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8화
머릿속에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 공부 시간을 어찌해서든 줄여야만 된다는 의무감으로 가득 찼을 뿐이다.
그렇게 다급한 걸음으로 단숨에, 황석후의 집무실 문 앞에 선 황준우가 문을 열어 젖혔다. 호위를 서는 무인들이 말릴 틈조차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아버지!”
“음…… 우야?”
황석후가 조금은 놀란 눈으로 황준우를 맞이했다.
“드릴 말이 있습니다!”
“혹시 공부가 너무 고된 것이냐?”
“흐음…….”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물 흐르듯 이어진 대화에 황준우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뭐지, 이 묘한 느낌은?’
그런 황준우를 바라보며 입가로 부드러운 웃음을 그린 황석후가 되물었다.
“한번 들어보자꾸나. 그래, 우리 우아. 어떤 점이 고된 것이냐?”
“시간이 너무 길어요. 하루 삼 시진씩 매일같이 이렇게 공부라니요. 제게도 자유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계속 이리 공부한다면 저 정말 숨 막혀 죽을지도 모릅니다.”
양손으로 제 목에 가져다 대며 과장되게 말하는 황준우의 두 눈에는 깊은 진정성이 담겨져 있었다.
정말 더 이상은 무리다.
‘확실히 무리긴 하지.’
어찌 황준우가 이리 반발할지 몰랐을까?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웃음을 지은 황석후가 고개를 주억였다.
“결국 매일 공부를 하는 것이 문제인 게냐?”
“예, 아버지.”
“좋다. 하면 매일 말고, 이 주야 건너 하루씩으로 하자꾸나.”
처음 대화할 때부터 느껴졌던 물 흐르는 듯한 대화가 너무나도 쉽게, 마무리까지 이어졌다.
“마음에 안 드는 게냐?”
“아뇨, 아뇨. 그건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애초부터 황석후에게 당한 것만 같은 기분이 왜 느껴지는 건지 모른다는 것이 또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면 되었지.”
보고 있던 두꺼운 서류 뭉치를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킨 황석후가 말했다.
“마침 네가 찾아왔고 해도 슬 기울고 하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꾸나.”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말렸다.
하나 이제 와서 돌이키기에는 황석후가 내민 제안이 너무나 달콤한 꿀과도 같았다.
반론할 허점도 없었고 말이다.
“네…….”
결국 황준우는 황석후의 말에 고개를 주억일 수밖에 없었다.
“네 어머니랑 연이도 많이 배가 고플 게다. 어서 가자꾸나.”
황석후가 먼저 집무실 바깥을 벗어나며 말한다.
‘쩝,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꼴인가.’
누군가 말했던가?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어린아이일 뿐이라고.
아무리 또래에 비해 영악하고, 전생의 기억을 가진 황준우라지만 머리 위에 선 부모님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서 가죠.”
결국 황준우는 씩씩하게 말하며 황석후의 뒤를 따라 나섰다.
식사 시간은 즐겁다.
새로 태어난 이후 맛보는 산해진미라고 할 수 있는 특산물이 가득한 식탁 앞에서 황준우는 여느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풍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다시 태어난 이후 이 시간이 제일 좋단 말이지!’
먹고 마시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제일가는 낙이라는 말이 틀린 것 하나 없다 생각한 황준우가 황석후를 바라본다.
상의 중심에 앉은 황석후가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먹자꾸나.”
그 말과 함께, 가족들의 저녁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하루에 있어 황준우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말이지…….’
가정적인 남편에 속하는 황석후는 다른 끼니는 몰라도 저녁만큼은 꼭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먹는 것을 선호했다.
그렇다 보니 말 그대로, 하루 중 모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확실한 시간이랄까?
이제는 황준우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할 수밖에 없는 시간인 것이다.
‘음식 맛도 환상적이고 말이야!’
젓가락을 들어, 큼직하고 뜨거운 만두를 한입에 집어넣은 황준우의 얼굴에 행복함이 가득 피어났다.
‘맛있어, 맛있어!’
재료도 재료지만, 황씨 일가의 식사를 담당하는 숙수의 솜씨도 보통이 아니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소문으로 듣자니 본래 황궁에서 황제에게 음식을 진상하던 숙수였다고 하던데, 어떠한 사연이 있어 만금장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뭐, 그 어떤 사연이란 것 대부분이 돈에 관한 거겠지만…….’
아무렴 무슨 상관이랴?
중요한건 작금의 만금장에 이처럼 훌륭한 숙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헤에…….”
그렇게 황준우가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녀가 있었다.
어느덧 제 발로 걷고, 제 손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한 황서연이었다.
다른 건 잘 모르지만 오빠가 웃는 얼굴이 좋다고만 생각하던 황서연이 또 다른 음식을 집어 황준우에게 건넨 것은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다.
“오빠, 먹어.”
황준우의 볼을 음식으로 톡 건드리며, 활짝 피는 웃음을 보인 황서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그 모습이 또 어찌나 귀엽던지 저도 모르게 심장 한편이 저릿하고 울려오는 감정을 느낀 황준우가 고개를 크게 주억였다.
“그럼, 그럼. 누가 주는 건데 꼭 먹어야지.”
한입에 황서연이 건넨 음식까지 모두 삼킨 황준우가 웃음을 지어 보인다.
“헤헤.”
그 모습을 본 황서연 역시 헤실거리며 함께 웃는다.
지켜보는 부모의 입장에서도 뿌듯할 수밖에 없는 다정한 남매 관계였다.
“호호, 우리 우아가 잘 먹고 연이가 잘 챙겨 주니 더 보기 좋네.”
“본래 반대로 되어야 하는 것 아니오?”
서시의 말에 황석후가 웃으며 반문했지만 딱히 큰 의문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두 남매가 사이좋게 잘 자라기만 하면 그만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큰 행복이 또 없는 것이다.
식사가 끝나고 방 안으로 들어온 황준우는 침상에 눕기 전 침상에 앉아 운기조식에 빠져들었다.
본래 운기조식이란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으로써, 직접적인 것이라면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어지고 목숨의 위협을 가져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나 한 명의 무림인으로서 내공을 다지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걸쳐야 하는 절차이니, 최선의 안전이 확보된 뒤에만 펼쳐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천조신공은 조금 다르지만 말이지.’
천조신공의 운기조식은 다른 내공심법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호흡을 하여 자연의 기를 받아들인다는 점은 같지만, 그렇게 예민하지만은 않달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정성이 훨씬 높았다. 큰 충격을 받는다면 분명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작은 충격 정도는 문제가 없다. 뿐만 아니라 주변으로 다가오는 기척들도 감지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난 천재란 말이야, 후훗.”
그 끝을 모르는 무리를 담은 무학(武學)인 천조칠무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공부가 담긴 천조신공. 둘 모두를 창시한 자신에 대한 뿌듯함에 황준우의 입가로 절로 미소가 흘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입가에 그려져 있던 웃음에 쓴 느낌이 베었다.
“평화…… 행복이라…….”
전생의 황준우였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
그 속에서 다시 태어난 황준우는 확실히 많은 것이 바뀌고 있었다.
예전의 황준우가 거친 산짐승과 같았다면 지금의 황준우는 얌전한 우리 안의 짐승과 다르지 않았다.
위협이 없고 마음이 안정되니 많은 것이 바뀐다.
‘여유의 차이인가?’
어찌 되었든 작금의 황준우와 전생의 황준우는 분명 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재밌는 일이지.”
천장을 바라보자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고 간 우내십존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본래의 황준우라면 지금쯤 그들에 대한 복수로 열의를 불태우고 있어야만 했다.
어찌 되었든 놈들에 의해 전 중원의 추격을 받았고 원공에 의해 당해 어린아이가 되었다.
화가 나는 상황인 것이다.
하나 우습게도 그러한 분노는 다섯 살도 되기 전 어린 나이에 모두 잠식되었다.
‘굳이 내가 저들을 찾아가 피를 볼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원공은 분명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터였다.
전생에 천살, 만살로 불리던 황준우에게 이토록 피를 멀리하게끔 만들었으니 말이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원공에게 졌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한 황준우의 눈이 무겁게 떨어졌다.
평온한 휴식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운기조식을 마친 황준우의 몸에 상쾌한 기운이 가득 들이찼다.
“사단공…….”
가슴 깊숙한 곳까지 차오르는 충족감과 함께, 또 하나의 벽을 허물은 것을 느낀 황준우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천조신공의 삼단공에서 사단공까지 삼 년이 걸렸다.
그 와중에 꾸준히 익힌 천조칠무의 일무(一武)에 속하는 호신공(護身功)과 이무(二武)의 유령신보(幽靈迅步)역시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각기 육체의 단련과, 신법과 보법을 담당하는 이무는 모든 천조칠무의 근간(根幹)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니 육체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이때부터 기반을 다져 두는 것이 옳았다.
실상 천조신공의 경우는 처음의 성취에 비하면 느리다고 볼 수도 있지만 황준우는 결코 조급하지 않았다.
천조신공의 특성을 생각하다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단공은 단순히 삼극을 하나로 연결하는 일이니, 애초부터 바로 통과되는 게 당연했지.’
천조신공을 만들기 전이라면 모를까, 창시자인 황준우가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삼극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일단공이란 말 그대로 연결의 과정.
그리고 이단공은 그러한 삼극이 조화되도록 공명(共鳴)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는 셋이지만 또한 같다.
그 속에 숨겨진 조화(調和)를 찾아내는 순간 천조신공은 자연스레 이단공으로 오르게 된다.
누군가는 무공의 극이라고 말하는 공부를 천조신공은 이단공에 있어 이미 품고 가는 것이다.
그를 넘어선 삼단공에 들어서면 땅과 하늘에서부터 통하는 기운을 몸 전체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어찌 보자면 이때부터가 진정한 천조신공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 네 살 당시의 황준우는 너무 어렸다.
천조신공을 통해 기운을 받아들인다 한들 소화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때문에 황준우는 성장을 기다렸다.
일곱 살이 된 지금이라고 하여 특별히 몸이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네 살 때에 비해 그릇이 커진 것만은 분명했다.
덕분에 기운을 천천히 축적해 나가던 황준우는 오늘에 이르러서야 천조신공의 사단공에 올랐다.
사단공부터는 기운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본인의 인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통제라고는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은 엄연히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갑자기 키가 커진다거나 팔이 늘어난다든가 머리에 뿔이 돋아난다든가 등의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은 불가.
하나 근력을 일부 증가시키거나 근육과 피부를 질기게 하거나 순발력이나 지구력을 높이는 일 등은 모두 가능했다. 단순히 내력의 힘만으로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당장이야 쓸 일이 없겠지만.’
애초부터 만들어지지 않은 몸으로 그러한 공능에 기대 봐야 제대로 된 무인이라 할 수 없다 생각하는 황준우는 사단공이 가진 대부분의 공능을 봉인해 둘 생각이었다.
단 하나, 뇌력(腦力)을 증가시키는 공능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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