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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96화 (96/373)

학사재생 96화

“쿨럭!”

동시에 불안감과 공포에 절어 몸을 날리려던 관기태의 몸이 굳더니 입과 코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달아나기 위해 무공을 펼치려는 순간 파고든 황준우의 음성 속에 섞인 내공이 모든 기운의 흐름을 뒤엉키게 만든 탓이다. 생각지 못한 엄청난 내상을 입고 제자리에 주저앉은 관기태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알을 빠르게 굴린다.

천하의 이름 높은 원원괴존은 고개만을 내저으며 현실을 부정하려 한다.

홀로, 이 자리에서 조금은 동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낀 전왕은 두려움에 바지가 촉촉이 젖어 가는 와중에도 하나의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칠야무신이 재림(再臨)한 것 같은 풍경이잖아?’

천하에 누가 있어, 그 어떤 존재가 있다 한들 원원괴존과 산붕도장 두 사람을 공포에 절다 못해 현실을 부정하게 할 수는 없다.

오로지 칠야무신만이 가능할 일이다.

하나 눈앞의 청년이 칠야무신일 리는 없다.

전왕 역시 상식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러한 진실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차오르는 의구심과 또 영문을 알 수 없는 기대감은 무엇인지 모를 때쯤.

“무, 무신이시여! 제발 자비를 내려 주시옵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떨고 있던 남궁호량이 제자리에서 무너지며 큰 목소리로 외친다. 그 역시 황준우의 몸에서 나오는 무서운 살기를 견디지 못한 탓이다. 당연한 일이다. 천하의 원원괴존조차 벌벌 떨게 하는 살기인데, 남궁호량 정도가 버텨 낼 리 없다. 그보다 더 원원괴존과 관기태, 전왕을 흔든 부분은 따로 있었다.

“무신!”

저도 모르게 놀라 경악을 담아 외친 전왕의 머리끝에 전율이 차올랐다.

암묵적으로, 또한 실질적으로 근대 무림에 들어와서 감히 무의 신이라는 별호를 부여받거나 사용한 이는 누구도 없었다. 이십여 년 전 있었던 칠야무신이 보여 줬던 위용과, 그 무력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이후로 누구도 감히 그에 범접할 수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이런 시대에 무신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왔다.

“저, 정녕 칠야무신이란 말이오?”

원원괴존이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떨리는 눈으로 황준우를 향해 묻는다.

“글쎄. 어때 보여?”

황준우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세 번째에 이어 네 번째, 다섯 번째 걸음을 옮겼다.

“저, 정녕 무신이라면 기다리시오. 우리도 예전과는 달라졌소. 그러니까 당신이 칠야무신이라면…….”

“아, 시끄러. 어차피 저놈도 뭘 알고 한 소리도 아니야. 그냥 지레 겁에 질려 한 말이지.”

그래서 본인이 칠야무신이라는 건가, 아닌 건가.

‘그래. 진짜 칠야무신이라면 반로환동도 이상하지 않지!’

전왕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떠돌아다녔다.

반면 원원괴존은 이제 황준우를 완전히 칠야무신으로 의식한 모습이었다.

“살려 주시오. 나는 생각보다 알고 있는 것이 많소. 예전 당신을 공격했던 자들의 신상 명세부터…….”

“그중 하나가 너야. 더 이상 듣기 싫다. 이만 죽자.”

황준우의 신영이 또 한 번 유령처럼 사라졌다.

동시에 나타난 곳은 원원괴존의 등 뒤였다.

주먹이 빛살처럼 뻗어졌고, 엄청난 기파가 번져 나갔다.

“컥-!”

콰드드득! 쾅!

비명과 함께 허공을 날아 무애원에 심어진 나무 몇 그루를 무너트린 후에야 바닥에 떨어진 원원괴존이 창백한 안색으로 몸을 일으킨다.

“젠장! 이렇게 나오면 아무리 칠야무신이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게요!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한 게……!”

“맷집 좋은 것도 여전하네. 원원강기라고 했나? 호신강기 치고는 제법이었지.”

또다시 원원괴존의 등 뒤로 나타난 황준우가 이번에는 검을 뽑아 들었다.

수왕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거친 울음을 토한다.

“그 무기는……!”

원원괴존은 더 이상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가 자랑하던 절기와 절초, 필살기 중 어느 하나 뽐내 보지 못한 채 목이 날아가 버린 탓이다.

천하를 오시하는 우내십존 중 하나가 단칼에 이승과 작별한 충격은 적지 않았다.

“오, 역시 수왕. 좋네. 원원강기인지 뭔지도 그냥 잘라 버리잖아.”

입가로 만족한 미소를 떠올린 황준우의 다음 시선이 향한 곳은 관기태였다.

이를 악문 관기태가 내상을 입은 채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정녕…… 무신이 맞으십니까?”

“왜 같은 걸 계속 물어봐. 아니면 어떻고, 맞으면 또 어쩌게?”

황준우는 차갑게 대꾸했다.

산붕도장 관기태.

그는 한때 기울어 가던 무관의 힘없는 약자였다.

하나 황준우로부터 산붕도법을 전수 받고, 그를 이용해 힘과 명성을 쌓아 사대무관 중 하나를 일으켰다. 이후 칠야의 난 시절 그의 목숨을 베겠다고 가장 선봉에 섰던 사실 역시 잘 기억하고 있었다.

“용서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또다시 돌아간다 한들 같은 선택을 할 터. 그러니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저쪽에서 죽은 말 많은 영감보다는 낫네.”

황준우가 피식 웃으며 수왕을 관기태에게로 겨누었다.

관기태는 무언가 망설이듯, 주춤하는가 싶더니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든다. 그 모습을 본 황준우의 눈매가 묘하게 일그러졌다.

“검? 도가 아니라?”

“……지금 이것이 제 최선일 뿐입니다.”

처음 언뜻 보았을 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도집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검이라니.

“아무렴 상관없지.”

코웃음을 친 황준우의 신영이 움직였다.

관기태의 당당함은 나쁘지 않지만, 그를 용서할 이유도 없다. 은혜를 원한으로 갚은 그는, 같은 상황이 닥쳐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나 역시 원한을 갚을 자격 정도는 있다고 생각해.”

싸늘하게 말한 황준우의 검이 관기태를 두 짝으로 갈라 버릴 듯 매섭게 내리쳐졌다.

마치 하늘에 있는 천제(天帝)가 내던지는 벼락과 같이 날래고 위력적이다. 원원괴존도 아니고, 그보다 두 수 이상 쳐지는 평을 받고 있는 관기태가 살아남기란 요원해 보였다.

한데 막았다.

“크으윽.”

우우웅-!

신음을 흘리는 관기태의 바로 앞, 맑은 하늘빛을 내뿜는 강기를 가득 뿌리는 검의 모습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황준우가 손에 더욱 힘을 밀어 넣었다.

꾸우욱-!

“으아아악-!”

괴로운 듯, 비명을 내지른 관기태가 결국 제자리에서 무너지며 무릎을 꿇는다. 하나 푸른빛을 내는 검은 잘리지 않는다. 오히려 기세를 더욱 일으키며 황준우를 밀어내기까지 했다.

“…….”

“으랴아앗-!”

놀란 황준우가 살짝 물러선 짧은 순간 발악하듯 뻗어 나온 관기태의 검에서 산붕도법이 펼쳐졌다.

결코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이 정녕 산을 가를 듯 매섭다. 처음으로 눈을 굳힌 황준우가 수왕에 강기를 일으켰다. 동시에 벼락처럼 쏘아져 나간 황준우의 신영에서 황금빛 기운이 운무처럼 일어나며 벽을 만들었다.

콰앙-! 쩌저적-!

검으로 펼쳐진 산붕도법과 황준우가 만든 황금벽이 부딪치며 폭음과 함께 대기가 떨었다.

후두둑-!

화려하게 장식된 심처의 양각이 떨어지고 무애원의 벽이 울음을 토한다.

그 중심, 산붕도법을 막아 낸 황준우의 두 눈에 확신이 깃들었다.

“무기의 이름이 뭐지?”

“쿠에에엑-!”

관기태는 대답하지 못했다.

잠력까지 끌어내었던 공격이 막혔고, 이미 망가졌던 그의 몸은 완전히 무너졌다. 입을 열 힘조차 몇 남지 않았다.

“부디…… 무관에는…… 자비를…….”

그 말을 끝으로 관기태는 숨을 거두었다.

잠시 말없이 그의 죽음을 내려다보던 황준우가 기파의 위력에 풀어헤쳐진 머리를 끌어올리며 관기태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든다.

우우웅-!

수왕과 마찬가지로 화답하듯 울음을 토한다.

하나 공격적이거나 반항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주인을 반기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명력이 깃든 검.’

처음 관기태가 검을 뽑아 들어 방어에 성공한 순간부터 황준우는 곧장 만총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검은 두 자루나 필요 없어.’

하지만 이 신비한 검에 대해서는 조사가 조금 필요할 듯했다.

“어이, 사마정.”

들고 있는 검을 이리저리 둘러본 황준우의 부름에 사마정이 고개를 들며 요사스러운 붉은 눈을 빛낸다.

“관기태가 들었는데 원원괴존보다 더한 것 봤지? 안 막았으면 오늘 무애원 날아갔다. 알고 있는 것 있어?”

“…….”

사마정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짐작 가는 바는 있습니다.”

하나 확신은 아니다.

정, 사, 마를 가릴 것 없는 은밀한 모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와 힘의 변화. 사마정조차 쉽게 파고들 수 없을 정도로 철통 보안을 자랑하기에 짐작만 하고 있던 일의 실체가 다가온 느낌이었다.

“무슨 검인지 알겠어? 아마 이름 있는 명검일 텐데.”

황준우의 중얼거림에 대답을 한 것은 의외의 목소리였다.

“그, 그것이 아마…… 청홍검(靑紅劍)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헤헷.”

간신스러운 웃음을 흘린 전왕의 말에 황준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청홍검? 촉한의?”

마지막 주인은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명장(名將)이었던 조운 자룡이었기에 저절로 황준우의 머릿속에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예예. 마지막에는 자룡이 주인이었습니다만, 그 이전에는 맹덕(孟德)이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다시 전왕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자연스레 사마정과 황준우, 검을 보며 은근히 탐심을 흘리던 남궁호량마저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누구지?”

황준우의 질문에, 침을 꿀꺽 삼킨 전왕이 양손을 싹싹 비비며 입을 열었다.

“아, 저는 전왕이라고 합니다. 증빙 임무로 이번에 일행에 합류하게 된 문관입지요. 헤헤.”

어쩐지 이름 하나가 낯설더라고 생각했던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문관이라…… 따라 들어와.”

황준우는 그와 이야기를 나눠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7. 약식강이(弱式强理)

남궁호량은 물러났다.

무애원, 본래 검제 남궁천이 사용하였던 심처의 방 안에 앉은 황준우는 청홍검을 눈앞에 놓아 둔 채 부복한 사마정과 머리를 조아린 채로도 양손을 싹싹 비비고 있는 전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일단…… 사마정, 네 생각은 어때?”

황준우의 물음에 살짝 고개를 들어 검을 살핀 사마정이 입술을 달싹였다.

“푸른 검신에 붉은 손잡이, 약 삼 척(尺)가량의 길이와 형태, 문양 등만 보아서는 청홍검과 대동소이합니다.”

“대동소이라…….”

황준우가 가볍게 고개를 주억였다.

의외로 삼국시대의 역사는 학문의 공부에 있어서도 떼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부분이 많았다. 때문에 황준우 역시 당시에 이름을 날렸던 무장(武將)들과 명성 높은 무기에 대해서도 제법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이 무인인지라, 그런 쪽에 더 눈이 갔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황준우가 보기에도 눈앞의 검은 전설 속의 청홍검과 그리 다르지 않은 외형을 자랑했다.

“국자감 소속 조교라고 했나?”

“네이, 그렇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번쩍 들며 마치 내시처럼 답한 전왕이 헤실거리는 웃음을 보인다.

“긴장하고 있군.”

그런 전왕을 꿰뚫기라도 할 듯 바라본 황준우가 말했다.

몸을 떤 전왕이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야…… 전 한낱 문관 아닙니까. 눈앞에 계신 분은 전설의 칠야무신……이신 것 같고요.”

“전설이라……. 고작 이십 년 정도잖아? 근데 벌써 거기까지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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