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제(皇帝)의 검(劍) - [76]
어두움이 깔리기 시작한 대지의 기운은 자체의 차가움으로 한껏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어 두움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기에 반쪽 빛의 개입으로 그것은 더욱 극명하게 둘을 분리하 는 듯 여겨지지만 사실은 언제나 그렇듯 혼재되어 있다. 어둠의 세상을 살아가는 이도 없겠 거니와 밝음 속에서만 삶을 영위하는 이도 없기에 세상은 복잡 미묘 한 것이고 그래서 더욱 인간을 혼재 속으로 소외시키는 것인지도...... 뒤섞인 인간 군상들은 저마다 제 색깔을 지니 고 있다지만 그 또한 자기만의 것이라 하지 못하고, 획일하여 모두 동일하다 할 수도 없음 이니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그래서 더욱 연민을 일으키게 하는 미완의 아름 다움이 아닐지?
그런 점에서 이 두 명이야말로 어둠과 밝음의 가장 치열한 혼재를 경험하고 있는 자들일지 도 모른다.
천마는 역시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았다. 아직 내공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파천을 안고서 한시도 쉬지 않고 악양으로 달려 온 것이다. 그는 모든 가치를 단순화시키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언제든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누구처럼 대의 나 명분을 따지지도 않고 필요 없이 남의 것을 가로채지도 않으며 오로지 마음이 시키는 대 로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표본이라 할 만했다. 지금도 파천의 부탁에 의해 악양까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도착해야 한다는 그 한가지 목표만을 지니고 설사 땅이 뒤집히고 하늘 이 무너진다해도 그것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파천의 마음은 조급함으로 바짝 타오르고 있었으나 애써 편안함을 유지하려 했다.
동정호에 다다른 천마는 배를 타지도 않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목표한 지점으로 날아갔다.
누가 보면 새라 여길 만큼 높은 지점을 갈랐기에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았다. 바위섬은 여 전히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파천은 예의 신호를 보내었다.
'지금쯤 일이 벌어졌다면 통로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아직 일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통로는 열리겠지. 아니다. 어쩌면 마도련의 일부 인물들만이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문은 열린다.'
여전히 파천은 천마의 품에 안겨 있었고 천마는 두 발로 수면을 딛고 있었다. 심하게 수면 이 출렁대고 있었음에도 천마가 딛고 선 주위의 일장은 어찌 된 일인지 고요하기만 했다.
마치 얼어버린 듯 요동을 하지 않는다.
그르르르릉
통로가 열렸다. 그것을 본 파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 ★ ★
"그것이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지금 전 지도부에 명령이 하달되었다 했습니다."
"갑자기 대종사가 나타났다는 말인가? 뭔가 미심쩍은데?"
광마존의 안색은 어두웠다. 마도대종사 혁우종이 나타났다는 것이 그에게는 그리 반가운 일 일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지존도 계시지 않은 시점인지라 더욱 안심이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대종사를 흉수로 지목하고 있었고 그가 곧 혈마천의 인물일거라 거의 단정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니 급작스럽게 그가 나타났다는 것은 어떤 점으로도 자신들에게 그리 좋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광마존이 벌떡 몸을 일으킨다.
"좋다. 어차피 한번은 부딪혀야 할 상대이니...... 가자."
그의 시선은 무영존에게 머물렀다가 다시 율극에게로 향한다.
"율극 너도 가자."
"히히 율극은 안 간다. 여기서 낮잠이나 자고...... 대장을 기다려야지."
그는 탁자에다 팔을 고이고 자는 시늉을 했다. 파천을 향해 지존이라 했다가 대장이라 했다 가 마음이 안 내키면 두목이라 하기도 하니 사용하는 어휘는 정신상태에 비해 상당히 다양 (?)하다 할 수 있었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파천에게서 들은 것과는 달리 비교적 온순하게 광마존의 말을 따른다는 점이었다. 가끔씩 그에게 형이라고 불러서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으 나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율극 그만 일어서라. 대장이 돌아와서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게 되면 뭐라 고 하실까?"
광마존의 점잖게 타이르는 말에 율극이 고개를 번쩍 치켜든다.
"대장이 나를 때릴 거야. 그러면 율극이 아프다. 그것은 싫다."
"그래. 그러니 어서 내 말대로 하거라."
"광마 형! 그래. 가자"
율극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제가 먼저 앞장서서 걸어 나간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광 마존과 무영존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존마전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항상 마도대공인 파천이 앉아 있던 태사의에 중후한 학자풍의 중년인이 좌정하고 있고 그의 옆으로는 광마존이 한번도 본적이 없는 낯선 인물들이 십여 명이나 시립 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포단 대신에 긴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고 이미 그곳에는 마도련의 지도부 인사들이 자리해 있었다. 광마존은 안으로 들어 가다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내부를 둘러보았으나 빈자리는 보이지가 않았다. 결국은 그 가 앉을 자리는 애초에 마련되어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것봐라. 아예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낼 참인가?'
그는 아무 소리 않고 안으로 들어섰고 몇 사람이 그에게 목례를 취하기도 한다. 그들의 얼 굴 또한 당황으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대종사를 뵙소이다."
광마존이 포권을 취하며 형식적인 예를 차리자 청수한 인상의 중년인이 호목을 부릅뜨며 의 아한 시선을 보낸다.
"그대는 누구지? 누구이길래, 이곳 존마전에 발을 들여놓는가? 이곳에는 마도련의 간부들만 이 들어 올 수 있는 자리다. 잘못 알고 왔다면 그만 돌아가라."
점잖게 타이르듯이 하는 말이었다. 천인대장 이시명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대종사를 쳐다 본다.
"대종사! 저분은 대공의......"
"자네는 그 동안 못 본 사이 많이 달라진 것 같군. 언제부터 남의 대변인 노릇을 했지?"
그 말에 이시명이 어쩔 바를 모르다 다시 제자리에 앉는다.
"모두에게 알리겠다. 나는 대공 한 사람과만 계약을 했다. 그의 수하에게까지 그 권한과 직 위를 보장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리고 이 시간 부로 대공과의 계약은 파기한다. 그러니 더 이상 저들은 우리 마도련의 인물들이 아니다."
몇 사람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진다. 그들은 대종사가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라 그의 처사가 온당하지 못할뿐더러 야비하고 치졸하다고까지 여겨진 것 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과 같은 마도련의 강남무림장악은 순전히 마도대공의 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대종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일이 성취된 뒤에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는 그간의 공로자들인 대공의 세력을 일시에 부정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마도대종사의 처사 라 할 수 있겠는가?
"대종사! 그것은 부당합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그리 쉽게 하실 수 있소이까?"
동정십팔채의 총채주인 탁탑천왕 거여패가 흥분하여 내지른 소리였다. 그 말에 동조하는 소 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특히 흑사신 황보염의 말은 지나친 감이 있었다.
"대종사는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니오이까? 마도련은 대종사 한사람의 것이 아니 오. 그런 점에서 이런 중대사를 대종사 혼자서 일방적으로 결정함은 부당하외다."
그 말에 대종사 혁우종의 안색이 천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호 이것들 봐라. 이들의 반응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감히 내게 반기를 들정도로 그 에 대한 신임이 깊다는 것인가?'
"흑사신 황보염!"
착 가라앉은 음성이 대종사에게서 터져 나오자,
"왜 그러시오?"
누가 들어도 그의 음성에는 대종사에 대한 반감이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왜 그 렇지 않겠는가? 그 동안 쥐죽은듯이 숨어 있던 자가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나자 나타난 꼴이니, 진정 스스로를 마도인이라 자부하는 그들에게는 여러모로 탐탁지 않은 행동 이었다. 가만이나 있었으면 모를까? 이미 그들의 심중에 대종사 이상의 비중으로 자리잡고 있는 파천을 몰아내려 하는 데야 잠자코 있을 그들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불만을 표하지 않 는 사람이라고는 군사 제갈초홍과 그 동안 련내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마안대장이 고작이었 다.
"자네 말은 그 정도도 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내가 그를 내치려 하는데는 분 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먼저...... 마도련의 원로들인 장로들을 모두 죽였다. 뿐만 아니라 마도련을 전면에 부 상시킨 것 또한 자기권한 밖의 일이었다. 이 정도만으로도 그를 축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 을 듯 한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참으로 어이없는 말이었다. 정작 가려운 등을 긁어주고 나니 아쉬울 것이 없어진 자의 행태 로 밖에는 보이지가 않으니.....
"내 생각을 물었습니까? 나는...... 오히려 대종사야말로 마도에 필요 없는 인물이 아닌가 하 는 생각을 해 봤소만......"
웅성 웅성
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모두 내심으로야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한다 는 것은 심히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아직은 그가 전 마도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마도 대종사이기 때문이었다.
"후후후 너의 뜻은 내 충분히 알아들었다. 참으로 가소로운 위인들이군. 너희가 철석같이 믿 는 대공이 살아 이 얘기를 들었다면 참으로 흐뭇해했겠군."
대종사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의 시선에 놀람이 떠오르고 당장 광마존의 안색은 새하얗게 탈 색되어 갔다. 그는 한걸음 나서며,
"너의 그 말은...... 대체 무슨 의미냐?"
"크하하하 말 그대로다. 이미 한 구의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는 자가 더 이상 너희의 방패 막이가 되지는 못할 거라는 말이지."
"이, 이놈이"
광마존이 발작하여 앞으로 쏘아져 간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그는 몇 번 이나 내공을 운기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 이런 개같은 경우가?"
광마존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던 대종사는 대전이 부셔질 듯한 웃음을 흘려 내었다.
"푸하하하하하하 미련한 놈들! 너희는 이미 중독이 되어 내공을 운기하지 못한다."
"뭐, 뭐라고?"
"설마?"
"으음"
장내에 있던 인물들은 순식간에 절망의 안색이 되고 만다. 그들은 그의 말대로 운기를 해 본 결과 단전이 텅 비어 있음을 느낀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후후 너희들을 쳐죽이는 일쯤 나에게는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지. 다시 한번 확인하마. 나를 따르겠는가? 아니면 이미 죽고 없는 대공을 따르겠는가?"
장내는 순식간에 싸늘해져왔다. 모든 것은 명확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내공을 사용 할 수 없다는 것은 무인에게 죽음의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대공을 따른다고 한다면 이 자리에서 죽음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대종사를 충성으로 받들겠다는 말을 하기엔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는다. 이런 치졸한 수를 쓰는 작자에게 머리를 숙일 바에는 마도의 거물들다운 깨끗한 죽음이 차라리 명예롭지 않겠는가? 곧 바로 결정을 내리 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그들에게 대종사가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잘 결정해라. 생명을 걸고 하는 결정이니 경솔함이 없어야지? 푸하하하하"
"대종사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대종사께 충성을....."
두 명이었다. 그들은 군사와 마안대장! 역시 그들은 처음부터 대총사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놈! 너에게 죽음을 맞는 한이 있어도 너에게 머리를 숙이지는 않겠다."
황보염의 말은 망설이고 있던 좌중의 인물들을 선동하는 결과가 되고야 만다.
"그렇소. 저런 치졸한 놈에게 지금껏 머리를 숙여 왔던 것도 억울하건만...... 이미 안 이상에 야 저 놈을 따를 수는 없지. 내 죽는 한이 있어도 너에게 머리를 숙이지는 않겠다."
"비겁한 놈!"
"너 같은 놈이 마도대종사라니? 널 대종사로 여기는 마도인들이 불쌍하구나."
그들의 조소 담긴 말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자 장내에는 살기만이 흘러 넘쳤다.
"혈마천의 주구! 너 따위 놈에게 지존이 당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 장웅과 단야적풍을 살해 한 것도 네놈의 짓이지 않느냐?"
광마존의 말은 한껏 타오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뭐, 뭐라고? 저 놈이 흉수?"
"혈마천이라니?"
"대체 무슨 말이요?"
"저 놈이 바로 혈마천이라는 곳의 주구외다."
광마존의 설명에 그들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그가 다른 세력의 하수인에 불과하단 말인가?
"이런 똥물에 튀겨 죽일 놈! 그러고도 네가 대종사라 할 수 있느냐?"
이제는 아예 대놓고 놈자를 붙이며 삿대질까지 하기에 이른다. 대종사의 반응은 의외로 침 착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침착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대종사의 대제자인 한당이었다.
"그는...... 대종사가 아니오. 이미 대종사는 살해되었을 것이오. 내가 그것을 느낀 지는 꽤나 오래 되었으니......"
"후후 이제와서 숨길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 내가 그들 모두를 죽였다. 너희들 같은 버러지 들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지. 너희들이 가진 세력이 필요한 것이지. 너희들은 더 이상 필요 가 없다. 군사!"
"네, 영주"
어느새 제갈초홍과 마안대장은 대종사 곁으로 다가서 있었고 대종사의 옆에 시립하고 있던 10여명의 인물들이 앞으로 나선다.
"이미 놈들이 살기를 거부했으니 모두 죽이고, 마도련을 새롭게 수습해라."
"존명!"
그들의 하는 양을 살피던 마도련의 지도부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보았으나 내 공이 사라진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존마전의 내부로 일단의 인물들이 들어서고 그들은 하나같이 복면을 한 신비인 들이었다.
100여명의 인물들이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입구를 봉쇄한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 나 있었던 것이다. 그가 확인운운 한 것도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고 처음부터 모두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마도련의 지도부인사들은 광마존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믿을 수 없소. 그 분은 그리 쉽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오. 적들이 아무리 흉험한 암계 를 꾸민다 해도......"
그의 마지막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한가지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들이 쓴 수법대로라면...... 지존의 내공이 소멸되었다면...... 어쩌면......'
광마존의 얼굴에도 절망의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그는 머리를 저었다.
'그럴리 없다. 그 분은 우리와는 다른 분이다. 분명히 살아 계시리라. 여기서 우리가 모두 죽는다 해도 분명히 복수를 해 주시리라.'
광마존은 살기 찬 두 눈을 번뜩였다.
"네 놈을 쳐죽이지 못함이 원통하구나."
광마존의 옆에 있던 율극이 그런 그를 보며 한다는 말이,
"형! 저놈 죽이고 싶어?"
천진난만한 아이의 말투 같은 율극의 말이 광마존의 상념을 흔들어 깨웠다. 그는 슬쩍 옆에 있는 율극을 보았다.
"그래. 난 저놈을 죽이고 싶다."
"내가 죽여줄까? 나 싸움 잘하는데......"
"뭐? 후후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만은......"
"근데 저 놈이 나쁜 짓을 했어?"
"대장을 죽이려고 한 놈이다."
하마터면 '죽인' 이라고 말할 뻔하다가 황급히 말을 바꾼다. 아직은 한줄기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뭐야? 대장을 죽여? 저 놈이?"
율극은 광마존의 말을 파천을 죽였다는 말로 이해했고 그 즉시 대종사쪽 만을 쳐다보는데 점차 그의 눈빛이 달라져 갔다. 광마존은 율극을 정면으로 보고 있지 않았기에 그의 이런 변화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을 마주보고 있는 대종사는 소름이 끼침을 느껴야만 했다.
'참으로 기분 나쁜 눈이군. 검은 동자는 어디 가고 흰자위뿐이라니...... 더군다나 저 소름끼 치는 분위기는 또 뭐람?'
율극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는 이미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또 다시 광인으로 돌아 가려는가? 그리고 그는 내공을 상실하지 않았단 말인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죽인다. 모두 죽인다. 대장을 죽인 자는 용서할 수 없다. 나, 율극이 모조리 죽여 버린다."
율극의 말은 더 이상 치기 어린 바보의 말이 아니었다. 소름끼치는 마기가 풀풀 날렸고 살 기가 만장까지 치솟을 듯 했다. 그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 보이자 대종사 앞으로 시립하고 있던 십 여명이 막아서고, 바로 그때였다.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율극의 입에서 존마전 전체를 울리는 소리가 터져나오더니 그의 몸은 희뿌연 안개에 휩싸이 며 앞으로 번개처럼 튀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