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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皇帝)의 검(劍)- [74] (74/111)

 - 황제(皇帝)의 검(劍)- [74]

 파천과 시선이 마주친 상여락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남을 느낀다.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본능적인 느낌이었다. 지금의 파천이라면 그가 죽이기에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들을 슬슬 농락하며 지금까지 쌓아왔던 울분을 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 금 저 놈의 눈길은 그것조차 불안케 만들었다. 바로 그때다. 순간적으로 딴 생각에 몰입해  있던 상여락에게 파천이 검을 곧추세우고 진격해왔고 그런 그를 향해 상여락의 장심에서 불 이 뿜어져 나간다. 검강으로 공격을 할 줄 알았던 파천이 오히려 검막을 발동하며 수비자세 로 돌아서고 상여락이 발출한 장력은 고스란히 파천의 검막에 격중된다.

 콰앙

 파천은 그 힘을 빌려 뒤로 퉁겨가며 몸을 솟구쳤다. 번개처럼 민첩한 몸놀림이었다.

 "아니, 저 놈이?"

 그가 도주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상여락이었기에 한동안 대처를 하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순간 놈의 마지막 눈길이 떠오르자 그는 다급해졌다.

 "저, 저놈을 놓치면 안 된다."

 이미 사방은 포위된 형국이었기에 파천이 아무런 저지없이 도주하기란 불가능했다. 교묘하 게 공격을 피하며 포위망을 뚫어 보았으나 그 또한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미 바짝 뒤를  따르는 상여락의 모습이 보였음에야.

 "이놈!"

 달리던 걸음을 늦추지 않으며 상여락이 발출한 장력을 또 다시 검으로 막았다. 파천은 그  힘을 빌려 더욱 빠른 속도로 도주하고......

 상여락은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 날 정도로 대노했다. 놈의 경신술은 워낙에 교묘하고  또한 신속했다. 아무리 앞을 막으려 해 보았으나 그때마다 방향을 틀어가며 다람쥐처럼 빠 져나가는 것이다. 그나마 앞에서 수하들이 조금이라도 그를 몰아붙여주니 다소 속도가 늦추 어져서 그렇지, 그러지 않았다면 그를 잡기가 쉽지 않을 듯 여겨졌다. 내공의 수위에 비해  파천의 경신재간은 뒤를 좇는 상여락을 놀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상여락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어두워지면 어쩌면 그 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이다. 산을 벗어나서 평원 쪽으로 내달리던 파 천이 멈추어 선 것은 어쩔 수 없는 장벽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세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어 느새 이곳까지 와서 그의 도주로를 봉쇄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후 여기까지다. 천마서생이라 했나? 감히 외호에 천마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놈치고는 대 단치 못한 놈이군. 기껏 생각해낸 것이 도주라니 말이다."

 세 명의 노인은 둥그렇게 파천을 포위하고는 점차로 간격을 좁혀 온다. 그제야 장내에 당도 한 수하들이 상여락의 명령에 따라 주위를 엄밀히 포위했다.

 "이제 포기하고 그만 목을 늘어뜨려라. 순순히 죽음을 당하는 것이 그나마 꼴사납지 않고  품위가 있지 않겠는가?"

 "모두 죽인다. 이 간악한 놈들, 그 따위 치졸한 암계 따위나 쓰는 놈들은 무인이라 할 수도  없다. 모두 죽여주마."

 파천이 흥분하여 외쳤다. 평소의 지나칠 정도로 냉정한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세 노인 중에 한 명이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낸다. 그것은 금척(金尺)이었다. 

 길이가 한자 반 정도나 될까한 것으로 보통의 무림인들이 병기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 었다.

 "후후 내가 너의 거친 입을 다물게 해주지. 어르신네의 손에 죽음을 맞는 것을 영광으로 알 아라."

 말을 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꾸부정한 허리가 우두둑 소리와 함께 곧게 펴지고 흐리 멍덩한 눈에서도 언제 그랬느냐 싶게 예기가 뻗쳐 나온다. 그는 금척을 파천에게로 향해 세 우더니 희미한 미소를 배어 문다.

 "클클 이것은 본좌의 독문병기이지. 이른바 사망금척(死亡金尺)이라는 것이다. 네가 몇 수까 지 피하는지 볼까?"

 그리고는 아무런 예비동작도 없이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금척은 점차로  그 속도를 배가하더니 나중에는 원반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그 속도가 절정에 달하자 파천을  목표로 쏘아진다.

 파천은 검을 들어 전면에 세우고 뚫어지게 금척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너무나 빠르게 돌아 가는지라 파공성이 공간을 찢어발기고 그 움직임도 신묘막측하여 감히 그 경로를 예상하기 가 쉽지 않았다.

 고오오오

 캉

 검을 들어 막기는 했으나 여지없이 격퇴되어 뒤로 물러서는 파천이었다. 땅을 딛고 있는 발 에 힘을 주어서인지 땅이 패이며 도랑을 파 놓는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었다. 금척은 잠시 도 쉬지 않고 곧 바로 파천의 상체를 휩쓸었다.

 캉

 "억"

 얼마나 위력이 큰지 검을 쥐고 있는 손목이 시큰거렸다. 금척이 다시 노인의 손으로 들어가 더니 이번에는 낮게 바닥에 깔려서 날아왔다. 파천은 금척이 곁에 이르자 슬쩍 옆으로 비켜 섰고 바로 그때, 위로 솟구치며 어깨를 스친다.

 팍

 "으음"

 파천은 신음을 토해냈다. 금척이 핥고 지난 자리는 찢어져 순식간에 피로 젖어든다. 점차  들고 있는 검조차 무겁다 여겨지니, 지금의 그로서는 도저히 막아낼 성질의 공격이 아니었 다.

 회수된 금척을 들고 있는 노인은 오만한 표정으로 파천을 비웃고 있었다.

 "무림오천이라 불리는 놈들이 하나같이 너처럼 약하다면, 중원을 제패하는 것도 그리 어렵 지 않겠군."

 분노 이전에 짜증이 났다. 저 놈들은 어떻게 된 것이 암계로 우위를 점한 사실은 약속이라 도 한 듯 일언반구도 없고 오히려 정상적인 파천을 제힘으로이기고 있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하지 않는가? 부끄러움이라고는 아예 모르는 자들이라 여겨졌다. 하긴 그런 빌미를 제공 한 자신을 탓해야지 누굴 원망하겠는가?

 파천은 대꾸조차 귀찮은지 반응조차 없었다. 단지 이글거리는 분노와 약간의 권태감이 내비 칠 따름이었다.

 "이제 더 이상 살기 귀찮은가 보구나. 좋다. 죽여주마."

 사위는 어둠에 뒤덮여 있었고 그곳 허공 중으로 다시 금척을 세워든다. 또 다시 금척은 파 천을 괴롭힐 것이다.

 "이번에는 조심해야 할 것이다. 순식간에 생명을 뺏어갈테니......"

 팽

 그 말을 끝으로 금척은 또 다시 날아온다. 그의 말대로 허공을 선회하지도 않았고 직선으로  쏘아져 왔다. 파천은 검자루를 굳게 잡았다. 이번에는 그도 금척을 쳐내며 앞으로 뛰어가리 라 다짐했다.

 "오너라"

 입술을 잘근 씹어 뱉는 말이 파천의 입에서 흘러나온 바로 그 순간이었다. 금척이 맹렬하게  돌아가는 곳에서 또 하나의 금척이 분리되더니 순식간에 파천의 두 군데를 노리고 쏘아진 다. 워낙에 지척지간에서 분리되었는지라 하나는 도저히 막을 수 없어 보였다.

 캉

 "꺽"

 털썩

 파천은 검으로 땅을 짚으며 쓰러지는 몸을 간신히 지탱했다. 하나의 금척은 다행히 쳐내는 데 성공했다. 또 하나의 금척은 옆구리를 한웅큼이나 뜯어내며 지나갔다. 손으로 틀어막아  보았지만 흘러내리는 피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순간적으로 혈도를 짚어 지혈을 하려 했 으나 소용이 없었다. 점차 맥이 빠지고 눈 앞이 흐려왔다.

 정신은 분노로 말짱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니 자신의 의지로는 어찌 할 수 없는  한계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럼에도 파천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검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 고 무리가 따르는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슬픔의 눈물 이 아니었다. 분함의 눈물이었다. 처절한 분노를 풀길 없는 한 서린 눈물이었다. 놈들을 죽 이고 싶었다. 지금처럼 살인의 욕구가 넘쳐 난적이 있었던가?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했 다.

 '놈들을 죽여야 하는데...... 천마, 독고무...... 미안하다. 너희들의 복수를 할 수 없을 것 같 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정말 이리 헛되게 죽어야 한단 말인가?'

 "안~~~~~~돼!"

 파천은 몸을 떨치고 일어났다. 어디에서 솟아난 힘인지는 모르나 벌떡 몸을 일으키는가 했 더니 노인을 향해 뛰어간다.

 "으아아아아"

 검을 하늘을 향해 세우고는 무작정 뛰었다. 2장 앞까지 당도하자 발을 구르며 도약했고 온 몸의 힘을 다해 검을 내리그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노인은 비웃 음을 흘리며 왼발을 축으로 옆으로 슬쩍 비켜서더니 금척을 검의 선로를 비집고 쑤셔 넣었 다.

 "꺽"

 너무나 빠르고 교묘했는지라 금척은 파천의 검을 비끼며 오른쪽 어깨에 깊숙이 박혔다. 회 심의 미소를 짓던 노인의 눈이 놀람으로 부릅떠지고 그는 황급히 금척을 뽑아내며 뒤로 몸 을 솟구쳤다.

 찌이이익

 어깨에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파천의 검이 멈추지 않고 자신에게 쇄도해오자 그가 놀라 몸 을 빼낸 것이다. 파천의 검에 의해 상의자락이 찢어지며 가는 혈선이 그어졌다. 한 순간만  늦게 움직였다면 그의 검에 의해 동강이 났을지도 몰랐다.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기도 힘에  겨운지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파천의 의지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안돼.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으아아아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단 말이다."

 그는 또 다시 노인에게 덤벼들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무모한 몸부림이었다. 그저 검을 들 고 공간을 휘젓는 몸짓에 불과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장내의 인물들에게서 묘한 분위기 가 흐르고 있었다. 누구나 삶에 대한 집착은 강하리라. 그렇지만 단지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눈앞의 놈의 행동은 왠지 너무 처절한 것이었다.

 노인은 금척으로 다시 파천의 검을 튕겨내며 재차 찔러왔다. 이번엔 심장이었다. 단숨에 생 명을 뺏어버리기 위함이었다. 공격하는 그 조차 미쳐 날뛰는 파천의 기세에 섬뜩함을 느꼈 던 것이다.

 푹

 금척이 살을 가르며 박히는 소리였다. 금척을 파천의 몸에 쑤셔 박은 노인은 오히려 놀람의  표정을 드러내었다. 마지막 순간에 파천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고 그 바람에 심장 옆을  관통한 것이다. 노인은 금척을 뽑아내며 왼손으로 파천의 오른쪽 늑골을 때렸다.

 펑

 "으악"

 비명성을 질러대며 허공을 날아가는 파천의 입에서는 시커먼 피가 토해지며 점점이 허공에  뿌려졌다. 바닥에 쳐 박힌 파천은 잠잠했다. 엎어져 있는 파천의 고개가 힘겹게 치켜지고  다시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다. 그럼에도 그는 일어설 수 없었다. 이제 그에게는 몸을 일으킬  기력조차 없는 것이다. 단지 무의식적으로 발버둥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한번씩 몸 을 꿈틀댈 때마다 입에서 시커먼 피가 게워지고 여기저기 난 상처로 인해 바닥이 피로 젖어  들어갔다. 이제는 죽음만이 그를 편히 쉬게 해 줄 것이다.

 '이렇게 죽을 수 없어. 제발...... 하늘이여, 나에게 힘을...... 내가 죽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어 야 하오. 날 믿고 따르는 자들을 고통 속에 버려 둘 수는......'

 아! 그런 이유로 저리도 처절하게 죽음을 거부하는 것인가? 그의 가슴에는 누구보다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었던 한 번의 경험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하는 욕망이 남다르게 강했고 그로 인해 스스로 더욱 잔인해져야만 했었다.

 더 이상은 잃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에게는 냉정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 모든 행동들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릴 수 없다는 단 순한 목적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스스로 자기 앞에서  목숨을 끊고 눈물로 그의 안위를 걱정하던 신하들과 그리고 궁녀들...... 또 다시 이렇게 허 무하게 사라져야 하는가? 진정 내가 숨쉴 공간은 이곳 하늘 아래에는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 가?

 "큿큿큿"

 파천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자조적인 웃음은 너무나 공허했다.

 "쿨럭 쿨럭"

 또 다시 피가 게워졌다. 살아 있는 것이 이리도 힘이 들 줄은 몰랐다. 가슴이 아팠다. 그런 데도 의식은 점차 선명해지는 듯도 하니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여락! 마지막은 네가 장식해줘라."

 "네, 사숙"

 상여락은 허리의 검을 뽑아 들었다. 달빛을 받아 번쩍이는 보검이었다. 상여락은 아주 흡족 한 미소를 배어 물며 파천에게로 다가선다. 그의 목을 잘라주기 위함이었다. 무림오천 중  일인이자. 마도의 신성으로 무림에 등장한 초고수! 따지고 보면 자신은 무림맹주라는 지위 로 인해 무림오천의 일인으로 불렸다면 이 자는 순전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무림오천으로 불 린 자다. 그런 고수의 목을 자신의 애검으로 잘라낸다고 생각하니 왠지 흥분이 되었다. 머 리맡에 선 상여락이 파천을 내려다보았다.

 "후후 네가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한탄해라. 네가 약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재수가 없어서 이지. 채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죽는 고수들이 한둘이겠느냐? 강호가 원래 그런 곳이니 누 구를 원망하겠느냐? 재수가 없는 거지.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강호를 평정할 수 없다. 그런  절대자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너는 너무 강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와  가는 길이 달랐다. 잘 가라. 진심으로 너의 죽음을 애도하마."

 상여락은 검을 치켜들었다.

 "큿큿큿"

 또 다시 터져 나오는 파천의 웃음. 모든 것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그것만이 마지막으로  자신이 할 일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였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상여락은 왜 그리 부 끄러워지는지...... 온 몸이 벗겨져 세상에 드러난 것처럼 수치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것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이 검을 힘차게 내리쳤다.

 "큿큿큿"

 탕

 "억"

 상여락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웬 놈이냐?"

 소리를 지른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금척을 지닌 노인이 지른 소리였다. 장내에 있던 혈마 천의 인물들은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런데도 사람의 기척은 그 어디에서도 발 견되지 않는다. 어이없게도 내리치는 상여락의 검을 때린 것은 작은 돌멩이 하나였고 그 충 격에 세 걸음이나 뒤로 밀려난 상여락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세 명의 노인보다도 당사자인  상여락이 받은 충격은 더욱 극심한 것이었다.

 '대체 어떤 놈이......'

 사람이 황당한 경우를 당하면 얼이 빠지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상여락의 상태는 바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이빨을 앙 다물며 다시 한번 파천의 목을 쳐갔다. 이번에는 극 도로 내공을 끌어 올렸기에 쉽게 물리치지 못하리란 생각이었다.

 탕

 "으윽"

 이번에 받은 충격은 더욱 극심한 것이었고 세 걸음이 아니라 2장여나 주르륵 밀려나가 있 었다. 마치 그의 목을 치면 세상의 종말이라도 올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마치 초자 연적인 존재가 개입을 하고 있는 듯한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상여락이었다. 이번에 그의 검 을 때린 것은 호두알 만한 흙덩어리였다.

 "대. 대체 어떤 고인이시오?"

 상여락은 포권까지 해 보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그때다. 저 멀리서 천둥같은 목소리 가 들려온 것은,

 "모두 한치도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는 놈들은 모두 죽인다."

 마치 천 개의 종을 한꺼번에 울려 대는 듯한 소리였고 그 소리에 주위에 늘어서 있던 수하 들이 피를 토해내며 주저앉기까지 했다. 처음의 소리가 들려올 때는 멀리서 들리는 듯 하더 니 말이 끝날 때쯤엔 가까이서 들려오니......

 '그렇다면 그 멀리서 내가 내려치는 검을 제지했다는 말인가? 이, 이런 말도 안되는 일 이......'

 그는 두려움으로 온 몸을 떨어 대었다. 도무지 사람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 다. 아직 저 멍청한 노인네들은 그런 것조차 생각지 못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쳐대고 있었으 니,

 "대체 어떤 놈이, 이따위 수작질이냐?"

 상여락은 빠르게 염두를 굴렸다. 저자의 행동으로 봐서는 결코 호의를 지닌 사람의 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 그는 갈등하고 있었다. 도망을 갈것인가? 아니면 저 노인네 들이 강하니 함께 합공을 해서, 이기는 쪽에 도박을 거는 모험을 할 것인가?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거는 일인지라 확실하지도 않은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막 생각을 정리하 고 있을 때였다.

 휘리리링

 바닥에서 모래바람이 일어나더니 하늘로 솟구치고 마치 그 모래바람을 누르고 하강하는 듯 이 온 몸에 달빛을 두르고 나타나는 이가 있었다.

 오! 저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진정 상여락은 태어나서 이렇게 공포스러운 장면은 처음 본 다. 입을 딱 벌린 상여락은 이제는 마지막 자신의 생각을 실행할 시간여유마저 잃어버렸음 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봉두난발한 새빨간 머리털이 하늘로 솟구쳐 있고 얼굴은 청색으 로 빛나고 있었다. 동공은 하얗게 비어있어 그 또한 공포스러웠다. 도저히 사람이라고 여겨 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상여락이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도 잊어버린 채, 장내에 나타난 인물 에게 질문했다.

 "당,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직까지 정체조차 모호한 기이한 존재(?)는 그런 상여락 쪽으로는 시선 한번 주지 않고 바 닥에 쓰러져 있는 파천쪽으로 시선을 준다. 그 기이한 존재가 내려선 곳은 파천의 곁이었 다. 손을 뻗치자 파천의 몸이 둥둥 떠오르더니 그의 품으로 들어오고 그는 한 동안 파천의  이곳 저곳을 만지거나 주무르거나 짚어 나갔다. 약 일각동안이나 그러고 있는 괴인을 바라 보며 장내의 그 누구도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만약 한마디라도 떼어 낸다면 제일  먼저 재수없이 죽게 될 지도 모른다는 확인되지 않은 두려움이 결사적으로 입을 막게 하는  힘이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이 다시 파천을 땅에 내려놓은 괴인은 그들 쪽을 쳐다보 았다. 동공이 하얗게 번뜩이니 어디를 쳐다보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는지라 모두들 자신을  쳐다본다는 착각속에 몸서리치고,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금척의 노인이 겨우 떼어 낸 말이었다. 상여락은 이 사숙이 무척이나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 다. 분명히 그자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려졌고 말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크크크크 너희들은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 감히...... 건드려서는 안될 사람을 건드렸다. 각 오는 되어 있겠지?"

 오! 저것을 사람의 목소리로 규정해도 된단 말인가? 녹 쓴 쇠를 뾰족한 돌로 긁어내는 듯한  소리가 그들의 귀를 사정없이 학대한다. 역시 상여락의 예상은 정확했다. 저 분(!)은 결코  좋은 뜻을 지니고 이곳에 나타난 분(!)이 아니었다. 빨리 도망가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 고 또 다시 화가 나 발작하는 저 노인네들을 쳐죽이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늙으면  죽어야지. 아직은 창창한 조카를 함께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고 싶어하는 저 악착스러움이  정말이지 진저리치게 싫었다.

 "닥쳐라. 네가 귀신인지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감히 우리들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단  말이냐?"

 아마도 그 스스로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고 하는 말일거다.

 "저, 사숙. 잠시 고정하시고 사태를 직시하심이....."

 "시끄럽다. 내 저 괴물을 홀랑 벗겨 놓지 않으면 다시는 무인이라 자처하지 않겠다."

 "쓰레기들, 만약에 이 녀석이 죽는다면...... 맹세컨대 너희 혈마천 놈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살게 해 주겠다."

 무슨 소리인가? 이 상황에서도 의문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

 "지옥에서"

 그제야 구조상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상여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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