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제(皇帝)의 검(劍)- [75]
"너희들은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했다. 감히 나를 깨우다니...... 그렇게도 살기가 귀찮으면 검 을 입에 물고 엎어지면 될 것을...... 멍청한 놈들! 너희들 같은 하루살이들이 감히 건드려서 는 안 될 인물을 건들고 죽이려고 했으니, 더 이상 살기를 바라지 마라."
진정 그의 모습은 꿈에서라도 보기 싫은 끔찍한 형상이었다. 한마디 한마디를 뱉어 낼 때마 다 살기와 마기가 소용돌이 쳤고 그것은 지극한 공포심을 유발한다. 명색이 혈마천의 장로 요, 이총사라는 자들이 그의 말에 기가 죽어 몸을 떨어대는 것만봐도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를 알게 해 준다. 심장 약한 사람은 쳐다보기만 해도 심장이 멎을 정도라고 하면 과장이 있 을지도 모르나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하늘을 향해 곤두 서 있는 붉은 머리칼이 그랬고 천을 갖다 대면 염색이 될 정도로 푸른 얼 굴빛이 그랬으며 특히 저 두 눈! 새하얗게 번들거리는 눈에 가끔씩 폭사되는 눈빛이 그랬 다. 지옥사자도 왔다가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였다. 천 여명의 사람들 이 한 사람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한사람에게 천 여명이 위협받고 있으니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는가?
"닥......쳐라. 네 놈이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는가 본데......"
"모르긴? 곧 죽을 놈들이지! 그것이면 충분하다. 크크크크 자, 어떻게 죽여줄까? 포를 떠 줄 까? 바짝 태워줄까? 그도 아니면 얼려 줄까? 꼬챙이로 찔러 줄까? 아예 떡판이 되게 해 줄 까? 말만해라. 그 정도쯤이야 못 들어 주겠느냐?"
할말을 잃어버린 혈마천의 인물들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금척을 지닌 노인이 막 발작을 일으키려하자 한 노인이 그를 제지한다.
"대체 당신은 누구 시오? 저 녀석과는 어떻게 되는 관계이기에, 우리를 핍박하는 것이오?
우리 또한 연유도 모르고 당신과 싸우기는 싫소이다."
"싸워? 너희들이 나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푸하하하하"
또 다시 터져나오는 광소에 모두 귀를 틀어막아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비명 성을 지르며 쓰러지는 수하들이 속출하자 방금 말했던 노인이 사자후를 발한다.
"갈"
"푸하하하하"
괴인의 웃음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는다. 안색이 샛노래지는 노인을 바라보며 모두는 더욱 공포감에 물들었다. 갑자기 광소를 뚝 거친 괴인은 그들을 스산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후후후 가소로운 놈들! 너희가 강해서 저 녀석을 이겼다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저 녀석 이 무림경험이 일천하여 방심하다 당한 것이지, 제대로 싸웠다면 감히 너희가 일수라도 견 뎠겠느냐? 무상지독이라 했는가? 그것을 또 한번 써보지 그래? 후후 미련한 놈들, 그런 얄 팍한 수나 쓰는 것들이 무림인 들이라고 행세하고 다니다니, 너희들 같은 놈들이 있기 때문 에 나 같은 놈도 있는 것이다. 긴말하기 귀찮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당연히 그래야 할 것만 같은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었다.
노인 중에 하나가 손을 번쩍 치켜들자 느슨해졌던 포위망이 금새 조여진다. 그것을 바라보 고 있던 괴인은 재미있다는 듯이 히죽거리더니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아암. 그래야지. 너희들을 스스로 죽게 할 수는 없지. 자. 덤벼보아라. 진정한 마수(魔手)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마. 클클클"
"쳐라."
세 노인과 상여락이 비교적 멀찍이 물러서고 혈마천의 수하들은 개떼처럼 괴인에게 들러붙 는다. 괴인은 그 모습을 보며 파천을 향해 손을 벌리고 그러자 파천이 그의 품안으로 들어 온다.
"푸하하하하 모조리 죽인다. 내가 곧 너희의 생사여탈권을 쥔 사신임을 느끼게 해주겠다."
콰아아아아
어디서인지 모르는 바람이 휘몰아치고 그것은 살을 가르고 몸이 떠밀려 갈 정도의 광풍이었 다. 괴인의 한 손이 하늘을 향해 들려져 있었고 그 손에서 예의 그 강풍이 몰아쳐 나왔다.
그 누구도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고 겨우 몸을 지탱하기에만도 벅차 보였다. 그러니 무 슨 공격을 할 수 있으리오? 바로 그때였다.
"광풍사(狂風死)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괴인의 손에서 시커먼 기류가 피어오르고 이내 바람결에 실려 함께 몰려 나갔다.
"으악"
"켁"
"큭"
오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보 라. 괴인에게 다가서던 혈마천의 고수들이 하나같이 몸이 쩍쩍 갈라지며 터져나가고 온 몸 에서 피가 솟구치며 속절없이 죽어갔다. 그들의 몸이 갈라지며 밖으로 밀려나온 내장들까지 바람에 휘말리고 사방 30장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만다.
세 노인과 상여락은 그 모습을 보고서는 순식간에 30장 밖으로 물러서고 멀찍이서 공포스 러운 눈으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몸이 찢어지고 다시 바람에 휩쓸리고 그것이 다시 흉기가 되어 동료의 몸을 갈라버리고, 이런 무공이 있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저, 저, 저......"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상여락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는 비교적 세명의 사숙보다 뒤쪽에 있었다. 그는 눈알을 빠르게 굴렸다.
'여기 있어 봐야. 개죽음뿐이다. 도망가는 것만이 살길이다. 저 놈은 인간이 아니다. 어찌 인 간이 저런 가공할 무위를...... 아니다. 저것은 무공도 아닐 거다. 말도 되지 않는다. 전설의 천마가 아니고서는 저런 인간이 존재하지는 않을 거다. 도망가야 한다. 멀리 도망가는 길만 이 살길이다.'
그는 혼란을 틈타 슬그머니 장내를 빠져나갔다. 세 명의 노인들은 눈앞의 참경에 신경이 팔 려 그가 사라지는 것도 알지 못했다. 광풍 속에서는 처참한 비명성과 하늘 끝까지 울릴 광 소성 만이 난무했다.
"푸하하하하 너희가 자초한 것이니 날 원망하지 말아라. 지옥의 염왕이 누가 보내서 왔냐고 묻거든 당신 친구가 한 일이라고 하거라. 푸하하하하"
어느새 광풍도 멎고 한 줄기 달빛만이 고요한데 그 중앙에 그림처럼 서 있는 괴인이 있었으 니, 그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는 세 명의 노인이 전부였다. 시체의 산을 본적이 있는가? 그것도 반자 크기로 조각난 살점들이 뒤엉킨, 도저히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시체더미 위에서 괴인은 차디찬 살기를 온몸에 칭칭 감고 있었다. 인간이라 부르기 에는 너무 가공한, 신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잔악한, 그래 저 자는 악마가 분명할 것이다.
세 명의 노인이 공통적으로 떠올린 단어였다. 악마! 어쩌면 그 이름만으로도 부족할지도 모 르는 괴인은 오만하게 하늘을 우러르며 땅위를 딛고 사는 하찮은(?) 인간들을 굽어보았다.
그가 손가락을 까닥한다. 가까이 오라는 뜻 일게다. 이중에 아무도 그 의미를 모르는 자가 없었지만, 누구하나 선뜻 나서기를 꺼려한다. 제일 만만한 게 서열이라고 일제히 뒤를 쳐다 보았다. 앞세울 사람이 떠 오른 것이다. 그들은 동시에 뒤로 고개를 돌리다 놀람과 분노가 교차하는 일성을 토하고야 만다.
"쥐새끼 같은 놈이!"
"이런 찢어 죽일놈이"
"그새....."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우리도 도망이나 갈걸 하는 후회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삼인이 동시에 괴인에게로 몸을 솟구친다.
'제 놈도 사람임에야. 우리 세 명이 동시에 공격한다면...... 그래 승부는 해봐야 아는 것이 다.'
'정말 그럴까? 저 놈이 정말 사람일까?'
'분명히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호랑이에게 강아지 세 마리가 덤벼든다고 이길 수 있 을까?'
각각의 생각이야 어떻든 그들은 당당하게 나섰다. 한 명은 금척을 또 한 명은 검을 마지막 한 명은 도를 꺼내었다. 그들은 감히 숨도 크게 내 쉴 수 없었다.
[셋째야, 어서 무상지독을 뿌려보거라.]
[소용없습니다. 이미 저자가 나타나자마자 뿌렸습니다.]
[양이 적어서 일지도 모르니 마구마구 뿌려봐라.]
"가소로운 놈들! 또 그놈의 무상지독인가를 뿌려대는군. 그까짓 것이 나한테도 통하리라 여 겼는가? 빨리 시작하자. 지금 내 친구가 심히 좋지 못한 상황 중에 있으니 너희들하고 노닥 거릴 시간이 없다."
"이런 빌어먹을...... 틀렸다. 쳐라."
그들의 검과 도와 금척이 동시에 허공을 날으며 괴인을 삼분할 듯이 치고 들어왔다. 괴인은 비웃음을 짓더니 몸을 솟구쳤다.
빛처럼 빠른 몸놀림으로 허공으로 도약하고 삼인이 쏘아낸 병기들이 하나같이 그를 따라 붙 는다. 괴인은 허공 중에서 한 손을 활짝 펼쳐내었다.
"저, 저것은......"
"말, 말도 안 된다. 어찌 저것이...."
"정말, 저 사람이......"
똑 같은 반응들이었다.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허공에는 세 명이 날려보낸 검,도,척이 허공 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정지되어 있었고 그 사이를 가르며 아수라의 두상들이 허공 을 선회하며 맴돌았다. 그런가 했더니 순식간에 그 아수라상들은 땅으로 곤두박질치며 그 흉측한 얼굴을 그들에게로 돌렸고
"어, 어"
"캑"
"컥"
"꺽"
세 마디의 비명성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적절한 고저(高低)를 맞추며 함께 울려 나왔다.
아수라 상들이 그들의 몸을 지나치며 지른 소리였다. 몸통중간이 아수라상 크기만큼 뻥 뚫 려 있었다. 내장이고 뼈고 살이고 피고간에 모조리 가루가 되어 흔적조차 없어진 커다란 구 멍사이를 바람만이 휑하니 들락거린다. 세 사람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바닥으로 쓰러져갔 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불신으로 가득했다. 괴인은 바닥으로 내려서더 니 파천을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는 침울해진 얼굴로 그의 상세를 살핀다.
"바보같은 놈! 이 따위 놈들에게 이리도 처참하게 당하다니..... 파천. 정신이 드느냐? 파천.
파천"
추궁과혈을 하고 혈도를 쳐보아도 파천은 일어 날줄을 모른다. 괴인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파천을 똑바로 앉힌다. 그리고는 등뒤 명문혈에다 진기를 부어 넣기 시작했다. 이런 들판에 서 더군다나 방금 격전을 치른 곳에서 아직 적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위험을 감수한 행 동을 하는 그가 더욱 궁금해진다. 대체 그는 누구란 말인가?
일다경쯤 흐르고 나자, 파천의 얼굴에 혈색이 조금씩 감돌기 시작한다. 등뒤에 있던 괴인이 파천의 등을 탁 치자.
"컥"
파천의 입에서 주먹만한 핏덩이가 토해져 나온다. 그것을 보던 괴인은 그제야 안심한 듯 파 천을 안았다. 그리고는 어디론 가로 사라져갔다.
★ ★ ★
이곳은 융중산의 한 동혈이었다. 그곳으로 파천을 데려온 괴인은 한참이나 파천의 상처 이 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한 시름 놓기는 했으나 아직 불안하다. 잘못하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빨리 의식 을 차리고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면 위험하다."
그 정도로 심각하단 말인가? 괴인은 의술에도 해박한 듯 했으나, 그가 아는 것이 의술이라 하기는 뭣했다. 단지 그는 진기와 혈도에 대해서, 그리고 인체에 대해서 잘 알뿐이지, 일반 적인 병을 낫게 하는 재주는 없었다. 그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파천 이 스스로 깨어나기를......
파천이 처음 눈을 뜬 시간은 동혈로 들어온 지도 한 시진이나 지난 뒤였다. 그는 깨어나서 는 눈만 멀뚱거리다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아침이 되었다. 그런데도 파천은 일 어나지 않는다. 괴인은 숲 속에 들어가서 사냥을 했다. 그 엄청난 무공으로 토끼를 잡는다 는 것이 쑥스러운 일이었으나 어쩌겠는가? 배고프면 못 참는 것을...... 그는 동굴로 돌아와 서는 토끼의 가죽을 벗겨내고 내장을 꺼내더니 통째로 진흙을 발랐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삼매진화를 일으키니 순식간에 진흙덩이가 새카매졌다. 그는 바짝 마른 진흙덩이를 털어 내 고 그 안의 노릿노릿한 살코기를 베어 물었다. 소금이 없어 간이 맞지는 않았으나 먹을 만 했다.
정오가 되자 또 다시 배가 고파왔다. 그는 이번에는 노루를 잡기로 했다. 몸을 솟구치자 허 공으로 십장이나 올라가더니 그곳에 멈추어 서서는 사방을 살폈다. 노루가 보였다. 산에 지 천으로 깔려 있었다. 그는 목표물을 향하여 쏘아져갔다. 바로 그때다.
"아니, 이 소리는......"
쇄액
그는 노루에게로 향하던 몸을 뒤틀어 동굴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파천이 깨어나서 본 것은 괴물이었다. 그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가 사람이란 동물 은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족속이고 보면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괴물은 사람과 흡사했으나 사람은 결단코(!)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저렇게 생겨먹었을 리가 없었다.
붉은 머리칼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있고 얼굴은 시퍼렇게 물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두 눈은 까만 눈동자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 볼 수 없으니, 영락없는 요괴의 모습이었다. 파 천은 자신이 죽어 요괴들이 사는 곳에 왔다 여겼다. 멀뚱거리며 쳐다보는 파천의 시선에 요 괴가 기뻐하는 듯(?)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얼굴을 잔뜩 구기고 어찌 보면 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놈의 요괴가 사람의 말을 하고 있었다.
"파천, 드디어 깨어났구나."
내 이름을 알다니? 저 놈은 요괴이니 그 정도쯤 알아내는 것은 일도 아닌가 보다. 파천은 일단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몸을 일으켜보았다.
"윽"
온몸에 통증이 몰려왔다. 바늘로 찔러대는 듯도 했고 경험은 없으나 톱으로 켜는 듯도 했고 망치로 자근자근 다져놓는 듯도 했다.
'빌어먹을 험하게 죽은 놈은 죽어서도 고통을 느끼는가 보군.'
"괜찮으냐?"
요괴가 손을 가까이 대려하자, 파천은 기겁을 하며 몸을 뒤척였다. 그런 그를 보며 괴인은,
"너, 뭐 하는 거냐?"
파천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너, 누구지?"
요괴는 한참을 멍청하게 있더니 파천을 향해 대뜸 해댄다는 소리가,
"나, 천마야 임마. 정신차려."
파천은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았다. 여전히 그의 시선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지금 그의 머릿 속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몰랐다. 자칭 천마라고 한 저 이상하게 생겨먹은 놈이 정말로 천마인지조차 확신이 가지 않았으니......
"그러니깐 네 말인즉슨, 네가 천마이고 나를 구해내었다는 것이냐?"
"그렇지. 얘가 왜 이리 사람(!) 말을 안 믿고 그러지?"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듯이 그는 유독 사람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강조했다. 저 말투 를 보면 천마 같기도 하지만, 모양새는 영 아니올시다이니......
"대체 어떻게 된 거냐? 그리고 그 요상한 용모는 또 뭐고?"
"자식이 사람 무안하게...... 이게 원래 내 모습이다."
"독고무 안에 들어가 있던 놈이 어떻게 제 모습을 되찾는단 말이냐?"
"놈이 죽었으니깐...... 얘기하자면 복잡하지만, 잘 들어라. 독고무는 죽었다. 그놈이 죽으면 서 난, 내 자신을 되찾은 거고, 순간 분노로 마성이 폭발하면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거 다. 자세히 보면 독고무 얼굴 그대로일거다."
그렇게 듣고 보니 그런 듯도 했다. 이목구비를 찬찬히 뜯어보면 독고무가 확실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생판 처음 보는 요괴였다.
"쿡쿡쿡...... 하하하하하"
"왜 웃냐?"
"하하하하...... 아니다. 너, 그렇게 하고 세상을 돌아다닐 참이냐?"
"으음...... 사람이 용모 가지고 따지는 것보다 더 치사한 것이 없다. 그래도 한때는 이 모습 에 중원의 모든 여자들이 뻑가서 덤벼들던 때도 있었다."
"에이...... 설마! 네가 죽일까봐 두려워서였겠지. 네가 멋있다고 생각했겠냐? 그건 그렇고 독 고무가 죽은 것은 확실하냐?"
"그래. 그 녀석은 죽었다. 나도 이런 결과가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놈이 죽은 시간이 공교로워서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 같기도 하고...... 만약 죽은 지 오래였다면 내가 이 몸을 차지하지는 못했겠지. 내가 의식을 차려보니 내공은 흩어져있고 옆구리가 허전하더라. 곧바 로 흩어진 내공을 수습하자, 괜히 분노가 치밀더구나. 너무 과도하게 진기를 끌어올리자, 예 전의 마성이 도졌고 이런 모습으로 변해버렸지. 그 바람에 상당히 강해지긴 했지만......"
"그래? 그렇다면 예전정도로 강해진 거냐?"
"아직 멀었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예전의 힘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히려 내게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 밤이나 낮이나 내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으 니...... 흐흐흐 이제야 말로 내 꿈을 이룰 때가 온 것 같다."
'미친 놈! 저 자식 또 그딴 생각이나 하는군.'
"그나저나 너도 참 멍청한 놈이다."
"무슨 소리냐?"
"내공이 십갑자가 넘는다는 놈이 무상지독인가 그런 시답잖은 것도 이겨내지 못하니 하는 말이다."
"단전의 내공이 모두 흩어졌으니 난들 방법이 없더라. 그러고 보니, 너는 어떻게 내공을 회 복했지?"
"그러니 멍청하다는 거다. 내공이란 무형의 기운이 유형화 된 것이니 유형화된 것이 무형화 되었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지."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다. 한번 생긴 내공이란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없어진 내공이 어디 갔겠느냐? 경맥의 어딘가에 흩어져 있다는 거지. 경맥에서 일어나는 진기를 한곳으로 모으고 그 힘을 다시 단전으로 보내고, 새롭게 경맥에서 일어나는 힘을 단전으로 보내고,
이런 식으로 하면 다시 내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공폐지는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거다.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경맥의 일부분을 폐쇄하거나 단전을 파괴하여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그러니 너 정도의 내공 수준에 이르면 어떠한 경우에도 스스로 복구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런거였나?"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파천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정색을 하며,
"놈들은?"
"한놈 빼고 모두 죽였다."
"한놈?"
"무림맹주로 있던 놈은 도망쳤다."
"허참, 그 놈 하여튼 내빼는 데는 타고난 놈이군...... 자, 이제 가자."
"어디를? 무림맹으로 가자고?"
"아니. 마도련으로 간다."
"마도련에는 왜?"
"광마존 등이 위험하다. 이 기회에 혈마천의 중원세력을 초토화시켜버려야겠다. 천마!"
"왜?"
"너도 알다시피 지금 금응은 천마교에 가 있을 거다. 그러니 너, 나를 데리고 악양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겠냐?"
"글쎄다. 해 떨어지기 전까지는 가능하겠지?"
"좋다. 가자."
"자식 성질 급하기는...... 좋다. 가자. 대신 노루 한 마리 잡아먹고 가자. 배고프면 난 아무 것도 못하는 성격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