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일어서는 마도련!
사천성도를 중심으로 해서 사천성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요 근래의 괴사의 흉수가 오련회 총단을 침투했다가 부상을 입고 도주한 사실이 알려졌고, 이것 때문에 수상한자들이다 싶으 면 검문을 하고 말을 듣지 않거나 도주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체포되고는 했다. 이 바람에 지방관청에서 수배한 흉악범들이 여럿 잡히는 일까지 발생했으니, 단 몇 시진만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어둑어둑했다. 습기가 느껴졌고 여기저기 치솟은 돌들이 제각 기 기이한 모양들을 하고 어지럽게 늘려 있다. 그 사이로 이름도 분명치 않은 곤충들이나 때로는 징그러운 뱀들도 보였고 천장에는 물방울이 맺혀서 땅으로 떨어진다. 한 쪽에는 마 른 풀을 뜯어 뭉쳐놓은 자리가 보이고 그곳에 한 명의 소녀가 누워 있었다.
"아......헉헉"
그녀를 내려다보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윗옷을 걸치지 않고 있었는데 옆구리를 붕대로 칭 칭 감고 있었고 함빡 피에 젖어 있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누워 있는 소녀를 쳐다 본다.
"괜찮겠어? 의원이라도 하나 잡아올까?"
"됐어. 그만둬. 이까짓 상처쯤이야."
소년보다는 소녀의 상처가 큰 듯 했다. 한쪽다리의 허벅지는 역시 붕대로 감겨져 있었으나 그곳에서는 지혈을 했음에도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이미 상당한 피를 흘렸기에 어지러 움을 느꼈다. 소년은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이것이라도 먹어 둬라. 지혈은 했지만 뼈까지 다친 상황이라 고통이 심한 것이다. 다행히 신경은 손상이 없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더군다나 내상조차 심하 니......"
그는 손에 들린 약병에서 노란 환약을 꺼내 소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녀는 이내 눈을 감 고 조용히 잠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년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빌어먹을...... 이것이 아닌데, 우리가 너무 경솔했다. 오련회주라 했던가? 그 놈! 이 수모는 반드시 되돌려 주고야 만다. 이 사실을 사형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도 피곤한지 한쪽에 몸을 눕혔고 이내 잠에 빠져 들어갔다.
그가 눈을 뜨니 소녀는 이미 깨어나 있었다. 그녀는 벽에 상체를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소소. 이제 좀 견딜만하니?"
"응.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모르겠다. 젠장. 설마 우리가 이런 꼴이 될 줄이야."
"이렇게 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지는데...... 무림정세에 대한 조사도 채 마치지 못했잖아?"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사형들이 들어오실 때까지 기다려 보는 수 밖 에......"
"그자. 굉장히 강했어. 중원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아."
"후후 그야 당연하지만, 문제는 그자가 제일 강한 자가 아니라는 거지. 그자는 무림칠기의 말석에 겨우 위치하는 자야."
"무림오천이란 자들은 얼마나 강할까? 이제야 사부님이 예전에 마도련주와 동맹하려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아."
"나도 이제야 그것을 알겠다. 섣불리 대들다가는 일패도지(一敗塗地)하기 십상이지. 차라리 기회를 보고 있다가 다른 세력들이 지쳤을 때 공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대사형은 그렇게 하지 않을걸. 사부님도 이미 전권을 대사형에게 넘겼으니......"
소랑은 몸을 한쪽에 눕히며 한 숨을 쉬었다.
"후우. 대사형의 불같은 성격을 누가 막겠느냐? 사부님 조차 안중에 두지 않으니...... 앞으로 의 상황이 염려스럽다."
"너 가서 빨리 소식이라도 전하고 와라. 밑에 애들이 걱정하고 있겠다. 우리가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혹시라도 사형들에게 이 소식이 들어가면?"
"놔 둬. 그러면 좀더 중원에 빨리 들어오겠지. 이 기회에 푹 쉬고 몸조리나 하자."
"으음......"
소소는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소랑도 착잡하기는 매 한가 지였다.
★ 악양의 모습은 겉으로야 달라진 것이 없는 매일의 모습과 마찬가지였으나 적어도 무림에 적 을 두고 있는 자들만은 달랐다. 특히 무림맹 악양지부는 술렁이고 있었고 잔뜩 흥분되어 있 었다. 악양지부가 생긴 이후로 최고의 귀빈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도 사령대가 악양지부에 도착한 것은 오시가 넘긴 시간이었다. 그들은 악양의 동부로에 위치하는 지부에 들어가자마자 이 지역의 모든 무림방파들의 수장들을 불러 들였고 그들에 게 모종의 지시를 내렸다. 이곳에서는 힘깨나 쓴다는 그들도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안 절부절못하게 만드는 자! 그야 물론 정도사령대의 대령사인 옥면신룡 문윤 대협이었다. 무 림맹 제2인자라는 그의 직위보다도 무림오천이라는 그의 명성과 무림의 최고배분자라는 그 의 신분이 빚어낸 현상이었다.
정도사령대의 사령들을 바라보는 파천의 시선은 고요하기만 했다. 대전을 비워주고 밖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는 지부장은 감히 이 자리에 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전 사령들에게 명한다. 이곳 악양을 중심으로 삼일간 지부 괴멸에 대한 단서를 포착한다. 이번의 임무는 순전히 두 가지에 집중된다. 그 하나는 무림지부괴멸을 주도한 마 도련 세력의 이동경로를 포착하는 것! 또 하나는 그들의 본거지를 알아내는 것! 분명히 밝 히는데 이번의 임무는 조사에 불과하니 필요 없이 정도를 지나쳐 무리하는 일이 없도록. 만 약 단서를 포착한다하더라도 결코 혼자서 처리하겠다는 생각은 버리도록, 알겠나?"
"존명"
사령들 200명이 질러대는 소리가 대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5인 1조로 행동을 같이 하고 필요하다면 지부의 힘을 빌려도 된다. 이곳 악양 뿐만 아니라 항주, 소주, 무창, 등지까지 상세하게 살피도록 한다. 이후 삼일 뒤에 이곳 악양으로 재집결 하도록. 그리고 만약에 신변에 무슨 일이 있거나 도저히 제시간에 모일 수 없어서 늦어지겠 거든 개인적으로 무림맹으로 가서 대기한다. 중간에 마도련의 세력을 발견하더라도 섣불리 도발하는 어리석음은 범치 않기를 바란다. 그런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니깐......"
곽운성이 파천의 그 말에 고개를 떨구었다.
"부령사들은 조를 지정해 주고 그대들은 이곳 지부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도록 해 라."
"존명."
"존명"
"이상. 질문있나?"
★
"대령사께서는 마도련 총단에 들어가실 참이십니까?"
"후후 알면서 뭘 묻나?"
방안이었다. 독고무와 파천은 탁자를 사이로 마주 앉아 있었고 그들 앞에는 질 좋은 화운 (火運)산 도자기의 찻잔이 놓여 있었다.
독고무는 천마를 통해 파천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파천을 보고 있자면 혼란 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처음의 파천에 대한 판단은 천하를 삼키려는 마 황 정도로 여겼었다. 그런데 그를 곁에서 겪어본 바로는 단순히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인 물이라 여겨졌고, 또 어떨 때는 자신의 그런 판단이 옳다고 여겨지기도 하니, 어느 것이 저 자의 진정한 실체란 말인가?
"마도련의 마도대공이 대령사임을 알게된다면 과연 정도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말해 무엇하겠나? 날 무림공적쯤으로 몰아 놓고 처단하려 하겠지. 믿음이 큰 만큼 배신감 도 클 테니....."
천연덕스럽게 평가를 내리기까지 하는 파천! 독고무는 그런 그를 보며 실소를 흘린다.
"장차 그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지는군요."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 사실은 영원히 밝혀지지는 않을 테니 말이야."
"후후 세상에 절대적으로 장담할 일이란 없지요. 혹시 압니까? 내가 어느 날 마음이 바뀌어 실토할지......"
"하하하 그것도 좋겠지. 한가지 알아두게.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좋아질 것은 하나도 없지.
먼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은 내 손에 먼저 죽을 것이고 무림 또한 전대미문의 혈겁을 감당해야 할 테니 말이다. 천마교의 세력은 전 무림을 상대로 일전을 결할 정도는 되지."
할말을 잃어버리는 독고무다.
"율극 들어와라."
드르륵
문이 옆으로 밀려나더니 사라의 오빠인 율극이 들어섰다. 그는 지금껏 밖에서 대기하고 있 었던 것이다. 흐리멍덩한 눈빛하며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는 꼴이 영락없는 백치의 모습이 었다. 그러나 잘 씻겨놓고 검은 무복으로 갈아 입혀 놓자 보아줄 만은 했다. 그는 파천을 두려움과 존경(?)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그의 여동생인 사라는 떠난 뒤였다. 그 녀는 파천이 써 준 서찰을 들고서 북해빙궁으로 떠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무림 정세에 한 가닥 변수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너, 나와 함께 갈곳이 있다. 앞으로 내 특별한 지시가 있기 전에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알겠느냐?"
"히히 주인아. 알았다."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저 백치를 데리고 다닐 수 있을까? 그렇다고 떨어뜨려 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을 못하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악양지부 뿐만 아니라 근처의 사람들은 눈에 띄는 족족 죽이려 들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의 무공만큼은 가공한 것이니 속절없이 죽 음을 맞아야 하리라.
어떻게 된 것이 천마섭혼술이 제대로 먹혀 들어간 것 같았는데도 튀어나오는 말들은 하나같 이 반말이었고 가끔씩은 사리에도 맞지 않는 말들을 뱉어내기도 했다. 어찌 보면 네 다섯 살 어린아이를 보는 듯도 했다. 그렇다고 그의 말을 거역하거나 토를 달지도 않았고 비교적 잘 순종하는 편이었다.
"저 놈을 데리고 들어가기도 그렇고 내 버려 두자니 더 불안하고...... 할 수 없지. 이것도 다 내 팔자려니 해야지. 천마의 꼬드김에 넘어간 내 자신을 한탄 할 수밖에......"
파천은 부령사들을 불러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에 악양지부를 벗어났다. 그의 뇌리에는 조 금 전 부령사가 전해준 말이 맴돌고 있었다.
"개방에서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무창근처에 있는 화룡림에서 일단의 무사들이 대치를 하다 사라졌다 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남도맹의 천향옥봉 소저가 있었고 일단의 무리들에게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11명이었으며 하나같이 젊은 무사들이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 니라 그들의 수하로 보이는 천 여명의 기마대도 있었다 합니다."
결국 그 개방도는 천향옥봉이 끌려 간 것으로 보고를 하였나 보다. 파천은 예상과는 다른 보고에 일시 의문을 가진다. 누가 그들과 대치를 하였다는 말인가? 제 삼의 세력이 개입을 했다는 말인데? 그 중에 어느 쪽으로 천향옥봉이 끌려간 것인가? 그녀의 가치가 무엇이기 에 다른 세력이 개입을 했지? 그리고 큰 충돌조차 없이 무마가 되었다니 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일단 그녀를 구해놓고 보는 건데?'
후회해도 이미 늦어 버렸으니, 무엇이든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추진해오던 파천에게 근래의 일은 여러 가지로 순탄치 못한 결과를 그에게 보일 때가 많았다.
"야, 너희들 이제 얼굴들 바꿔"
동정호 근처에 도달한 파천이 뱉어 낸 말이었다.
★ 마도련은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마도대공이 돌아오신 것이다. 그 동안 칙칙한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던 분위기는 일시에 화창한 햇빛아래 드러나고 모두의 가슴에는 뿌듯한 안정감이 차 오르니, 그에 대한 불만이 있든 없든 간에 그의 비중과 위력만큼은 지대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존마전의 태사의에 앉아 있는 파천에게 광마존과 군사가 돌아가며 보고를 했다. 그 동안 마 도련에서 있었던 사건들이 주된 보고였고 이후 무림정세에 대한 일부정보와 무림맹의 움직 임, 특히 정도사령대가 악양에 머물고 있다는 보고까지 올라왔다.
"좋아. 그만하면 대충 알겠군."
그는 고개를 들어 좌중을 돌아보았다. 마도련 전 지도부가 소집되어 있었다. 그들은 아래쪽 에 포단을 깔고 앉아 있었는데 파천의 시선이 자기 쪽으로 오자 얼른 고개를 숙이는 모습들 이었다.
"이 한심한 군상들아!"
첫마디가 그것이었다.
"흑호문의 단야적풍이 죽어? 뭐, 그럴수도 있겠지. 약한 놈은 강한 놈에게 죽기 마련이 니...... 문제는...... 그런 일이 벌어졌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한 심한 작태가 문제로군. 정도타도라? 어느 세월에? 그 정도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표류하 는 작자들이 어느 세월에 정도타도를 하시겠냐고? 응? 좋다. 다 좋다. 어떤 놈이 숨어서 그 따위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이곳 어딘가에 있단 말이지?...... 군사!"
"네. 대공"
"수사진척 상황은?"
"아직 아무런 단서도......"
"한심하기는, 언제까지 그 놈의 단서타령이나 하고 있을 건가? 간단하게 생각하라고......"
"무슨 말씀이신지"
"셋 중에 하나일거야. 첫 번째는 이 중에 누군가가 제 실력을 감추고 있거나, 그것은 거의 희박해. 내가 보기에 그 정도로 똘똘해 보이는 자들은 없으니......"
파천의 그 말은 그들 모두를 모욕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일언반구도 못하고 고개만 을 조아리고 있었다.
"두 번 째는 간부진을 제외하고 그 정도의 고수가 숨이 있는 경우. 상당히 가능성이 있지.
세 번째는......"
말을 일시 끊고는 군사를 쳐다본다.
"무엇일 것 같나?"
"혹시?"
"말해봐."
"대종사를 의심하시는?"
"그렇지. 세 번째는 바로 그것이다.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문제는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일단은 그 문제는 덮어둔다. 더 이상 흉수를 찾는 일에 매달리고만 있을 시점은 지났다. 이제는 본련이 물위로 떠오를 때 다."
모두의 시선이 격동을 보였다.
"더 이상 지하에서 움츠리고 있지 않겠다는 말이다. 내가 살펴본 무림정세에 의하면 더 이 상 머뭇거리다가는 선기를 빼앗기고 만다. 한번 힘조차 써보지 못하고 물결 뒤로 밀려 나 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기저기서 세외세력의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고 일부는 중원 깊숙이 들어 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징후들이 보인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움직인다."
군사 제갈초홍이 파천의 다음 말을 끊어버렸다.
"그렇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
파천이 다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때는 만들면 그만이다. 전 비밀지단과 총단의 전 세력을 한꺼번에 집중시킨다. 그래서 남도 맹을 선두로 한 무림의 남부지역을 일시에 장악한다."
쿠궁
그 말은 모두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는 듯 했다.
'드디어 시작되는 것인가?'
일부는 묘한 흥분마저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대공. 다시 한번 재고하심이, 남도맹을 치게 되면 무림맹과 전면전으로 갈 양상이 짙습니 다."
"그래서? 군사는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남도맹을 제외하고 그 아래쪽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는 것이"
"후후 이상하군. 병법에 대해서 잘 아는 군사가 그런 어리석은 소리를 하다니? 우리는 세력 의 힘으로 봐서는 분명히 무림맹 보다 열세다. 남도맹의 위치가 어디에 있지? 무창이지? 그 곳은 장강을 기준으로 해서 남쪽이다. 남도맹이 건재하다는 것은 무림맹이 언제든 그들의 세력으로 유리한 전략지역을 선점하고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남도맹이 우리 손아귀 에 들어오면? 상황은 그와는 다르다. 그들은 남도맹 정도의 전진기지가 장강 근처에는 없 다. 결국은 직접 세력을 정비해 주력부대가 맹에서 나오는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이점을 우리가 선점하는 것이다. 첫째 시간을 벌 수 있게 해 준다. 아무리 우리가 총력을 펼친다 해도 대강 남부 지역을 장악하려면 상당한 손실이 따르게 된다. 그러니 전력 을 재정비할 시간은 필수적이다. 두 번째는 심리적 경계점을 장강으로 쌍방간에 줌으로서 장기전으로 갈 양상이 많게 된다. 왜냐고? 우리가 남부 아래쪽에 본진이 있다면 당장 남쪽 으로 들어오고 보겠지만 장강에 연한 무창과 악양이 본거지라면 그들은 멀찍이서 상황을 바 라보게 된다. 한번에 쓸어버리기 위해서는 완전한 승리의 확신이 들지 않는 한 장강을 넘어 서지는 않을테니......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간을 벌고 장강이 경계점 역할을 함으로 흩어져 있는 마도의 세력들 을 규합할 수 있다. 이 정도만의 이점으로도 우리는 어쩌면 무림맹과 대등한 전력을 소유할 수 있다고 보는데 군사의 생각은 어떤가?"
할 말을 잃은 채 멍해진 제갈초홍! 분명히 허점이 많은 얘기임에도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송두리째 사람의 마음을 끌어 당겨버린다. 지금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시선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마저 떠올라 있지 않은가? 그들의 가슴에는 마도인 의 피가 절절 끓어오르고 있었고 지금껏 당한 서러움이 돌파구를 찾아 부딪혀 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서 무슨 반대를 할 것인가? 제갈초홍은 고개를 숙이며 수긍하고 만다.
"대공의 말씀을 듣고 보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녀의 얼굴은 근심으로 물들었다.
'후후 계집! 네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무슨 의미인가?
"모두 잘 들어라. 정확하게 한 시진 뒤에 다시 한번 이곳에서 모인다. 그전에 자신이 맡은 세력의 정확한 인원과 세력의 분포를 확인해보고 군사는 지단의 세력분포를 다시 한번 상세 하게 정리해 놓도록. 더불어 마도련 전 총단에 지금부터 무기한 비상을 걸고 아무도 이곳에 서 나가거나 들어오지 못한다. 이후는 모든 것을 비상시의 율에 따라 시행할 것이므로 세심 한 배려를 하여 자그마한 실수도 보이는 날에는 그 자리에서 참살하겠다. 이상이다. 모두 나가보라."
"존명!"
"존명!"
그들의 외침이 오늘따라 더욱 힘차 보였다. 작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었고 어쩔 수 없는 절망감에 몸부림치던 때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존마전을 빠져나가는 모습들에는 끓어오르는 무사의 혼을 주체치 못하는 흥분이 엿보인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파천은 자리를 옮겼다. 광마존등이 뒤를 따랐다. 광마존은 독고무와 율극을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지존이 데리고 온 자들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 이었다. 특히 율극은 광마존이 자기를 바라보자 바보같이 헤하고 웃기까지 했다.
'저 놈 미친 놈 아냐?'
진짜로 미친놈임을 알면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 "그래 어떻게 되었지?"
파천의 질문에 대답하는 광마존은 자신을 향해 누런 이빨을 드러내 놓고 웃는 율극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네...... 군사 말대로 범인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각도로 조사해 보았지만 흉수는 이들 중에는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존의 말씀대로 대종사의 짓인 것 같습니다."
"으음...... 군사에 대한 조사는?"
"의심은 가지만 그녀 또한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무영존 네가 말씀드려라."
"군사의 처소를 은밀하게 조사해 보았으나 별다르게 의심이 가는 점은 없었습니다. 그녀가 살인이 일어나던 당시에 처소를 비웠다는 증언을 확보해 두었지만 직접 그녀를 다그치지 못 해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니......"
"됐다. 그것은 그 정도로 해라. 어차피 그녀가 관여되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수 작을 부리겠지. 앞으로 정신들 바짝 차려라. 아차 실수하는 날에는 생명줄을 놓아야 하 니......"
"네"
"대제자 한당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듯 하나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지존께서 다그치시면 대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후후 하기는 대종사의 짓이라면 그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우선은 너희들도 무림맹의 세력을 치는데 돕도록 하고 너무 일선에 깊숙이 나서지는 말아라...... 그리고 단장 "
"네."
"너는 기회를 틈타 금응을 타고 본교에 한번 갔다 와야겠다."
"네? 본교에요?"
"그래. 가서 마황검위대 1600명을 중원에 침투시켜 놓도록. 미리 쌍노에게 연락을 취해 놓 을 테니 은신처를 준비해놓고 떠나도록 한다."
"존명!"
"드디어 본교의 세력이 들어오는 것입니까?"
"아직은 아니다. 일부만 들어오는 것이지. 너희들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도록 해라.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녀석들 엄청나게 강해져 있을 테니 말이다."
"으음"
"......"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는 사이에 그들은 교에서 무공수 련만 하고 있으니, 더군다나 천마비고까지 개방된 마당에야, 그들의 진전은 대단하지 않겠 는가? 파천의 그 말에 무영과 단장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영은 12마공자 중 최 고수 였고 단장은 4화 중 최 고수였다. 어쩌면 머지않아 누군가에게 추월 당할지도 모른다.
광마존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얘기여서 그런지 시큰둥해서 파천과 동행한 두 사람을 쳐다보 았다.
"이 두 명은 누굽니까?"
참 빨리도 물어 본다.
"아! 서로들 인사들 하거라. 이쪽은......"
뭐라고 소개를 해야 하나? 파천은 망설이다 그 동안의 사정얘기를 한다. 두 사람에 대한 소 개를 받자 세 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율극도 덩달아 일어났다. 당연히 독고무 때문 에 자신들도 모르게 취한 행동들이었다. 천마조사라니? 파천의 내면에만 있다던 천마조사가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그들이 긴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큿큿큿, 지금은 천마가 아니라는 말은 듣지도 않고......'
"야, 야 앉아라. 어지럽다. 지금은 잠룡대제의 손자인 독고무일 뿐이니......"
그제야 엉거주춤 자리에 앉는 그들이었다.
"독고무라고 합니다."
독고무가 자기 소개를 하자 광마존등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광마라고 부르십시오."
"전 무영이라고......"
"전 단장이에요."
"난 율극이다. 히히히"
율극이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들을 흉내냈다. 머쓱해진 광마존이 그를 쳐다보며,
"지존. 이 녀석 정말 바보 아닙니까?"
"바보다."
"으음"
"난 바보다. 히히 난 율극이고 바보다."
"되었다. 율극 그만해라."
모두들 자리에 앉더니 복잡한 심사를 드러낸다. 한명은 천마조사이고 또 한명은 구음진경을 익힌 초고수라니......
안 그래도 최강의 전력에 그 둘마저 가세했으니...... 장차 이들을 막을 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 파천은 마도련의 고수들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고 군사가 자세한 중원의 전도를 가 져다 놓고 세세하게 설명을 했다. 크게 8개의 세력으로 분산되어 출진하게 되며 그들을 4공 자와 내외당, 천인대와 마안대가 측면 지원한다. 비밀지단의 인원들까지 하면 총 인원 4만 명에 육박하는 대군이 편성되었고 그들이 장악해야할 지역이 배정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배정된 지역에 위치하는 문파와 무림맹 지부들을 숙지하고 이어 그곳을 어 떤 식으로 격파하여야 할 지에 대한 군사의 지시를 들었다. 역시 그녀는 제갈가의 후예다웠 다. 한번 시작하니 막힘이 없었고 재삼 재사 숙고하여 짜 놓은 전략을 풀어내기라도 하듯이 완벽하다 할 정도의 세밀한 작전이었다. 그것을 보며 파천도 감탄을 드러냈다. 진정으로 대 단한 두뇌가 아닐 수 없었다.
이번 작전은 뭐니 해도 신속함이 절대 우선시 되었다. 빠른 시간 안에 장악을 하고 곧 바로 무창과 악양으로 집결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