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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30화 (130/373)

학사재생 130화

제 130화

“킁! 수로왕의 말이 맞소. 대체 이 자리까지 우리를 불러낸 이유가 뭐요?”

덩치가 큰 오태악이 크게 콧바람을 내쉬며 물었다.

“눈치가 많이 보입니다.”

“되도록 빨리 이야기를 끝내 주시지요.”

평소 진무영을 지지하던 이들도 그 기세를 따라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안 그래도 시선이 많은 작금의 서안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다면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 굳이 천마신교를 생각하는 수로왕을 제외하고라도 대외적으로 서로가 불편한 이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상황이 달가울 수가 없었다.

진무영은 그런 그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끊어지기를 기다렸다.

웃는 눈으로 하나하나 말하는 이들을 모두 직시하며 말이다.

그렇게 약 이각가량.

길게 이어지던 불만의 목소리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분위기에 편승해 소리를 높였지만 막상 진무영이 하나하나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주억이자 오히려 떨떠름한 마음도 차오르기 시작한 탓이었다.

개중 누군가는 자신이 혹시 실수를 한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뻔히 보이는 행동에 표정들에 진무영은 더욱 짙은 눈웃음을 그렸다.

“다들 이 상황이 많이 불쾌하시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당연한 일 아니오?”

처음 의견을 냈던 수로왕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팔짱을 끼고 얼굴을 붉힌 그는 사실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며 나가고 싶은 심정이 가득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만 이야기합시다. 모두 진시황릉 때문에 이 자리에 모인 것 아닙니까?”

딱히 활협단 정기 승선 모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얼굴들이 이 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진시황의 무덤이라는 엄청난 유적지에 호기심과 욕심을 가지게 된 탓이다.

그를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이 자리에 누구도 없었다.

“자, 그러면 하나 더 물읍시다. 이 중 누가 진시황릉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손을 드는 이들도 없었다.

당장에라도 진시황릉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황궁의 눈치를 보느라 바쁜 탓에 감히 먼저 나서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는 가능하답니다.”

장내를 둘러보며, 한참을 기다리던 진무영이 웃으며 품에서 문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를 바라본 주변 이들의 눈이 화등잔보다 더 커졌다.

“저, 저건…….”

“저것을 어찌?”

칙령(勅令)이다.

그것도 황제의 옥새가 직인된 절대권력의 칙령.

내용은 서류를 가진 본인을 포함한 오인의 일행이 황궁의 진시황릉 조사를 돕기 위해 입장해도 좋다는 허가서였다.

“대체 그걸 어떻게?”

침을 삼킨 진무영이 곧 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거 참, 다들 눈동자가 번개처럼 움직이십니다그려. 왜 너무 인원이 적습니까?”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머릿속에 가장 먼저 생각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고작해야 다섯 명.

너무 적다.

이곳에 모인 무인의 숫자만 오십여 명.

세력으로 치면 이십 개가 넘는다.

근데 그중 고작 사분지 일이다.

본인 혹은 포함된 세력이 그에 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초조함이 먼저 생겼다.

확률로 따져도 삼 할이 채 되지 않는다.

이 할 오 푼.

너무 적다.

“저와 나머지 한 분은 궁왕 어르신으로 일단 확정 지었습니다.”

이어진 진무영의 말은 심장을 쥐락펴락하기에 충분했다.

“궁왕 어르신을?”

“그분은 혼자시지 않소?”

세력을 가진 이들이 입술을 깨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궁왕 오칠.

우내십존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실제 그의 실력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름 없는 농민 출신이라는 비천한 신분과 활이라는 특이한 병기를 다루는 탓에 평가가 절하되고는 하지만 실제 그의 무공은 우내십존 중 상위 몇 명과 동급으로 보아야 될 수준이었다.

진무영의 기준에서 보자면 만약 애초부터 거리를 준 채로 싸움을 시작한다면, 오칠을 이길 수 있는 무인은 우내십존 중에서도 기껏해야 둘 정도가 최대다.

하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있어 그런 오칠의 실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혼자 다니는 방랑무인이라는 것, 또한 어디에도 몸담은 전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가 진무영과 함께 진시황릉의 보물을 차지한다는 생각을 하니 배가 아픈 것이다.

“그래서 뭐, 불만 있습니까?”

진무영은 태연하게 물었다.

어차피 칼자루는 그가 쥐고 있었다.

“아니 뭐…….”

“어르신께 너무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닌가 해서.”

누군가가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코웃음을 친 이는 당연하게도 궁왕 오칠 본인이었다.

“내 나이가 걱정되는 놈은 당장 이 앞으로 나와라. 아직 정정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 줄 테니.”

자연스럽게 음성을 흘렸던 당사자는 자라처럼 목을 쑥 집어넣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그에게는 천하의 궁왕에게 정면 대결을 펼칠 용기가 없었다.

“자, 그럼 남은 자리가 셋.”

그리고 함께하고 싶은 세력은 스물.

개인으로 활동하는 무인들까지 합치면 오십에 가까웠다.

확률로 일 할도 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진무영은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며, 불쾌하다며 재촉하던 이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표정이 되어 그를 바라본다.

‘제발, 제발 나를 뽑아 줘.’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입술 하나 뻥긋하지 않는다.

“아, 재미있네요.”

진무영이 조소를 흘렸다.

그러다가 문득, 수로왕 독고문의 뒤편에 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 내가 끼는 거요?”

“기대하셨습니까?”

“…….”

진무영이 그런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더 두들겼다.

“함께 가시지요. 얼마 전에 큰일도 하셨으니.”

“가, 감사하오! 진심으로 감사하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수로왕이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조금 수치스럽기도 했지만, 지금 자존심을 던져 진무영의 편에 설 수 있다면 그게 나을 것이라는 본능적 직감을 느낀 탓이었다.

‘선장은 진짜 괴물이다.’

언제나 느끼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사람을 가지고 노는 괴물이다.

단순히 무공과, 지략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무영은 때를 알고 사람을 다룰 줄 알았다. 거기다 권력이 있었으며 무공도 갖추었다.

‘누가 그와 적대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껏해야 셋 정도? 천하에서 가장 이름이 높은 무림군주들을 제외하고는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할 터였다. 독고문은 그의 어깨에 진무영의 손이 올라온 순간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은 백수귀존(白手鬼尊).”

진무영의 손이 다음 어깨를 짚은 이는 칠야의 난 이후 새로이 우내십존에 속한 백수귀존 차무열이었다.

그는 현재 정사지간의 문파인 백수궁(白手宮)의 궁주이기도 하였으며, 열화궁주(熱火宮主) 오태악과 사이가 안 좋기로 가장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다.

“킁, 킁!”

자연스레 붉어진 얼굴에 불쾌한 감정을 가득 담은 오태악이 콧방귀를 몇 번이고 크게 내뱉었다.

차무열은 그런 오태악을 향해 조소를 보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선장을 잘 보필하겠소이다.”

“믿음직합니다, 백수귀존.”

이어진 진무영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장내 전체를 훑었다.

“이제 한 자리 남았군요.”

장내에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 아니 대다수가 같은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남은 한 사람은, 선택하기 어렵군요.”

“…….”

진무영의 말에 모두가 눈치를 보았다.

여기서 손을 들까?

선장, 진무영을 향해 허리를 한 번쯤 숙이면 저 자리에 끼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자리에 자존심 한 번 죽여 자신들의 문파를 더욱 일구고자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누군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무수히 많은 사람이 그 뒤를 따를 것이다.

때문에 눈치만 보고 누구 하나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죠. 아직 우리에게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진무영의 질문에, 눈을 빠르게 굴리는 이들 사이로 문사풍의 장년인이 손을 들어 올렸다.

“남궁세가.”

“아…….”

그 짧은 말에 모두가 탄성을 흘렸다.

누군가는 불쾌함에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감히 승선을 거부하고, 우리의 동지들을 죽인 오만한 남기의 친구들이죠.”

이어서 잠시 호흡을 끊은 진무영이 눈을 차갑게 빛냈다.

“남궁세가는 우습지만, 남기는 비옥합니다. 그 넓은 땅에서 나는 식량과 생산되는 무수히 많은 물품들, 욕심나는 것이 한둘이 아니지요.”

은은한 듯하면서도 직설적이다.

진무영의 화법은 언제나 그랬다.

덕분에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진무영이 할 뒷말을 떠올렸다.

“남궁세가를 칠 세력을 원하시는 겁니까?”

“명분은 제가 드립니다. 중요한 건 싸워서 이길 자신감이죠.”

진무영은 역시나 노골적으로 말했다.

싸워서 이길 자신감.

상대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오랜 시간 남기라는 비옥한 땅에 군림한 지배자.

남기의 왕!

심지어 남궁세가는 얼마 전 찾아갔던 우내십존 중 일인인 원원괴존과 산붕도장을 죽이기까지 했다. 아직까지 죽지도 않고 살아 있는 노괴, 검제의 솜씨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기에 간신히 살아 돌아온, 핼쑥해진 문인의 전언은 제주를 통해 진무영에게 전해졌다.

“검제가 전하라고 했다더군요. 남궁만이 제일이니, 천하 무림이 푸른 하늘 아래 굴복하리라.”

오만하다.

실로 검제 남궁천이 했을 것 같은 말이다.

그를 아는 이는 그 누구 하나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만약 황준우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진짜 놀라 펄쩍 뛰거나, 배를 잡고 자지러지게 웃었을 터였다. 전왕은 단 한 번도 검제와 직접 마주한 적이 없다. 단지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 근데도 어찌 이렇게 그가 할 것 같은 말을 잘 뽑아내는지, 정말로 대단한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책상을 강하게 내리친 오태악이 몸을 일으켰다.

“그 건방진 영감은 이 오태악이 혼내 주겠소.”

열화궁주.

화염존(火焰尊), 혹은 폭존(暴尊)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그가 자신의 가슴을 강하게 두드리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 역시 차무열과 함께 새로이 우내십존의 대열에 합류한 이로, 성급한 성격에 비해 실력은 십존 중 하위권에 위치해 있다고 평가 받았다.

비록 그와 상관없이 그가 가진 무공의 특성상 폭발력과 파괴력만큼은 우내십존 중 정상으로 취급되지만 말이다.

“호오, 열화궁과 남궁세가의 거리가 제법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남기의 왕, 남궁세가의 본가는 안휘 합비에 위치해 있다. 반면 열화궁의 위치는 비교적 무림의 외곽이라 할 수 있는 귀주(貴州) 일대다.

“흥, 그깟 늙은 영감 따위와 겁쟁이들의 소굴 따위, 나와 폭렬단(爆裂團) 만으로 충분하오. 선장께서는 그저 확실하게 명분을 만들어 주시고, 정의맹만 막아 주시면 될 뿐이오.”

“좋습니다. 그러면 고된 일을 해야 될 열화궁주의 성의를 받아 이 자리에도 함께 가도록 하지요.”

“아주 옳은 선택이시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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