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146화
제 146화
“뒤집어지겠네. 만금장 포함하면 십대상단 중 반 아니야? 하, 이걸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어요?”
진정한 만금장의 실체와 위엄.
그 사실을 안 황준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마 대표두나 신아라면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한데 두 사람의 표정도 심상치 않다.
매일 한결같은 표정의 여선위가 놀라 눈을 부릅뜨고, 신아도 팔짱을 풀고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다.
“뭐야, 이거…….”
“본래는 나만 알았지. 이제는 세 사람이 추가 되었구나.”
“…….”
흐릿하게 웃는 황석후의 태도는 여유로웠다.
가진 자의 여유와는 달랐다.
당연한 것을, 그야말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오히려 두 눈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어떠한 열망이 꿈틀거리며 잠재되어 있었다.
황준우가 무공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네, 네 녀석 역시 어떤 의미로 신인(神人)이로고…….”
아마 금신(金神)이 있다면 분명 그건 황석후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큼, 조금 민망하군요.”
쏟아지는 시선에 얼굴을 붉힌 황석후가 헛기침을 했다.
‘어쩐지 즐기고 계시는 것도 같지만…….’
그런 황석후의 마음도 제법 이해가 되는 황준우였다.
“한데 왜 굳이 그렇게 따로 나누어 놓은 게냐?”
신아가 의아한 듯 질문을 건넸다.
만금장에 그만한 돈이 있으면, 천하의 이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돈으로 나라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황석후가 유일하지 않을까? 한데도 십대상단의 일부로 나누어 정체를 감추었다.
달리 깊은 뜻이 있는 게 아닐까?
“그냥…… 취향입니다.”
황석후의 대답은 정말로 예상 외였다.
“보여 주는 것보다는 숨기는 게 좋습니다. 아무래도 만약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변태구먼.”
“아버지도 변태네요.”
신아와 황준우가 동시에 말했다.
얼굴을 굳히고 있는 여선위도 입만 안 열었다뿐이지 분명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게 뻔했다.
“큼…… 뭐, 유리한 것도 있는 게 사실이니까. 자자, 넘어가서 질문이 그게 끝은 아니지 않느냐?”
“아, 맞아.”
황준우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질문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어볼 게 너무 많아.’
오히려 넘쳐서 고민이다.
“우선, 만금장과 곤륜파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마.”
그런 고민을 황석후가 덜어 주었다.
안 그래도 신아와의 만남으로 궁금했던 부분이다.
“우리 만금장과 곤륜파의 인연은 전대로부터 이어진단다. 네게는 할아버지 되시는 분의 이야기겠지.”
“아…….”
그러고 보니, 황준우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다.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고아였던 그가, 애초에 가족이 생긴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황석후의 입에서 이리 이야기를 듣는 것은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우리 만금장의 역사는 그리 짧지 않다. 첫 시작은 작은 표국이었지만 일대를 지나쳐 이대가 되었을 때는 이미 대 상단이 되어 있었지.”
그리고 바로 전대인 황석후의 아버지, 황준우의 입장에 있어서는 할아버지가 되는 인물의 때에 곤륜파와 만금장은 처음 만났다.
“이 부분은 내가 설명할게.”
신아가 콧대를 높이며 앞으로 나섰다.
“아가야, 우리 곤륜의 역사에 대해 혹시 알고 있어?”
“글쎄. 관심이 별로 없어서.”
“……아는 대로라도 말해 봐.”
“한때 구파일방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전혀 연관이 없다. 그리고 중원이 아닌 외곽의 청해, 곤륜산에 자리 잡았고…… 도가문파다.”
“그게 끝?”
“뭘 더 바라? 애초부터 내가 알기로는 활동 안 한 지가 백 년에 가까운 문파라고. 제갈세가보다 더하잖아.”
“갈! 이놈아! 대(大) 곤륜을 감히 그 꼬장꼬장한 제갈가 놈들 따위랑 비교하다니!”
신아가 열불을 내며 의자 위로 벌떡 일어섰다.
나름대로 화끈한 동작이었지만, 그제가 돼서야 겨우 황준우와 눈높이가 맞다.
“네가 그렇게 말해도, 정말 잘 모른다고. 내가 이런 질문 맞히는 걸 좋아하지만 무슨 단서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끄응…… 학문도 제법 익혔다는 놈이 도가에 대해서는 영 모른단 말이야?”
“알긴 알지. 아, 그러고 보니 신선들의 고향 이름도 곤륜이지?”
그제야 자신의 무릎을 두드린 신아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렇다, 어린것아. 우리 곤륜이야말로 바로 고대 신선들의 고향, 드넓은 천하에서 가장 고대(古代)의 영토이자, 성지(聖地)란 말이다.”
“그러면 지금도 진짜 신선들이 살아?”
황준우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에 신아가 없는 가슴을 넓게 폈다.
“네 눈앞에 있지 않느냐.”
“신녀께서는 인세에 남아 계신 몇 없는 지선이시다.”
황석후의 부가 설명에 황준우가 눈을 끔뻑끔뻑거렸다.
“얘가 신선?”
“그렇다. 어쩌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수도 있겠지. 이 몸이 바로…….”
“그러면 나이가 얼마나 되는 거야? 진짜 무지 많단 건데?”
“……큼.”
신아의 입이 닫혔다.
황준우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도 더 이상 자신에 대한 소개는 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우리 곤륜은 너희가 상상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인세의 마(魔)와 싸워왔다. 산해경에서 보았던 요괴, 귀신을 비롯하여 수많은 세상을 향한 재앙들을 막아 왔지. 그것이 올바른 덕선(德仙)이 되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야.”
“그 일을 혼자서 해낸 것만은 아니다?”
마침 상 위에 올라오기 시작한 음식 하나를 집은 황준우는 곧장 논점을 짚어 냈다.
어째서 신아가 이런 이야기를 할까, 그리고 지금의 만금장과 곤륜파의 관계.
왕년엔 구대문파였던 입장까지 생각하면 제법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이다.
“크, 큼. 생각보다 머리가 좋네.”
“그런 이야기 자주 들어.”
“잘난 체도 심하고.”
“그것도 자주 듣지만, 어쩔 수 없지. 그냥 잘난 거니까.”
“에잉!”
결국 혀를 찬 신아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점점 이야기할수록 말려드는 느낌이 영 좋지 않았던 탓이다.
그리고 음흉하게 웃고 있는 황준우의 속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왠지 봉 하나 문 느낌인데.’
사실 황준우는 지선이란 것이 어떤 위치인지는 잘 몰랐다. 다만 신아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여러모로 황준우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세계의 신비, 그리고 비밀 등, 전해 들을 수 있을 것이 많을 듯했다.
‘적당히 놀아 주면 알아서 술술 불 것 같단 말야.’
계산적이었던 제갈량과 비교하자면 말 그대로 봉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셈이었다.
“어쨌든, 일전에는 구파일방 등 무림문파와 손을 잡고 있던 곤륜파가 전대서부터는 어째서인지 우리 만금장과 손을 잡았다 이거네요?”
“뜻이 맞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도 신아가 대답했다.
고개를 돌린 그녀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불쾌함이 가득했다.
‘알 것 같군.’
구파일방.
또는 무림맹, 무림연합.
이른바 정파라는 세력의 중심을 맡고 있지만 그 속내는 결코 정(正)이라는 글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표면적인 설립 목적은 무림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라지만, 그 속내는 기득권자들의 지위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밖에 남지 않았다.
탄생 때부터 썩은 물이 고이고, 고여 또 세월이 흘렀다.
그 썩은 내가 얼마나 지독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곤륜이 만금장을 찾은 건가요?”
황준우의 시선이 다시 황석후를 향했다.
“아니. 당시 무림맹과 거래하고 계시던 내 아버지, 그러니까 네 할아버지가 먼저 구파일방과 등을 돌린 곤륜과 접촉하셨다.”
“그때쯤 아버지께서도 무림맹의 행사에 꽤나 신물이 나신 차였지. 상인이라고 하여도 늘 대의(大意)를 따라야 한다고 하셨던 분이었으니 말이다. 그 외로도 가진 자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서도 늘 생각이 많으셨고.”
듣고 보니 황석후가 황준우에게 했던 교육과 제법 닮아 있는 말이 많았다.
‘결국 대를 이은 가르침이란 건가.’
황준우의 입가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 대의가 곤륜에게 있다고 생각하여서 손을 잡은 거군요.”
이제야 대충, 곤륜과 만금장의 관계가 이해되었다.
“곤륜은 세상 밖에 나와 활동하기 힘든 사정이 몇 가지 있다. 그래서 외부 세력의 힘을 자주 빌리곤 하는데, 만금장은 반만년의 긴 역사 속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훌륭한 동료지. 그 어린 녀석이, 저렇게까지 해낼 줄은 정말 몰랐다.”
신아가 그리 말하며 황석후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
“하하……. 어쨌든, 이번 서안행도 그런 곤륜과의 일이 연계되어 있단다.”
“이제야 진짜 만금장이 어떤 곳인지 이해가 되네요.”
황준우의 입가로 미소가 걸렸다.
잘 모르던 사실이 제법 많이 밝혀졌지만,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돈이 더 많다는 사실을 싫어할 사람도 없는 게 당연했고, 그만한 책임을 가지고 대의를 위해 행동한다는 사실도 멋졌다.
‘나는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당장 멸망의 새라는 녀석만 하여도 가족, 그리고 만금장을 위해 싸워야겠다는 결심이 최우선일 뿐인 수준이다.
“너무 고민하지 말거라. 네 삶은 너의 것이니 말이다.”
그런 황준우의 고민을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는 듯 말한 황석후가 곧장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내가 이곳 서안에 오게 된 이유 말이다. 바로 진시황릉이 문제였지.”
“어, 그거 진짜 있는 거였어요?”
황준우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일단 황석후가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우선이었지만, 황준우 역시 진시황릉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다.
“물론이다. 다만 아직 함부로 밝혀져서는 안 될 일이지. 진시황의 보물은 그 하나, 하나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진의 옥새(玉璽) 같은 경우는 당장 천하를 뒤집을 수도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지.”
시황제의 옥새!
그를 상상한 황준우의 눈이 떨렸다.
“진짜, 잘못 사용하면 엄청 위험하겠네요.”
“사용의 문제 정도가 아니다. 현재 진의 옥새 같은 경우 섬서 전체를 유지하고 있는 맥의 근원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
“허…….”
“그런 옥새가 갑작스럽게 사라진다면, 섬서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될지도 모른다.”
한낱 옥새가 대체 뭐기에 거대한 섬서 전체의 맥을 지탱하고 있는지 이해가 쉽게 되지는 않았다. 하나 황석후의 진중한 말과 무겁게 끄덕여지는 신아의 고개를 보니 과장이 섞인 것 같지는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 하지만 시황제의 옥새쯤 되면 실상 이미 보패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물건이란다, 아가야.”
“보패라는 건, 신선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말하는 건가?”
“꼭 신선만 사용하는 건 아니지. 그만한 영능과 힘, 그리고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작은 돌멩이조차도 보패가 될 수 있다.”
신아의 설명에 황준우의 머릿속이 번쩍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