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괴이한 사공
중원의 도처에서 거의 동시라 할 만큼 일어난 사건은 일파만파로 전 중원을 휩쓸어 버렸다. 몇 가지 점에서 이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먼저 그 하나는 이 사건의 중심에 금와전장과 대하표국이라는 당대의 거대세력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금와전장에서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스물 네 곳의 분국에 동시에 표행을 의뢰했고 그 대가는 동일하게 황금 천냥짜리들이었으며 그 모두는 한곳만 제외하 고 탈취 당했다. 다섯 대의 마차를 운송하는 것도 동일했고 대가도 동일했으며 탈 취 당한 것도 동일했다.
탈취의 수법이나 사용한 무공은 제각각이었지만 살아 남은 증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무림맹이나 마도련의 고수들이었다고 하니 이것이 또한 무림에 큰 충격을 던져 주었다. 단 한곳 실패한 곳은 산동성 제남분국에서 출발한 표행으로 그들을 공격했던 자들 역시 무림맹의 고수들로 추측된다고 했다. 마차는 그들의 공격에 부 서졌고 이로 인해 안의 내용물이 공개되고야 말았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그 안에는 마차를 가득 메울 정도의 금괴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은 금세 전 무림에 떠돌았고 저마다 구구한 억측을 낳으며 각기 다른 입장에 있을 무림세력들 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거나 때로는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지게 만들고야 말았으니 과연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지 아직은 모를 일이었다.
"태공.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저로서는 난감할 따름입니다."
대하표국의 총국주인 청룡검객 구기자는 천무태공 초량의 처소에 와서는 죽을상을 하며 아뢰었다. 그가 이곳에 온 지는 벌써 한 시진이 지나고 있었지만 말하는 사람 은 오직 그 뿐이었고 초량은 여전히 난초를 바라보거나 때로는 난초의 잎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는 일에만 몰두했다. 구기자는 그런 그를 보며 작금의 일이 난초를 돌보는 일보다 더 가치가 없는 일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입만 나불대고 있었다.
"태공. 이 일은 많은 점에서 의문을 낳게 합니다. 이것은 우리 대하표국의 사활을 걸고 치밀하게 조사를 해야 할 중요사안일 것 같습니다."
그가 뭐라 그러던 말든 초량은 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난초만을 바라보고 있었 다.
"태공. 뭐라고 말씀을......"
"한심한 작자."
처음으로 초량의 입에서 나온 말은 구기자의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이 었다. 구기자는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의 생애를 통 털어 스스로 한번도 한심하다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한 시진만에 들은 말이 겨우 그 한마디라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 무엇이 의문이 간다는 건가?"
역시나 그는 돌아서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은 자신은 마주보며 대화를 나눌 가치도 없다는 태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구기자는 그의 물음에 대한 대답 을 준비해야만 했다.
"먼저 금와전장이 한꺼번에 표물을 맡겼다는 것과 그럴 것이면 총국에다 의뢰하지 않고 분국단위로 의뢰를 했다는 것이 첫 번째 의문입니다. 두 번째는 무림맹과 마 도련이 우리를 동시에 공격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지금도 이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도저히 연결점이 없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 니다. 세 번째는 그들의 시체입니다. 마도련과 무림맹의 인물들이라 여겨지는 자들 의 시체입니다. 대부분 표물을 탈취 당한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 었습니다. 네 번째는 그들의 시체에 나 있는 무공들의 흔적입니다. 중원 마도, 정 도의 각 문파의 무공과 심지어 새외의 무공들이 총망라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되었다. 그대의 의문은 홀로 풀어라."
"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다. 그대의 의문을 풀어주는 것 따위는 우리에게 하등 유익이 없기 때문 이지. 이미 일은 벌어졌고 그대는 이후 수습책을 마련하기도 벅찰 것이야. 그래.
자네의 생각은 누구의 짓이라 생각하나?"
구기자는 칠십노구를 빳빳이 세우며 자신 있게 말했다.
"무림맹과 마도련의 합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 가능성은 없지만 정황으로 봐서는 그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금와전장의 자작극이 아 닐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보았지만 그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
"그것이 무엇이지?"
"네? 네...... 그것은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짓이라면 그들이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통해서까지 우리 표국에 손해를 입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일을 해봤자 금와전장에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현장에서 금와전 장에서 파견된 인물들은 대부분 살해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그들에게 무림맹과 마 도련의 고수들을 제거할 만한 세력이나 고수들이 있다고는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 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모두 인정한다고 해도 마도련과 무림맹을 한꺼번에 움직일 만한 권한이 금와전장에 있지는 않습니다. 아니 무림의 그 어떤 세력도 그들을 한 꺼번에 움직이게 하기엔 벅찹니다."
구기자는 습관적으로 손가락으로 심중의 생각을 정리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려진 결론이 무림맹과 마도련의 결탁이라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무리가 없는 판단으로 사료됩니다."
"참 신기하군."
구기자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뭐가 말입니까?"
"그 정도의 머리로 어떻게 대하표국을 중원제일로 만들었는지 신기하단 말일세."
'정말 밥맛 떨어지는 놈이야. 상관만 아니라면 저걸 그냥......'
"왜. 내 말에 기분이 나쁜가?"
구기자는 두 손을 쳐들어 황급히 휘저었다.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초량은 난초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돌려 구기자를 쳐다보았다. 습관처럼 입가에 머 물던 미소를 거두고 그는 지겹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렇군. 금와전장에서 24개분국에 동시에 표물의뢰를 했다. 그 표물을 강남에서는 마도련이, 강북에서는 무림맹으로 보이는 고수들에게 강탈당했 고 그들은 얼마 가지도 못하고 전원 살해되었다. 물론 그 전에 금와전장의 인물들 역시 무림맹이나 마도련의 고수들에게 죽음을 당했고 그들 중에 살아 남은 사람은 극소수다. 유일하게 탈취 당하지 않은 곳이 한군데며 그곳에는 마차가 파손되어 금 괴가 들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곳에는 정체불명의 신비인들도 나타나지 않았고 말이야. 후후. 참 재미있군. 누군지 모르지만 여러 가지 목적을 지닌 자군."
"무슨 말씀이신지......"
"몰라도 된다. 자네는 그것이 무림맹과 마도련의 짓이라는 건가본데 내 생각은 전 혀 달라. 금와전장의 인물이 죽었다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짓일 가능성이 더욱 짙 다는 것을 반증하는거로 볼 수도 있고, 단 한곳에서 드러난 금괴, 그리고 그곳만 탈취 당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나 금와전장이 의심 가는 대목이며 무엇보다 이 일의 발단이 그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그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힘주어 증명하고 있어. 중요한 것은 누구의 짓이냐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노리는가 하 는 거겠지. 그리고 우리들은 금전적인 손해와 여태껏 쌓아온 신용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는 거고 당분간 표국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거야. 이것만해도 우리 쪽에서 본다면 대단한 손실이지.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닐 거야.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 아주 중요한 점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경제적인 손실을 만회하고 도 남을 만큼 큰 것이지."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구기자를 초량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표정만으로는 도무지 그가 무슨 생각을 지 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금와전장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경우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세력이지만 이제 모든 세력들 의 시선은 금와전장을 주시하고 있을거야. 만약 그들의 짓이 아니고 다른 세력이 움직인거라면 일은 더 복잡해지지. 그도 아니고 금와전장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 면 그것은 더 복잡해지고...... 어쨌든 어둠 속의 인물은 대단한 자임에는 틀림이 없군. 이 한번의 사건으로 현 국면을 자신이 의도하는 바대로 이끌어가게 되었으니 말이야. 만약...... 만약에 금와전장에 배후가 있고 그 세력이 무림맹과 마도련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우리의 계획은 처음부터 재수정 되어야 한다. 또 하나 무림맹이나 마도련이 공개적으로 우리의 표물을 노리고 더군다나 살 인멸구를 하지 않은 것은 공개적으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지. 어둠 속에서 한 대씩 주고받던 것으로는 양에 차지 않는다는 말인 게야. 거기다 무림맹과 마도 련의 고수들을 모두 죽였다는 대목에서 이 일을 주도한 자와 그들의 관계를 판단할 단서가 발생하는 거지."
그가 혼잣말을 하듯이 토해내는 내용 중에 구기자가 이해한 부분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속시원하게 심중의 생각을 털어놓으면 시원하겠건만 눈앞의 사내는 그리하 지도 않았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는 듯 했다.
'그래. 너는 난 놈이고. 나는 그런 네놈의 발바닥이나 핥아야 할 놈이다. 빌어먹을 ...... 천황의 대제자라고는 하나 나한테 이래도 되는거야?'
"그럼,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별로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듯이 아무렇게나 뱉어내는 말이었다.
"그걸 몰라서 묻나? 금와전장에 배상을 해 주면 그만이다."
"네? 그들의 짓일지도 모르는데...... 조사도 안 해보고 배상을 해주라는 말입니까 ?"
"그들이 원하는대로 움직여야 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줄 것은 주고 얻을 것은 얻는다. 자네는 아무것도 생각지 말고 표국운영에만 신경 쓰도록 하게나. 아마 당 분간은 이런 일이 없겠지. 자네가 하고 싶어하는 일은 할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어 . 그러니 자네는 가서 애첩의 엉덩이라도 두들기고 있으면 돼."
구기자의 얼굴은 심각하게 구겨졌다. 주름진 노안 사이로 벌겋게 충혈된 두 눈이 비치고 있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내심으로 격동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 초 량의 몸이 다시 난초로 돌아서자 구기자는 그것이 방에서 나가라는 의미임을 깨닫 고는 입가를 씰룩이며 돌아섰다. 아무소리도 않고 인사조차 하지 않고 문을 나서는 그의 심경은 참혹한 것이었다.
"후후 금와전장! 그들의 실체는 뭘까? 그리고 진정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 까? 항상 사건의 배후에는 그 일이 발생함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이 연관 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는 분명 무림맹이 되겠지만 이것은 그리 단순하 게 생각할 성질이 아니다. 여기에는 먼저 마도련이 함께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결 정적으로 이 단순논리를 뒤집어 버린다. 그들은 어쨌든 현재까지는 적대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그렇다면 단순히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 거나 그도 아니면 현 국면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 으음...... 무림맹과 마도련은 단지 배후세력에 이용당한 것인가?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는가? 아 무래도 전자 겠군. 어쨌든 지금 시점으로서는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 내가 쥔 패는 최악이로군. 그러나 이것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항상 판은 끝나봐야 결과를 알 수 있고 승리는 언제나 힘이 있는 자에게 돌아간다는 것."
그의 시선은 난초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의 생각은 복잡하게 얽혀진 현 상황을 풀어 가느라 분주했다.
혈수천자가 사형 초량의 부름을 받고 그의 처소로 들어갔다 나온 뒤, 일단의 무리들을 이끌고 장원을 나선 시각은 중천에 떠 있던 해가 가파르게 서 녘으로 기울어가던 시점이었다.
★ 파천은 수행인 하나 대동하지 않고 무림맹을 비밀리에 빠져나왔다. 그는 조금전의 태의전의 상황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대하표국의 대규모 표행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곳은 12군데 였습니다. 이번이 그 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적기라 판단되어 신안전주와 더불어 의논했고 곧 바로 대령사의 재가를 얻어 표행을 탈취케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11군데에서 표물을 탈취하는데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신비인들에게 전원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동일한 상황이 강남의 12군데에서도 일어났으며 놀랍게도 그들은 마도련이었습니다 ."
백호전주는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그다지 조리있다 할 수 없는 상 황보고를 했다. 그의 말을 신안전주가 이었다.
"우리가 정보를 얻어 낸 출처는 대하표국에 심어 놓은 첩자로부터입니다. 그가 준 정보는 정확한 것이었지만 한군데만은 표행의 규모가 정보와는 달리 그 두 배에 이 른 것으로 여겨집니다. 문제는 우리들을 친자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대하표 국이 표물을 노리고 자작극을 벌였다고는 보기 힘들고 그렇다고 금와전장이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혈마천을 비롯한 새 외의 세력 중 한곳으로 추정됩니다. 이번 일로 그들의 정보력이 이미 중원 곳곳에 뻗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우리에게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 워 둬야 할 것 같습니다."
파천은 삼안천뇌 소천악의 말을 떠올리며 실낱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움직여 가 는 방향은 개방이었다. 공중을 갈라가는 그의 움직임은 어둠에 가려 분간이 가지 않았다.
★ "역시 지존의 예상대로 대상벌에서 사람이 나왔습니다. 이미 천마님께 연락을 취해 두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생애 가장 지독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개왕 풍천호는 생각만 해도 신난다는 표정이었다.
"좋아. 이제는 하군표에게 연락을 하게. 행동개시하라고...... 그리고 쌍노!"
"네. 지존."
"이제 자네들도 움직일 때가 온 것 같군. 준비한 세력을 움직여도 될 것 같아. 그 리고 이후의 지시는 풍노를 통해 할테니 그렇게 알도록 하고."
"존명."
"이제 중원은 한바탕 악몽을 꾸게 될 것이다. 새외의 세력들 역시 더 이상 기회만 을 보고 있지만은 않을 거다. 그렇다고 전면전으로 가는 것도 아니지. 모두 어쩔 수 없이 싸움판에 끼어 들게 만들어야 한다. 서로를 경계하느라 전면전으로 나오지 는 못하고 그렇다고 손놓고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 사이를 비집고 흙탕물을 일으켜 놓으면 우리가 얻을 것은 많을 거야."
파천의 미소를 대한 쌍노와 개왕은 내심으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야 말았다.
마치 함정을 파 놓고 앞으로 닥칠 상황을 즐기고자 하는 악동의 만족한 모습을 보 는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파천은 화제를 돌렸다.
"소군이랑 소왕은 잘 있나?"
"네. 지존. 소군은 지금 지하연무관에 폐관수련중입니다. 역시 그녀의 재질은 천에 하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무공에 대한 집 념이 보기 드물 정도로 탁월합니다. 내 지금까지 이렇게 지독한 계집아이는 처음 봅니다."
의노의 말에 파천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테지...... 그 녀석의 집념은 나조차 감탄한 것이야. 앞으로 빠른 성장을 보 일 거야. 이후 이 시대를 호령하는 여제가 탄생할지도 모르겠군."
★ 혈수천자는 말을 몰아가며 사형인 천무태공이 한 말을 떠 올렸다.
"배후를 캐 보아라. 그리고 이후 너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 세력들을 적절히 이용하여 닥치는 대로 휘저어라. 무림맹이든 마도련이든 이곳 중원의 모든 무림인 들은 어차피 우리의 적이다. 현재 우리의 동지는 혈마천 외에는 없다고 생각해라.
무림맹의 조직을 중심으로 두드리되 전면전이 될 소지는 없애야 한다. 이를테면 무 림맹 각 지부의 산하조직들은 치되 그들을 직접 치는 행동 따위는 안 된다는 말이 다. 알겠나?"
'빌어먹을 새끼! 그래 지금은 네가 내게 큰 소리를 치지만 언제까지 가나 보자. 사 부님의 명이라니 일단은 내가 참는다. 그렇지만 내 언젠가는 네 놈의 그 시커먼 속 을 낱낱이 드러내게 하고야 만다. 빙화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이미 내 륜은 네 목을 갈라놓았을 것이다.'
그가 거느린 기마대의 수는 삼백기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그 의 바로 뒤에는 항상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서른명의 검수가 함께 했다. 그 들은 현재 황하를 따라 동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최종목적지는 제남이었다.
유일하게 탈취당하지 않은 대하표국의 제남분국을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황하를 따라 가다보면 무림맹의 총단이 있는 무림맹에 맞닥뜨리게 되기에 함포에서 황하를 건널 생각이었다.
두두두두
기마대의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선두에서 휘날리는 말갈기와 짝을 이루며 바람결 에 춤을 추는 옷자락은 휘영청 솟은 달의 비추임을 따라 멋진 광경을 연출했다.
함포에 도착한 일행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은 나루였고 밤이었기에 사공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생각과 달리 저 멀리 어렴풋이 인영이 보였다. 그는 강 쪽으 로 돌아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중이었다.
히히히힝
'팔자 편한 놈이군. 이 야심한 밤에 홀로 낚시나 하고 있으니......'
큰 삿갓을 눌러쓴 사람은 삼백기의 기마대가 자신의 뒤에 요란스럽게 당도했는데도 뒤조차 돌아보지 않았다. 혈수천자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봐. 너 이곳의 사공인가? 돈은 원하는 만큼 줄 테니 우리 모두 강을 건너게 해 라."
명령조였다. 혈수천자에 의해 사공이라 단정지어진 인물은 넓은 등판에 달빛을 적 시고 미동도 없이 낚싯대에만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가 여전히 반응이 없자 혈수 천자에게서 살기가 뿜어졌다.
"이런 촌 무지렁이 놈이 감히 이 어르신이 말씀하시는데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단 말인가?"
그가 살기 어린 음성을 토해내며 위협해 보았지만 그 사공은 역시나 석상이라도 된 양 꼼짝하지 않는다. 혈수천자는 기이함을 느꼈다. 그는 주위를 빠르게 살펴갔다.
자신들 일행과 귀머거리일지도 모를 사공 외에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했 다. 그는 자신의 느낌을 확신했다. 혈수천자는 뒤를 돌아보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 그의 신호에 따라 한 명의 수하가 사공에게로 다가섰다. 지척까지 다다른 흑의사 내는 돌아앉은 사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죽고 싶은가? 당장 일어나서 배를 대지 않으면 너를 죽이겠다."
의도적으로 내공을 실어 상대에게 전하고는 의기양양해서 그 반응을 살폈다. 그러 나 그는 곧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지고야 마니, 사공은 그의 기대와 는 달리 멀쩡했으며 오히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서 뒤 돌아서지 않는가? 달빛에 드러난 그의 용모를 대하는 순간 흑의무사는 흠칫 놀라며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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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 오늘은 이것 한편입니다.
좋은 소설 하나 추천을 하겠습니다.
이곳 시리얼에 올라오고 있는 '대륙의 한'이란 무협소설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읽어보시면 압니다. 상당한 분량이 올라와 있는데 저도 시간이 없어 많이 보지 못 했지만 인내심을 가지시고 꾸준히 읽으신다면 흠뻑 빠져드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황제(皇帝)의 검(劍)-89 달빛에 드러난 삿갓 괴인의 용모는 한 자루 검에 목숨을 걸고 있는 흑의무사마저 두려움에 젖게 할 만큼 공포스런 것이었다.
삿갓 아래로 드러난 턱은 달빛에 반사되어 청광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얼굴을 감싸며 흘러내린 머리털은 핏빛이 분명했다. 어찌 인간의 얼굴이 푸르고머리털이 붉을 수 있단 말인가? 흑의 사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척간이라 잘못 본 것은 분명 아니었다. 더군다나 괴인의 한쪽 소매는 간간이 스치는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것이 더욱 상대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켰다.그는 뒷걸음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변함없는 믿음을 주던 주군을 향하는 눈길엔자신으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한계상황에 직면한 구원의 의미가 담겨 있었지만 이내 그는그 생각을 포기해야만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주군의 얼굴이 평소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자신의 짧지 않은 생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저것은 공포의 표정이 분명했다. 세상에 무서울 것 없어 보이던 혈수천자의 이런 태도는 대체 무슨 연유란 말인가?
'헉...... 저자의 용모는 바로 혈마천의 이총사가 사형에게 주의를 주었다는 바로 그......'사형은 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혹시라도 중원에서 얼굴이 푸르고 머리털이 붉고 외팔이인 괴인을 만나게 된다면 무조건 도망쳐라.
혈마천 이총사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 자는 본 천황부에서 사부님을 제외하고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괴물임이 분명하다. 괜히 체면 따위를 생각하다 헛되이 생명을 잃지 말고 내 충고를 깊이 새겨두는 것이 좋을 게다.
혈수천자의 눈은 더 이상커질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고 그의 입은 슬며시 벌어지고 말았 다.
너, 너는 대체 누구냐? 스스로의 음성이 떨려 나오고 있음은 추호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 같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인물이 이 정도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설사 죽음의 위기가 닥친다 하더라도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지 않을 위인이 바로 이런 류의 유형이었고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그렇게 비쳐지고 있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의 음성이 절로 떨려 나옴은 실로 의외라 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삿갓 괴인은 태연히 발을 떼어 다가오고 이것만으로도 다소 거드름을 피우며 괴인에게 나섰던 흑의 무사를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얼어붙게 만들고야 말았다. 흑의 무사는 어떻게 해서든지 뒤로 물러서고 싶었다.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신체의 신경마저 한순간에 장악해 버렸음을 뒤늦게 깨달아 본들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유익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겨우 그의 입에서는 자신의 이런 상태를 모두에게 알리는 한 소리 신음성이 들릴 듯 말 듯 새어 나오니,으......으으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듣지 못하여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도 아닐진대 그의 혀는 석고를 물어 굳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이것으로 보아 이는 단순히 상대에 대한 거역할수 없는 두려움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사실이 그랬다. 흑의 무사의 눈앞에서 다가서고 있는 삿갓괴인의 몸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뻗치고 있었고 그것은 의도된 작용으로 흑의무사의 몸을 옭아매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런 점에서 말(馬)에 기품 있는 자세로 적당히 거만을 떨면서 앉아 있어야 당연할 혈수천자는 자신의 수하보다는 조금은 나은 처지라 할 수 있었다. 그가 탄 말이 주인의 뜻을 거부하지 않고 뒷걸음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이런 행동이 신호라도 된 듯이 삼백삼십명의 인영들과 한 그림자를 이루고 있는 말들이 동시에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서고 있었다. 이 상황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기에 당사자들인 일행들에게 극히 낯설고 이질적일 수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강물의 흐름과 보조를 맞추며 사람들의 발 밑을 흘러다니고 있었고 그것은 불현듯 그들에게 무사로서의 자존심과 오기를 한 여름밤의 악몽처럼 일깨우고야 말 았다.
이이...... 모두 멈춰라. 그리고 너, 너도 거기서 멈추어라.
흐흐흐흐삿갓괴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낮은 흉소는 불같이 일어섰던 일행들의 투기를 어렵지 않게 으깨어 버렸다. 모두 쳐라. 놈을 죽여라.
악을 써대며 명을 내리는 혈수천자의 모습은 언제나 당당하던 예전의 것이 아니었고 이것은 그를 아는 수하들에게도 동일하게 비쳐지고 있었다. 처음에 앞으로 나섰던 흑의무사는 정말이지 자신의 주군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어느새 다가선 괴인은 어깨를 잇대고 한 선으로 숨쉬고 있었는데 감히 옆을 쳐다보아 알 수는 없으나 분명 그곳엔 마주치지 못할 두려움의 원천이 불을 밝히고 있을게 분명했다.
숨죽여 호흡을 끊어 가는 흑의 무사의 목에서는 거칠게 걸려서 넘어오는 투박한 숨이 토해지고 심장은 요동쳐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너희들 같은 피라미들에게는 관심도 없지만 내 친구는 그렇지가 않거든......
스스로 운이 없음을 한탄해라. 내 손에 피를 묻히기 싫으니 모두 자결해라.
흑의무사의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삼백명이 넘는 자신들의 일행들에게 하는 말이 분명해 보였다. 모두 저 자를 포위하라.자랑스런 주군은 기껏 그런 명이나 내리고 있었기에 흑의무사의 낙담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한 번의 손짓으로 상대를 두쪽내던 주군의 륜은 더 이상 절대의 믿음을 약속하지 못했다. 헉......흑의 무사의 어깨에 괴인의 하나밖에 없는 손이 놓여지자, 헛 바람을 삼키며 기함하고야 만다.
한심한 놈들이군. 너희들에게 더 이상의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군.
지루하니깐 될 수 있으면 빨리 끝내자. 세상에 이 정도로 오만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는 진정 눈 앞에 보이는 삼백 기의 기마대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무렇게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는 돌멩이쯤으로 보인단 말인가?
그도 아니라면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는 실성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인가?
어쨌든 상관은 없어 보였다. 혈수천자의 손이 들리는가 싶었더니 앞으로 힘차게 뻗어가자 뒤의 기마대는 언제 그랬느냐 싶게 용맹스럽게 말을 몰아 괴인의 사방을 에워쌌다. 동작은 빠르게 취해졌지만 그들의 표정만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삿갓괴인의 태연한 신색을 확인하자 그들의 표정엔 불안감만이 기승을 부리며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달빛도 숨을 멈추었고 바람도 잠잠해 졌다. 삿갓괴인은 흑의무사의 어깨에 올려져 있던 손을 이동하여 삿갓의 끝을 움켜쥐었다.그가 움직임을 보이자 흑의무사들은 한 동작으로 무기들을 빼어 들었다. 그들이 토해내는 거친 숨결과 그들의 검과 도에서 뿜어지는 빛들이 어우러져 장내에 긴박감을 더할만한 긴장을 일층 무겁게 얹어 주었다. 모두의 시선은 괴인의 손에 머물렀고 이를 즐기기라도 하는 듯이 괴인의 손은 느릿하게 삿갓의 끝을 들어올리며 가려있던 얼굴을 달빛아래 확연하게 드러내었다. 완전히 드러난 괴인의 얼굴은 마주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괴이한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만약 어둠 속에서 불현듯 홀로 마주쳤다면 심장이 멈추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그런 용모였다.
그는 천마였다. 천마교의 창시자이자 무림사 최고의 고수라고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전 설,
그 자체의 인물인 것이다. 이런 것을 알리 없는 흑의무사들은 자꾸만 움츠러드는 마음을 다잡아 일으키며 투기를 불태웠다.
혈수천자의 명이 떨어지면 언제든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고 그들이 내뿜는 기운으로 장내의 공기는 한껏 팽팽하게 고조되어 갔다.
천마의 옆에 서 있는 인물은 사건의 중심에 있음에도 마치 방외자라도 된 듯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아니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손가락 하나라도 꼼짝하는 날에는 더 이상 숨쉬는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으리라 여겨졌다.
쳐라.드디어 혈수천자의 입에서 공격명령이 토해졌다.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던 순간이기도 했으므로 그들은 순간 흠칫거렸고 그 순간, 천마의 손에 들려 있던 삿갓이 허공을 향하여 쏘아졌다.
순식간에 삼십여장까지 이른 삿갓이 불을 뿜으며 터져 나갔다. 이런...... 신호탄이었나?
그렇다면......혈수천자는 멍하니 그것을 쳐다보며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촤촤촤기이한 소리가 밤의 적막을 찢어오며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고 그 방향은 강 쪽이 었다.
괴인은 느긋하게 허공의 한 점에 시선을 둔 채 움직이지 않았으며 혈수천자의 공격명령을 수행해야 할 수하들도 몸을 정지하고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강 위엔 무엇인지 모를 그림자들이 빠르게 이쪽으로 이동해 오고 있었다. 세상에 그러고 보니 그것들은 물위를 스치듯이 밟고 오지 않는가?
'세상에.'혈수천자는 놀라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육안으로 구분이 가능한 지점까지 다가온 그것들은 분명히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었고 물경 100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놀라는 이유는 물을 밟고 몸을 띄우는 경지라는 무력답수(無力踏水)나 물을 밟고 빠르게 뛰어가는 등평도수(登萍渡水)의 절정경신법을 펼쳤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자신 또한 저 정도의 경공이라면 손쉽게 펼칠 수가 있다. 문제는 그 숫자에 있었다.
100여명이나 되는 인원이 너무나 능숙하게 물위를 스치듯이 뛰어오지 않는가?
대체 어떤 집단이 내공 100년 이상이 아니면 흉내조차 불가한 절정경신법을 익힌 고수들을 이리도 많이 보유하고 있단 말인가? 그의 생각은 당연히 무림맹이나 마도련에 머물 수밖에 없었지만 눈앞의 괴인을 다시금 쳐다보고는 고개를 젓고 말았다.
어쨌든 자신들은 지금 함정에 빠진 셈이었다. 비록 인원이 적들의 세배에 이른다지만 자신이 알기에도 강 위를 뛰어오는 고수들 정도는 직속수하들 30명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할 수 있으니 위험을 쉽사리 벗어나지는 못할 것임을 절절히 직감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인물들 중 선두에 있는 자들이 물을 박차고 허공 중으로 뭣들 하는 거냐?
정신들 차려라. 모두 수비대형으로......혈수천자의 다급한 명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십 여명의 적들이 무리 중에 뛰어드는 것이 눈에 잡혔기 때문이다.
천마는 느긋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고 속속 나머지 인원들이 합류하며 흑의무사들을 핍박해갔다. 그들 역시나 흑의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에 붉은 혈룡을 수놓고 있었다. 천마의 옆으로 한 사람이 사뿐히 내려섰다.
황제(皇帝)의 검(劍)-90 [조사를 뵙습니다.]천마에게 전음을 보내며 고개를 깊숙이 숙이는 자의 얼굴은 너무나 준수했다. 달빛을 받아 더욱 신비스럽게 보이는 자는 다름 아닌 옥기린 야율정혼이었다. 그는 마황검위대 16명의 소대주중 일인이기도 했고 그와 함께 장내에 나타난 인물들 역시 마황검위대의 대원들이었다.
한 놈만 빼고 모두 죽여라.천마의 명이 있자 옥기린도 격전 중으로 합류해 갔다.
그의 입가에 매달린 미소가 더욱 진득한 살기를 느끼게 했다. 혈수천자는 다급해졌다.
예상을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수하들은 정체모를 적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비슷한 수준을 보이는 자들이라곤 직속수하들 삼십인 정도였고 그들 역시 힘에 벅찬지 연신 물러서기 바빴다. 적들은 잔인했고 망설임이 없었다.
일 검에 목이 달아나는가 하면 허리가 두 동강이 나 바닥에 엎어졌고 무기마저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예가 빈번했다. 마황천위대는 천마교에서도 40대 미만의 비교적 젊은 층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고 보면 지금과 같은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혈수천자는 속속 쓰러져가는 수하들을 돕기 위해 몸을 솟구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각에 불과했고 당장에 그에게 다가서고 있는 적을 경계해야만 했다. 조금전 당도한 무리들 중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
자신의 사형만큼이나 잘 생긴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고 다가서고 있다 판단한 순간 혈수천자는 두 개의 륜을 꺼내었다. 양쪽에 나누어 잡은 륜의 촉감이 서늘하게 정신을 일깨워갔다. '속전속결이다. 어차피 저 뒤에 있는 놈은 인정하기 싫지만 나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고수다. 그렇다면 이 놈을 최대한 빠른 순간에 죽이고 도주하는 편이 상책이다.'혈수천자는 그 짧은 순간에도 살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미 대세는 기울어가고 있었다.
수하들을 구해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럴 바에는 자신이라도 살아남아 복수하는 편이 나으리라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옥기린은 지극히 평범한 신법으로 혈수천자가 탄 말을 향해 다가섰다. 둘의 간격은 오장!
한번의 도약으로 다가설 수 있는 거리임에도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 또한 상대가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님을 직감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성격자체가 일을 함에 있어서 느긋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손에는 흔한 쇠 조각 하나 들려져 있지 않았기에 혈수천자는 상대가 육장을 주로 사용하는 자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둘이 차차 간격을 좁히는 모습을 쳐다보던 천마는 홀로 격전을 감상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의 옆에는 처음에 나섰던 흑의 무사가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는 중이었다.
천마의 시선이 슬쩍 그에게 머물자 그는 온몸을 경직시키고야 말았다.
천마의 고개가 적들을 주살하고 있는 마황천위대의 몸짓을 쫓아 움직여 갔다.
'그럭저럭 훈련들은 되어 있는 것 같군. 저 정도면 어떤 일을 맡겨도 마음졸일 일은 없겠군.
그러나 뭔가 부족하다.'그가 내린 판단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체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가?
삼백삼십명대 백명의 싸움이건만 마황검위대는 거침없이 적들을 쓸어 넘기고 있었는데도 부족한 것이 있단 말인가? 옥기린과 혈수천자의 간격이 이장에 다다랐을 때였다.
혈수천자는 말 등에서 몸을 솟구치며 허공 중으로 비호같이 떠올랐고 그의 양손에서는 황홀하게까지 여겨지는 빛 무리가 충만되어갔다. 그는 양손을 교차하며 가슴 앞에서 모으는가 했더니 다가서는 옥기린을 향해 홱 뿌렸다. 륜은 빛 무리를 이끌고는 어둠을 가르며 기이한 소음과 함께 곧장 옥기린을 쪼개갔다. 지극히 평범한 직선을 택해 다가오는 두 개의 륜은 어찌 방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강하고 빨랐다.
옥기린은 두 손을 펼쳐 벽이라도 문지르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쾅허공 중에 있던 혈수천자는 공간이 터져 나가는 압력에 더욱 위로 떠올라 갔고 옥기린은 곧장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어느새 새하얀 소수를 지닌 옥기린은 좀 전의 격돌에도 아무런 상처도 없이 멀쩡했다. 그는 땅위에 지천으로 널린 풀잎을 지르밟고 또 다시 몸을 솟구쳤다. 여전히 그의 손은 새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는데 핏줄이라도 비칠 듯이 점차로 투명해지기까지 했다. 옥기린의 수강과 부딪힌 륜은 다시금 혈수천자의 손안으로 회수되었다가 공간을 찢으며 재차 날아왔다.
순간 옥기린은 열 개의 길고 가늘기까지 한- 어찌 보면 여자의 것 같은 손가락을 바닥 쪽으로 오므리며 손바닥의 중심을 돌출 시켜 내밀었다. 그리고는 곧장 하늘을 떠받들기라도 하려는 자세로 허공에 무수한 원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윙윙대는 소리와 함께 손 그림자들이 불어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순식간에 삼십여개로 불어난 듯한 손바닥이 아까 와는 달리 새끼줄이라도 꼬는 듯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짓 쳐드는 두 개의 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저, 저 수법은 대체 뭐냐?'아무리 촘촘한 채라도 물을 담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물과도 같았다. 수 십 개나 되는 환영을 끌고 쏘아지는 손 그림자들은 그냥 내버려두어도 전혀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로 실체를 비껴가고 있 었다.
더군다나 목표점이 분명한 몸뚱이마저 회전을 일으키며 희미해져버리자 두 개의 륜은 공간만을 긁어대며 땅위를 낮게 스쳐가야만 했다. 두 개의 륜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곧장 방향을 꺾어 혈수천자의 곁으로 다가오기 위해 선회했다. 그러나 그 전에 그는 자신에게 다가서고 있는 손 그림자를 해결해야만 했다. 이럴 때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 다.
그는 곧장 허리를 비틀며 좌로 이장이나 몸을 이동했고 그것도 모자라 두 발을 휘두르며 위로 일장이나 더 떠올랐다. '이, 이놈이'여전히 자신에게 다가서던 손 그림자는 멈춤이 없이 전진해오고 있었다. 그 뒤를 두 개의 륜이 따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무의식 중으로 두 손을 뻗쳐 장력을 발출 했다.펑가죽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발출된 장력은 당연히 눈앞의 손 그림자를 잔가지 치듯이 꺾어버려야 했다.
팡억혈수천자의 몸이 동그랗게 말리더니 허공 중에서 연속적으로 맴돌고 만다.
그는 자신의 장력이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자 몸을 웅크리며 두 팔을 오므려 상대의 공격을 호신강기를 일으켜 막으려 했던 것이다. 어차피 자신을 공격하는 그 순간 상대 역시나 륜의 공격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계산에서 살을 주고 뼈를 가르겠다는 나름대로의 회심의 계산이 깔린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가 받은 타격은 호신강기를 일으키고 거기다가 두 팔로 막았음에도 적다 할 수 없는 것이었고 타격 당하는 순간, 충격의 여파로 회전을 한 것이다. 그는 오장이나 뒤로 날려가며 땅에 간신히 내려섰다. 착그의 양손으로 돌아온 륜을 주의 깊게 쳐다보던 그는 상대에게 아무런 상처조차 주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정말이지 그가 이런 경우까지 당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예전부터 중원의 무공을 은근히 깔보는 버릇이 있었다.
비록 천황부내에서는 10위 내에 간신히 들어가는 실력이지만 중원에 나가기만 하면 감히 자신의 앞을 막아 설 수 있는 자는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눈앞의 인간 같지도 않은 괴물도 아닌 그의 수하쯤으로 여겨지는 놈에게조차 자신이 밀린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빨리 이곳에서 도망가야겠다는 애초의 계획은 벌써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 당한 치욕을 상대에게 돌려주지 않고서는 이곳에서 살아난다고 해도 전혀 기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는 빠르게 상대를 살펴갔다. 역시나 상대는 아무런 상처도 없이 멀쩡하게 서 있었고 그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 시선에는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뒤에 있던 괴인이 입을 열었다.지루하군.
너 지금 뭐 하는 거지?자신의 수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옥기린은 천마조사가 하는 말 뜻을 알고서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빨리 끝내겠습니다.
하긴 오랜만의 실전을 싱겁게 끝내긴 싫겠지. 그렇지만 이건 비무가 아니다.
전력을 사용하면 오 초식 안에 끝낼 수 있는 놈에게 너의 그런 행동은 오히려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빨리 끝내거라.존명.'저, 저놈들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나를 오 초식 안에 끝낼 수 있다고? 이런 똥물에 튀겨 죽일......
'혈수천자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신이 자부하기를 천하제일 방파인 천황부에서도 자신보다 강한 인물은 일곱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저 놈들이 지껄이는 말들은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오만방자한 말이지 않는가?
물론 좀전의 격돌로 상대가 자신에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자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전력을 기울인다면 결코 상대가 자신을 능가하지 못할것이라 자신하고 있었기에 자부심에 상처 입은 그의 분노는 금세 주체하지 못할 살기로 화해 이성을 마비시키고야 말았다. 아니다. 물러서거라. 지켜보기도 지루하니 내가 손을 써야겠다.막 앞으로 돌진해 가려던 혈수천자는 괴인의 그 말에 등줄기가 싸늘해짐을 느꼈다. 이제야 상황판단이 선 것이다. 그가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두려움의 원천인 괴인이 직접 나선다는 말은 그에게 현 상황을 새롭게 인식케 하기에 부족하지 않았고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을 빠르게 그에게 요구하고 나섰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도망가도 모자란 판에......
'그는 그제야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삼백이 넘던 수하들 중에 살아 남아 있는 자들은 백 명도 채 안되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그 많은 수의 수하들이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오금이 저려왔다. 적들은 그의 예상보다도 훨씬 강했던 것이다.
모두 뒤로 물러서라.천마는 내공을 실어 큰 소리를 발했다. 그의 외침소리가 있자 마황검위대 일 백 검사들은 순식간에 뒤로 물러서며 공간을 벌리고 섰다.
그들의 일사분란한 퇴각에 살아 남은 천황부 백여명의 무사들은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라 어안이 벙벙해 있는가 하면 지금까지 스스로가 살아 있음에 감격해 하는 놈들도 보이는 것 같았다.
대체로 살아 있다고는 하나 여기저기 입은 가볍지 않은 상처로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들이 태반이었다.
천마의 시선이 옆에 있는 흑의무사에게 고정되었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손이 상대의 어깨에 다시 슬그머니 자리를 잡자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놈의 전율이 느껴졌다.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대는 사내를 향해 그는 나직한 음성을 토했다.너는 이미 죽었다. 무사로서의 자부심은 어디 가고 이리 처량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살아 있어도 가치가 없으니 차라리 죽거라.
죽음에 대해 이리도 가벼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 말이 한 사람에게만은 그 무엇보다 절실한 박탈감을 줄 것이지만 이 또한 다른 사람에게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일상의 흔한 일처럼 여겨지는 듯 했다.
천마의 손이 순간적으로 붉어진다 여겨지고 빛은 천마의 손을 통해 흑의무사의 어깨와 가슴과 옆구리를 직단으로 가로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푸확사내의 반대쪽 옆구리가 몸 속의 내용물을 남김없이 쏟아내며 터져 나갔다.
피와 살과 조각난 뼈...... 한 사람의 삶이 지닌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애처롭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천마는 자신에게 무슨 권한을 부여받고 이런 살행을 저지르는지를 설명할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는 인간! 그가 하는 일은 언제나 정당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준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의 유일한 근거라고 믿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것으로 족했다. 그는 자신의 뒤로 물러서 있는 마황천위대의 기대에 찬 시선의 배웅을 받으며 지독하다 싶을 정도의 잔인한 살수 앞에 기가 죽어 있던 살아남은 천황부 인물들을 향해 죽음의 집전을 행하고자 발길을 떼어갔다.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죽음을 도외시하고 끝까지 투쟁 하다 죽는 것과 조롱과 멸시가운데서도 살아날 가능성은 없지만 도주를 취해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모든 희망을 접고 조용히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어느 것 하나 그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이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것을 결정할 사람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저 자는 인간이 아니다.
도저히 측정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극강한 고수가 분명하다.
더군다나 저 잔인함은 인간의 심성이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빌어먹을......
여기서 내 인생이 끝나야 한단 말인가?'
정말 오랜만이죠?이제야 제가 연재할 공간이 생겨났네요.
이 홈은 앞으로도(황제의 검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사용할 홈입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매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축분이 있냐고 물으신다면.............없습니다.그 동안 뭐했냐고요?
놀진 않았습니다. 삼권 수정하고 앞으로의 전개를 다시 한번 검토하고 세밀하게 짜는 등을 했습니다. 저는 원래가 연재하지 못하면 글을 빨리 진행시키지 못하고 써 놓으면 연재 안하고는 못 배깁니다.
그래서 부득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당분간은 연재에만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사권 수정들어가기전까지)감사합니다. 도깨비 배상.
황제(皇帝)의 검(劍) - 91 며칠 전 만해도 그의 입장은 항상 반대쪽을 점하고 있었다.
운명은 이리도 손쉽게 위치를 바꾼 채 인간을 조롱한단 말이었던가?
혈수천자는 손안에 쥐고 있는 두 개의 륜을 힘주어 잡았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에 거부할 수 있다면, 비참한 삶일지언정 구걸하여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그리하고 싶었다. 그의 입을 비집고 메마른 웃음이 흘러 나왔다.
푸흐흐흐자신이 지금껏 죽여왔던 사람의 수 역시나 결코 적다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런 행위자체를 지극히 당연시 해 왔다. 그가 가장 경멸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나약함이었고 스스로를 지킬 힘도 없어 당하는 고통과 고난이라면 언제든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었다. 정작 자신이 그런 입장이 되고 보니 죽어가던 자들의 눈빛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도 같았다.
잠시의 감상이 그를 이 위기에서 구출해주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그의 입에서는 마지막 죽음의 형태를 결정짓는 명령이 터져 나왔다.
천황부의 전사들이여! 장렬하게 산화하자.저 놈을 죽여라!
라는 따위의 말은 할 필요도 없었다. 그 정도로 눈앞의 괴인은 도저히 파괴할 수 없는 철벽처럼 여겨졌고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한계상황으로 다가왔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저히 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젖어 어찌할 수 없어하던 무기력한 자들의 눈빛이 아닌, 죽음마저도 초월한 듯한 맹렬한 살기와 투기가 힘차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천마를 향해 몸을 솟구쳐왔다. 검과 도를 하나로 하여 전력을 내뿜는 그들의 기세는 사뭇 대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천마는 조롱이 아닌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호, 이제야 조금 무사들답구나.
너희들의 마지막을 나 또한 성의를 다하여 장식해주마.지금의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직한 웅얼거림이 천마의 입에서 흘러나옴과 동시에 그의 몸이 모로 서는가 했더니 손을 앞으로 쭈욱 내 뻗었다.
그의 손은 점차로 커지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었고 실제로는 그의 손을 감싸고 강기가 물고기의 비늘처럼 벗어지고 있었다.
눈앞으로 쇄도해 들어오는 천황부의 고수들을 향해 천마의 손에서 비롯된 수강은 소리도 없이 그들 모두를 한꺼번에 쓸어갔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빛의 정령들이 한꺼번에 출몰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퍽퍽퍽닿는 것은 그 무엇이든 뚫어버리는 위력은 보아도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피할 수도 없는 것이 자신들을 향해 전 방위를 메우며 쏟아지고 있었으니 어디로 몸을 빼낸단 말인가?
결국은 더 강한 힘으로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으나 안타깝게도 자신들에게는 그런 힘이 없었다.으악꺽처절한 비명을 토해내는 흑의인들의 몸은 터지고 갈라져 처참지경을 연출했다. 혈수천자와 천마의 뒤에 시립해 있던 일백 마황검위대 검사들 역시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의 흑의인들 중 온전히 고개를 들고 서 있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천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혈수천자에게로 시선을 고정해 갔다.어서 덤비지 않고 뭐 하는 거냐?
자신에게 한 말이 분명하건만 그는 마치 딴 세계에서 울려 나오는 그래서 자신과는 하등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고 싶었다. 정말이지 저런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못 마땅했고 하필이면 이런 자리에서 맞닥뜨린 것도 불운이라 여겨졌다. 이제 살아 남은 자라고는 자기 하나밖에 없음을 절감하는 것이 왜 이리 힘이 드는 일인지.
그때 문득 아까 괴인이 뱉어내었던 말이 섬광처럼 뇌리에 떠 오른 것은 정말이지 그가 생각해도 천운이라고 생각되었다.한가지 묻겠소.혈수천자의 침착한 음성은 모두에게 뜻밖으로 여겨졌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며 공격해오리라 생각했건만 그는 의외로 태연했으며 마치 오랜 지기에게라도 하는 듯한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뭐냐?천마는 귀찮다는 듯이 짧게 내 뱉었다.아까 분명히 하나만 빼고 모두 죽이라고......
하지 않았소?천마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놈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이다.
'이 놈도 쥐새끼였군. 어떻게된 게 진정한 무사를 보기가 이렇게 힘이 드나?
죽는 것이 두렵다면 이 거친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말 것이지......
에잉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야.'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지금 이 중에 살아 남은 사람은 나 하나인데...... 그럼 날 살려주겠단 말이요?
원래 천마가 하나만 빼고 모두 죽이라고 한 것은 한 놈을 살려 알아볼 것이 있기 때문이었 다.
그랬던 것인데 놈은 용케도 그 말을 걸고넘어지며 생명을 구걸하고 있는 셈이었다.
천마의 푸른 얼굴이 꿈틀거리며 요동쳤다. 살고 싶나?
세상에 죽음을 앞에 두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혈수천자 역시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았고 그의 입에서는 당연히 그의 내심을 반영하는 말이 다급하게 흘러 나왔다.그렇습니다.
살고 싶습니다.상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을 금세 뒤바뀐 그의 어투에서 쉽게 알 수 있었다. 천마는 경멸의 눈빛으로 혈수천자의 아래위를 훑어보았 다.
너는 나에게 복수를 하고 싶지 않나? 기회를 주지. 네 수하들의 죽음을 이대로 묻어 버린다 면 아마도 원혼이 되어서라도 너를 괴롭힐 것 같은데......절 살려 주십시오.
전......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뱉은 약속은 지키실 분이라 여겨지는군요.
허...... 천마의 뒤에 시립하고 있던 옥기린 역시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삶을 구걸하다니......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고 그것을 보자 더욱 상대를 죽이고 싶어졌다. 조사님만 아니라면 저 놈을 당장 쳐죽여 버리고 싶었다.
좀 전의 격돌 때 사정을 보아 줬던 것이 이제야 후회되기 시작했다. 좋다. 살려주지.
천마의 그 말에 각기 다른 반응들이 표출되었다. 혈수천자의 얼굴은 희색이 만연했으며 옥기린 등의 천마교 고수들의 얼굴엔 의외라는 눈빛과 말도 안 된다는 심경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대신, 너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 너의 생명을 살려주는 대신 넌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도 하겠느냐?생각할 것도 없었다. 살아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지상최대의 목표였으니......하겠습니다. 제가 어찌하면 됩니까?
그의 얼굴에는 이제야 살아 날 수 있다는 안도감에 겹쳐 상대가 어떤 요구를 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새롭게 피어난다. 아주 간단하다.
내가 묻는 질문에 답하는 것과 하나를 두고 가면 된다.그야 어렵겠습니까?
어서 질문해주십시오.대체 천마는 혈수천자에게서 무엇을 알아내려는 것인가?
눈앞에 있는 놈의 태도로 보아서는 어떤 얘기라도 술술 잘 털어놓을 것만 같았다.
천황부의 중원세력과 너희들의 본진의 전력을 읊어 보아라.혈수천자는 난색을 표명했다.
마치 그것만은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천마는 그의 그런 얼굴 표정을 살피더니 실소를 머금었다.하기 싫으면 말아라.
굳이 듣고 싶지도 않다. 전혀 쓸모도 없는 놈을 살려둘 만큼 난 자비롭지 못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혈수천자는 손을 쳐들며 빠르게 휘저었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하는데 말이 되어 나오지는 못했다.
생명에 대한 애착이 보기보다 집요하지 못한 놈이었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놈들을 보 면 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네게 죽음을 선사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분이 좋구나.
그래 그것도 괜찮겠지. 자기가 속한 조직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지니고 사라져 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
천마의 그 말에 혈수천자의 얼굴색은 점점 누리끼리해져갔다.
내, 내가 언제 말을 안 하겠다고 했습니까? 잠시 생각할 시간을......되었다.
갑자기 별로 듣고 싶지가 않아졌어. 흥미가 사라졌어.
그 딴 것 들어봐야 별 소용도 없고 말이다.대체 한 입으로 두 말을 할 수가 있는 겁니까?
너 또한 두 말을 하는데 나라고 지켜야 할 이유가 있겠느냐?말하겠소. 말하면 될 것 아니 요?
'정말이지 내가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처하게 되었단 말인가?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 다.
내가 살아있고 나서야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죽은 뒤에 내 충성심을 알아 줄 사람들은 아 무도 없다.
알아줘 본들 내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지 않은가?
'혈수천자의 얼굴은 내심의 결정을 보여주듯 빠르게 경직되어 갔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입이 한참이나 지나서 힘겹게 열렸다. 본 천황부의 중원 세력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 다.
대상벌에 상주하는 인원은 이천을 넘지 않고 나머지는 현지인들이 대부분이며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천황부의 본진의 전력은...... 으음......
사실상 우리들은 무림의 모든 세력들의 전력을 파악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죠.
객관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 혈마천과 사사혈교가 우리와 비슷한 전력을 지니고는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들보다 떨어진다 할 수 있습니다. 사사혈교는 숫자적인 면에서는 가장 많으나 절정고수의 수에서 뒤지고 혈마천 또한 우리보다 수적인 우위에 있지만 절정고수의 비중으로 따지면 우리보다 못합니다.
또한 자본력에 있어서는 무림맹도 우리의 상대는 아닙니다.
이런 모든 점을 감안한다면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본 천황부가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적인 정보는 그다지 많지가 않았다.
천마의 낯이 찌푸려지는 것 같자 혈수천자는 얼른 말을 바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 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하나같이 도저히 적에게 알려져서는 곤란한 기밀에 속하는 것들이었고 그 자신도 이런 것을 알기에 말하는 내내 편치 않은 표정 이었다.
'참으로 한심한 놈이군. 부주의 제자라는 놈이 제 한목숨 부지하고자 조직의 기밀을 누설하 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