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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11화 (111/373)

학사재생 111화

제 111화

파바밧-!

삼십의 흑풍대가 어둠을 가르고 검은 바람이 되어 황준우를 에워쌌다. 그중 몇몇은 또 따로 빠져나가 경호와 홍산, 황서연을 향한다. 일행들을 알아보고 미리 제압하여 틈을 찾기 위함이다.

하나 그조차도 세 사람을 너무 얕본 행위였다.

“어딜 감히!”

“물러서라, 마인 놈들!”

마인이라는 이름이 주는 위용과 음습한 기세에 몸이 굳었지만 경호와 홍산 모두 기본적으로 초절정고수였다.

하나, 하나가 최소 절정의 경지에 달한 흑풍대의 무인들이었지만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벽을 뚫기에는 버겁다. 결국 황준우를 둘러쌌던 흑풍대원들 중, 초절정고수인 십인장 두 사람이 뒷걸음질 치듯 자릴 이탈해 경호 등을 향해 달려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준우는 굉장히 여유로워 보였다.

팔짱을 끼고 웃기까지 하고 있다.

‘저 중 검을 쓰는 측이 조화경으로 추측되는 인물인가?’

구휘는 그런 황준우를 경계하는 한편, 경호를 노려보며 눈을 번뜩인다.

느껴지는 기운은 결코 초인의 영역에 닿아 있지 않다.

하나 전해진 소식과 특징대로라면 그가 소문의 만금장 호위무사로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대체 어떻게?’

느껴지는 바가 전부라면 두 사람의 십인장이 합류한 순간 경호와 홍산의 벽은 뚫린다. 중간중간 황서연이 나서 거들고 있었지만 실력이 부족한 것이 너무나 표가 났다.

‘저 계집만 잡아도 된다.’

기왕이면 소장주를 잡는 것이 좋겠지만, 딸인 황서연도 나쁘지 않다. 황준우가 만만치 않아 보이는 무공을 익힌 것 같기에 구휘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차선책이 떠오른 것이다.

“이제 해도 돼, 경호.”

그런 구휘의 귓가로 황준우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달리 전해 들은 말이라도 있던 것일까?

침착하게 방어만 하던 경호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본래 들고 있던 검을 내동댕이쳤다. 멋들어지게 다시 허리에 꼽고, 청홍검을 뽑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으랏차-!”

힘찬 함성과 함께 청홍검이 뽑혀져 나왔다.

동시에 경호에게 별호를 안겨 준 거기검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공격을 가하던 흑풍대원들은 물론, 달려들던 십인장 중 하나의 몸이 갈리고 목이 날아갔다.

“……!!”

그 자리와 정면에 위치해 있던 구휘에게도 아슬아슬했던 어마어마한 검격이 배 위를 쓸고 지나간 것이다.

“쳇, 승객들만 아니었어도…….”

떨면서 모여 있는 승객들 인근, 검을 멈춘 경호가 입맛을 다셨다. 실제로 그는 기회가 된다면 구휘까지 베어 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너무 욕심부리지 마. 저놈은 사로잡아야 된다고.”

황준우가 혀를 차며 경호를 타박했다.

“아까는 전음으로 말씀하시길, 신호하면 다 죽이라면서요!?”

“네 능력껏 다 죽이란 거지. 애초에 저 녀석은 그 정도로 죽지도 않는다고.”

위기는 느낄 수 있지만 죽지는 않는다.

실제로 구휘는 아슬아슬하다고 느낀 순간 검을 뽑아 반격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초절정과, 초인이라는 조화의 차이.

‘경호가 청홍검을 조금 더 능숙하게 다루면 모를까.’

지금처럼 힘만 넘치는 상황에서라면 결코 구휘를 이길 수 없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고, 천마신교와 마인이라는 이름에 덜덜 떨던 승객들은 또다시 경호를 향해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과연 거기검!”

“크고 단단한 것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인가!”

“오오오!”

승객들 사이로, 밤을 닮은 어둠의 무게가 가시고 희망이 번져 나온다.

그 반대편에 선, 흑풍대와 구휘는 절망을 떠올렸다.

‘임무는 실패인가?’

어떻게 해서든 이루어야 할 임무.

하나 실패한다면 구휘 본인은 살아 나가야 한다.

그 또한 천마가 내린 중요한 엄명이었다.

“다들 거기검과 소장주를 막아라.”

흑풍대원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구휘가 내리는 명령은 죽으라는 것이다.

대신하여 본인이 살아남겠다는 뜻이다.

반발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 누구도 고개를 내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검을 강하게 쥐며 투지를 불태운다. 황준우에게는 제법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래서 광신도들이 위험하지. 너네들은 정말 이렇게 무식하게 죽으면 천마궁(天魔宮)에 들 수 있다고 믿는 거냐?”

천마신교의 교리 중 하나.

훌륭히 싸우다 죽은 무인은 하늘에 있는 천마의 궁에 들어 영생(靈生) 혹은 다음 생의 축복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천마신교 마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겁하게 도망치다 죽게 되면 천마궁에 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더욱 무서워했다. 때문에 목숨을 버리기를 아까워하지 않고, 미친 듯이 덤벼든다. 천마신교가 단일세력으로 놀랍도록 두려운 데에는 이러한 정신적인 측면도 컸다.

“너희 모두에게 천마신(天魔神)의 가호가 있으라.”

구휘는 그런 그들의 마음에 불씨를 지핀 이후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려 강 물 위로 몸을 던졌다. 날렵하고, 비할 데 없는 뛰어난 수상비다.

“우아아앗!”

“천마신이여 영원하라!”

때마침 달려드는 흑풍대원들의 기세도 사납고 단단하기 그지없다.

하나 황준우에게 있어서는 그 모든 것이 우스운 어린아이의 장난과 같아 보였다.

“부디 헛된 꿈이나마,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마.”

혀를 차며 어느새 뽑아 든 수왕검이 허공을 그물처럼 수놓는다. 그러자 진짜 날카로운 검기가 공중 한복판에 생겨난다.

‘저게 뭐야?’

초절정의 경지에 달해서야 그 모습을 직접적으로 본 경호와 홍산이 경악을 토했다.

서거걱-!

그 날카로운 기의 그물에 걸려 비명도 토하지 못한 채 시체 토막이 되어 쓰러지는 흑풍대의 모습을 본 순간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두 사람은 방금 전 황준우가 보인 무공을 흉내 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검도 아니고, 허공에 기운을 만들어 내는 게 말이 된다는 말인가? 한데 황준우는 그를 해냈다.

그것도 아주 가벼운 동작 하나로 말이다.

“나, 저놈 잡아 올게.”

놀라는 두 사람과 황서연을 향해 짧게 말한 황준우의 신형이 강 위로 떨어졌다. 동시에 대단하게만 보였던 구휘의 수상비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의 경공이 펼쳐졌다.

강물 위를 마치 얼음판 미끄러지듯 나아간 황준우가 단숨에 구휘의 뒤를 점하고 목덜미를 들어 올려 버린 것이다.

“어, 어떻게!?”

놀라면서도 공격을 가하는 것을 잊지 않은 구휘는 과연 조화경의 고수다웠다고 할 수 있었으나, 황준우는 이미 그조차 초월한 존재였다.

“끄악!”

“못된 손.”

휘두르는 검을 쥔 손목을 두들겨 부러트려 버리고, 동시에 움직이지 못하게 마혈까지 점한 황준우가 다시 물 위를 미끄러지듯 타고서는 배 위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그런 황준우를 보지 못했다.

너무 빨랐고, 순식간이었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다만 무공에 경지가 제법 있어 그 모습을 제법 멀리서나마 똑똑히 지켜본 사람들은 제 눈을 비볐다.

마치 헛것을 보았을 때와 같은 모습.

하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경호, 홍산, 시체들 뒤처리 좀 부탁해. 난 이 녀석하고 면담 좀 하고 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런 사실을 일깨워 준 것 역시 황준우와 거기에 답변하는 경호의 목소리였다.

“아, 그 전에…….”

잠시, 황준우의 눈이 안색이 굳어진 황서연을 향했다.

‘난 괜찮아.’

황서연이 황준우를 향해 작은 입 모양으로 말했다. 풍마채 습격에 이어 얼마 전 있었던 적룡수로채 사건까지 꽤나 많은 죽음을 목도하였기에 제법 침착한 모습이다.

그 상대가 극악무도하다고 알려진 마인인 덕도 컸다.

“고맙다.”

황서연에게 그리고 경호와 홍산에게도 같은 의미를 담아 말한 황준우의 신형이 다시 한 번 사라졌다.

이름 높은 흑풍대주이자 조화경의 고수인 구휘는 마치 물에서 나온 뒤 한참이나 된 축 처진 물고기처럼 뒷덜미를 잡혀 황준우와 함께 사라졌다.

훼에엥-!

어두운 물길 위로 제법 거친 바람이 다시 한 번 스쳐 지났을 쯤.

이미 움직이고 있는 경호와 홍산을 바라본 선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두 무사님을 도와라!”

“뭣들 하고 있느냐, 어서 거들지 않고!”

황준우 덕에 목숨을 구제 받은 남궁세가의 무인 역시 함께 외쳤다.

면담을 한다던 황준우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주변의 도움으로 빠르게 정리를 끝내고 난간에 서 휴식을 취하던 경호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벌써 다 캐신 겁니까?”

황준우가 고개를 저었다.

“죽어 버렸어.”

“면담이란 단어를 한 살인이 목적이었던 겁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단지 조금 고문을 가하고 정보나 캘 생각이었지.”

“한데 실패했다고요? 혀라도 깨물었습니까?”

“그런 거였으면 내가 내버려 뒀겠냐.”

“음…….”

“몇 가지 안 물었는데, 갑자기 혼이 나간 듯 눈이 풀리는가 싶더니 피를 토하고 죽어 버렸어.”

“주화입마?”

“아니야.”

“그럼 대체 뭡니까?”

“내가 그걸 모르겠으니까 이런 표정을 짓는 것 아니냐. 분명 처음 보는 형태의 검은 기운이 머리 위로 빠져나갔는데…….”

황준우가 가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이거 갈수록 뒤가 찝찝한 일이 늘어나네.”

불만 가득한 그 표정을 보고, 입가로 작은 미소를 그린 경호가 고개를 주억였다.

“세상사라는 게 그렇지요. 생각대로, 쉽게만 풀리면 그게 세상이겠습니까?”

“경호답지 않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경호답지 않은 말 하지 마.”

“저답지 않다는 말이 두 번이나 들어간 사실이 매우 불쾌합니다.”

콧방귀를 뀌며, 난간에 걸친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야. 세상일이란 게 내 뜻대로 되는 경우가 몇 없지.”

재생을 하고 난 이후, 여태까지는 무력과 금력을 양손에 쥐고 제법 편안하게 살아왔다.

하나 전생은 달랐다.

쉽게 생각했던 일이 어려워지고, 작은 사건은 큰 태풍이 되어 몰려오고는 했다. 그래서 그 꼴이 나고 결국 죽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달라야지.’

영문 모를 일이 늘어나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전생처럼 상황이 불리하지는 않다.

오히려 분명히 유리하다.

준비할 시간이나 틈도 없이 무작정 당해야 했을 때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게다가 황준우에게는 또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번에 돌아가면 진지하게 아버지를 한 번 닦달해 봐야겠다.’

보이는 것보다 감춰진 게 많은 아버지, 황석후와 진중한 대화를 나눈다면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생각보다 손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확률이 높았다.

다행히 밤바람도 시원하고, 배 위의 풍경도 막힘이 없었기에 기분은 빠르게 전환되었다.

“아, 그래서 알아낸 게 하나도 없습니까?”

경호가 재빨리 그 기분에 초를 친다.

“하나도 없지는 않다니까. 왜 나를 노렸는지 정도는 가장 먼저 물어봤지.”

“뭐라고 하던가요?”

“뭘 것 같아?”

“돈이라도 모자랐다고 하던가요?”

“정답.”

“…….”

“천마신교가 무지 가난한가 봐. 만금장 한 번 털어먹으려고 그랬다네.”

“그게 끝?”

“응, 전부.”

아무리 대단한 무인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그 먹고 마시는 행위를 할 수가 없다. 때문에 아무리 무시무시한 천마신교라고 해도 돈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약 큰 계획을 만들거나 그리고 있다면 더 큰 돈이 필요할 터였다.

하니 천마신교의 계획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만금장은 알려진 것만으로도 천하제일의 금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천하를 떨게 만들 정도의 무력 집단이 가난 때문에 상인 가문의 자식을 납치하려고까지 한 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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