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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85화 (85/373)

학사재생 85화

얼마 전 남궁오래와 다퉜을 때 한 번.

경호는 자신이 생각 이상으로 강해졌음을 절실히 느꼈었다. 물론 그 이후 곧장 구벽신권을 만나 철저하게 깨지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무림인으로서 자부심이 생겨났던 일이었다.

지금도 그때와 같다.

생각보다 몸이 더 가볍고 자유롭게 움직인다.

강해졌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체감되었다.

“말했잖아. 두 사람 다 엄청 강해졌을 거라고.”

황준우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두 사람이 기겁할 정도의 수련을 시킨 것은 미안하지만 효율은 분명하다. 실제로 의도적으로는 만들 수 없다는 망아의 영역을 강제로 체험하게 만든 장본인이니 확신할 수 있던 부분이었다.

“그러면 조금 더 힘을 써 볼까요?”

홍산의 물음에 경호가 고개를 주억였다.

“저도 힘써 보겠습니다.”

직후 서로를 향해 눈을 빛낸 두 사람이 한 걸음씩 동시에 물러난다.

“차앗-!”

기합을 내지르며, 먼저 움직인 측은 이번에도 홍산이었다.

마치 구벽신권의 주먹을 닮아 있는 그 움직임에 저도 모르게 심장 한편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낀 경호가 전력을 다해 방어에 나섰다.

따악- 휘리릭- 푹!

목창이 막히는가 싶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허공으로 떨어진다.

놀란 표정으로 그런 창을 멍하니 바라본 경호와 홍산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졌습니다.”

잠시 후 홍산이 허탈한 음성을 흘렸다.

“아니, 홍 공자, 이건 제가…….”

“방심한 탓입니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우선 경호 일 승.”

“도련님.”

“홍산이 방심한 탓도 있지만, 경호의 대처도 좋았어.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도 빨랐고. 이 정도면 승리로 말해도 되지.”

“그렇군요.”

“그리고 둘 다 본격적으로 싸운 건 아니잖아. 특히 홍산, 너무 봐주고 있는 것 아니야?”

예리한 눈을 한 황준우의 물음에 홍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은공께 어찌 그런 무례를 더하겠습니까? 전 정말 진심을 다해 대련에 임했습니다.”

“대련 기준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네. 근데 만약 여기가 전장(戰場)이라면?”

“…….”

홍산과 경호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확실히 분위기를 전장으로 바꾸어 놓은 후 생각하니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 대련에서 아쉬운 점이 느껴졌다.

“홍산, 다시 창을 들어 봐.”

황준우의 말에 고개를 주억인 홍산이 목창을 들어 올렸다.

“자, 우선 지금 둘 다 느끼고 있는 어색함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뭐냐면, 기를 형상화해서 싸우지 않았다는 점이야.”

“그야 목검과 목창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경호의 말에 홍산이 고개를 주억인다.

기의 형상화.

쉽게 말해 검기나 검강들을 일컫는 말인데, 강철도 아닌 나무로 만들어진 무기에 그런 식으로 기를 불어 넣으면 힘을 견디지 못한 채 부서져 버릴 게 뻔했다.

“이런 상태로 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 검에 기운을 불어 넣은 후, 나무 파편이 되어 흩날리는 모습을 보인 경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본래라면 그렇지. 그나저나, 경호는 역시 아직이었네. 홍산.”

“아직이요?”

황준우의 말에 경호가 의문을 표한다.

창을 한 손에 들고 머뭇거리던 홍산은 황준우의 부름에 고개를 주억였다.

“예, 주군.”

“할 수 있겠지?”

“음…….”

짧은 신음성을 흘린 홍산이 망설이듯 목창에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경호 때와 달리, 엄연한 녹색빛 기운이 홍산의 목창을 밝게 휘감아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창이 부서지거나, 녹아내리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

놀란 경호가 묻자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져 있던 홍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일단, 기운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표출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기운은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뿐이지 않나요? 결국 기운이 버텨도 무기가 부러지면 아무 의미가 없을 테고…….”

“일반적인 기(氣)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 홍산이 만든 건 강기(?氣)라고.”

“목창에 강기라고요!?”

경호가 화들짝 놀라 외치자, 웃음을 보인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말했잖아. 보름 안에 초절정 고수가 되어 보자고. 홍산이 성공한 거지.”

그렇게 말한 황준우가 연무장 뒤편에 있던 목검 하나를 더 뽑아 들어 홍산에게 내던졌다.

깜짝 놀라며 반응한 홍산이 창을 휘두르고, 날아가던 검이 정확하게 반 토막 나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위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경호의 눈이 크게 떨렸다.

“저게 진짜 강기…….”

“그렇지. 내가 이미 설명했었지? 내력을 쥐어짜서 억지로 만든 게 아니야. 기를 원하는 만큼 다듬고 응집시켜서 만든 거지.”

“다듬고…… 응집시킨다.”

황준우의 말에, 여태껏 고민하고 있던 무언가가 깨져 나간 듯 눈을 번쩍 든 홍산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군요. 그냥 본능적으로 만든 건데…….”

“그래. 난 그걸 기본적으로 기륜(氣輪)이라고 불러. 자세히 보면 그 모양이 기운을 바퀴 모양으로 엮은 형태거든. 그런 녀석들이 자잘하게 뭉쳐서 강기가 되는 거지. 내력을 쏟아부어서 억지로 단단하게 만든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

황준우의 설명에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인 홍산의 얼굴에 뿌듯함이 떠올랐다.

일전에는 느낄 수 없던 육체의 충만감, 그리고 날렵한 움직임과 반사 신경. 그리고 동체 시력에 이어 황준우가 설명한 기륜의 형성으로 인한 강기의 표출까지.

이 모든 것을 통틀어 강호 무림에서는 말하곤 한다.

초절정 고수.

황준우의 말대로, 그는 보름이란 시간 내에 벽을 부숴 버린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황준우를 보는 두 눈에는 일전에 없던 존경심이 가득 깃들었다.

“기륜…… 기륜…….”

반대로 황준우의 설명에, 함께 귀 기울이며 연무장의 목검 하나를 더 잡아 들어 내력을 밀어 넣고 부서지는 모습을 보던 경호의 얼굴에는 허탈함이 깃들었다.

분명 강해졌다.

다시 구벽신권을 만난다고 하여도 이전처럼 허망하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 정도의 무력 상승이다. 하나 바로 옆에서 완벽한 강기를 형성하며 초절정 고수의 상징을 선보이니 따라가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겨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실망하지는 마, 경호. 홍산 쪽이 감이 더 좋을 뿐이야.”

“……보통 그런 걸 재능이라 하지 않습니까.”

쓴웃음을 지은 경호의 말에 황준우가 볼을 긁적인다.

마음을 가득 채우는 충만함으로 흡족해 있던 홍산의 표정에도 걱정이 어렸다.

보통 초절정의 영역은 뛰어난 무공을 익힌, 재능을 가진 이가 노력해야지만 이룰 수 있는 경지라고 한다. 기륜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확인한 순간에 경호와 홍산은 그 말의 의미를 명백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육체의 기능을 넘어선 기에 대한 이해.

이런 것은 그야말로 감각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오성(悟性)의 수준에 따라 차이가 갈릴 수밖에 없다.

같은 지옥 수련을 했는데 홍산은 해냈고, 경호는 하지 못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도련님, 저는 재능이 없는 건가요?”

아쉬움 가득한 눈빛을 한 경호의 질문에, 황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홍산의 경우가 빠른 거지. 경호도 재능은 충분히 있다고.”

“근데 전 왜…….”

“조금 늦을 뿐이야. 대신 더 단단할 수는 있겠지.”

“그럴까요…….”

“믿어, 경호. 알지? 내가 무공에 관해서는 천재잖아.”

“알고 있죠.”

“그래,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

“걱정 안 합니다. 도련님이 장담하셨잖아요.”

어깨를 두드려 주는 황준우의 말에 경호의 입가로 평소와 같은 웃음이 떠올랐다.

4. 재출(再出)

그날, 가족 식사 자리에서 황준우가 중대 의사를 표현했다.

“오 주야 후쯤에, 연이랑 한 번 나가 보려고요.”

“드디어!?”

당연히 놀랍도록 빠르게 반응한 이는 황서연이었다.

“어디로 갈지는 정했고?”

“북경으로 가 볼까 해요. 보고 싶은 친구도 있고.”

서시의 질문에 양손을 끌어모은 황서연이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인다.

아무렴 두 번째 목적이 어떻든, 일단 나간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었다.

“북경이라…….”

황준우의 말에 대충 의도를 짐작한 황석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다녀올 만도 하지. 단, 주의는 필요할 게다.”

“주의요?”

“네가 알아서 잘해 내리라 믿는다.”

언제나 그랬듯, 다소 두루뭉술하게 말한 황석후가 입을 닫았다.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치는 쪽이 빠르다. 황준우 역시 동의하는 편이었기에 황석후의 교육 방침에 큰 불만은 없었다.

“그래도 무슨 일인지 정도는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이번에는 연이도 같이 가는데…….”

하나 서시의 경우는 달랐다.

어찌 됐든 그녀는 어머니였고, 황서연은 이번에 처음으로 소주를 벗어나 세상에 나가는 것이다. 걱정이 마음 가득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음…….”

황석후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가가.”

서시가 다시 한 번 부드럽게 말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흘린 황석후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현재 북경에는 정쟁(政爭)이 한창이다.”

“정쟁이요?”

놀란 서시가 입을 가리며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정치 싸움이 커지면 작게는 양민들의 삶이 기울고 크게는 국가가 휘청거린다. 지금 북경이 그런 정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면 다름 아닌 황족들의 다툼일 터, 주의 정도가 아니라 피해 가는 것이 옳을 정도의 일이었다.

“준우야, 꼭 북경으로 가야겠니?”

서시의 시선이 다시 황준우를 향했다.

황석후는 주의를 하라며 이유를 말해 주었다.

평소답지 않은 큰 조언을 해 준 셈.

그렇다고 해도 황준우를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 모든 것을 경험으로 쌓아 승화시키리라 생각한 탓이다. 또 황준우를 믿는 덕도 컸다.

“음…….”

“고민을 좀 해 보렴. 이 어미가 걱정이 된단다.”

서시가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가슴 한편을 두드린다. 그쯤 되면 황준우로서도 도리가 없었다.

“그럼 일단 북경은 피해 갈게요.”

“잘 생각했다.”

서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주억인다.

황준우 역시 스스로의 몸을 간수할 수 있다고는 하나, 황서연을 데리고 위험 지대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전면 반대를 안 하신 것을 보면 딱히 자금성 바깥까지 큰 영향은 없겠지만…….’

만금장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은 황준우와 황서연이 북경까지 가서 엮이지 않고 탈 없이 나올지도 미지수. 거기다 앞서 말한 바 있듯 황준우는 친구를 만날 생각이었다. 분명 꼬인다. 느낌을 받은 황준우였기에 어렵지 않게 서시의 부탁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혹시 연하에 대한 소식도 알고 계세요?”

물론 호기심과 걱정은 별개였다.

신경 안 쓰고 서로의 삶을 살기로 하였지만 그래도 친구다.

그녀가 큰 위험에 빠져 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연하?”

“연하!?”

여자의 이름에 서시와 황서연이 동시에 의문을 표한다. 물론 황서연의 목소리가 몇 배는 더 컸지만 말이다.

“그녀라면 현재까지는 무사하다.”

이름만 들어서는 정체를 짐작지도 못하는 두 사람과 다르게 황석후는 태연하게 황준우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게 누구예요?”

“여자 맞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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