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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33화 (133/373)

학사재생 133화

제 133화

“걱정 마. 그런 사소한 일로 타박할 정도로 속 좁지는 않아. 그리고 내가 사람인 것도 사실인데 뭐.”

“그, 그렇습니까?”

“너무 어렵게만 보지 마, 전왕. 내가 진짜 신이었다면 그 싸움에서 이렇게 되지도 않았겠지.”

“아, 음…….”

“그나저나, 잘 지냈던 것 같네.”

“아, 예.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요.”

전왕이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양손을 비빈다. 전형적인 간신배의 자세였다.

‘아무래도 저 손은 습관인 것 같지?’

굳이 바꾸라고 해서 될 것 같지도 않고, 황준우는 그냥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의외네.”

“아, 그게…… 아무래도 무림의 일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건이 워낙 크고 해서. 제주께서 명령하신 일이 있어 뒤로 정보를 조금 빼돌리고도 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한다.”

황준우의 눈에 또 한 번 황당함이 떠올랐다.

이런 황궁의 감시 속에서 정보를 빼돌린다고?

그게 가능이나 한가?

심지어 들킨 기색도 없었다.

“덕분에 요즘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저 같은 재주 없는 놈에게 그런 일을 시키시니, 심장이 남아나지를 않아요. 남아나지를 어휴…….”

깊게 한숨을 내쉰 전왕이 눈을 반짝였다.

“서왕 분도 잠시 만났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아 깊은 이야기는 못 전해 드렸지만 대충 몇 가지는 전할 수 있었지요, 헤헤.”

양손이 파리처럼 싹싹.

칭찬해 달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고마워. 나는 몰랐는데, 덕분에 녀석의 일이 쉬웠겠네.”

“헤헤, 감사합니다. 참, 만금장주님을 찾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전왕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황준우의 눈이 반짝였다.

“오, 뭐 아는 거 있어?”

“아뇨.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그래도 이야기해 봐.”

“그냥 우연치 않게 들은 정보입니다만. 만금장주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이미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진시황릉에 들어가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황궁.

먼저라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황준우가 진시황릉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 한 달 전쯤. 하지만 황석후는 이미 그 전부터 서안에 와 있었다.

“예. 그래서 지금 내부에서는 들어간 만금장주를 먼저 찾아야 되냐는 게 아니냐며 논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헤헤.”

전왕은 이렇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강제로 끄집어내자는 이야기에서부터, 멋대로 황족의 무덤을 침범한 죄로 목을 베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까지 오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황준우도 눈치로 그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곤란하네.”

“물론 아직 소식을 이용한 추정에 불과해서 이렇다 할 확실한 증거가 없기는 하지요.”

눈속임을 하고자 하면 충분히 숨길수도 있다.

전왕의 말을 이해한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고마워. 확실히 마무리까지 잘 생각해 둬야겠네. 혹시 사마정을 본다면 직접 전해 주면 좋고.”

“안 되도 해내야지요. 걱정 마십시오!”

전왕이 아주 믿음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데 가서는 심장 떨려서 못 하겠다며 엄살이나 부릴 것 같긴 하지만 나름대로 열성적인 모습이다.

“고마워. 잘 전해 주면 보수도 두둑이 전해 줄 거야. 만약 안 주면 내가 다녀와서라도 따로 챙겨 줄게.”

“보, 보수요?”

기대도 안 했던지 전왕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진짜 밤하늘의 별 수십 개는 박아 놓은 듯한 그 모습에 황준우는 혀를 내둘렀다.

‘이 녀석도 돈 무지 밝히는군.’

그러니까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제주가 시키는 위험한 일에 솔선수범으로 나서는 것일 터였다. 제주도 그를 알기에 전왕을 자주 애용하는 것이고 말이다.

‘확실히 잡아 놓는 게 좋겠지?’

자연스럽게 황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은 황준우에 대한 두려움과 공경 등에 의하여 딱히 큰 변모는 없어 보이지만, 이만큼이나 돈을 밝히면 또 언제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아아,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이래 보여도 나름 사나이라는 자부심은 있습니다. 가슴을 팔면서까지 돈을 사지는 않습니다.”

역시, 간신배의 기본은 눈치라고 했던가?

황준우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정색한 전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제가 무신을 향해 가진 공경은 정말 진심입니다. 남자라면 그런 삶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요. 물론 전 그 남자가 되기 힘든 녀석이기는 합니다만. 헤헤.”

“흠…….”

황준우는 눈을 다시 평범하게 떴다.

웃는 전왕의 속내를 쉽게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근래 들어 이런 사람이 조금 늘었긴 하지만 전왕 같은 경우는 특별했다. 그에게는 진무영 같은 음험함도, 제갈량 같은 신묘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한데도 속내를 모두 알기가 힘드니 어떤 의미로는 더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믿어 주십시오. 저 남자는 못 되어도 사나이 전왕입니다!”

참 기묘한 말장난을 한 전왕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린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황준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아, 사나이 전왕을 믿지. 그리고 금충(金忠) 전왕도 믿고.”

“금충이라니요…….”

“지금 내 신분이 뭔지는 알지?”

“만금장 소장주 아니십니까?”

“천하에서 가장 돈이 많은 곳은?”

“황궁 아닌가요?”

가난했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늘 그렇게 생각해 왔던 전왕이다. 때문에 일도 꼭 황궁에서 하고자 마음먹었다. 조교가 된 지금은 반쯤 꿈을 이룬 셈. 봉급도 제법 되고, 몇 가지 잡무를 처리하며 얻은 추가 수당은 더 많다. 때문에 전왕은 힘들어도 나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

황준우의 질문에 전왕의 눈이 빠르게 굴렀다.

어린 시절 북경의 좁은 골목길에서 그가 본 황궁은 천하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며, 멋진 곳이었다. 당연히 돈도 제일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대단한 상가의 건물도, 권문세가의 집도 황궁처럼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때 당시 뿌리 깊이 박힌 인식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저도 모르게 황궁이 가장 돈이 많다고 생각해 왔다.

한데 잘 생각해 보면 진짜 그럴까?

이제 전왕은 당시 멀리서 황궁을 바라보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좋은 편이었다.

황준우가 질문을 한 순간부터 인식이 뒤바뀐 것 역시 순식간이었다.

“아닐 수도 있겠군요. 황궁은 권위의 상징일 뿐이니까요.”

황준우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맞아. 황궁보다 돈이 더 많아도 더 큰 집을 지을 수는 없지.”

“맞습니다. 맞아요. 그러면 보자…… 천하에서 가장 돈이 많은 건 역시 만금장이네요.”

살짝 풀어졌던 전왕의 눈이 제 빛깔을 찾았다.

갇혀 있던 인식을 깨 버리는 것도 순식간이다.

‘이거 자질만 좋았으면 무공을 익혔어도 대성했겠는데?’

어쩌면 전왕도 천재라 불렸을지 몰랐다.

기본적인 골격이 조금 아쉽지만 오성 자체가 굉장히 뛰어나다. 물론 이제 와서는 너무 늦었다. 황준우가 추궁과혈을 해 주고, 직접 무공을 가르쳐도 전왕의 나이는 너무 늦었다.

‘그래도 초절정까지는 어떻게 될지도?’

황준우가 내심 살펴보는 사이, 전왕이 눈을 반짝이며 양손을 더욱 힘껏 모았다.

“무슨 말씀이신 줄 이해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사실 난 신뢰, 의리, 이런 말을 잘 믿지 않아. 물론 그렇다고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사람도 아니지만 말이지.”

“예이, 예이.”

“전왕, 난 정말 네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어. 열심히만 한다면 무공도 알려 주고, 돈도 많이 줄게. 그러니까 절대 배신하지 마라.”

“무공까지 말입니까?”

“싫어?”

“아뇨, 제 한 몸 지킬 수 있는 정도를 익힐 수 있다면야…… 근데 다들 늦었다고 하는데.”

“그건 다른 사람들 이야기고.”

전왕의 눈에 불이 튀었다.

“그럼 저도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뜻이네요?”

“내 기대대로라면, 생각보다 제법 잘 익히기도 할 거야. 그렇다고 우내십존쯤 되는 건 아니고.”

“상관없습니다. 뭐 우내십존이 어디 흔합니까? 그렇게 대단한 걸 바라지도 않아요.”

이제 보니 전왕은 나름대로 무공에도 욕심이 있었던 듯했다.

하긴, 그러니까 황준우에 대한 동경심도 저렇게 클 수 있을 터였다.

“좋아. 이번 일 끝나고, 시간 내서 만금장으로 찾아와. 기초 정도는 제대로 다져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제법 바쁜 몸이 분명한데 망설임 없이 답한다.

그만큼 전왕이 가진 무공의 욕심도 크다는 뜻이었다.

“그래. 믿는다, 전왕.”

“믿어 주십시오!”

“좋아. 그럼 난 이만…….”

“아, 잠깐, 잠깐만요!”

언제나처럼 홀연히 떠나려는 황준우를 전왕이 빠르게 붙잡았다.

“생각해 보니 가장 중요한 정보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정보?”

“지금 저기 보이는 동굴 입구 있지 않습니까?”

“그거 가짜입니다.”

“진짜 진시황릉은 여기가 아니라 저쪽…….”

전왕의 손가락이 무덤의 서쪽, 비교적 한산한 길목 한복판을 가리킨다.

“저 중심에 지하로 향하는 길로 있습니다.”

“뭐라고?”

“아무래도 무림인들이 워낙 날쌔니까요. 혹시 몰라 함정을 파놓은 게 저쪽입니다.”

그러고 보니 진시황릉의 위치가 너무 대놓고 보인다고 했다.

자신도 걸려들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황준우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전왕. 진짜 중요한 정보였네.”

만약 전왕을 만나지 못했다면 헛고생으로 시간을 버렸을 뻔했다.

“헤헤. 그럼 살펴 가십쇼.”

그런 황준우의 시선을 받은 전왕이 또다시 손을 비비며 웃는다.

“그래, 만금장으로 꼭 찾아오고.”

“알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황준우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졌다.

“금방 가셨네?”

간 줄도 모르고 열심히 손을 비비며 고개를 숙이던 전왕은 뒤늦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바지 자락을 들어 올렸다.

“음…….”

제 흔적이 분명한 구리구리한 냄새가 코끝을 파고든다.

아쉽게도 발 크기는 비슷했지만 키에서 큰 차이가 있었던 탓에 벌어진 참사였다.

“이 또한 충정(忠情)이라…….”

스스로의 마음을 달랜 전왕이 이제는 제 막사를 향해 후다닥 뛰기 시작했다.

옷이랑 신발이야 갈아입으면 그만이었다.

전왕과의 만남 덕에 황궁에서 준비한 함정, 가짜를 손쉽게 피해 간 황준우는 오래 지나지 않아 전왕이 말한 진짜 진시황릉의 무덤을 발견했다. 대단히 뛰어난 탐색 솜씨를 발현했다기보다는, 그냥 눈에 보였다.

‘저게 뭐야? 막사가 불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일반 병사처럼 무장하고 있지만, 지금껏 지나쳐 온 황궁 무인들에 비해 몇 수나 앞서는 고수들이 둘러싼 막사 안에서 눈에 뜨이는 검은 아지랑이가 물씬 피어오르고 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무언가를 불태우며 나오는 연기인 줄로만 알았다. 한데 가까이서 보니, 형태는 아지랑이지만 일종의 기(氣)에 가까운 느낌이다.

물론 그 탁한 색만큼이나 유쾌한 느낌의 종류는 아니었다.

‘마기에 가깝나?’

하지만 마기와는 다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력과는 무언가 다른 형태였다.

‘그렇다고 자연지기는 또 아니고…….’

따지자면 내력보다는 자연지기에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역시 기운의 질이 너무 떨어졌다. 암(暗)에 가까운 기운이라 한들 자연지기쯤 되면 순수함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한데 눈앞에 보이는 탁한 기운은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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