지만...... 그 것이 뜻대로는 안되겠지요?"
"허허 참, 이것 혼자라도 갖다 와야 할 참이구만. 이것 보시오. 개왕선배!"
천마의 말에 두 부령사의 얼굴이 구겨지고 말았다. 개왕은 무림맹 장로원주이자무림의 대선 배가 아니시던가? 잠룡대제와도 친구사이라고 했으니 그에게는할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 아 니시던가? 그 모습은 도저히 보아넘길 수 없을정도였고 성질 급한 곽운성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다.
"이것보시오. 공자. 아무리 참고 넘어가려 했으나, 도가 좀 지나치구료. 이자리에는 무림맹 뿐만 아니라 무림의 최고 배분자이신 대령사가 계시건만 아무리술을 마시는 격의없는 자리 라 해도 장로원주이신 개왕선배에게 그 무슨말버릇이오?"
곽운성의 말은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옳은 소리였다. 따지고 보면 독고무는잠룡대제의 손자 이자 북검회의 후계자라는 신분이긴해도 무당장문인과 동배인자신보다도 훨씬 후배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천방지축 까부는 모습이 심히 눈에거슬렸던 것이다.
천마의 시선이 곽운성에게로 향했다. 그는 실눈을 하고서는 눈주위를 심하게찌푸리고 있었 다. 심기가 상한 것이다. 하긴 그딴에는 최대한 예의를 차린 것이기도했으니 곽운성이 그것 을 어떻게 알리요?
"이것보시오. 곽나으리. 나와 한가지 내기를 하지 않겠소?"
그의 말은 확실히 의외의 제안이었다. 파천도 그가 발끈하여 고함이나 치지 않을까해서 내 심 불안하기까지 했으나 그가 의외로 이런 말을 하자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내기 말이외까?"
"나하고 내기를 해서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의 청을 한가지 들어주는 것어떻습니까?"
"으음...... 좋소이다."
그 또한 지고 싶지 않은 심정에 오기가 뻗쳐 순순히 승낙을 하고야 말았다.
"내기의 내용은 그쪽에서 정해 보시오."
천마가 곽운성에게 내기 종목을 고를 권한을 부여하자 곽운성이 단호히 거절했다.
"싫소이다. 그쪽에서 정하시오."
"그럼 내가 정하겠소. 내기 종목은 상대에게 서로 술을 따라주고 그것을 마시는것이오. 만약 마시지 못하면 지는 것이오. 반대로 말해서 빨리 마시는 사람이이기는 것이오."
"으음. 좋소."
이것은 듣기에는 쉬울 것 같으나 상당히 어려운 내기이기도 했다. 일종의 비무나마찬가지였 다. 술을 따라주고 술잔을 비우기까지 상대는 어떤식으로든 방해를 할 수있다. 그 방해속에 서 술을 모두 마셔야한 했다. 만약 마시지 못하면 내기에서 지는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가깝게 앉은 자리에서 펼쳐지는 것이기에 고도의 기술과내공운용이 없으면 불가능한 내기이 기도 했다.
파천도 흥미롭다는 듯이 그들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이미 파천은 누가 이길지알고 있 었다. 그야 천마가 당연히 이길 것이다. 문제는 그가 어떤 제안을할것인지가 궁금했다.
"내가 신호를 하지. 자 준비되었나?"
"네"
"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대답을 했다. 곽운성은 바짝 긴장하는 듯 했고 천마는여유로웠다.
"시작"
곽운성은 왼손을 앞으로 쫘악 펼치며 상대의 방해를 대비했고 오른손으로 잔을잡아갔다. 격 공섭물로 얼마든지 잔을 들지도 않고 마실수도 있었으나 상대의 방해가있을것이 분명하므로 안전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가 잔을 잡고 입으로 가져가고있었는데도 천마는 여유롭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곽운성의 술잔이 입술에닿았을때였다.
"윽"
하마터면 곽운성은 뒤로 넘어 갈뻔하였다. 갑자기 수십개의 손이 자신에게로 몰아쳐오는 듯 하더니 상대의 손이 왼손의 방어막을 뚫고 자신의 잔을 깨트리고 말았다.그러나 승리는 곽 운성에게 돌아가는 듯 했다. 잔이 깨어졌음에도 안의 내용물은흩어지지않고 그대로였으며 그것이 그대로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바로 그때 또 다시 괴사가 벌어졌다.
주전으로 곽운성의 입안으로 빨려들어가던 것이 흩어지는가 했더니 방향을 틀어독고무쪽으 로 뻗어갔고 어느새 독고무의 눈 앞에 뭉쳐져 있었다. 놀라운 허공섭물의진수였다. 이렇게 되자 곽운성은 급해졌다. 두 손을 뻗어 상대에게 공격을 퍼부으며뭉쳐져 있는 술을 뺏어오 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독고무의 하나밖에 없는 손이 다시쫘악 펼쳐지고 그것은 곽운성의 손을 모조리 튕겨내 버렸다. 순식간에 수십합의공수가 전환되고 있었다.
곽운성은 내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상대의 손과 부딪히는 순간 어깨까지 찌릿찌릿하게 저려 왔고 어수룩한 것 같아도 한치의 틈도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또한번의 괴사가 벌어 지고 있었다. 독고무의 눈앞에 떠 있던 술이 좌우로 팍하고흩어지는가 했더니 수증기로 증 발해 버린 것이다. 곽운성은 공기중으로 흩어져 버린술을 다시 모을 자신은 없었는지라 오 로지 독고무의 술잔만 바라보았다. 이제는독고무도 마시지 못하게 만들어 무승부로 가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독고무는 태연했고 하나밖에 없는 손은 잔옆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독고무가 곽운성을 쳐다보며 씨익 미소지었다. 그 순간 술잔의 술이 한줄기로 쭈욱입으로 빨려 들어 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본 곽운성은 내력을 돋구어 주전을 향해 손을 홱뿌리며 쳐내갔다.
탕
손과 주전이 부딪힌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억"
곽운성은 의자에 앉은채로 뒤로 주르륵 밀려 나 버렸고 주전은 그대로 독고무의입안으로 자 취를 감추고 말았다.
곽운성의 처참한 패배였다. 곽운성은 자신의 패배보다도 상대의 어이없을 정도로강함에 의 문을 나타내고 있었다. 몇 년간이나 갇혀 있었던 사람이 어찌 저리도고강하단 말인가? 듣기 로는 대령사의 수하중에 신의라 불릴만한 사람이 영약들로치유했다는 소리는 들었으나 이처 럼 강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던것이다. 어쨌든 진 것은 진 것이다.
"내가 졌소. 내가...... 어찌 하면 되오?"
"하하하하 별것 아니니 긴장하지 마시오. 술을 따라 줄 여자를 준비 해 주시오.이왕이면은 인원수에 맞춰주시고, 또한 나는 두명이상이라야 하오."
파천의 얼굴이 구겨졌다.
'역시...... 내가 혹시나 하고 기대한 것이 어리석었지. 역시 너는 오로지여자구나. 참으로 존 경스럽다.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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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두편은 내용이 좀 많죠? 사실은 내일 한편밖에......
앞으로 천마가 많은 사고를 칠 것 같군요.
그동안 파천도 버거웠는데 천마까지, 게다가 그는 파천의 말도 잘 듣지 않을 것 같고, 여러 모로 중원을 시끄럽게 할 것 같군요.
1부 완결을 100회 정도로 생각했는데, 좀더 늘어날 것 같네요. 앞으로 더복잡해지고 치열해 질 한판 대결을 기대해 주세요.
아, 그리고 혹시라도 이런 이름을 추천합니다. 하시는분, 이름을 지어서 보내주시면그대로 올려 드립니다.(사실은 앞으로 나올 인물이 너무나 많은데 이름짓기가신경이 쓰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