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90화
“일반적으로는 없다만, 어쨌든 현재 정황으로는 안 믿기도 힘드네.”
경정산 인근 마을 다섯 곳을 돌아본 결과, 각 마을의 주민 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경정산에 살고 있는 요괴를 보았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말하는 이들이 서술하는 요괴의 생김새도 일맥상통하여 의심할 거리가 적었다. 오히려 정보를 하나 더 얻었다면 얻은 게 있긴 했다.
“인면에 호익, 그리고 마체(馬體)라…….”
황준우의 작은 중얼거림에 다들 그 모습을 상상했는지 각자만의 기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쉬이 상상이 가지도 않고, 꽤나 흉측한 몰골이 떠오른 탓이었다.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였더라…….”
반면 황준우는 식탁을 검지로 두드리며 기억을 더듬어 나가고 있었다. 들어 보지 못했다면, 어디서라도 본 적이 있다.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던 황준우의 눈이 반짝 빛을 토했다.
“산해경(山海經)!”
“산해경은 지도 아니야?”
황준우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황서연이 의문을 표했다.
“어라, 알고 있어?”
“대충은. 엄마 아빠가 계속 공부하라고 하니까 책은 봐야겠고, 그쪽은 나름 흥미롭기도 해서…….”
헤실 웃으며 혀를 빼 내미는 황서연의 모습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은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 탓이었다.
“한데 지도가 그 괴상망측한 요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경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아, 산해경을 지도라고 말할 수도 있기는 한데…… 사실은 그렇다기 보다는 천하 전체에 대한 여행기라고 할까?”
“음…….”
묘한 신음을 흘리는 경호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황준우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夏) 나라의 우왕(禹王)이 집필한 건데 보면 별별 이야기가 많아. 막말로 절반은 거짓말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허황된 부분도 많고 요괴에 관련된 것도 많아서, 흥미로 읽기에도 나쁘지 않지.”
“나도 그래서 대충 읽어 본 거고…….”
자신만만하게 외친 황서연이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고 해서 끝까지, 오래 보지는 않은 탓이다. 아무리 흥미롭다고 하여도 글자가 많은 책은 천성적으로 그녀에게 맞지 않았다. 황준우에게도 그러했듯 말이다.
“그렇군요. 저도 산해경을 들어 보기는 했습니다만, 그런 내용인 줄은 몰랐습니다.”
“대다수가 그렇지 뭐.”
경호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주억인 황준우가 동의했다.
그 역시 학문을 익히기 전이었다면 아무리 흥미 위주라 한들 쳐다도 안 보았을 책 중 하나였을 뿐이니 말이다.
“어쨌든 그 산해경에 나오기를 그거랑 똑 닮은 요괴가 하나 있긴 해. 영소(英招)라고 하는데 사실 요괴라기보다는 산신령(山神靈)에 가깝지.”
“산신령이라고요? 그 괴상망측한 것이요?”
일반적인 산신령, 그러니까 신선의 모습을 먼저 떠올린 경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일단은 그래. 의문이 많기는 하네. 만약 산해경의 이야기 속 그대로라면 원래 영소의 거처는 마찬가지로 산해경에 나오는 괴강산(塊江山) 근처거든. 날개도 달린 놈이라 천하 곳곳을 돌아다닌다고는 하지만…….”
“소장주님은 정말 그런 것이 실존한다고 믿고 계시는 겁니까?”
유지량이 긴장된 시선으로 황준우를 바라보며 묻는다.
요괴 혹은 산신령이란 말에 몸에 바싹 힘이 들어간 게 눈이 보일 정도였다.
“적어도 일단은 안 믿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어쨌든 녀석이 나타나는 시기도, 장소도 멋대로라고 하니까 더 이상의 정보는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이쯤부터는 진짜 몸통 박치기지.”
“주공, 만약 정말로 하늘을 나는 요괴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그래도 산신령 취급 받는 놈이니 말은 통하지 않을까? 사람 머리도 달려 있고…….”
홍산의 물음에 웃음을 보인 황준우가 가볍게 답했다.
“음……”
신음을 흘리는 그를 향해 웃음을 보인 황준우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어쨌든 너무 걱정 말라고. 아직까지 다친 사람도 몇 없다고 하고, 의외로 진귀한 구경만 하게 될 수도 있잖아? 운 좋아서 사라진 표사도 찾으면 더 좋고.”
“알겠……습니다.”
유지량이나 경호 등보다 훨씬 더 경직된 모습을 한 홍산이 양 주먹에 강하게 힘을 주는 것이 보인다.
왠지 놀리고 싶다, 라는 고민을 하던 중 객점 입구에 보이는 혈안서와 시선을 마주한 황준우의 표정이 싹 뒤바뀌었다.
“자, 다들 푹 쉬고 내일 오전에 출발해 보자고. 아무래도 진짜 요괴면 밝을 때 보는 게 낫지 않겠어?”
진중한 그 목소리에 더 이상 누구도 반론을 펼치지 않은 채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황서연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흩어진 후, 홀로 남은 황준우의 어깨 위로 혈안서가 올라탄다.
“어디 보자.”
혈안서의 입에 물린 통을 풀어 전서를 확인한 황준우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이것 봐라?”
머릿속에 가득 찼던 산해경, 요괴, 명력 등 기괴한 단어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를 대신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현실이라는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른다.
“반가운 이름이 둘이나 남궁세가를 찾아오고 계신다?”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남궁세가의 협력을 바란다며 찾아오는 세 손님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
단지 그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누가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고 싸늘한 기운이 주변을 감싸 왔다.
‘어떻게 할까?’
복수는 잊기로 했다.
그렇다고 하여 원한을 모두 접어 주자는 뜻도 아니다.
단지 그냥 스스로의 평안에 만족해 보기로 다짐하였을 뿐이다.
한데 제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온 가엾은 사냥꾼이라 착각하는 사냥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방문하는 인명록만 읽어 보아도 좋은 이야기를 하기는 힘들 듯한데 말이다.
다시금 식탁을 두드리던 황준우는 결정을 내렸다.
“우선은 만나 봐야겠어.”
복수는 잊고자 했지만 원한은 남았다.
설령 그 모든 것을 떨친다 한들, 전생에 이어 재생에까지 같은 인물들에게 휘둘리는 것은 절대 사절이다.
동시에 황준우의 몸이 객점 일 층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직후 모습을 드러낸 곳은 어느새 또 홀로 검을 잡고 집중하고 있는 경호의 앞이다.
“여전히 열심히 하는구먼.”
“도련님?”
갑작스러운 황준우의 방문에 깜짝 놀란 경호가 눈을 뜬다.
막 무아지경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는지라 큰 문제는 없었다.
“처음에 말했듯이 이미 경호 너도 그 감각 자체는 알고 있어. 그러니까 억지로 새로운 걸 해내려 하기보다, 다시 되찾는다고 생각을 해 봐.”
“다시 되찾는다고요?”
예상치 못했던 황준우의 말에 경호의 눈빛이 크게 흔들린다. 무언가 깨달아질 것 같은 기분이다.
“응. 나름대로 단서라고 주긴 했는데 이번엔 조금 먹혔나 보네.”
“고심해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본론이 따로 있는데.”
“본론이요?”
“응. 나 잠시 어디 좀 다녀와야 될 것 같아.”
“함께 가겠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경호가 검을 움켜쥔다.
자신의 본분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모습이다.
“아아, 금방 다녀올 생각이니까 너무 걱정 말고. 그동안 연이 좀 잘 부탁한다고.”
“멀리 가실 예정입니까?”
“그리 멀지는 않고.”
어차피 안휘성.
합비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음…….”
“그 요괴인지 산신령인지 모를 놈도 조심해야 되니까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알겠지?”
“이해했습니다.”
“좋아, 그러면 알아들은 걸로 하고…….”
동시에 황준우의 모습이 또 한 번 사라졌다.
놀란 경호가 눈을 껌뻑거렸지만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리야 없었다. 다만 기척을 느껴 보니 옆방에 있던 홍산이 몸을 일으키는 게 느껴질 뿐이다.
‘홍산에게 가셨구나.’
아마 같은 명령을 내릴 것이다.
‘그러면 정말 이번에 돌아오시기 전까지는…….’
반쪽짜리가 아닌 완전한 초절정 고수를 목표로 한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잃었던 것을 되찾는다.’
황준우가 던져 준 단서를 가지고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한 경호였다.
경호, 홍산에 이어 유지량까지 순식간에 만난 황준우는 마지막으로 황서연을 찾았다.
물론 다른 사내놈들처럼 덜컥 방 안으로 들어가는 실수 따위는 없었다.
“크흠!”
“오빠? 들어와.”
헛기침을 하고, 내부에서 황서연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 오빠가 볼일이 있어서 몇 주야 정도 자리 비울 것 같거든. 그때까지 경호랑 홍산 말 잘 듣고 있으라고.”
들어서자마자 본론을 남긴 황준우가 황서연을 바라본다.
당황하거나, 따라오겠다고 고집 부릴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담담한 모습이었다.
“오래 걸려?”
“글쎄, 길어야 칠 주야 내에는 되지 않을까?”
“알겠어. 다치지 말고, 나도 얌전히 무공 수련이나 하고 있을 테니까.”
“보채지 않네?”
“그랬으면 좋겠어?”
어딘지 황준우를 닮은, 히죽거리는 음흉한 웃음을 지은 황서연이 물었다.
“아니, 뭐. 원하는 건 아니지만…….”
“오빠 얼굴이 척 봐도 급해 보여. 그리고 진짜 요괴가 나올지도 모르는 마당인데, 내 무공에 대해서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고…….”
작게 읊조리는 황서연의 눈빛이 묘하다.
경호와 홍산이 쉴 새 없이 수련 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도 나름대로 스스로의 무공에 대하여 많은 고심을 했다. 그리고 어느새 벽에 닿아 버렸다.
“벌써? 빠르네?”
그 기색을 느낀 황준우가 짧은 감탄을 흘렸다.
가장 알맞은 무공으로, 어린 시절부터 조기 교육으로 커 온 황서연이다.
때문에 나이에 맞지 않는 일류라는 솜씨를 가지게 되었다고는 해도 벌써 절정의 벽이라고 한다.
물론 그 벽을 넘어서는 것은 또 다른 별개의 일이겠지만 천하 전체를 둘러보아도 손에 꼽을 빠른 성장이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나도 나름대로 엄청 노력하고 있다고. 짐이 되고 싶지도 않고…….”
황서연이 볼을 빵빵하게 불린 채 투덜거리는 음성을 흘렸다.
황준우의 놀란 음색을 통해 그녀를 무시한다고 느낀 탓이다.
“아니,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 내 동생 진짜 천재이구나 싶어서 말이지.”
본인 역시 그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재생이 아니더라도, 전생부터 그는 범상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때문에 황준우가 생각하는 천재라는 수준의 재능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았다.
홍산 역시 십만의 강호인 중 하나 정도 나올 수준의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황준우의 기준에서 보자면 결코 천재는 아니었다.
기껏해 봐야 수재나 영재쯤?
성 하나에서는 먹힐 수 있지만 천하 전체를 아우르자면 아쉽다.
나이를 많이 먹는다면 우내십존과 어깨를 대등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운의 영역도 많이 따를 터다.
천운(天運)이 따르고 노력이 엄청 더해진다 한들 천하제일을 논하지는 못할 것이다.
반면 눈앞의 여동생은 확실히 달랐다.
황준우 본인과 같은 천재 과(科)다.
‘물론 나보다는 살짝 못한 것 같지만…….’
이 상태로 무난히 성장해도 최소 우내십존과 동급, 노력이 계속 가미해지고 천운이 따른다면 천하제일의 무인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중고수(女中高手) 중 고금제일을 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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