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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39화 (139/373)

학사재생 139화

제 139화

‘진무영…….’

대술사는 그를 제법 잘 알고 있었다.

기실 그는 용중호보다 그와 손을 잡기를 바랐었으니 말이다. 하나 진무영은 그보다 더 음흉하고 무서운 사내였다.

살아 있다면 천하에서 가장 위협이 될 적수.

‘이참에 천마가 그를 죽인다면 최고겠군.’

무덤이 함정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다 못해 넘치게 해냈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하나 그조차도 부가적 이득일 뿐이다.

이 함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따로 있었다.

“어디 확인을 해 보자.”

떠난 용중호에게서 등을 돌려, 석벽 위로 손을 얹은 대술사의 입이 벌어졌다.

“열려라.”

구구구-!

뒤를 이어서는 벽이 마치 문과 같이 입구를 연다.

곧장 대술사의 코끝을 아리는 지독한 혈향(血香)이 몰려왔다. 비리고, 끈적끈적한 느낌이다.

“달콤하군.”

대술사는 그 느낌이 마치 꿀과 같다고 생각했다.

내부에는 대술사와 같은 밀교의 상징과 다름없는 검은 도포를 머리까지 눌러쓴 이들이 자리에 앉아 괴이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중심에는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괴이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괴로운 표정으로 손을 내뻗으며 입을 벌리고 있다.

하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뻗어진 손은 마술사들에게 닿지 못한 채 지면에 그려진 육망성(六芒星)의 자락에서 피어나는 검은 막에 부딪쳐 뭉개지고 피를 쏟는다. 그 괴로움에 입을 더욱 크게 벌리면서도 육망성에 갇힌 이들은 바깥을 향해 마구잡이로 몸을 던진다. 때로는 상대의 몸을 방패삼아 탈출하려고도 시도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아직도 스스로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어리석은 망자(亡者)로다.”

그 모습을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본 대술사가 혀를 찼다.

육망성의 바깥에서는 이미 죽은 시체를 계속해서 내부로 내던지고 있었다. 그렇게 죽은 시체가 들어가면 육망성은 어두운 빛과 함께 짧은 공명음을 토한다.

놀라운 점은 그렇게 죽어 있던 시체들이 그 이후 마치 살아 있는 듯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살아남고 싶다는 듯 역동적으로 육망성 바깥을 향해 뛰어나가다가 이미 온몸이 처참하게 망가진 다른 시체들과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원한에 가득 찬 망자의 소멸이 어느 정도 이어지면 육망성의 일각에 검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뱀의 형태를 갖춘다.

“역시 시체들로 만들어서 너무 작군. 이번 대계에 잃은 흑영사가 너무 많아.”

아쉽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보던 대술사의 걸음이 육망성을 지나쳐 더욱 깊은 어둠을 향했다.

안타깝지만 소멸한 흑영사도, 제물로 바쳐지는 시체들도 모두 희생양에 불과하다.

이번 대계의 진짜 목적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우웅-!

막다른 벽, 바깥에 시체들을 집어넣는 것에 비하자면 작은 규모의 육망성이 새겨져 있다.

그 앞에 선 한 마술사는 생황(笙篁)을 입에 문 채 으스스한 음색을 연주를 하고 있었다.

대술사는 눈짓으로 인사하는 그를 지나쳐 작은 육망성의 위로 손을 올렸다.

우우웅-!

지독한 공명음과 함께 육망성의 가장 아랫부분이 검붉은 물결로 찰랑였다.

“반절이라도 채울 수 있으면 좋겠지.”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진무영과 용중호.

천하를 나눌 수 있는 절대고수의 격돌은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육망성이 가득 차는 것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문득 마음에 걸리는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하나 더…….’

들어오자마자 흑영사를 베었던 젊은 청년.

어느 순간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흑영사의 눈을 이용해도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이미 무덤을 빠져나간 게 분명했다.

“조금 아쉽군.”

만약 진무영과 용중호에 이어, 청년의 격돌까지 함께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무조건 반 이상.

운이 좋아 싸움이 격해졌다면 가득 채울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나 이미 지나간 일을 아쉬워해 봐야 돌아올 것은 없었다.

‘잡아 온 황자 놈을 이용하여도…….’

제법 괜찮은 효과가 있을 터다.

그쯤 되는 제물은 흔치 않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아쉬움에 입맛이 다셔졌다.

하나 역시 황자에까지 손을 뻗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지. 그 도사 녀석을 이용해서 조금 더 채워 볼까.”

대술사는 총명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소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겉모습은 어린아이지만 그 속내는 결코 만만치 않은 지선. 바깥이었다면 아무리 대술사라고 하여도 피했을 터다. 하나 이 무덤 안에서라면 다르다.

혀끝으로 입술을 핥은 대술사가 생황을 부는 마술사를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 흑영사 중 다섯 마리를 골라 바깥을 향했다.

“대계를 위하여.”

검은 두 눈 깊은 곳에서는 어둠이 넘실거렸다.

제이관(第二關), 묵철의 관(關)을 넘어 마지막 길목인 제삼관(第三關), 마의 관에 들어선 진무영 일행의 눈매가 동시에 찌푸려졌다.

“마기로군.”

오칠이 재빨리 활을 뽑아 든다.

“천마신교.”

독고문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검을 뽑았다.

묵철의 관에서부터 의심하고 있었던 사실이 이로써 명확한 진실이 되었다. 마의 관에서 넘치는 마기는, 어설프게 마도(魔道)를 흉내 낸 지마교의 그것과는 수준이 다르다.

“오랜만이군, 진무영.”

“용중호. 이건 뭐, 죽은 시체에 칼을 꽂아 넣는 격이로군요. 천마신교는 대체 무슨 속셈입니까?”

건너편, 무시무시한 기세를 흘리며 다가오는 용중호와 두 명의 중년인을 바라본 진무영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너를 죽인다면 네 스승도 많이 슬퍼하겠지.”

용중호는 진무영의 말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대신하여 애병인 천마신검을 뽑아 들며 싸늘한 웃음을 흘릴 뿐이다.

파앗- 캉-!

검은 선이 하나가 된 듯 이어지고 진무영의 코앞에서 불꽃이 튀겼다.

어느덧 허리춤에 찬 두 자루 검 중, 손잡이에 태극의 문양이 그려진 검을 뽑아 든 진무영이 눈 앞에서 불꽃이 튀기는 광경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다.

“인사가 너무 격한 게 아닌가요. 그래도 제법 오랜만의 재회인데…….”

“네놈은 여전히 나를 너무 얕보고 있구나. 고작 무당검(武當劍) 따위로 천마신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게냐?”

여전히 진무영의 말에는 답을 하지 않은 용중호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동시에 그의 등 뒤로부터 검은색 아지랑이와 함께 강기의 검이 둥실둥실 떠오른다.

“먼지처럼 재가 되어 죽어라, 진무영.”

검은 강기의 검이 화살처럼 진무영의 몸을 향해 쏘아졌다.

“칫……!!”

짧게 혀를 찬 진무영이 맞서고 있던 검을 물리며 물러나려는 순간 용중호의 눈이 불을 토했다.

“어딜 달아나려 하느냐!”

카가각-!

용중호의 천마신검과 진무영의 태극검이 마치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도 된 듯 서로 달라붙어 불꽃을 튀긴다. 단숨에 거리를 벌리려던 진무영의 움직임이 완전히 봉쇄된 셈이다.

“선장!”

“제기랄!”

오칠이 순식간에 활에 다섯이나 되는 화살을 걸었으며, 독고문은 검막(劍膜)을 펼친 후 진무영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

“어딜!”

“감히 교주의 행사를 방해하려 하느냐!”

그런 두 사람의 앞으로 대부(大斧)와 묵창(墨槍)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뒷걸음질 치며 아슬아슬하게 적의 일격을 피한 오칠과 독고문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대마종…….”

두 사람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엄청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아무리 고수가 많은 천마신교라 한들 이 정도 수준의 인물은 몇 없다.

“멸부(滅斧)와 마창(魔槍)인가…….”

독고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쉽게 뚫고 나갈 수는 없을 정도의 만만치 않은 적수다.

콰과광-!

짧은 충돌과 난감함이 오가는 사이, 용중호와 격돌하던 진무영의 몸 주변으로 폭발과 함께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 올랐다.

“위험했습니다!”

다행히 진무영은 무사한 듯했다.

제법 그을린 안색에, 옷가지가 여기저기 찢겨 나갔지만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뒤로 물러선 그가 오칠과 독고문의 사이에 선다.

뚜벅, 뚜벅.

여유로운 걸음을 옮겨 멸부와 마창이라 불리는 오대마종의 중심으로 이동한 용중하가 미소를 그렸다.

“아직도 장난을 칠 여유가 남았나 보지? 네놈이라면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 텐데?”

“음…….”

용중호의 여유에 주변을 둘러본 진무영이 입맛을 다셨다. 마의 관은 거대한 동공의 형태였다. 병마용의 관이나 묵철의 관과 같은 특별한 장치나, 기이한 존재는 없다. 대신하여 그 내부에 마기라 불리는 끈적끈적하고 어두운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단순히 용중호와 멸부, 마창의 마기가 강한 탓만은 아니다.

마도의 정점이라 볼 수 있는 존재들이 몰려 있다고는 하지만, 이토록 순도 높은 마기를 드넓은 동공에 모두 가득 채울 수는 없는 노릇.

애초부터 마의 관은 마기로 가득 채워진 마인들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시야가 어지럽군.”

말을 하는 진무영의 눈이 떨린다.

되도록 표를 내고 싶지 않지만 아닌 척하기도 힘들 정도로 마기로 가득 찬 동공 내부 이곳저곳에 환영이 보인다. 혹은 세상이 뒤집히기도, 일렁이기도 했다. 마기가 가진 괴팍한 공능이다. 진무영쯤 되는 고수라면 이를 단숨에 타파하기도 하지만, 마의 관 내부에서는 불가능할 듯 보였다.

이미 내부에 가득 찬 마기가 그들의 숨통을 목 아래까지 강하게 조이고 있는 채다.

이 안에서 싸운다면 설령 진무영이 용중호보다 두 수 이상 앞서는 고수라고 한들 불리한 입장이다. 오칠과 독고문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아니, 두 사람은 더 심각했다. 비교적 내력이 약한 독고문의 경우는 마치 독에라도 중독된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버티기도 힘들지? 어때,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빈다면 살려 줄 수도 있어.”

어차피 시간은 천마신교의 편이다.

용중호는 팔짱을 끼고는 여유롭게 웃음을 보였다.

진무영은 입가로 쓴웃음을 그린 채 고개를 주억였다.

“좋군요. 그리해서 살 수 있다면, 제 자만과 어리석음을 탓하기 위해서라도 나쁘지 않은 벌이 되겠지요.”

두꺼운 눈썹을 꿈틀거린 용중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놈, 무슨 속셈인 게냐?”

“속셈이랄 게 있을까요? 진짜 죽을 맛인데.”

아닌 게 아니라, 제자리에서 곧장 무릎을 꿇은 진무영이 웃으며 용중호를 바라본다.

“살려 주십시오. 이러다가 진짜 죽겠습니다.”

“…….”

용중호의 입매무세가 굳게 닫혔다.

기회라면 기회다.

지금 당장 천마신검을 뽑아 들어 진무영의 목을 친다면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벨 수 있다. 한데도 마음 한편이 어딘지 모르게 무겁다.

‘아아, 그렇군.’

이유를 알 것 같다.

용중호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무릎을 꿇은 정도로 빈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머리를 조아려라. 네 발로 기어 너는 아니, 무당은 개만도 못한 자식이라고 소리쳐라. 그리한다면 살려 주마, 흐흐.”

가슴 한편이 터질 듯이 박동한다.

웃음을 흘리는 용중호의 두 주먹과 눈에는 절로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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