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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97화 (97/373)

학사재생 97화

황준우의 어이없는 웃음에 망설이듯 입술을 몇 번이고 오므리고 피던 전왕이 크게 외쳤다.

“우둔한 놈인지라 아직 확신을 못 하고 있습니다! 정말 칠야무신이 맞으십니까!?”

질문을 던지고도 당장 목이 떨어질까 무서워 웅크리며 두 눈을 질끈 감는 전왕의 모습에 황준우의 입가로 헛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까지는 없어. 얼마나 겁먹었으면 심장 소리가 내 귀에까지 박히냐. 쿵쾅쿵쾅쿵쾅.”

“헤, 헤헤…….”

황준우의 가벼운 목소리에 얼굴을 붉힌 전왕이 또 한 번 웃음을 흘렸다. 양손을 파리처럼 비비는 것은 아주 습관인 듯 보였다.

“보아하니까, 황궁에 오래 있었으면 제법 훌륭한 간신이 됐을 성격인데.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야? 아, 맞아. 그 전에 네 질문부터 대답해 줄게. 맞아. 내가 칠야무신이야.”

“……!!”

황준우의 확언에 눈을 동그랗게 뜬 전왕이 고개를 번쩍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 저, 저는 전, 전왕이라고 합니다! 오, 오, 오래전부터 동, 동경했었습니다! 무신이시여!”

“동경?”

“그, 그도 그럴 게…….”

“아아, 됐으니까 일단 진정하고 말해. 답답해 죽겠네.”

“아, 알겠습니다! 무신이시여!”

황준우의 말에 힘차게 외친 전왕이 제 가슴에 손을 올린 채 호흡을 열심히 가다듬는다.

“하나, 휴우. 둘, 후우. 셋, 후우.”

참 열심히도, 그리고 힘겹게 호흡을 가다담은 전왕이 제법 다짐이 선 눈으로 입을 열었다.

“무, 무신께서는…….”

안 되겠다.

고개를 내저은 황준우가 전왕의 어깨에 손을 얹은 후 내력을 흘려보낸다.

붉게 들떠 있던 그의 표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터질 듯 뛰던 심장 소리도 사그라들었다.

“좋아, 이제 이야기해 봐.”

“감사합니다, 무신이시여. 어, 그러니까…… 남자라면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천하제일무신에 대한 동경이라든지…….”

“그게 전부?”

“아, 그리고. 실상 정파라고 해서 착한 놈들 아닌 것 알 사람들은 다 알지 않습니까? 그런 와중에 천하무림 전체랑 싸운 칠야무신께서 진짜 소문대로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도 안 들고…….”

“소문대로 그런 나쁜 사람이면?”

제 나름대로 추측을 풀어 놓는 전왕을 향해 짧은 웃음을 흘린 황준우가 질문을 던졌다.

“에,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당황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답이 빠르다.

“만약 소문대로라면 전 이미 죽어 있어야 마땅한데요?”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말을 내뱉는 전왕의 눈이 초롱초롱하다. 결코 예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눈빛을 보는 황준우의 얼굴에 묘한 감정이 어렸다. 사마정조차도 놀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지금 전왕이 말한 것은 예상외의 핵심이었다.

황준우가 소문대로의 사람이라면 그가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

대다수 소문에 현혹된 이들은, 특히 방금 전 같은 풍경을 본 사람이라면 결코 생각지 못할 일이다. 한데 전왕은 그런 맹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의외로 똑똑한 편인가?”

말을 내뱉은 직후, 황준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의외가 아니었다.

눈앞의 전왕은 제 입으로도 밝혔다시피 국자감 소속의 조교, 문관이다. 천하에 산재한 서원(書院)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황궁에서 직접 운영하는 교육기관의 정점인 국자감의 문관! 비록 조금 더 전문적인 학문 집단인 한림원에 비해 살짝 밀리는 기색이 있다지만 당연히 똑똑해야 하는 게 옳은 것이다.

황준우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헤실거리며 웃고 있는 전왕을 다시 바라보았다.

“머리가 좋다고 해도, 실제 상황에서 그걸 응용하는 건 또 다른 능력이지. 의외로 국자감에서도 인정받는 인재라거나 그런 것 아냐?”

“예. 뭐, 나름대로. 그래서 여기까지도 오게 된 것이지요, 헤헤.”

애초에 조교가 제주의 명령을 직접 받아 이런 자리까지 나오게 된 것부터가 범상치 않은 일이다.

국자감의 총장인 제주 역시 보는 눈이 없는 우둔한 사람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 전왕. 우선 이 검이 청홍검이라 확신할 수 있는 근원은 있어?”

“그냥 보면 청홍검인데요?”

이번에도 대답은 빨리 돌아왔다.

질문을 내던진 황준우가 당황할 정도로 말이다.

“아니, 결코 무신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제 모자란 편견으로 보기에는 그렇다는…….”

“아아, 됐어. 맞는 말이니까. 그래, 굳이 의심하는 게 이상한 거지. 이건 청홍검이 맞아.”

그래 놓고 또 혹시 제 목이 달아날까 겁먹은 전왕의 변명에 손을 내저은 황준우가 빨리 뒷말을 덧붙였다.

생각해 보면 전왕의 말이 맞았다.

이상하게 생각할 일도 아니다.

전설 속 이야기로 내려오는 청홍검의 생김새 그대로에, 얼마 전 만총으로부터 들었던 명력의 위력.

“근데 왜 이런 걸 원원괴존 놈이 아니라 관기태 그 양반이 들고 있었을까.”

황준우는 다시금 청홍검을 들어 이모, 저모를 살폈다.

솔직히 겉으로만 보자면 평범한 철검이다.

분명 청동으로 만들어졌을진대, 느낌이나 질감은 후 시대에 만들어진 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오히려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신비하다는 듯 몇 번이나 훑어본 황준우는 생각을 정리하다 문득 혹시 하는 마음으로 전왕을 향해 물었다.

“짐작 가는 이유 있어?”

“어…… 그거, 아마 산붕도장이 몰래 가지고 있던 것 아닐까요?”

“몰래?”

“예. 그런 물건이 흔할 리도 없고, 알고 있었다면 원원괴존이 빼앗지 않았을까 싶은데…….”

별것 아니라는 듯 던지는데 그럴싸하다.

확실히 관기태가 이런 보물을 가지고 있으려면 숨기고 있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마정, 네 생각은?”

“동감합니다. 비슷한 수준의 물건 몇이 모임에 나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산붕도장에게 갈 정도까지는 아니지요.”

산붕도장 관기태.

천하사대무관 중 하나인 산붕도관의 관주이자, 무공 실력은 초절정. 그중에서도 최상위 영역에 속하지만 우내십존과 비교해서는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

그런 그가 우내십존도 가지지 못한 명력을 가진 보물을 손에 넣었다.

감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로 사용하는 도가 아닌 검이라 아쉬운 점은 속임수를 위한 도집을 만들며 감췄을 테고 말이다.

“잔머리를 제법 썼네, 관기태.”

황준우는 피식 짧은 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그는 죽기 직전 최선을 다한다는 명분으로 황준우에게 명력에 대해 알려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전설의 청홍검이 가진 힘은 초절정고수인 그를 방심하지 않은 원원괴존과 동급, 혹은 그 이상에 올려 주었으니 말이다.

‘보답으로 산붕무관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 이거지?’

마지막, 관기태가 죽기 전 남겼던 음성을 떠올린 황준우는 고개를 주억였다. 어차피 복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포기한 부분이 많았다. 이번 사건 역시 그들이 먼저 다가왔기에 벌어진 일. 실질적으로 눈앞에 반가운 얼굴을 보니 원한을 참지 못하고 휘둘린 것도 사실이었다.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고 말이다.

물론, 그 내심에는 애초부터 전왕을 살려 두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굳이 원한도 없는 심지어 문관을 죽일 필요까지는 없을 테니 말이다.

‘아버지도 이유 없는 피를 흘리지는 말자고 하셨고.’

황준우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원원괴존이 죽기 전에 수왕을 보고 놀란 이유도 그런 건가?”

떨리는 공명과 예사롭지 않은 명검의 자태.

아마 머릿속에 그들이 가진 명력의 힘이 떠올랐을 터다.

놈이 황준우를 향해 던지고자 했던 승부수 정보도 그와 가까울 테고 말이다.

‘너무 쉽게 죽였나?’

이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곧 사라졌다.

어차피 정보는 필요하면 얻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 사마정을 얻었고, 정보 단체를 만들었다.

“아, 목적이 뭐였지?”

황준우의 시선이 다시 전왕을 향했다.

그들이 이 자리까지 찾아온 이유.

듣지 않아도 대충은 알 것 같았지만 확인은 필요했다.

“그…… 저도 자세히는 몰랐지만 남궁세가의 합류를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합류?”

이번에는 황준우의 시선이 사마정을 향했다.

“말씀드린 모임에 검제를 끌어들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아주 대놓고 모임까지 만들어서 구린 짓은 다 골라 하겠다는 말이지.”

정, 사, 마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다.

황준우가 움직였던 칠야의 난 당시.

그들은 한 명의 절대무인이 일으키는 파도를 감당하지 못했고 또 다른, 제 이의 칠야무신을 억제하고자 힘을 합쳤다.

“속이 뻔히 보이네, 뻔히 보여.”

황준우의 머릿속에 짧은 고민이 어렸다.

‘찾아가서 뒤엎을까?’

복수를 벗어나, 그런 암약 세력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그들이 언제 가족에게 위협이 될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아니지, 잠깐.’

황준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마정, 혹시 만금장도 그 모임에 가담되어 있나?”

질문을 하는 황준우의 얼굴에 긴장이 어린다.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전생과 달리 재생에서는 중원에 기득권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만 부정할 수도 없다.

세상의 논리란 그렇게 쉽게 돌아가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만금장주와는 연관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만금장은 독보(獨步)하고 있으니까요.”

“독보?”

“이 부분은 저도 깊게 파고들지 못했습니다.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에 가까울 텐데, 만금장은 유독 세상의 일과 따로 떨어져 움직이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이더군요.”

“도대체가…….”

황석후가 숨기고 있는 게 보통 이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짐작도 가지 않는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어쩌면 명력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 게 아닐까?’

혹은 그보다 더 놀라운 비밀도 간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대답 안 해 주시겠지?’

물론 필요하다면 충분히 알려 줄 것이다.

하나 황석후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입을 열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가능하면 한 번 알아 봐.”

“만금장에 대해서 말입니까?”

“응. 아버지가 알려 주지 않으면 혼자라도 알아 봐야지. 무리는 하지 말고. 아버지랑 진짜 싸울 수는 없잖아.”

“알겠습니다.”

궁금은 하지만 혹시나 있을 만금장과의 마찰에 대해 걱정한 황준우의 명령에 사마정이 답했다.

“아버지요?”

그런 와중에 또다시 전왕이 끼어들었다.

이어진 대화를 머릿속에 정리하는 그에게 있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사실이 몇 가지 있던 탓이었다.

“아, 맞아. 내가 칠야무신은 맞다면 맞는데. 아닐 수도 있거든.”

“헤헤, 우둔하여 잘 못 알아듣겠습니다만…….”

전왕이 또 웃음을 흘리고 양손을 비비기 시작했다.

“알잖아? 본래의 칠야무신은 백두산 아니, 장백산에서 죽었어.”

스스로의 죽음을 냉정하게 말하려 하니 묘한 기분이다. 하나 또 한편으로는 그 말을 내뱉는 것으로 무언가를 털어 낸 듯한 기분도 느껴졌다.

‘이걸 뭐라 해야 할까.’

전생의 그는 죽었다.

알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묻어있는 잔재들.

어쩌면 이번 일과 같이 원한이라든지 그런 연계점들이 또 한편 흐려지는 느낌이다.

‘아니지. 그래도 기억할 건 기억해야지.’

마음을 다잡는 황준우를 향해 눈을 열심히 굴리며 생각을 정리하던 전왕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반로환동 하신 게 아니십니까?”

“그럴 리가.”

“그러면 설마…….”

“부활(復活).”

“…….”

“안 믿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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