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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35화 (135/373)

학사재생 135화

제 135화

당시 불성에 의하여 봉인된 칠야무신의 시체.

그를 얻었다면 계획이 지금보다는 훨씬 편했을 터였다.

하나 당시에는 대술사 역시 세상에 나오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은 입장이었다.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이제는 흘러간 일. 무엇보다 칠야무신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놀라울 정도의 재능을 갖춘 용중호가 옆에 있다.

문제가 있다면 그의 성격.

“대술사,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놈과 나를 비교하면 어떤가?”

찐득거리는 눈빛으로 묻는 용중호의 눈에는 단순한 욕망을 넘어서는 집착이 흘러넘쳤다.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존재가 천하에 존재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한 성격 탓이다.

오만한 지배자의 품성을 타고난 탓이라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나 지금의 용중호는 달랐다.

‘또다시 시작됐군. 저놈의 질투.’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치욕을 당해야 했던 이십 년 전, 당시의 사건을 가슴에 깊게 묻은 용중호는 부족한 스스로를 탓하며 열등감이라는 무거운 감정에 스스로를 묻었다. 지금의 용중호는 그 반향이 적지 않게 돌아오고 있는 상태였다.

위험하다고도 볼 수 있는 상태에서 벽을 돌파한 것은 말했듯이 어디까지나 그의 넘치는 재능 덕일 뿐. 눈빛에 흐르려는 안타까운 감정을 지운 대술사는 재빨리 고개를 깊이 숙였다.

“……위대하신 천마와 비교할 정도는 결코 못 되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면? 분위기를 보아하니 노괴는 아닌 것 같은데?”

“…….”

대술사는 입을 닫았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군. 진무영에 이어 두 번째로…….”

이를 아득아득 간 용중호가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 내 직접 하늘의 마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려 주어야겠다. 어차피 필요한 주역(主役)들은 모두 모이지 않았나?”

천마신교와 대술사를 따르는 비밀세력이 합작하여 만든 이 가짜 진시황릉에 현재 들어선 인물들은 제법 많다. 그중 대다수가 천하에 내로라하는 거물들. 큰 혼란을 만들고, 다시금 천마신교의 이름을 세상에 떨치고자 하는 용중악의 계획을 이루기에는 안성맞춤의 명당이다.

거대한 기운의 격돌을 통해 탁기를 모으고자 하는 대술사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상황.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분명히 존재했다.

“아직 곤륜(崑崙)의 도사들을 찾지 못했습니다. 무덤 내부에 들어온 것은 분명한데…….”

“갈! 그깟 도사 놈들 따위가 무에 두려워 이렇게까지 시간을 끈단 말인가.”

기실 황준우가 입장하기도 전, 용중호는 몇 번이고 움직이려 했었다. 가장 처음은 목표로 했던 황자가 왔을 때였다. 단숨에 사로잡고, 황궁을 압박한다. 용중호와 대술사의 대계(大計)를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했고, 그를 단시간 내에 충당할 수 있는 수단은 몇 없기에 선택한 강수였다.

그 내면에는 지금의 천마신교가 능히 황궁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상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천마신교는 단일 세력으로써 전 무림을 웃도는 전력을 가지고 있던 유일한 집단이었다. 무엇보다 칠야의 난 당시 몰락했다 하였지만 그 저력만은 여전했다. 아직 그들에게는 인재, 그리고 무공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천마신교는 그 대다수를 회복하다 못해 더 뛰어넘는 무력을 갖추었다.

용중호가 가진 열등감을 기반으로 한 집착과 독기, 거기에 더하여 대술사와의 모종의 거래까지.

비록 얼마 전 흑풍대와 대주 구휘를 잃는 큰 사건이 있었지만 아직 천마신교의 전통적인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마도오문(魔道五門)과 오대마종 역시 남아 있다.

그리고 대술사를 따르는 이들 역시 무시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아니, 황궁의 십만대군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더욱 위협적일 터였다.

대술사와 그를 따르는 마술사(魔術士)들의 능력은 고수보다는 하수에, 무인보다는 일반적인 병사에게 몇 배나 위협적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대술사쯤 되는 인물은 여건만 주어진다면 그런 경계를 가리지 않고 무시무시한 힘으로 다수의 고수를 격살할 수도 있었다.

그런 엄청난 힘을 가진 마술사들에게도 천적이 있으니, 바로 곤륜의 도술사(道術士)와 동방의 선술사(仙術士)들이다. 그리고 지금 이 가짜 무덤에,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모를 곤륜의 도술사들이 들어왔다.

용중호도 그를 이해하고 있었고 대술사와의 관계가 수평적인 편이기에 최대한 배려를 하며 참았지만 더 이상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우선 황자를 잡겠다. 다음으로는 황녀, 아니면 삼관(三關)에서 진무영을 치지.”

용중호의 눈에는 기이한 열망이 떠올랐다.

기실 그에게 있어서는 당장 황자인 주고치나, 황녀인 주연하보다도 그쪽이 더 중요한 듯 보였다. 실제로도 그럴 테고 말이다.

‘진무영은 추정되는 현재의 천하제일무인.’

그를 밟고 천마의 이름을 다시 정상에 세운다.

뜻대로 된다면 용중호는 자신을 억누르던 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될지도 모른다.

대술사의 두 눈에 깊은 고민이 깃들었다.

‘곤륜의 도사들이 대계의 와중에 훼방을 놓는 건 위험하다.’

용중악이 바라는 것은 천마신교의 이름을 다시 무림의 공포로 세우는 것.

하나 대술사가 원하는 계획은 조금 달랐다.

그를 위해서는 도술사의 방해가 가장 치명적이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혼자라도 추진하겠다.”

“휴우…… 알겠소이다. 이미 한배를 탄 몸인데 어찌 홀로 물러서겠소.”

결국 대술사가 고개를 주억였다.

불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용중호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보다는 낫다. 천마신교가 그러하듯, 대술사 역시 그들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말한 대로 활협단주는 최소 삼관 이상에서 잡아야 하오. 그 전까지는 끓는 피를 눌러 두시오.”

“좋아, 그쯤은 할 수 있지. 원래 가장 맛있는 음식은 최후에 손을 대야 하는 법. 그러면 난 곧바로 황자를 잡으러 가 보겠다.”

대술사와의 협의를 반쯤 강제적으로 성취한 용중호의 신영이 사라졌다.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 그의 무공에 대술사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진무영이 없었다면 누가 그를 막았을까?’

하지만 한 하늘에 해가 둘일 수는 없는 법.

천마의 야욕과 열등감은 스스로를 어둠의 지배자인 달 정도에 가둬 놓지 않을 테니 결국 파탄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기실 그는 대술사의 입장에서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도술사들의 방해만 없다면…….”

들고 있는 고서를 바라보며 고민하던 대술사의 걸음이 용중호와 반대 방향의 길을 향했다.

“어쨌든, 이미 일은 시작되었으니 움직여야겠지.”

입가로는 진한 미소가 떠오른 채였다.

“이 토병(土兵)들은 어딘지 모르게 불쾌하군.”

지하에 위치한 거대한 미로.

그 내부를 헤매던 주고치가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보아하니~ 아무래도 진시황을 따르던 병사들을 빚어 만든 것 같습니다요.”

주고치의 뒤편에 선 청색 문복의 내관(內官)이 허리를 굽히며 말한다. 그의 뒤로는 그와 같은 문복을 입은 내관들이 스물세 명이나 더 있었다.

평소 그런 내관들을 보면 중심이 없는 남자라며 비웃는 병사들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문복을 입고 있는 그들이, 동창에서 자랑하는 이십사수(二十四手)인 탓이다.

하나, 하나가 절정고수에 달하는 동창의 최정예.

그중 황자의 말에 답한 수좌는 드넓은 동창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으로 뽑히는 초고수였다. 추정 경지는 초절정. 하나 실제 그의 실력을 본 이들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이는 황자의 행차를 걱정한 동창제독이 이번 여정에 큰 신경을 썼다는 증거에 속했다. 주고치 역시 그런 동창 이십사수가 있기에 이 자리에 당당하게 설 수 있었다.

“그렇겠지. 그래서 이토록 다양한 것일 테고.”

주고치의 시선에 보이는 병사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보병(步兵), 기병(騎兵), 노병(弩兵), 심지어 차병(車 兵)까지. 멀리서 보았을 때 줄지어 선 모습은 제법 장관이라 할 만했다. 과연 최초의 황제다운 권위와 권력이 느껴지는 광경이다. 하나 주고치는 그런 장엄한 풍경에 감탄을 느끼기보다 어딘지 모를 불쾌함을 먼저 느꼈다.

“마치 당장에라도 살아나 움직일 것 같은 모습이로다.”

“예이, 설마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그래 봐야 토병에 불과한 신세거늘…….”

고개를 숙이며 허리를 조아리던 이십사수의 수좌, 효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구구구-!

동시에 조용하던 무덤 내부로 알 수 없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

놀란 주고치가 뒷걸음질 쳐 재빨리 동창 이십사수의 사이로 숨어든다. 가장 선두에 선 효찬이 눈을 번쩍이며 사방을 둘러볼 때였다.

그그극- 탁!

움직이던 기관이 정지하는 것과 같은 소리와 함께 미로와 같이 얽혀 있던 틈새의 벽이 내려앉았다.

쿠구궁-!

“콜록, 콜록!”

순식간에 일어난 엄청난 먼지구름에 눈을 붉힌 주고치가 거친 기침을 토한다.

“이럴 수가……. 토병들이 움직인다! 황자님을 보호하라!”

그러는 사이 이곳저곳에 무기를 잡고 있던 병마용(兵馬踊)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한 효찬이 자랑하는 장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퍼버벅-!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하던 모래로 만든 보병의 얼굴이 순식간에 터지듯 무너져 내린다.

‘단단하지는 않아.’

문제는 애초부터 살아 있는 생명체라 보기 힘든 이 토병들이 머리를 터트려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쉬이익-!

비명과 고함조차 없이 흙으로 만든 창이 효찬의 어깨를 향해 뻗어진다. 빠른 속도로 손을 휘둘러 그 창을 쳐내고 토병의 남은 팔과 다리마저 무너트린 효찬의 눈이 떨렸다.

‘부드러운 몸통과 다르게 창끝은 날카롭다.’

같은 흙으로 만들었을진대 어찌 이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접었다.

애초부터 토병들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효찬! 괜찮은가!”

“예이, 황자전하! 걱정 마십시오!”

놀라운 상황에서 침착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답한 효찬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그래도 황자를 보호하기 위해 뽑은 정예 무인들이라 그런지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크게 놀라지 않고 각자의 대처를 잘해 내고 있었다.

토병들의 수가 무지막지하지만 그 위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덕도 클 터였다.

‘이 정도면 할 수 있다.’

무너진 벽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토병이 끝도 없이 늘어져 있지만 뚫을 수 있다.

결단을 내린 효찬이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 탈출해야 한다! 황자님을 모시고 왔던 길을 향해 뛰어라!”

효찬의 외침에 동창 이십사수 중 한 명이 재빨리 주고치의 옆에 붙어 부축을 시도했다.

“쿨럭! 쿨럭! 고, 고맙네!”

주고치는 무공을 익혔지만 그리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허약 체질에 가까웠으니 당연한 일.

‘이런 곳에 오래 계시다가는 건강이 더 악화되실 것이다.’

눈을 빛낸 효찬이 가장 전방으로 뛰쳐나가며 장풍(掌風)을 떨쳤다.

콰아앙-!

곧이어 엄청난 폭음과 함께 수십의 토병이 흙먼지가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오오, 과연……!”

“동창 이십사수의 수좌!”

황궁 무인들이 그런 효찬을 바라보며 감탄을 토했다

일반적인 장풍이란 강력한 일격으로 바람을 밀어내는 정도의 능력. 물론 그 정도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이라지만 그리 효율적이지는 않다.

하나 효찬의 장풍은 확실히 달랐다.

천하무림 전체를 따져 보아도 이토록 바람이라는 특성을 훌륭히 사용할 수 있는 무인은 몇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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