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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56화 (56/373)

학사재생 56화

누구나 그렇듯 대다수 무공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실제로 칠야무신은 무림을 배회하던 도중 단 하나뿐이라지만 무공을 남겼다.

산서 지역에서 꽤나 오래 뿌리를 내리고 있던 태원무관(太原武館)의 직계 제자에게만 전해지는 산붕도법(山崩刀法)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지금에 와서는 천하오대도법(天下五代刀法)중 하나로 뽑히며 이름을 드높이고 있을 정도였다.

‘그때 이후로 다시는 남들한테 함부로 무공을 전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어째서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칠야무신은 당시 전 중원의 적이었다.

모두가 그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나 있던 시점.

한데 그가 전수한 산붕도법을 익힌 태원무관이 작금 최고의 전성기를 구사하며 산서제일무관(山西第一武館)으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

오랜 뿌리를 가진 주인이 없던 산서성을 기반으로 하였기에 실상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에는 못 미치나 부족하지는 않은 수준의 성과를 이룬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거듭 말해, 당시의 무림인들은 황준우를 죽이기 위해 두 눈이 붉어졌었다.

근데 어떻게 해서 태원무관이 살아남았을까?

간단한 이야기다.

그들도 칠야무신 황준우를 죽이기 위해 눈을 붉혔다.

도를 뽑아 그가 남긴 도법을 행하며 누구보다 앞장서 황준우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다. 당시의 희생이 적지는 않았지만 결국 칠야무신의 무공을 익혔다는 따가운 눈초리에서 살아남고 지금과 같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다시 생각해도 참 멍청하게 살았다.

가리지 않고 퍼주고, 믿어 버리고 휘둘렸으니 결국 그 꼴이 되었다.

이전과 같은 바보의 삶을 살 수는 없다.

빼앗을 건 빼앗고, 내 것은 지킨다.

때문에 현생에 있어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보다 가까운 경호에게 무공을 전수하기까지도 오랜 고민을 했다. 본래라면 진즉에 시작했어야 될 일을 황서연의 무공 수련 전까지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외면해 왔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조금 달랐다.

황준우는 엄연한 경계를 나누고 있었다.

가족을 비롯한 경호까지. 딱 그 정도까지만.

‘내 것, 내 사람.’

주연하는 그에게 처음으로 믿을 수 있는 친구라는 감정을 의식하게 했지만, 아직 그 경계 안에 들어오지는 못했다. 분명 경계선 가장 가까이 존재할 테지만 적어도 아직은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또한 들어오기도 어려울 터였다. 늘 곁에 있는 경호만 하여도 십 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던 일이다.

전생의 경험으로 인해 마음의 장벽이 높아진 황준우에게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그가 무공서를 직접 만들었다.

황석후의 말대로 절학이라 불릴 수준의 무공일지 모르나 딱 그 정도다. 약간의 눈속임을 통해 그보다 더 뛰어난 경지에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심어 놨으나 사실 아무것도 없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절학의 말미 수준?

소성(小成)을 이루기는 쉽고 그 위력도 제법 쓸 만할 것이다. 하나 대성(大成)을 이루기는 어렵다. 설령 엄청난 노력으로 모두 익혀 낸다 하여도 무공을 익힌 근간인 심법이 일류 이상의 것이 아니라면 천하백대고수에나 이름을 걸칠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만약 심법이 일류 혹은 절학이나 신공급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지기는 한다.

우내십존이라 불리는 강호에서 손꼽히는 무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저 세 가지 무공을 통해 그 정도까지 해낼 수 있는 이라면 사실 삼재검법을 익혀도 우내십존의 말미에는 이름을 올렸을 인물이다.

결국 세 권의 무공서 모두 태원무관에 전수한 산붕도법보다 부족하고, 신공(神功)에는 한참이나 못 미친다는 뜻이다.

그래도 값어치는 높을 것이다.

황석후가 한눈에 알아본, 책장 마지막에 그려진 삼족오 그림 덕이다.

‘뭔가 우리 것이라는 흔적을 남기려고 했던 일이었는데, 상징처럼 됐지.’

산붕도법의 무공서 마지막 장에 그려진 삼족오에 대해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주 일부. 천하 전체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 정도와 그런 일에 관심이 많은 이들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칠야무신의 증명이 된다.

지금 황석후의 경우가 그 증거였다.

“한데 왜 아직까지 숨기고 있었던 것이냐?”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요. 일단 무공서잖아요?”

잘못 익힌 무공은 폐해를 부른다.

심하게는 주화입마, 폐인이 되는 일도 많다.

그러니 만금장 내에서 제일의 무재(武才)라고 불리는 황준우가 확인해 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황석후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칠야무신의 상징이 그려진 무공서기 때문이다. 진짜여도 문제지만, 가짜면 더욱 큰일이다. 아직까지 누구도 칠야무신을 사칭(詐稱)한 적은 없었고, 해낸 적도 없지만 만약 가능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야 불 보듯 뻔했다.

손을 문질러 책의 질감을 확인하고 종이를 눈앞에 가져다 대어 확실한 확인에 나선 황석후의 표정이 점점 미묘해졌다.

‘저런 행동으로 책의 제조시기를 알아보시는 건가? 혹시나 해서 천조신공으로 적당히 노화(老化)시켜 놔서 다행이다.’

종이는 결국 생명, 나무로 만들어졌다.

천조칠무의 깨달음으로 천조신공의 육단공에 이른 황준우에게 있어 책의 질감을 오래된 것으로 바꾸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먹물 냄새도 날려 버리고 쓰인 글 자체도 일부로 흩고 했으니 황석후라고 해도 쉽게 알아보지는 못할 터였다.

“정확하게는 다시 알아봐야겠지만, 적어도 일단은 진짜인 것 같구나.”

결국 황석후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진짜예요. 제가 아버지한테 거짓말한 적이 언제 있나요?”

“아직까지 거짓말한 적은 없지. 숨긴 적은 있어도. 한데 결국 숨길 수 있다면 거짓을 말할 수도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

양심 한편이 살짝 찔린 황준우였으나 웃는 낯으로 재빨리 손을 저었다.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고, 제가 뛰어 봐야 아버지 눈 안이지 않겠어요? 하하.”

“말이라도 못 하면…… 끄응.”

“그나저나 가가 말대로 이게 진짜 칠야무신의 무공이라면, 엄청난 거네요?”

“정확하게는 그가 만든 것 중 하나겠지만…… 세 가지나 더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천하가 뒤집히겠지.”

서시의 질문에 황석후가 고개를 주억였다.

가짜가 아닌 진짜라고 판명된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무공서의 가치 또한 어느 정도 매겨졌다. 어떻게 쓰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황금 십만이 우습다. 어쩌면 백만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칠야무신이 가진 이름값이었다. 만든 황준우 본인조차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큰 금액을 떠올리고 있는 황석후의 눈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준우야, 네가 이것을 나에게 넘긴 의미를 물어도 되겠느냐?”

“제가 그동안 살펴봤는데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칠야무신 이름값을 못한다고 생각될 정도?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실속은 조금 부족해요.”

“……확실한 게냐?”

어지간하면 되묻지 않는 황석후다.

같은 말을 되풀이할 이유가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 이번에는 또 한 번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이나 칠야무신의 무공서란 것은 중요하게 다룰 일이었다.

“확실해요.”

“그렇다면 됐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마. 수익의 이익은 오 대 오로 나누자꾸나.”

“가가?”

서시가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 역시 칠야무신을 알고, 그의 무공이 가진 가치를 안다. 때문에 마음속 한편에 조금은 팔기 아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데 황석후가 너무나 쉽게 판매하는 측으로 결정을 내렸다. 하나 이미 얼굴을 굳힌 황석후의 결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서시는 그저 고개를 주억여 남편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놀라서 소리치기는 했지만, 그녀 역시 아들인 황준우를 믿었다.

“오 대 오요?”

오히려 다른 의문을 토한 것은 황준우였다.

“이것을 발견한 것은 엄연히 준우 너다. 당연히 물건 값은 본래 네 몫이어야 하지.”

“어…… 그런가요.”

물론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은 많았다.

만금장은 부자고, 황준우는 그런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때문에 아직 가문을 물려받기로 확정되지도 않았지만 소장주라는 직책을 우선 받았고, 모두에게 그리 불리고 있다. 하나 그런 만금장의 돈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엄연히 황석후, 아버지의 것.

황준우는 그저 그 돈의 일부를 자식으로서 배품 받고 있을 뿐이다.

정보 단체를 만드는 일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빌려 쓴다는 생각도 많았다.

그만큼이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니, 언젠가는 만금장에 되돌려 주리라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 시작이 무공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한데 무공서를 만들어 오니 수익을 나누자고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원래라면 물건이 네 것이니 오 대 오는 내 과분한 처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판매를 대행하고 안전하게 운송하는 부분까지 생각해도 칠 대 삼 정도가 적당하겠지.”

“전 그 삼도 필요 없는데요.”

당황을 추스른 황준우가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필요하다. 지금만 해도 네가 만금장에서 가져다 쓰고 있는 돈이 얼마냐?”

서시는 정확히 모르지만, 황석후는 안다.

그는 자신의 자식이 어떤 식으로 돈을 사용하고 얼마나 쓰는지를 명확히 보고 있었다. 그로 인해 하고자 하는 일 정도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는 차였다.

“그래서…….”

“쓰면서도 눈치 보고 있지 않느냐.”

맞는 말이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이 세 권의 책 값어치에, 오 대 오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까지나 할까요?”

황준우는 아직도 자신이 만든 무공서의 값어치를 명확히 모르고 있었다.

“남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네가 하고자 하는 바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 이런 것도 필요 없을 테고 말이다.”

검지로 세 권의 무공서를 두들기는 황석후의 입가로 미소가 감돈다. 잠시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황준우는 문득 크게 개안(開眼)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구나.’

여태껏은 만금장 그러니까 황석후의 돈으로 생활해 왔던 황준우였다.

때문에 아닌 척했지만 큰돈을 쓸 때에는 망설임이 있었고 눈치를 보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 쓴 돈의 일부 정도는 돌려놓기 위해 노력한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그 돈이 본인의 것이었다면 오히려 더 과감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분명 지금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터였다. 무공서를 판매하여 정보 단체를 만드는 기초 자금을 만드는 것은 시작이다.

그렇게 천하를 아우르는 정보 집단이 뿌리를 내리면 그때부터는 장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개방, 하오문 등과 같은 정보 장사다.

황준우의 눈이 절로 반짝반짝 빛났다.

“그렇군요. 그런 거였어요.”

결국 장사다. 의식주를 비롯한 기본 생활의 영위를 위한 물건에서부터 미술품, 술 혹은 무기와 놀이 기구까지 기반이 있다면 돈을 벌 수단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지금 황준우에게는 분명 그런 ‘수단’이 필요했다.

돈이 아닌 돈을 만들어 주는 수단!

집안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 그 밑천이 되었다.

많은 돈을 쓰는 것이 미안해 아버지를 돕고자 만든 무공서는 기반 자금으로 변했다.

처음으로 돌아가, 이로써 황준우도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만금장, 황석후의 것이 아닌 본인의 장사!

황준우가 스스로 똑바로 일어서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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