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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43화 (143/373)

학사재생 143화

제 143화

크기는 작아졌지만 압축되고, 압축된 강기의 집합체가 지금 멸부가 쏟아 내는 힘이다.

거기다 몇 번의 격돌 끝에 알게 된 멸부가 가진 강기의 특징은 거압(巨壓).

검으로 친다면 수직 베기, 도끼의 내려찍기에서는 이보다 더 위협적인 특징이 없다.

덕분에 작금 멸부의 공격은 황준우가 본 모든 오대마종 중 제일이라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니, 천하제일이라 칭해도 모자라지 않을 수준의 거력이 담겨 있다.

‘그래도 결국, 맞서 싸우지 않으면 그만이지.’

힘은 넘치고 빠르지만 예리하지는 못하다.

장점도, 단점도 그야말로 도끼라는 무기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특징의 무공.

황준우는 단숨에 몸을 두 동강 낼 듯 휘둘러지는 멸부의 품으로 빠르게 뛰어들었다.

“……!!”

놀란 멸부가 헛바람을 집어삼키기도 전.

검을 놓고 손을 뻗은 황준우의 일 장이 멸부의 가슴에 닿았다.

순식간에 가슴뼈가 함몰되고 뒤틀린 멸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쿠엑-!”

피가 쏟아진 순간.

힘을 반 이상 잃은 멸부의 도끼가 바닥을 때렸다.

“허…….”

쓰러지는 멸부에게서 물러나며 뒤를 돌아본 황준우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흘렸다.

힘을 대다수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면이 오 장 이상 패였다. 만약 처음 그대로 전력을 다해 내리쳐졌다면, 피했다 하여도 자칫 낭패를 보았을지도 모를 수준이었다.

“대단하네.”

황준우는 멸부를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마인들의 마폭기에 대해서는 그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마폭기를 사용한다 하여 누구나 저런 힘을 낼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명력을 가진 무구나,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이 아닌 순수한 무공으로 이 정도의 경지를 이끌어 낸 멸부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황준우의 평가에는 마지막 순간 충성으로 주군의 뒤를 보필하려 한 멸부의 행동에 대한 감탄도 담겨 있었다.

“멸부…….”

용중호가 쓰러진 멸부에게로 다가갔다.

일그러진 미간.

의식은 남아 있었지만 아무런 힘도 남지 않은 멸부가 그를 향해 웃음을 보일 때였다.

멸부의 아랫배에 용중호의 검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무슨 짓이지? 그는 좋은 부하였지 않나?”

황준우의 눈이 예리해졌다.

천마신교, 그리고 그곳에 속한 마인들의 어둠은 잘 알고 있다. 오로지 힘만을 추구하는 순수한 무력 집단. 때문에 그들의 과격한 행동이 천하에 폐가 되곤 한다. 그야말로 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마(魔)라 불리는 것이다.

세상의 악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그들 나름의 질서는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나쁜 악당도 제 새끼 귀한 줄은 아는 법이니 말이다.

“좋은 부하였지만, 제 목표를 해내지는 못했다. 치욕스러운 죽음이다.”

용중호는 붉어진 두 눈으로 황준우를 노려보았다.

“위대한 천마신교의 이름에 치욕을 안겼으니, 마의 종주 된 입장으로서 합당한 벌을 내려야지.”

이어서 용중호의 검이 쓰러진 마창과 멸부의 시선을 난도질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찢어 버리고 흩어 버리는 그 모습에 황준우의 얼굴도 크게 찌푸려졌다. 뻗어진 수왕검이 순식간에 용중호의 천마신검을 가로막았다.

과하다. 너무 과하다.

“네놈…… 인의(人義)를 모두 저버린 것이냐?”

“인의? 인의라 하였느냐? 하하하!”

커다란 웃음을 터트린 용중호의 몸에서 마기가 폭발하듯 쏟아져 황준우의 몸을 뒤덮는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짧은 틈을 노린 공격.

황준우는 두 손으로 북명강기를 찢으며 단숨에 용중호의 목을 노렸다.

검에서 불꽃이 튀기고 천마신검에서 검붉은 강기가 치솟았다.

치이익- 깡! 쾅!

짧은 순간 십 합이 넘는 공격이 벼락처럼 오가며 사방으로 불꽃이 비산했다. 두 사람의 공방에 대기가 찢어지고 비명을 토한다.

“인의! 강호가 언제 그런 것을 따졌느냐!? 정의(情意)!? 협(俠)!? 헛소리! 결국 모두가 제 이득과 욕심을 위해 움직이지 않느냐! 제 배를 불리기 위해 방금 전까지 손을 잡고 있던 친우의 등에 검을 꼽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틀린 말은 없다.

비정강호(秕政江湖).

전생의 황준우가 절절히 느끼지 않았던가?

용중호가 어찌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도 짐작이 되었다.

‘천마신교, 그날 이후로 버림받고 칼을 갈았군.’

하지만 그 이유가 모든 행위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 하여도 최소 자신에게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한 부하를 네놈처럼 대우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일이다. 시체에는 흔적이 남는다. 흔적은 명분을 만든다. 네놈이 절박함을 아느냐?”

용중호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황준우의 미간은 더욱 찌푸려졌다.

“절박함. 아니지. 그저 겁이 날 뿐이지. 비열한 녀석아.”

“네깟 녀석이 뭘 안다고!”

흥분한 용중호의 등 뒤로 스물네 자루의 검이 둥실 떠올라 쏘아진다.

남궁천이 펼쳤던 제왕검형, 검천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그 숫자가 적은 만큼 밀도와 개개의 힘이 다르다. 힘의 낭비라 할 수준도 없는 대단한 무공이다. 그래도 황준우는 한 자루 검으로 그 모든 것을 막아 내고, 베어 냈다.

“잘 알지. 네가 정녕 흔적을 두려워하였다면 그들을 품에 안고 돌아가 묻어 주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하……! 위선이 지독하구나. 검을 맞댈 적수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물러날 생각부터 한단 말이냐? 나는 천마다. 천마는 결코 적을 두고 등을 돌리지 않는 법이다.”

“비정강호에도 예우는 있는 법이다.”

황준우는 혀를 찼다.

아무리 차가운 강호에도, 냉정한 검객에게도 작은 자비가 있는 법이다. 마지막 순간 나름의 존중을 보인 상대의 시체까지 모욕하며 싸우려 들까? 아니다. 변태적인 성향을 가진 마두, 혹은 상대가 천인공노할 원수만 아니면 최후의 순간쯤은 대다수, 스스로가 마지막을 결정할 정도의 양보마저 거부하지는 않는다.

승자의 여유 혹은 무림인의 낭만이 만드는 죽음을 기리는 예우.

용중호가 그를 몰랐을까?

황준우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모두 변명일 뿐이다. 네놈은 그저…… 날 죽이고 싶은 것뿐이겠지. 최대한 빨리, 어서, 거슬리는 것을 눈에서 치우고 싶은 거야.”

차가운 황준우의 목소리에 용중호의 눈이 짧게 떨린다.

하지만 결국, 그의 입가는 미소를 그렸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 멸부의 충성은 확인했다. 하나 죽은 이상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이지. 지금 내 눈에는 오로지 너만 보인다. 머릿속은 네 녀석을 죽일 생각으로 가득하다.”

황준우의 눈이 차가워졌다.

“쓰레기군.”

힘든 현실 속에 스스로를 다듬기 위해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키웠다.

뛰어난 재능과 어린 시절부터 물려받았을 선대의 지혜와 무공이 그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을 터다.

그런 그의 아집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했을 터다.

승산이 없는 싸움을 알면서도 덤벼들었던 멸부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검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스스로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변을 피폐하게 만드는 진짜 악인들.

어째서인지 황준우는 그런 이들을 볼 때면 더 화가 나는 듯했다.

욕심과 욕망은 좋다. 하지만 적어도 그 길에서 곁을 지켜 준 이들에게 감사할 줄은 알아야 한다.

“협은 몰라도 인간은 되어야지.”

“천마는 인간이 아닌 그 위의 존재다. 한낱 인간으로 남아 어찌 독존(獨尊)한단 말이냐?”

“그래. 뭐 좋아, 어쨌든 넌 오늘 여기서 죽을 테니까.”

조소를 그린 황준우의 기세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용중호의 무공에 대한 이해는 끝났다.

놀랍도록 성장했지만, 큰 벽에 막혀 있는 상태다.

조율의 경지를 말할 것도 없다.

조화의 극상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놀라운 감각과 천마신검의 능력으로 그를 뒤덮고 있지만 딱 그 정도다.

황준우에게 있어 용중호란 더 이상 흥밋거리도 되지 못했다.

“아니, 나는 죽지 않는다. 패배하지 않는다! 나는 천마다! 그 누가 나의 위에 선단 말이냐!”

용중호의 몸에서 감돌던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주변을 뒤덮을 듯 치솟는가 싶더니 다시 한 점으로 모여든다.

“호오…… 검에?”

황준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용중호의 묵검, 천마신검은 명확한 명력을 가진 무기이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천마라는 이름은 중원천하 전체에서 마의 종주를 가리키는 이정표다. 그리고 그런 천마의 상징인 천마신검 역시 백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존재해 왔다.

존속한 시간을 제외하자면 청홍검 이상의 의미와 힘을 가지고 있는 명검.

심지어 사용된 재료는 고대 시대의 기술로는 다룰 수 없다고 알려졌던 묵철이다.

“지배하라, 천마신검.”

용중호의 입에서 마기가 듬뿍 담긴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를 따라 천마신검이 울음을 터트렸다.

고오오-!

일반적인 검의 공명과는 다른 느낌이다.

마치 거대한 야수가 입을 벌리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위해 숨을 들이켜는 것과 같은 소리.

이윽고 세상이 암전(暗轉)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와 같은 어둠 속.

황준우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보이지 않는다.

‘아, 이건 세상이…….’

오감이 차단되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미각, 후각, 촉각도 물론 완전히 사라졌다.

‘오감 정도가 아닌가? 육감(六感), 그리고 기운(氣運)도 차단해 버렸군.’

감각마저 무뎌지고, 자연지기를 찾으려 하여도 무엇도 잡히지 않는다.

이게 천마신검이 가진 진짜 힘이라면 부족한 무공으로 제법 자신만만해 보였던 용중호의 모습도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대단한 무인도 이런 상태가 되어서는 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제 목이 베이는 줄조차 모를 수준이다. 무공의 위력을 높여 주는 청홍검과는 차원이 다른 공능이었다.

‘공능의 비밀? 아니면 무구마다 차이가 있는 건가?’

황준우는 생각을 멈추었다.

‘이러고 있다가 진짜 목이 떨어져 나가도 모르겠지.’

짧게 웃은 황준우는 검을 들어 올리고, 휘둘렀다.

감각은 없었다.

굳이 기운을 통한 길을 보려 하지도 않았다.

용중호를 찾지도 않았다.

그저 전체를 베면 될 뿐이다.

어색한 일도 아니었다.

몸으로도 수천이 넘어 수만, 수억 번, 머릿속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수십 억을 넘게 휘둘렀던 검이다. 몸과 정신이 기억할진대 굳이 헤맬 이유가 없다.

찌이이익-!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돌아왔군.”

동시에 입을 연 황준우의 눈앞이 점멸(點滅)하기 시작했다.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출혈을 한 손으로 막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용중호와, 반으로 갈라진 천마신검.

반으로 갈라져 무너지고 있는 동공의 모습.

어둠은 사라지고 완전히 빛이 돌아왔다.

“……순 없다!”

용중호의 발악 같은 외침에 황준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뭘 믿을 수가 없어?”

“어찌! 어떻게 천마계(天魔界)를 벗어날 수 있단 말이냐!”

“벗어난 적 없어. 그냥 그 자체로 찢어 버린 거지.”

모든 것을 잃었다 다시 되찾은 해방감.

그 감각을 만끽하며 황준우는 활짝 미소 지었다.

“한데 이게 끝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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