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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29화 (129/373)

학사재생 129화

제 129화

[진시황(秦始皇)의 무덤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이미 황궁을 비롯해 정의회와 무림맹, 녹림을 비롯한 도적단도 움직였습니다. 조사를 해 본 결과 제법 신빙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위치는 섬서(陝西), 서안(西安)입니다. 급하게 움직여야 될 것 같아 먼저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신께서는…….]

서신을 읽던 황준우의 손에서 화려한 화염이 피어올랐다. 술법이 아닌 최소 조화경 이상의 고수만 가능하다는 무공의 한 갈래인 삼매진화(三昧眞火)였다.

화르륵-!

순식간에 서신이 불타고 황준우의 눈이 떨렸다.

“진시황의 무덤이라고?”

태초에 대륙을 통일하고 황제를 자처했다는 고대 시대의 폭군(暴君). 그 이름을 모르지는 않는다. 또한 이번 사건이 얼마나 놀라운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도 황준우를 이렇게 떨게 만들 수는 없을 터였다.

작금 황준우가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그 출처였다.

“섬서, 서안.”

서시에게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리고 사마정의 서신을 잘못 읽지도 않았으니 분명 황석후가 향했다는 서안이다. 그런 곳에서 갑작스럽게 진시황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황석후에게는 아직 연락이 없다.

물론 별탈이 없을 수도 있었다.

하나 아무래도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심하던 황준우는 곧 상념을 떨치고 가볍게 짐을 꾸렸다.

“도련님?”

언제나처럼 황준우의 방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제법 고수의 품격을 갖췄는지 남들 눈에는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 서안으로 빨리 가 봐야 될 것 같아.”

“서안이요? 장주님이 가셨다는?”

“어. 자세한 설명은 할 시간이 없고, 따라오고 싶으면 홍산이랑 같이 와.”

“도련님은요!?”

“먼저 가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석후의 일이다.

때문에 황준우는 여느 때와 다르게 제법 초조했다.

“하지만…….”

“늘 말하지만 경호, 걱정 마. 나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도자기 같은 사람이 아니야.”

“……알겠습니다.”

힘겹게 답하는 경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준 황준우가 앞으로 나섰다.

“그럼 난 어머니랑 서연이만 짧게 뵙고 바로 떠날게. 서안에서 보자.”

“알겠습니다. 그러면…… 서안에서 뵙겠습니다.”

경호의 말에 짧은 미소를 보여 준 황준우가 빠르게 이동했다.

아마 경호는 움직임을 보지조차 못했을 터였다.

이후 황준우는 서시와 황서연을 만나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간다는 거짓말을 치고 곧장 서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조화의 경지 내에서도 중급(中級) 이후부터는 어지간한 말보다 그의 두 다리가 더 빨랐다. 무엇보다 험로와 위험한 구간을 개의치 않고 지나가니 무리를 한다면 시간을 몇 배까지 단축할 수도 있었다.

‘아버지, 무탈하셔야 합니다.’

서안을 향해 뛰는 황준우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3. 모이는 사람들

섬서, 서안.

진시황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이 북적이는 도시였지만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적막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도 그럴 게 각기 정, 사, 마를 대표하는 집단들을 비롯하여 황궁의 무인들까지 검을 차고 한자리에 모였다.

말실수 한 번, 행동 한 번에 칼부림이 날지도 모를 정도로 극도로 예민한 감각이 솟아 있었지만, 그조차도 위험하단 것을 알기에 서로를 최대한 피하는 탓이었다.

아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양민들은 갑작스럽게 예민해진 도시의 분위기에 몸을 움츠리기까지 했다.

물론 그런 도시에도 나름의 질서와 법은 있었다.

그 제일 앞줄에 있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바로 황궁의 무인들이었다.

아무리 무림인이라 한들 대 명 제국의 깃발과 영토 아래 살아가는 국민인 것은 다르지 않다. 무림과 국가 간의 관계가 데면데면하다고 하여 서로 마주쳤을 때 황궁 무인을 향해 먼저 검을 뽑아 드는 이들은 몇 없었다. 그리고 그 몇 없던 미치광이들은 끝내 좋지 않은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황제를 따르는 십만의 정병과, 삼천의 황궁무인, 일천의 동창무인들을 비롯하여 마지막으로 그 정점에 위치한다는 삼백의 금의위까지!

당장 기용 가능한 병력만 하여도 구파일방을 합친 것을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은 일반적인 양민, 백성들 모두가 그런 명 제국의 황실에 대한 충성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이름 높은 무림 세력이라 한들 황궁의 정권에 정면으로 대항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지금 서안에는 황제가 가장 총애한다는 첫째 황자와, 황녀가 함께 나와 있었다. 이는 그만큼이나 현 황제가 진시황릉에 대해 예민하다는 뜻이며, 함부로 노리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의 시험 무대이기도 하지.”

수많은 황궁의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중심의 커다란 막사.

열린 장막 바깥으로 보이는 검은 입구를 턱짓한 중년인의 차가운 시선이 바로 옆에 앉은 황녀, 주연하를 향한다.

“참 꼴이 우습지. 굴러 들어온 돌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인지.”

“…….”

주연하는 답이 없었다.

잠시 그런 그녀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중년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이미 몇 번이고 네게 한 말이다만 이쯤에서 깔끔히 물러나는 것이 어떻겠느냐? 약속하건대 너와 내 가족들의 목숨과 명예만은 내가 꼭 지켜 주도록 하겠다.”

중년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또한 책임감도 느껴졌다.

눈빛 또한 거짓을 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주연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오히려 눈을 똑바로 들어 중년인, 현 황제의 첫째 황자 주고치(朱高熾)를 마주한다.

“전하께서 살리려 한들 우리가 살 수 있겠습니까?”

“살 수 있다.”

주고치가 침착한 음성을 흘렸다.

그는 실제로 아버지, 황제와 달리 그리 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황궁 내에서도 인자하고 침착하며 자애로운 것으로 유명했다. 권력보다 책, 그리고 음식 등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시기가 다가와 역사가 등을 떠미니 자연스럽게 황제를 향한 조금씩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따지자면 욕심이 아닐지도 몰랐다. 황제의 자리는 애초부터 그의 것으로 내정(內定)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주연하가 그의 말마따나 굴러 들어온 돌이다.

마뜩치 않지만, 굳이 피를 원하지도 않는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서로 마주칠 때면 주고치는 늘 같은 말을 했다.

때문에 주연하는 언제나와 같이 또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안 됩니다. 설령 전하께서 저를, 우리를 살려 주신다 한들 신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신료들은 나의 수족이다. 머리가 명할진대 손과 발이 어찌 따르지 않는단 말이냐.”

참으로 이상적인 말이다.

주연하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주고치는 답답한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너는 어찌도 이리 우직하고 어리석단 말이더냐. 내 말을 조금만 따라 볼 수는 없는 게냐?”

“때론 손과 발이 제멋대로 놀기도 하는 법이랍니다. 그리고…….”

주연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내저었다.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이 어리석고 욕심 많은 계집을 어찌할꼬.”

가슴을 몇 번이나 두들기며 혀를 찬 주고치가 막사를 박차고 나갔다.

더 이상 같은 공간에도 있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복받쳐 오르려는 감정을 누른 주연하의 두 눈이 붉어졌다.

오히려 지금 가슴을 때리고 싶은 심정은 바로 그녀 측이었다. 따지자면 본래 태자가 되었어야 할 주고치는 멍청하고 답답한 사람이라 볼 수 없었다. 재치와 눈치가 조금 부족하다지만, 대세를 영 모르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이토록 상황을 모르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의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이가 너무나 지고한 탓이다.

‘내가 여기서 모든 것을 놓는다면…….’

편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때도 한때 있었다.

황제의 기꺼운 총애는 감사하지만 물러나겠다고 말한다면 언제든 놓을 수 있을 줄 알았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주연하가 포기를 선언한 그날 황제는 마치 화산과같이 폭발했고, 우레처럼 소리쳤다. 어렵사리나마 그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답은 뻔했다.

‘죽었겠지.’

심지어 그녀 혼자만의 목숨이 아닐 터였다.

작금의 황제는 피의 역사 위에 군림한 존재.

마음먹고 검을 휘두를 때의 파급은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하여 인자한 주고치의 앞에서 황제폐하를 막을 수 있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그 말 자체가 황제를 의심하는 일.

역모행위와 다름이 없다.

때문에 주연하는 그 누구의 앞에서도 황제와 자신 간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너무나 무거운 무게가 가슴을 짓누를 때가 많았지만 억지로 참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몇 가지가 변했다.

“폐하께서 그리 원하시니…… 내가 꼭 되어 드려야지.”

드넓은 천하의 유일하다는 여 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다음을 이어 천하의 정상에 우뚝 선다. 단순한 개인의 욕심은 없었었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군림하되 지배하지 말라. 황준우로부터 전해 들었던 그 말이 아직도 그녀의 마음을 울리고 있었다.

만약 여자에게도 웅심(雄心)이 있다면 바로 그 순간 그녀에게 그러한 마음이 피어났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군림하여 작은 빛, 행복, 그리고 희망이 되는 것이 지금 주연하의 목표.

불가능해 보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던 현실을 이제는 직접적으로 세상 바깥으로 끌고 나오고 있다.

설령 그를 방해하는 대상이 황제라 한들 더 이상 포기하지는 않는다.

‘나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

눈을 빛낸 주연하가 몸을 일으켰다.

작은 몸짓은 곧 커다란 그림자를 남기며 정면으로 이어졌다.

같은 시각 서안의 서쪽, 풍월객점.

“배 위가 아니라, 지상에서 이렇게 모인 건 처음인 것 같군요.”

둘러앉은 얼굴들을 면면히 살펴본 진무영이 웃음을 흘렸다.

“어찌 됐든, 이렇게 또 보게 되니 반갑습니다.”

그 말에 자리에 모인 이들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좋소, 선장. 만나게 된 것은 반갑소. 하지만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들 필요까지 있었겠소?”

입을 연 이는 다름 아닌 수로왕, 독고문이었다. 그는 얼마 전 천마신교와의 밀담 이후 따로 진무영을 만났고, 상황을 전달했었다. 이후 되도록 직접적인 만남을 자제하자는 의견도 전했다. 어찌 됐든 천마신교의 눈치도 보는 것이 바로 독고문의 입장이었던 탓이다.

한데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서안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자리가 열렸다.

그중에서는 결코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정, 사, 마의 인물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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