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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47화 (147/373)

학사재생 147화

제 147화

“이름! 명력과 상관이 있는 건가!?”

“역시, 명력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네.”

신아는 황준우를 점점 더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세히는 알지 못해. 설명 좀 해줄 수 있어? 부탁할게.”

황준우의 물음에 신아가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이 몸이 아니면 누가 말할 수 있겠어. 훗. 일단, 명력이란 말 그대로 이름의 힘이다. 보패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 여건이지.”

“보패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 여건…….”

“그렇다. 보패란 것은 태초의 흔적, 그리고 삼황오제를 비롯한 그를 따르는 고위 신들이 창조한 물건들이 대다수이긴 하다만, 아주 가끔 요괴나 마물, 혹은 인간들이 사용하는 도구에서도 이런 보패가 탄생한다.”

“최소 이름이 있는 물건을 바탕으로 말이지.”

“역시 이해가 빠르구나.”

황준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그동안 명력에 대해 가졌던 의문, 호기심 등이 빠르게 정리되어 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름만 높고 보패가 되지 못한 도구도 존재한단 거군.”

“바로 맞혔다. 오히려 그런 물건들이 대다수라고 할 수 있지. 그렇다고는 해도 보패와 가까운 영능을 발휘하는 녀석들도 제법 있다만…….”

“혹시 청홍검에 대해 알아?”

“잘 알지. 보패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순수한 위력만 치자면 제법 쓸 만한 수준의 보물이 아니더냐?”

“아아, 역시!”

황준우는 무릎을 쳤다.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천마신검과 청홍검의 차이.

보패와 명력을 가진 보물의 차이다.

“고마워, 궁금했던 것이 많이 풀렸어.”

봉을 다루기 위해서는 적절한 당근이 필요한 법.

황준우의 칭찬에 얼굴을 붉힌 신아가 팔짱을 끼며 콧대를 높였다.

“흐흥, 뭐. 이 정도쯤이야.”

“참, 그래서 진짜 진시황릉에 계셨던 거예요, 아버지?”

물론 더 콧대가 높아지기 전 적당히 무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너무 자만스러워지면 바라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질 테니 말이다.

그런 황준우의 속내도 모른 채,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은 신아가 입맛을 다신다.

“정확하게는 여기 있는 대표두와 함께 지키고 있었다. 진시황릉을 발견한 천마신교 측에서 옥새를 노리는 것을 막느라 바빴지.”

“과연…….”

천마신교는 진짜 진시황릉을 찾았었다.

그를 토대로 가짜 함정을 만들고, 그들을 몰아넣었다.

진실 위에 가짜를 덮는 것.

많은 사람들을 속이기에 가장 좋은 수법이다.

“어, 그러고 보니 지금은 어떻게 여기 계신 거예요?”

황준우의 질문은 당연했다.

그 말대로라면 황석후와 여선위 모두 이 자리에 있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시황제의 옥새란 정말 어마어마한 보패이며, 위험한 물건이지 않은가?

“진시황릉을 다시 봉인했다.”

황석후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황준우는 의문을 느꼈고, 신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 설마, 또 언령(言令)을 사용한 게야? 이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놈!”

“언령?”

황준우가 신아를 바라본다.

“모든 술의 정점에 위치한 최고위 주문이다. 본래는 최소 선계에 이른 신선(神仙)들 중에서도 일부만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다만, 네 아비는 별다른 수련도 없이 그를 활용할 수 있지.”

황준우가 놀라 황석후를 바라보았다.

여태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본 결과.

언령은 굉장히 강력한 술법계의 힘 중 하나다.

어떻게 황석후가 수련 없이 그를 다룰 수 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사용하면 목숨이 위험한 수준이다.

“아버지?”

“너무 놀라지 말거라. 길어야 보름 정도를 단축하는 것이니…….”

보름이 짧나?

황준우의 두 눈에 걱정이 크게 깃들었다.

심지어 황석후가 그 능력을 사용한 게 지금 한 번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해 보였다.

“고작 보름의 수명으로, 수만, 수십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석후는 신아와 황준우, 두 사람을 향해 강렬하게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견을 받지 않겠다는 태도다.

때문에 두 사람 모두 할 말이 많았지만,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황석후의 분위기가 그 정도로 무거워진 탓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황준우가 궁금해했던 것 대다수를 해결해 주었다.

어찌 보자면 가장 중요한 언령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는 했다.

‘하지만 물어봐도 말씀해 주시지 않겠지.’

여태껏 숨기고 있던 만금장의 비밀, 곤륜과의 관계.

그리고 황석후의 대의를 모두 알았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 눈에 뻔히 보였다.

“그래. 일단 언령으로 봉인되었으면 다시 그 문을 열기가 쉽지 않을 테니…… 뒤탈은 걱정 없겠네. 휴, 일단, 이것부터 보자꾸나.”

신아는 안타까움의 한숨을 쉬며, 이야기의 본론으로 돌아왔다.

품에서 꺼내 든 것은 마술사가 불고 있던 생황이다.

마지막 순간 대술사가 목숨을 내던지며 쥐려 했던 물건. 하나 결국 신아의 손에 들어왔다.

“이건…… 그러니까, 여와의 생황이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신아가 말문을 열었다.

“여와의 생황?”

곧장 손을 든 황준우의 질문에 신아가 고개를 주억였다.

“삼황오제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아, 대충은.”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이후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이게 그, 인황(人皇) 여와가 쓰던 생황이란 건가? 그럼 보패?”

“일반적으로는 그래. 한데…… 조금 달라. 언뜻 보자면 분명 내가 듣던 것과 일치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분명 이런 느낌이 아니야. 여와의 생황은 이처럼 사악한 기운을 풍기지도 않고, 고약한 악취도 없지. 지금 내 견해로는…… 그저 흉내 낸 모조품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어.”

“모조품이라고?”

확실히, 황준우의 눈에도 보이는 탁기가 불쾌한 물건이다.

인황이라고도 불리는 여신 여와의 물건이라 보기에는 꺼림칙한 면이 많았다.

“아무래도 이것을 이용해서 그 괴이한 곳에 있던 토병들과 흑영사를 움직였던 것 같기는 해. 흉내라고는 하나, 생명을 다루는 것이 여신의 권능이니 말이야.”

“그렇군.”

대수롭지 않게 답하던 황준우가 곧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고작 흉내를 낸 수준의 물건이 그런 일을 해냈다고?”

“흉내라고 하여도 자그마치 여와의 생황이야. 보패라고 하여도 다 같은 보패가 아니란다, 아가야.”

“음…….”

“어쨌든 이것도 굉장히 위험한 물건이기는 해. 회수해서 정말 다행이랄까?”

신아의 목소리에는 확실히 안도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래서 더 불안하기도 하고.”

뒤이어진 목소리는 곧장 짙은 안개가 낀 듯 음울해졌지만 말이다.

“그 불안감의 요소가, 아까 이야기하고 있던 항산마서?”

“그래. 항산마서. 이걸 설명해 줘야겠지.”

잠시 한숨을 내쉰 신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쉽게 말해서, 항산마서는 재앙을 몰고 오는 산신(山神)인 팔각마의 보패야.”

황준우는 고개를 주억였다.

산해경에서도 보았지만, 역시 산신이라고 하여 모두 영험한 일만을 불러오지는 않는 듯했다. 특히 항산의 산신, 팔각마는 나타나는 곳마다 전쟁을 만든다고 하여 더욱 유명하기도 했다.

“한데, 그 보패가 사라졌다 이거네.”

“그렇지. 신중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겁이 더 많은 녀석이었나 봐. 마술사 놈. 인형을 몇 개나 준비한 건지…….”

“아, 그러고 보니 처음 내가 죽였던 것도 인형이라고 했지?”

“인형이라고 해도 본래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놈들이 그렇게 만든 거지.”

흥분한 듯 이야기하는 신아가 이를 갈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심령을 제압하고 가두어 인형으로 만든 이후 제 꼭두각시처럼 쓰는 마술사의 술수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 탓이었다.

“끔찍한 일이군.”

“괜히 마술사라 불리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인형을 죽였다고는 해도 본래 가지고 있던 항산마서는 어떻게 사라진 건데?”

“어쩌면, 놈이 네게서 벗어날 때 사용했던 마술. 처음에는 달아나기 위한 용도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눈속임일 뿐이고 애초부터 항산마서를 빼돌리는 게 주목적이지 않았을까 싶어.”

“난 그것도 모르고 녀석을 쫓았고.”

이를 아득 간 신아의 눈에 쌍심지가 치솟았다.

“물건만 이동시키는 마술이 있다고는 들었으니까, 아무래도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 될 거야.”

“그러면 그 괴상한 마술사 놈이 살아서, 지금쯤 항산마서를 들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겠네?”

“아마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아냐?”

황준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 전 제갈량에게서 멸망의 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그럴까? 항산마서란 것이 유독 불안하게 느껴졌다.

“찾을 수 있으면 진즉 찾았겠지. 분하지만 놈은 뛰어난 마술사다. 인형을 이용해서 이 몸과 정면으로 승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녀석이 몸을 숨기고자 마음먹으면 선계의 신선이 내려온다 한들 쉽지가 않다.”

“내가 찾아볼게.”

“흔적을 찾을 방법이 전혀 없어. 천리안의 범위에서도 이미 사라졌고…….”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해 보는 것 보다는 낫잖아.”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마저 아까워진 황준우가 등을 돌렸다.

“좋은 생각이다. 저도 최대한 사람을 풀어 보아야겠습니다.”

황석후도 몸을 일으켰다.

신아는 포기했지만 아직 두 부자는 끝나지 않았다.

그 든든한 모습에 신아의 가슴이 저도 모르게 뛰었다.

‘찾기는 정말 힘들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이토록 듬직하게 버텨 준다는 건 또 다른 감정이다.

“두 녀석 모두 정말…….”

그녀의 마음에 왠지 모르게 흐뭇한 감정이 가득 차려는 순간이었다.

청하루의 문이 열리며 꾀죄죄한 모습의 사내 하나가 신아의 앞으로 달려온다.

“으허엉, 스승님!”

만신창이가 된 모습의 신일이다.

지하 무덤에 민폐가 되지 않겠다고 꼭꼭 숨어 있었던 그가,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다시 돌아왔다. 갑작스럽게 동굴이 무너지고, 기운이 폭주하던 그 틈새에 정말 힘겹게 버텨 낸 그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신아를 바라본다.

“저, 저를 잊고 계셨던 건 아니죠?”

“…….”

신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거, 걱정돼서 찾으러 가려고 했다.”

뒤늦게 거짓말이 나왔지만, 말 그대로 늦어 버린 후였다.

“너무하십니다, 스승님!”

소리치는 신일과 난감해하는 신아.

두 사제를 잠시 바라보던 부자는 빠르게 바깥을 향했다.

그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더 바쁜 일이 남았으니 말이다.

‘어디 한번 찾아볼까.’

황준우의 걸음이 빠르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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