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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70화 (70/373)

학사재생 70화

남궁오래와 구벽신권이 만금장 소장주를 암살하려 했다.

너무 놀랍고 충격이 큰 소문이었다.

남기 일대에서만이라면 이보다 더한 사건은 흔치 않다. 한데 생각보다 소문이 멀리 퍼져 나가지를 않는다.

안휘성 내에서는 제법 떠드는 모양이지만 그조차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황준우를 상대하기 위해 판을 깔던 남궁전혁의 고심이 깊어졌다.

‘이게 아닌데?’

수하들이 일을 똑바로 못 하고 있나?

또다시 공포를 각인시켜 주어야지 일을 하려나?

굳이 성급할 필요는 없었다.

공포 역시 반복되면 익숙해진다. 필요할 때 매섭게 휘둘러야 효과가 큰 법이다. 지금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할 때였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의 몸은 둔해 보이지만 비조(翡鳥)처럼 날쌨고, 머리는 그보다도 더 빠르게 회전했다.

곧 그는 정답에 다가갔다.

‘만금장에서 움직였군.’

상대는 만금장 소장주.

당장이야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그 뒤에는 천하의 거악(巨嶽)이라 불려도 모자라지 않을 소주대인이 있다.

그 큰 손과 돈이 움직인다면 남궁세가가 만드는 소문을 잠시 묶어 두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흐음…… 가진 것을 휘두를 줄은 안다는 건가.”

하긴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면 창천단주 남궁장언을 몰락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애송이라지만 무공 하나만큼은 제법 쓸 만한 남궁오래와 외가(外家)와 분가를 모두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구벽신권마저 쓰러트렸다. 우습게 볼 수만은 없었다. 철저하게 약점을 분석해서 몰락시킨다.

모두가 잠든 밤, 넓은 침상 위에 앉아 눈앞에 놓인 보고서를 읽는 남궁전혁의 눈이 스산한 빛을 연신 흘렸다.

“그러니까 지금 남궁오래와 남궁문우를 말처럼 부리면서 마차를 타고 오고 있단 말이지? 게다가 얼마 전에는 구벽세가의 무인들도 오십 정도 더 사로잡았고? 헛소문이군.”

정보는 귀하다.

하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진실될 때의 이야기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정보가 아닌 헛소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중 여섯 사람이 말이 되어 마차를 끌고 있다는 부분에서 남궁전혁은 콧방귀를 뀌었다.

“남궁오래라면 모를까, 남궁문우가? 그 자존심 높은 녀석이 참을 리가 없지. 그래도 무공은 초절정 이상이라고 봐야 하나? 어린 나이에 엄청나군. 미리 싹을 자를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

남궁전혁은 황준우를 과대평가하지도, 그렇다고 과소평가하지도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쪽이든 시야를 가리고 머리를 어둡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고심 끝에 남궁전혁은 황준우에 대한 정보를 나름대로 정리해 낼 수 있었다.

이름: 황준우.

나이: 18.

지위: 만금장의 소장주.

무공 수위: 최소 초절정 이상. 아주 어쩌면, 조화경.

특이 사항: 아버지가 소주대인 황석후. 향시 장원 합격의 거인.

성격: 자유분방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편. 의외로 냉철하고 계산적일 수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복잡한 일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 돈을 좋아할지도 모르겠음. 여자에 대해서는 아직 흥미를 보이지 않음. 지금 황궁에 있는 치랑공주(治浪公主)와 인연이 있는 것도 같음. 명예욕이 제법 있어 보임.

자신이 정리한 문서를 읽는 남궁전혁의 눈이 더욱더 가늘어졌다.

“학문 성적도 제법 좋다고 했지. 얼마 전 향시에서 장원이라…… 스승이 누굴까?”

혼자서 해냈을 리는 없다.

만금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뛰어난 스승들의 교육이 잇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적어 내린 내용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

“이놈이 자란다면 제 아비보다 부담스러워지겠어.”

고작 열여덟이다.

남기제일기재라고 불리는 남궁전혁 본인조차 그 나이 때에는 황준우만 못했다. 아니,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 정도면 무림 전체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의 수재 아니, 천재다.

“차라리 잘된 일일 수도.”

남궁오래의 일 탓에 남궁세가 전체가 여러모로 시끄럽다.

제 혈육을 구해야 한다고 외치는 원로들이 귀 아프게 떠드는 소리도 부담스럽지만 특히 내당주(內黨主) 남궁호욱은 큰 문제였다. 그는 제 손자인 남궁진위만이라도 지키고자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힘을 쓰고, 뒷 공작을 펼치는 중이었다. 남궁전혁의 입장에서도 작은아버지인 그에게 막무가내로 나선다는 것은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계속해서 발에 걸리는 돌을 눈앞에 둘 생각은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아버지 남궁호량과 남궁전혁 두 사람의 생각이 같음을 이미 확인했다.

오로지 남궁만을 제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오래 묵은 가지도 쳐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고민을 할 정도로 이번 사건이 크지만, 황준우에 대한 정보를 깔끔히 정리한 남궁전혁은 또 한 번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이야. 이참에 정리해야겠어.”

가문 내의 시끄러운 목소리는 그저 곁가지일 뿐이다.

제일 중요한 건 바로 황준우다.

“만금장 소장주. 더 크게 놔둘 수는 없지.”

본래는 적당히 다스려 쫓아내 줄 생각이었다.

남궁세가에 대한 공포 정도만 심어 주면 충분할 것이라고 여긴 게 사실이었다. 하나 깊숙이 보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뒤에 있는 만금장이 부담되지 않는다면 거짓이지만, 황준우가 잘 자랄 경우를 생각하면 차라리 지금이 나았다.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만금장이랑 싸워야 한다.

“그러니, 이참에 죽여야겠다.”

자신의 배를 부여잡은 남궁전혁이 활짝 웃자, 그 주변의 어둠이 넘칠 듯 넘실거렸다.

본디 남궁세가의 본거지는 황산(黃山)이다.

무인의 정신 수양과 육체 단련을 위해서는 자연을 벗 삼아야 한다는 선대(先代)의 방침에 따라 본가의 위치가 정해진 탓이었다.

한데 약 반년 전.

남궁호량을 비롯한 남궁세가 중책(重責)들은 갑작스러운 본가의 이전을 선언했다.

남궁세가의 발전을 위한 큰 걸음이라며 안휘의 성도인 합비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남궁세가는 무슨 말이 나오기도 전에 순식간에 합비로 본가를 통째로 이전시켰다.

말을 꺼낸 것이 당시일 뿐,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 분명한 이전(移轉)이었다. 세인들은 남궁세가의 그러한 행동력에 놀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것을 마다치 않았다.

쉽지 않은 결정을 쉽게 해내는 이들이야말로 거인이라 불리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황준우가 대놓고 그런 남궁세가의 행위를 비웃었다.

“돈이 필요해서 그런 거지. 단숨에 황금을 십만 문이나 빼앗겼는데, 복구할 방법은 마뜩치도 않고 본가 전답이라도 팔아야 했지. 결국 쫓겨난 주제에 온갖 멋은 다 부렸지만 말이야.”

“그런 거였군요.”

홍산이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주억인다.

반면 눈앞에 흔들거리는 채찍 탓에 함부로 입조차 열지 못하고 마차를 몰고 있는 남궁오래를 비롯한 남궁문우, 거기에 더해 그런 가주를 구하고자 용기 있게 나섰던 구벽세가의 무인들은 모두 내심 고개를 힘차게 내젓고 싶은 심정이었다.

‘합비로의 이전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이다. 결코 만금장에게 쫓겨난 게 아니란 말이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외치고 싶은 말이었지만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입을 떼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픈 채찍이 정수리를 후려갈긴다. 그 고통을 한 번이라도 당해 보고 나면 두 번째는 함부로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멍청하지 않은 한은 말이다.

“합비 이전은 이미 팔 년 전부터 소가주께서 준비하시던 일이……니다. 잘 알지도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끄아악-!”

결국 마음속의 진심을 참지 못하고 내뱉으며, 그 멍청한 역을 담당한 남궁진위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정수리에 채찍을 맞고는 번개라도 맞은 듯 몸을 벌벌 떨며 게거품을 물고는 눈이 뒤집어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차의 밧줄에 묶인 모두의 마음이 짠해졌다.

“어디서 또 함부로 입을 열어. 저건 머리가 나쁜 거야, 겁이 없는 거야.”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분명히 전자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뭐 틀린 말은 아니지. 합비로 이전은 남궁세가가 오래전부터 꿈꿔 왔던 일이거든. 선대의 유지를 생각해서 눈치를 보는 중이었긴 한데, 마침 내가 괜찮은 명분을 던져 준 거지. 어차피 실속은 없고 유지만 남은 황산의 남궁세가 본가 장원을 팔아넘기자. 무공도 모두 빠져나가고 한때나마 이름 높은 남궁세가의 근원지였다는 것만으로 황금 십만 문 이상의 가치를 할 것이다. 남궁전혁이라고 했던가? 듣자하니 그 양반 생각이라던데 머리 잘 썼지. 산속에 적당히 지어 둔 빈 장원 하나 넘기고는 황금 십만 문을 털었으니 말이야. 애초에 나라면 그런 거 안 받아 줬을 테지만, 우리 아버지가 조금 마음이 약해.”

“흠…….”

짧은 감탄을 흘린 홍산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황준우의 말만 듣고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빈 장원 하나에 황금 십만 문을 털어 낸 것이다.

물론 땅의 유서 깊은 역사를 무시할 수는 없다지만 아쉬운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 내가 다 해 보려고. 그래서 아버지한테도 굳이 도와주실 필요 없다고 서신도 보낸 거고.”

“응? 그러면 소문은 어떻게 내실 예정이십니까?”

듣고 있던 경호가 문득 의문을 표했다.

합비, 남궁세가를 향하는 길 황준우는 중간중간 시답잖은 대화라는 듯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일부 알려 주었다.

그중에는 남궁세가를 뒤흔들 정도의 소문을 터트릴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한데 그런 일이 황석후의 도움 없이 쉬운 일이던가?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개방 혹은 하오문 등의 도움을 받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엄청난 돈이 들어갈 테지만 말이다. 한데 황석후가 아닌 황준우에게는 그런 돈이 없다.

“아직 완전 쓸 만한 건 아닌데, 안휘성 내부 정도로만 한정 지으면 제법 쓸 만한 녀석들이 있거든.”

“설마 그때 보았던?”

“흐흐, 맞아. 그리고 난 돈이 없지만, 내 부하들은 제법 모아 놓은 게 있더라고? 그것도 이번에 좀 썼지. 소문내는 데도 필요하고, 눈을 좀 가릴 데도 써야 되고 하니까.”

음흉하게 웃은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이며 답했다.

“수하의 주머니를 털어 가는 악덕 주인이로군요.”

경호가 몸을 덜덜 떨며 진저리를 치는 시늉을 했다.

“빚진 게 있는 녀석이 알아서 토해 내는데 뭐 안 받을 이유도 없잖아?”

“끙…… 홍 공자는 절대 저런 데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주공이 원하신다면 주머니를 터는 게 문제겠소?”

경호의 말에 얼굴을 굳힌 홍산이 냉정하게 말했다.

“아니, 충성을 맹세했다고 사람이 이렇게 한순간에 바뀌어도 됩니까? 뭐 그 전에 보여 주었던 반항적인 그런 모습이나, 세상을 향해 도전적이었던 자세 같은 건 어디 버려두고 온 거예요?”

“모시기로 한 분조차 제대로 따르지 못하면 제 정의도, 주관도 모두 의미가 없는 것이오. 은공의 조언은 마음에 새겨 놓겠소.”

“푸하하하. 우리 홍산 최고다.”

“…….”

경호가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굳힌 홍산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또 한 분 넘어가셨군요. 어휴.”

“사람 보는 눈이 제대로인 거지.”

“그래서…… 계획대로 잘되고 있는 겁니까?”

“그야 모르지.”

황준우의 대답에 경호의 얼굴이 또 한 번 핼쑥해졌다.

자신만만하게 남궁세가까지 간다길래 뭔가 더 믿는 것이 있는 줄 알았다.

하다못해 황석후의 도움이라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모두 다 아니다.

이쯤 되면 황준우의 지금 행동이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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