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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47화 (47/373)

학사재생 47화

“꺼거거걱-!”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던 백흉이 다시 비명을 토하며 몸을 굽히기 시작했다. 완전히 펴졌던 허리가 본래와 같이 굽고 솟아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백아!”

“저, 저 다시 꼽추가 된 겁니까!?”

방금 전 느꼈던 고통보다, 다시 꼽추가 되었단 사실에 충격을 받은 백흉이 양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동시에 황준우의 손가락이 한 번 더 튕겨졌다.

“끄아악-!”

고통이 이어졌고 굽어졌던 백흉의 신체가 다시 쭉 펴졌다.

“어? 어?”

당황하는 두 사람을 바라본 황준우가 웃음을 보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상황 파악은 이걸로 됐을 것이라고 믿고. 이제부터 내 말을 충실히 이행한다. 이의 있는 쪽?”

“없습니다!”

“잘 따르겠습니다!”

중원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백흑쌍흉이 주인을 찾은 순간이었다.

7. 북경의 밤

백흑쌍흉 사건 이후 더 이상 그들의 보표행을 막아서는 이들은 누구도 없었다. 중간중간 어쭙잖은 암수가 몇 번 있었지만 다가오기도 전에 황준우가 모두 처리했다.

‘이게 다 대학사가 보낸 녀석들이란 거지?’

백흑쌍흉을 제외하고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지라 모두 죽였다.

그 행동에 있어 황준우는 망설임이 없었고 점점 더 문상이라 불리는 한림원 대학사에 대한 의문을 키워 갔다.

그사이 약 두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졌던 보표행이 끝을 맺었다. 안전하게 북경에 도착한 표사들은 마음 속 한편에 가지고 있던 짐을 모두 덜어 내며 환호성을 외쳤다.

“야호!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갈 때는 최대한 빨리 가자고. 어서 집에서 쉬고 싶어.”

“마누라 보고 싶어 안달 났구먼!”

표사들의 외침 속에 섞인 황준우 역시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제법 기나긴 임무를 드디어 끝낸 것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북경인데 이 주야 정도는 쉬었다 가는 게 어때?”

그 와중에 던져진 누군가의 의견에 반대하고 싶은 사람은 표사들 중 아무도 없었다. 집이 그리운 건 사실이지만, 곧장 출발하기도 아쉽다.

이 주야의 휴식은 모두가 원하던 꿀맛 같은 기회였다.

자연스레 시선은 황준우에게로 모여들었다.

누가 뭐라 해도 이번 보표행의 책임자는 황준우였으니 말이다.

“고작 이 주야로 되겠어? 삼 주야는 놀고 가자고. 다들 자유롭게 지내다가 약속한 날짜, 시간에 성문 입구로 모이는 거다. 아, 가기 전에…….”

황준우는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표사 한 명당 은자 세 문씩을 정확히 던져 주었다. 놀라운 신기와 그보다 더 기분 좋은 포상에 표사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최고다!”

“소장주님, 평생 복 받으실 겁니다!”

“다들 해산!”

황준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끼리끼리 어울린 표사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표행이 끝난 이후의 자유는 그만큼이나 달콤한 보상이었던 것이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보표값은 여기 있습니다.”

표사들이 흩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던 철학수가 가까이 다가와 주머니를 하나 내밀었다. 받아 보니 묵직한 무게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내용물은 보나마나 금자일 것이 뻔하니 더욱 가슴 한편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기분이구먼.’

또다시 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황준우의 입가로 즐거운 미소가 떠오른다.

“고생은 같이했지.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또 보자고.”

금자 주머니를 품에 챙긴 황준우가 가볍게 손을 젓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철학수가 물러났다. 이제 막 북경에 도착했거늘 걸음이 급했다.

그사이 철학수를 지나쳐 달려오는 또 하나의 인영이 있었다.

“시녀?”

주연하의 시녀로 기억하는 소하의 등장에 황준우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것 받으세요.”

그런 황준우를 향해 다가온 시녀 역시 주머니를 건넸다.

“이건?”

“공주 마마께서 선사하신 겁니다.”

“흠…….”

철학수가 건넨 것보다는 가볍지만, 제법 무게가 만만치 않다. 예상외의 수당이었지만 황준우는 그를 기쁘게 받아 들었다.

“잘 쓴다고 전해 줘.”

“예, 그럼 이만.”

소하가 물러나고 마차를 호위하는 금의위 행렬 역시 빠르게 멀어졌다.

그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황준우가 주머니를 열어 경호를 향해 은자 다섯 문을 튕겼다.

“엇!?”

얼떨결에 은자를 다섯 문이나 챙긴 경호가 놀란 눈으로 황준우를 바라보았다.

“경호는 조금 더 얹어서. 내가 좋아하니까.”

“평등하지 않은 분배는 분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잖아? 이참에 그 돈으로 여자나 조금 꼬셔 보라고. 북경 여자들이 그리 곱다던데 괜찮은 기회지 않아?”

“……도련님.”

“가 봐. 나도 한동안은 자유롭게 놀려고 하니까.”

“저는 도련님의 호위무사입니다.”

“거참, 고지식하기는. 내가 어디 가서 누구한테 얻어맞을 것 같아?”

물론 그럴 리는 없다.

그간 봐 온 황준우는 누구를 때리면 때렸지 결코 맞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삼 주야 정도는 쉬어도 괜찮아, 경호. 휴가라고 생각하고 푹 쉬다 오라고.”

“하지만…….”

“그럼, 나중에 보자고.”

더 말을 하기 전에 황준우의 신형이 경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눈으로 좇지도 못할 그 놀라운 신법에 한숨을 내쉰 경호는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뭘 하라고.”

결국 경호는 이미 흩어진 표사들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그들이 편한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북경의 거리는 소주만큼이나 화려하고, 높은 건물이 많지는 않지만 더 다양했다. 또한 규모도 훨씬 넓었다. 좁은 땅에 높고 화려한 건물이 덕지덕지 들어선 소주와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들도 다르고.”

소주의 주민들은 대다수 부자다. 그래서인지 비단옷을 입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었는데, 북경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반적인 마을이나 작은 도시에 비하자면 여전히 비단옷을 입은 사람들도 많아 보였지만 말이다. 황준우의 눈에는 실상 이쪽이 더 사람 사는 세상 같아 보였다.

“그나저나 우리 공주 친구는 무슨 생각인 걸까?”

건네받은 주머니의 동전 속, 숨어 있는 쪽지를 꺼낸 황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달이 가득 찬 밤에 강물 아래에서 보자라…….”

달이 가득 찬 밤이란 보름달이 떠오르는 밤을 뜻하는 말이다. 쉽게 이해가 가는 이야기였다. 곧장 내일 밤이 보름달이 뜨는 날이니 말이다. 그럼 뒷이야기는 뭘까? 북경에는 강이 없다. 호수라고 불릴 만한 곳은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북경 바깥에서 보자는 뜻은 아닐 게 분명했다.

“그냥 쉽게 알려 주지. 수수께끼를 내기는.”

피식 웃은 황준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일 밤까지면 어차피 시간은 많다.

아무리 넓은 북경이어도 마음먹고 달리면 금방이니 이 애매한 수수께끼의 위치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거였다.

“모르면 물어봐도 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황준우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강하객점(江下客店).

이름이 없는 미명호(未名湖) 다리 아래 지어진 이 층짜리 객점을 찾는 손님은 몇 없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주인이 친절하지도 않으며 접근성도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이나마 찾아오는 손님이 있는 것은 제법 괜찮은 음식 솜씨와 이름이 없으나 제법 운치 있는 풍경을 자랑하는 호수의 경관 때문이리라.

“그래도 하필 이런 곳을 약속 장소로 잡다니.”

사람들에게 물어 찾지 않았다면 정말로 찾지 못했을 장소에 위치한 작은 객점의 이 층 창가에 자리 잡은 황준우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밤의 호수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무엇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사실이 작은 두려움을 만들어 낼 법도 하건만 하늘 위에 뜬 달빛이 은은히 강물 위에 그려지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신비한 마음이 더욱 앞선다.

“장난을 정말 좋아하는군.”

“크흠.”

황준우의 말에, 바로 뒤편으로 살금살금 다가가고 있던 주연하가 헛기침을 하며 몸을 곧장 폈다.

“혹여 쫓아오는 시선이 있을까 조심해서 움직였을 뿐이니라.”

“그러시겠지.”

피식 웃은 황준우가 반대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단 앉지. 서서 이야기할 건 아닐 테니까.”

“음…….”

민망함에 살짝 얼굴을 붉힌 주연하가 자리에 앉자 강하객점의 주인이자 점소이 역을 겸하고 있는 노파가 계단을 올라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긴 술은 안 팔아.”

“객점인데 술을 안 판다고? 분명 입구에서 몇 병 봤는데?”

딱히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예상치 못한 말에 황준우가 당황을 표했다.

“젊은 남녀가 밀회하는 데 도움 되는 술은 안 팔아. 빨리 음식만 먹고 가.”

“…….”

황준우의 입가로 어이없는 미소가 흘렀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 때 대충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주인장의 불친절이 상상 외였다. 처음 그가 객점에 들어섰을 때 일 층이나 이 층 아무 데나 앉으라고 한 말은 차라리 나을 정도였다.

“어차피 마실 생각도 없었으니 괜찮아요. 할머니, 오랜만이네요.”

“마실 생각이 없긴 쥐뿔. 작년에 왔을 때도 그렇게 말하고 두 병이나 퍼 마시고 갔으면서.”

“오호…….”

이제 보니 두 사람은 아는 사이인 듯했다.

그것도 제법 친한 사이.

실상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노파를 향해 말할 때는 주연하의 그 특이한 말투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체를 감추기 위함이겠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일이다.

“오늘은 진짜 술 안 팔아.”

“저도 오늘은 진짜 술 안 먹어요.”

“음식은?”

“만두랑 장육이요.”

“니미, 손도 많이 가는 걸 시키고 앉아 있네.”

“할머니 만두가 제일 맛있는걸요.”

“그것 말고 장육!”

“장육도 할머니가 만든 게 제일 맛있더라.”

“니미럴.”

마지막까지 욕을 남긴 노파가 뒷짐을 진 채 다시 일 층으로 내려갔다. 그 모습을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주연하가 황준우를 바라본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황준우와 마주한 그녀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치, 친한 사이니라. 어려서부터 가끔 뵌, 아버지도 알고 계시는 그런 분이시다.”

“오호, 그 말은 네 정체도 알고 계신다는 뜻?”

“아, 아마? 아버지도 알고 계셨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나온단 말이야?”

생각지 못한 이야기에 노파를 떠올리는 황준우의 생각이 한 번 더 뒤바뀌었다. 불친절한 정도가 아니라 겁이 없다. 왕족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욕지기를 내뱉는 노파라니. 천하제일의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닌데 담력만큼은 이미 그에 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흠, 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느냐.”

“중요하진 않지. 그래도 재미있는 건 사실이고.”

“끙…….”

“너도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구나.”

곤란한 듯 양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숙이는 주연하를 보는 황준우의 시선이 또 한 번 웃음을 그린다.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진 주연하의 얼굴이 귓불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큭큭, 이것 참. 공주 놀리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네.”

“그만 놀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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