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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91화 (91/373)

학사재생 91화

“이제 알았어? 나 오빠 동생이야.”

그런 황준우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황서연이 콧대를 높인다. 그녀는 짐작도 못하는 것이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황준우가 천재라고 인정한 무인은 본인을 제외하고는 황서연이 처음이다. 스스로의 재능이 고금을 논할 정도라고도 생각지 않을 터였다.

“허허…… 이거 경호나 홍산이 알면 굉장히 허탈할 것 같은데.”

짧은 웃음을 흘리며, 혼잣말을 읊조린 황준우가 이 사실은 마음속에 담아 두고자 여겼다.

‘어차피 몇 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밝혀지겠지만…….’

어쨌든 그 몇 년 동안 두 사람도 나름의 정신적 성장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마음 편히 다녀와. 아까 말한 대로 얌전히 기다릴게.”

“그러마. 절대 사고 치지 말고.”

“에헤이, 잔소리 그만하시고!”

“알겠다, 알겠어.”

등을 떠밀 듯 말하는 황서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황준우가 방문을 닫았다.

방문이 닫히고 잠시 짧은 정적이 흐른다.

그사이, 경호와 홍산, 황서연 등을 만나며 풀어졌던 황준우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변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위로는 차가운 미소가 떠오른다.

“자, 이제 진짜 이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러 가 볼까.”

합비를 향하는 걸음은 가벼웠다.

5. 경호 후보(景好 後步)

황준우가 도착할 때까지 마을에 머문다.

경정산에는 정체를 모를 요괴가 있다는 소문이 있는 만큼 남은 일행들의 선택은 신중했다. 유지량을 비롯하여 이제 막 합류한 표사들은 황준우를 깊게 신뢰하는 그들의 모습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고개를 주억였다. 따지자면 아직 그들은 이 자리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손님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로 간에 사이가 틀어질 일은 없었다.

유지량과 표사들은 최대한 행동을 조심했고 경호와 홍산, 황서연 등은 그런 그들을 굳이 자극하지 않고 좋은 모습으로 반기고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채 삼 주야가 지나기 전 표사들과 일행들은 본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가깝게 친해졌다.

덕분에 발생하게 된 대표적인 상황의 예로는 함께 수련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같은 일행이지만 서로의 눈치를 보며 수련 시간을 번갈아 잡았던 모두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의 무공을 펼치고 조언을 받기도 시작했다.

다른 강호 무림인들이 보았다면 놀라 까무러칠 일이다.

문파의 비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 주고, 조언을 주고받다니.

이는 무림인에게 있어 스스로의 목숨을 내놓는 행위나 다름없다 여겨 금기(禁忌)로 취급되는 일이었다.

상대가 내 무공을 모두 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위인가?

때문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한 사대무관, 북경이가(北京二家) 등에서는 제자가 다른 곳에 가서 무공을 예상치 못하게 유출할 경우, 반드시 상대를 살해하거나 근맥을 절단하라는 무시무시한 밀명(密命)마저 전승되고 있을 정도였다.

한데 아무리 무림에서 천시 받는 표사와, 상가의 무인들이라지만 서로의 무공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고 다듬고 있다.

이 역시 황서연을 비롯한 경호와 홍산 등이 표사 일행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 덕이었다.

아직까지 황서연의 경우는 어린 데에 비해 뛰어날 뿐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경호와 홍산은 많이 달랐다. 그들은 강호 전체를 따져도 인정받는 초절정의 고수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 유지량과 표사들은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직접 무공을 지도 편달해 준다는 말에는 감격하여 머리를 숙였다. 사문의 비기를 바깥에 보여 주는 것이 금기라고 하지만, 고수에게 직접적인 지도를 받는 일은 기연과 다름이 없다. 무엇보다 유지량을 비롯한 표사들 중 어디 대문파에 적을 둘 정도로 뛰어난 무공을 가진 이 또한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컸다.

그렇게 모두와 함께하는 수련이 시작되었다.

황서연의 경우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여 주로 상념에 빠질 때가 많았지만, 다른 무인들은 바쁘게 몸을 움직이고 검을 놀리기 바빴다.

무인으로서 강해질 수 있는 기회에 더욱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자연스레 일행들의 얼굴은 밝아졌다.

단 한 사람, 경호의 경우는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아직 이른 나이에 초절정고수라니, 정말 두 분 다 대단하십니다.”

땀을 식힐 겸,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는 경호의 옆에 앉은 유지량이 꽤나 지친 표정으로 말을 건다. 그늘 아래 잠시 어색한 미소를 흘린 경호가 고개를 주억였다.

“운이 좋았지요. 모두 도련님 덕입니다.”

“홍 무사님도 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소장주님의 무공이 그리 높으신 겁니까?”

말을 하는 유지량의 얼굴에는 작은 불신(不信)이 어려 있었다. 솔직히 황서연, 경호, 홍산 등의 기량에 놀라기는 했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황준우가 초절정고수를 기를 정도의 무공 수위를 갖추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던 탓이다. 결국 그를 비롯한 표사들은 경호와 홍산의 말이 단지 모시는 황준우의 기를 세워 주기 위한 칭찬 정도로만 보인 것이다.

“글쎄요…… 따지자면 저 같은 놈은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랄까요.”

“하하…… 그 말이 사실이라면 미래의 천하제일은 소장주님께서 따놓으신 것과 다름이 없겠습니다. 만금장에서 나온 천하제일무림인이라니, 이거 상상만으로도 두려운걸요.”

어딘지 어색할 정도로 과장하는 유지량의 표정과, 낯빛에서 그 기색을 읽은 경호였지만 달리 반박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직접 본다면 단번에 알게 될 일이고, 말로써 납득하기 힘든 수준이란 사실 또한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 시피 저는 아직 반쪽짜리입니다.”

경호의 자조 섞인 웃음에 유지량이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사실 전 그 말이 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기륜을 만들 수 없어 완전한 강기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반쪽이라니…… 납득이 되지 않아요. 실제로 경 무사님과 홍 무사님 두 분이 대련하면 승부는 막상막하이지 않습니까.”

그거야 홍산이 제대로 된 강기를 사용해 주지 않는 덕이다.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말을 쓰게 삼킨 경호가 손을 내저으며 웃어 보였다.

“운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그 운도 따라가지 못하는 게 저를 비롯한 표사들 대다수입니다. 너무 자책하실 필요는 없으시지요.”

“이거 미안합니다. 유 표두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유지량의 말에,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 경호가 벌떡 일어나 공수를 취하며 머리를 깊게 숙인다.

“아니, 저도 탓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경 무사님. 단지 힘을 내시라는 의미였는데…….”

당황한 유지량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경호를 말린다.

“알겠습니다. 힘을 내보겠습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공수를 푼 경호가 작은 웃음을 보인다.

이후 두 사람은 기분 좋은 모습으로 수련을 이어 나갔다. 어찌 됐든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던 만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되짚어 보자. 되짚어서, 도련님은 이미 내가 기륜을 형성하는 방법을 안다고 하셨다.’

황준우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사실일 터다.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망아지경 때 이미 기륜을 기반으로 한 강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문제는 과연 망아라고 할까. 당시의 기억이 조금도 없다는 부분이었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경호는 중간중간 어두워지려는 낯빛을 바로 잡으며, 마음도 다잡았다.

황준우의 조언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가다듬는다.

이것이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련이 이어지던 중.

문득 검을 바라보며 집중하고 있던 경호의 머릿속으로 아지랑이와 같은 형태가 가득 피어올랐다.

‘기를 아지랑이처럼?’

그는 어렵지 않다.

검기를 만드는 것을 여럿으로 가르기만 하여도 효율적으로 생성할 수 있었다. 아마 다수의 하수를 상대할 때는 완성된 검기보다 이편이 좋을 것 같았다.

‘해 볼까?’

어째서 이제야 이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예전부터 마음먹었다면 할 수 있는 일이었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결심을 하는 순간, 검에서 기운이 피어오르고, 순식간에 여러 갈래의 아지랑이로 갈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검연(劍煙).

강호의 고수들 중, 때로 이와 같은 형태로 기운을 발휘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다.

이미 짐작한 바 있듯 하수를 상대로 할 때는 몇 배나 효율적이다. 하나 강기를 적으로 한다면? 짧은 실소를 지은 경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강기에는 결코 견딜 수 없다.

애초부터 기륜이란 이런 아지랑이를 수도 없이 꼬고 얽어서 만든 힘의 집합체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어? 검연을 꼬고 얽는다고?’

될까? 현실적으로 기운을 그렇게까지 멋대로 움직일 수 있을 까 싶으면서도 이미 하나를 여럿으로 가르기까지 했는데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싶다.

“은공, 은공!”

그런 경호의 어깨를 누군가 붙잡으며 크게 외친다.

“홍 공자?”

흐려졌던 시야가 본래대로 돌아오고 다급한 얼굴의 홍산이 가장 먼저 보인다. 이후 들려온 것은 말발굽 소리, 그리고 다급한 외침과 비명 소리다.

‘습격?’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것은 황준우로부터 들었던 요괴에 대한 이야기였다.

‘분명 말의 몸을 하고 있다고…….’

놀라는 경호를 보며 살짝 미안한 눈빛을 한 홍산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깊은 수련 중이셨던 것 같은데, 마적 떼입니다.”

“마적이요?”

생각했던 요괴는 아니다.

하나 그렇다고 우스운 일은 아니었다.

“크아악-!”

그사이 또 하나 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심지어 객점 바로 근처였다.

“시간이 없습니다!”

홍산이 외친 순간 시야를 둘러보자, 전면에 나서 용감무쌍하게 싸우고 있는 황서연과 그를 호위화는 유지량 등이 보였다.

“아차!”

검을 부여잡은 경호가 빠르게 몸을 앞으로 날리며 검을 내뻗는다.

단숨에 황서연의 뒤를 노리던 마적의 가슴을 꿰뚫은 경호의 눈이 차가운 빛을 흘렸다.

“감히…….”

“경호 아저씨!?”

어릴 때부터 줄곧 보았지만, 어째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어색해져 이름조차 부르기 힘들어하던 황서연이 오랜만에 그의 이름을 외친다.

“아저씨 아닌데요…….”

물론 딱히 마음에 드는 지칭은 아니었다.

“차앗-!”

그사이 뒤를 따라 기합을 내지른 홍산은 두 자루 창을 양손에 쥔 채 풍차처럼 휘둘러 마적 떼 사이로 떨어졌다.

카가각-!

강기가 둘러진 두 자루 창이 춤을 추자 마적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쓰러진다.

핏물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말 위의 사람이 바닥으로 쉼 없이 떨어지는 모습이 그야말로 추풍낙엽(秋風落葉)을 연상케 하는 신위였다.

“무공을 익힌 놈이다!”

“한 놈이 아니야!”

한데도 마적의 기세가 줄지 않는다.

놀라고, 경악하기는 했지만 두 눈에 어린 기세는 여전히 강렬했다.

게다가 홍산의 무위가 워낙 압도적이라 표현이 안 되었을 뿐이지 하나, 하나의 솜씨가 제법 범상치 않았다.

‘일류도 더러 섞여 있고, 절정급 무인도 있어.’

주변을 둘러보는 경호의 눈에 조금씩 경악이 차올랐다.

이쯤 되면 고작 마적단 따위로 치부할 수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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