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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71화 (71/373)

학사재생 71화

“저기 도련님, 혹시 남궁세가에 대해 잘 알고 계신 것 맞으십니까?”

“당연하지. 만금장 내에 있는 남궁세가 정보를 정리한 사람이 누군데. 경호, 너 나 무시하는 거야?”

“한데 대체 뭘 믿고…….”

“감이 좋아. 이 상태로 밀어붙이면 분명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고 할까.”

“그냥 육감입니까?”

“자신도 있고?”

“근거는 없지 않습니까?”

“근거?”

잠시 고민하던 황준우가 경호의 두 눈을 뻔히 바라보다 입술을 연다.

“있지.”

“어디에 말입니까?”

“우리 경호가 다쳐서, 내가 진심으로 남궁세가랑 싸우고 있다는 것?”

“도련님…….”

물론 마차의 마부석에 앉아 채찍만 휘두르고 있는 황준우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마음 한편이 짠해지는 기분이 드는지는 또 모를 일이다.

“내가 전력(全力)을 다해서 싸우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야. 이렇게 되면 고작 남궁세가가 아니라 천하 전체쯤은 와야지 싸움이 될걸? 믿어 봐.”

이건 진짜 해 봤거든.

다른 건 몰라도 싸움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다.

뒷말을 마음에 묻은 황준우의 눈이 정면을 향했다.

그래도 말들이란 놈들이 모두 무공을 익혀 산과 평야를 가리지 않고 뛴 덕에 생각보다 일찍 목적지가 보였다.

“저기가 합비입니까?”

황준우의 시선을 따라 정면을 바라본 경호가 묻는다.

“그렇지. 현재 남궁세가의 본거지.”

그 말에 마차의 지붕에 타고 있는 홍산과 경호의 두 눈에서 같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걱정과 기대.

무섭지는 않았다.

아닌 말마따나 황준우가 저리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마차를 끄는 말의 역할을 하며 여기까지 달려온 남궁세가 식솔 모두의 눈에도 그와 같은 감정이 어렸다는 사실이었다.

드디어 이 건방진 소장주를 혼내 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데 진짜 가능할까?

의미는 다르지만, 서로 같은 감정을 가득 이끈 황준우의 걸음이 계속해서 이어져 결국 합비에 도달했다.

꽤나 큰 도시인만큼 한눈에 담기 어려운 형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멀리서부터 알아볼 수 있는 푸른 지붕의 장원이 크게 눈에 띄었다.

“저기로군.”

남궁세가.

그곳에 드디어 황준우가 도착한 것이다.

남궁세가의 정문으로 마차가 한 대 들어섰다.

흔히 있는 일이다.

남궁세가를 찾는 이들의 대다수가 권력자에 속하니 오히려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경우가 더 드물다고 말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사람을 말처럼 묶어 마차를 이끌고 온 이는 황준우가 최초였다.

심지어 그 사람들이 남궁세가의 미래라 불렸던 남궁오래를 비롯한 가문의 식솔들이란 점을 생각하자면 더욱 어이가 없는 일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남궁오래의 혈족 중 몇몇은 벌써 뒷덜미를 잡고 쓰러졌다는 소식까지 있었다.

게다가 소문이지만 이름 높은 구벽신권마저도 그 인마(人馬) 중 한 마리였단다.

물론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몇 없었다.

따지자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럴 만해. 나 역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했거든.”

넘실거리는 턱살을 한 손으로 부드럽게 튕기며 남궁전혁이 헛웃음을 흘린다.

건너편에서 다리를 꼰 채 앉은 황준우는 그런 남궁전혁은 염두에도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진짜 새파라네. 이런 곳에 있으면 정신병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겠어.”

푸른 비단으로 방을 가득 메운 남궁세가의 접객당은 달리 청천원(靑踐院)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비단뿐만이 아니라 식탁, 장식, 심지어 문짝마저도 푸른빛으로 가득하니 그야말로 밟는 길 모두가 창천(蒼天)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한 손님들 대다수는 이곳에서 자신들이 찾아온 장소가 남궁세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한다.

전 천하를 통틀어 남궁세가만큼이나 푸른색을 숭상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말이다.

“기세 싸움을 하고 싶은 건가? 알고 있는 대로군.”

남궁전혁은 입가에 조소를 머금은 채 황준우를 도발했다. 주변을 몇 번이나 둘러보다, 답답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황준우가 그런 남궁전혁을 내려다본다.

“새파랗기만 해서인지 별로 볼 건 없네. 자금성 흉내라도 내고 싶었나 본데, 아쉽게도 급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은걸?”

“어설픈 격장지계는 통하지 않아. 자존심이 높은 편이로군.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있어. 어린 치기?”

남궁전혁은 태연한 눈빛으로 황준우를 바라본다.

잠시 그 시선을 마주하던 황준우의 입가로 묘한 미소가 번졌다.

“소문으로는 웃음이 많고 멍청해 보인다고 하던데, 역시 믿을게 못 되나. 남궁전혁, 맞지? 이렇게 금방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아닌 게 아니라, 남궁세가에 도착한 이후 반 시진도 되지 않아 대면(對面)한 것이 눈앞의 남궁전혁이다.

권위를 살리고 황준우를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 뜸을 들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조금 다르다.

“필요하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나한테는 그럴 필요 없다?”

“그 정도에 속을 정도는 아니지 않나?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황준우를 인정하는 듯, 또 부정하는 듯 기묘한 말투다.

“우리 탁 터놓고 이야기해 보지. 원하는 게 있지? 흠…….”

질문을 한 후 잠시 뜸을 들인 남궁전혁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로운 태도로 고개를 주억였다.

“돈. 그래, 돈을 원하는군.”

“돈 좋아하지. 더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황준우가 그 말에 동의하고 나선다.

남궁전혁의 눈가에 머금은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잘 컸어. 소주대인이 자랑스러워하겠군. 앞으로 상계의 큰 손이 될 그릇이야. 그때까지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네.”

“만금장이 언제 어디서나 자네를 지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살짝 살기가 맺힌 남궁전혁의 말에 황준우 역시 가는 눈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만금장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는 거지.”

“방만하군. 치기를 넘어섰어.”

“그래도 제법 쓸 만하잖아? 당신을 이 자리까지 이렇게 빨리 불러왔으니까 말이야.”

황준우의 가벼운 말에 남궁전혁의 웃음이 묘하게 비틀렸다.

‘자신이 나를 불러왔다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분명한 남궁전혁의 선택이다.

괜한 뜸을 들이는 것보다는 정공법.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한데 황준우의 말 한마디로 입장이 묘하게 바뀌었다.

“말을 재미있게 하는군.”

“앞에 앉아 있는 뚱땡이만 할까.”

“…….”

“오, 이건 조금 열 받나 보지?”

“그럴 리가.”

피식, 웃음을 보인 남궁전혁이 눈앞의 찻잔을 들어 올리다 문득 아직까지 잔을 가득 채운 채 김을 피우고 있는 건너편을 바라본다.

“마시지 않을 텐가?”

“까짓것, 마시지 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주억인 황준우가 차를 마신다.

그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던 남궁전혁이 미소를 지었다.

“그 차에는 독이 들었네.”

“그래서?”

“난 지금 당장 자네를 매우 죽이고 싶어.”

“할 수 있을 것 같아?”

“못 할 것도 없지.”

자신의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듯 방 안 가득 살기를 메운 남궁전혁이 검지를 들어올렸다. 그가 그 두툼한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만으로 청천원 이곳저곳에 숨어 있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자랑하는 대창궁무애검진(大蒼穹無涯劍陳)을 펼쳐 황준우의 몸 전신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버릴 것이다.

“알고 있나? 이 안에 들어온 이상 우내십존이라 한들 푸른 하늘 아래에 존재한다는 걸 말일세.”

남궁전혁은 세운 검지를 꺾지 않은 채 황준우를 향해 물었다.

이쯤 했으면 알아서 머리를 조아리라는 뜻이다.

하나 황준우는 여전히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거야 우내(宇內)에서의 이야기고, 상천(上天)은 다르지.”

“방만, 오만을 넘어선 광기(狂氣)로군. 스스로가 푸른 하늘 위에 있다고 믿나?”

“적어도 이런 가짜 밑에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을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수록 예리하고 차가운 기세가 황준우의 주변으로 다가온다. 첫마디에 한 걸음 밖에 있었다면 두 번째 때에는 반걸음 앞.

그리고 지금은 목 끝까지 다가와 있다.

‘그 사실조차 모를 정도의 애송이인가?’

남궁전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황준우를 바라보았다.

이후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 있나.’

구벽신권을 비롯한 남궁오래를 인마로 부려 남궁세가를 향했다는 이야기를 믿지 못했다.

한데 눈앞에서 그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다.

남궁전혁 스스로도 불가능이라 여기는 일을 해낸 인물이다. 우습게 볼 수도 없고 얕잡아 봐서는 더욱 안 된다.

짙은 웃음을 흘린 남궁전혁의 검지가 접히고 들어 올렸던 오른손은 다시 찻잔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주변을 가득 메웠던 날카로운 기세가 말끔히 사라졌다.

“농담, 농담일세. 알지? 우리가 만금장과 척을 질 필요는 없지 않나?”

“제법 재미는 있는 농담이었어.”

황준우의 여유에 남궁전혁의 머리는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도대체 뭘 믿고 있는 걸까?’

이 어린 녀석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단신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무언가 믿는 바가 있다.

문제는 지금의 남궁전혁으로서는 그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부분이었다.

‘까다로운 녀석이로군.’

크기 전에 자르고 싶다고 생각한 게 불과 며칠 전인데, 벌써 제법 큰 녀석을 마주해 버렸다. 정말로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싶은 욕구가 가슴 한편에 몇 번이고 치솟았다가 가라앉는다.

대신해서 보이는 것은 여유로운 웃음이다.

“갑작스러운 암살 시도에 자네 역시 많이 당황했겠지. 기분도 나빴을 거야. 그래서 이곳까지 인마를 이끌고 찾아온 것이고. 그렇지?”

“대충 맞아.”

“그럼 이렇게 하지. 자네가 원하는 돈을 주겠네. 대신 협의를 보자고. 우리 역시 때 아닌 인마 사건 탓에 나름대로 상처를 입었거든.”

“협상을 하자는 거지?”

“처음부터 그런 자리였지.”

두 사람의 입에서 어딘지 모르게 닮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좋지. 협상. 얼마를 줄 생각인데?”

“얼마나 원하나?”

“어허, 왜 이러시나. 설마 나를 하수(下手)로 얕잡아 보고 있는 거야?”

“아니지. 걱정돼서 그러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수 없을 수준일까……. 겁이 나서 그래.”

“천하의 남천뇌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어디 있나. 남궁세가가 그 정도도 못 할 이류문파야?”

“발언을 주의하는 게 좋겠군. 나를 무시하는 것은 좋지만, 남궁세가를 발아래 두려 하지는 말게.”

“기이한 자존심이야. 그래서 얼마 줄 거냐고. 그것만 딱 잘라 이야기하자.”

“금자로 오만.”

금자로 오만.

불과 일 년이 조금 넘는 과거에 십만 문을 빼앗겼다.

물론 실제로 현금을 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을 전답과 땅문서로 대신했지만 오래된 상징성을 포기한 만큼 남궁세가로서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또다시 오만 문이다.

솔직히 이 정도 금액이면 남궁세가로서도 조금 벅찬 금액이다.

남궁전혁은 황준우가 이 한 수에 납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금 오만 문은 아무리 만금장의 소장주라고 하여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탓이다.

“고작?”

“그렇게 불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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